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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무드내 건너 저 쪽 / 이중근

  할머니는 한 번씩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마다 앙상한 갈비뼈가 새 조롱 같이 드러났다. 콩-콩- 심장 소리가 멀게만 들린다. 나는 청진기를 벗고 할머니- 나직이 불러 봤다. 들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하얀 시트처럼 미동도 없는 할머니를 덮고 있다. 푸우- 할머니는 대답 대신 다시 한 번 숨을 몰아쉬었다. 틀니를 빼 항문처럼 오므라든 입 주둥이가 비로소 벌어진다. 숨을 멈췄다 다시 쉬기까지 간격이 너무나 일정해 할머니는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 차곡차곡 숨을 접어 누구에겐가 반납하려는 걸까?…어쩌지…망설이던 나는 며느리에게 기름과 비닐장갑을 청했다. 사실 혈압이나 맥박, 호흡수 같은 게 전부는 아니다. 나는 장갑을 끼고 음부가 드러나지 않을 만큼 팬티를 내렸다. 미이라처럼 말라붙은 둔부 사이로 기름 묻힌 검지를 밀어 넣자 아무런 저항 없이 쑥 들어간다. 항문 괄약근이 조이는 기능을 잃고 맥없이 풀려 있는 것이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려도 텅 빈 허공처럼 걸리는 거 없고. 이제 할머니는 똥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자기 몸에 간직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다. 그럼 자신의 일생과 그에 새겨진 기억들이 송두리째 빠져나갈 것이다. 뒤이어 바람이 이 구멍을 자유로이 들락거리며 할머니를 천천히 풍화시키리라. 나는 장갑을 벗고 일어나 아들 내외를 밖으로 눈짓했다.

  그 소동이 있기 전까지 문 씨 할머니는 매달 혈압 약을 받으러 오는 평범한 환자였다. 하얗게 센 은빛 머리 아래 퀭하니 들어간 눈, 뾰족한 코와 불쑥 내민 턱주가리. 굽은 허리에 어기적어기적 안짱다리를 끌며 내딛는 지팡이 소리가 남다르다면 남달랐을까. 턱 터억- 턱 터억-. 나무 옹두리 같이 툭 불거진, 그 아픈 무릎에 대한 원망과 짜증이 잔뜩 묻어 있는 소리가 저만치 들리면 간호사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트를 미리 빼놓았다.

  에구구구 빨리 왕 데려 가야 할 건디 데리래 오지도 않고…. 할머니는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다글락 지팡이를 동댕이치고는 장의자에 쓰러질 듯 몸을 던졌다.

  누가 모시러 오기로 약속 해수꽈? 개업한 지 얼마 안 돼 내가 비위를 맞춘다고 묻자

  누군 누구라, 채시 말이주. 괭이 눈으로 째려보며 가시 돋친 소리를 했다.

  머쓱해진 내가 할머니 어떻게 오십디가? 말꼬리를 돌리면

  걸어오주, 게난 이 다리로 달려와? 기다렸다는 듯 핀잔주던 조금은 고약한 할머니였다.

  어느 오후. 환자 대기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웬일이지 싶어 얼른 나가보자 문 할머니가 김 영감의 멱살을 잡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영감을 메치는 바람에 벽에 걸어 논 패널들이 우당탕 떨어졌다. 간호사들이 겨우 둘을 떼놓자 영감은 미친 개에 쫓기듯 황급히 병원을 빠져 나갔다.

  "이놈아 벼락이나 맞아 되싸져라! 내 돈 먹고 얼마나 잘 사나 보자." 할머니는 벌써 자리를 뜬 사람을 향해 씩씩거렸다.

  "육시를 해도 시원찮을 놈…조쟁이를 끊차 버릴까부다…. "

  된욕 안 된욕 계속 늘어놓는데 나는 슬며시 괴이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 살지도 않는 김 영감이 떼먹은 돈이라니? 하긴 영감 원 고향이니 가끔 오갈 대소사와 들여다볼 경조사가 없으랴마는, 둘 사이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단 말인가? 안 그래도 할머니는 그즈음 좀 이상했다.ㅣ

  할머니 혈압이 백 오십에 구십이우다. 약 잘 먹읍써. 귀에다 대고 또박또박 일러줘

  응 알아서, 하고 진료실을 나간 이가 쪼르륵 되돌아와

  게난 나 혈압이 몇이라? 묻는 것이었다. 간혹 이명 비슷한 증상을 호소한 적이야 있지만 바스락, 낙엽 구르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고 귀도 밝은 이가….

  할머니는 그렇다 치고 밖으로 나가보자 김 영감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촌수를 따지기 힘든 먼 친척이지만 일부러 찾아오는 영감에게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이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 뿐 아니라 죽는다면 언제쯤 죽겠는지를 족집게처럼 알아맞혀야 하는 일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내가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고 선고한 양반이 내일 부스스 털고 일어선다면 나는 뭐가 되겠는가? 싱거운 돌팔이 의사라는 원성을 면키 어려운 것은 물론 임종을 위해 육지서 달려온 손자라든가 조객들의 비행기 표가 휴지조각이 되지 않겠는가?…마루에는 생각 없는 초가을 햇살이 가득하다. 나는 높은 데서 뛰어내리듯 질끈 눈을 감고 입을 뗐다.

  "할머니 오늘 넘기기 힘들 직 허우다."

  어버버 버버. 벙어리 아들 무근 씨도 예상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숱 없는 정수리가 햇살에 반짝거린다…필요헌 일 있으면 또 전화 헙서예. 객쩍은 인사를 마친 뒤 댓돌에 놓인 구두를 신고 마당으로 내려서는 동안 집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아주머니 둘이 우왕좌왕 하고 며느리는 전화통에 매달렸다. 무근 씨는 수의라도 꺼내려는지 궤의 자물쇠를 잡고 덜거덕거렸다. 할머니의 죽음이 기정사실이 된 것처럼 나 또한 제풀에 숙연해졌다.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맨 처음 이 집을 찾았을 때가 머리에 떠올랐다. 대문을 열다 말고 나는 뒤를 향해 코를 킁킁거렸다.

  일 년 전 김 영감과의 소동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삐걱이는 양철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는 예기치 않은 어떤 냄새 때문에 감전된 듯 발이 땅에 붙었다. 매캐한 게 무슨 타는 냄샌데 무슨 냄샌지 얼른 집어낼 수 없다. 나는 거동이 어렵다는 할머니 대신 왕진을 온 터였다. 분명히 아는 냄샌데…코를 간질이던 냄새는 점점 나의 가슴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곡명이 잘 안 떠올라도 어떤 심금을 울리는 음악처럼 냄새는 온통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이 집에 온 목적도 잊은 채 홀린 듯 냄새의 근원을 좇아 천천히 발을 떼었다. 마당을 건너 장독대를 끼고 초가 모퉁이를 돌자 아, 거기 아궁이 속에 솔가지들이 벌건 혀를 널름거리며 타고 있었다. 타닥 타닥 이따금 송진에 불이 붙는 소리가 났다. 냄새는 아궁이 지피는, 여기 제주도 말로 '굴묵 때는' 냄새였다.

  집안에서는 전공들이 시꺼멓게 그은 벽을 걷어내고 배선을 다시 깔고 있었다. 새삼 굴묵 때는 사정을 알만했다. 화재는 가스불에 국 앉힌 것을 할머니가 까먹으면서 시작됐다고 했다. 할망 노망 들어수꽈? 초가삼간 다 태울 뻔 해서예? 전공 하나가 실실 할머니를 놀렸다.

  양쪽 오금서부터 발끝까지 이스트로 부풀린 듯 큼직큼직한 물집들. 장판으로 번진 불을 얼결에 발로 비비다 할머니는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잘큰다리여, 안짱다리에 화상까지…. 나는 고소한 생각마저 들며 사정없이 물집을 걷어냈다. 아가가가가…엄살 섞인 비명 속에 노란 진액이 빠지고 벌건 속살이 드러났다.

  며칠 드나들며 환부가 꾸들꾸들 마르기 시작하자 나는 슬쩍 벼르던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 길에서 주민증 줏으면 어떵 헙니까?"

  "그야 동에 갖다 주믄 되주"

  우체통에 넣는다가 정답이지만 여건에 따라 동사무소도 괜찮다. 미장이 흙손질 하듯 환부에 쓰윽 연고를 바르며 나는 다시 물었다.

  "옷은 왜 빨아 입습니까?"

  "냄새 나는 옷 입고 다니믄 사람들이 저 할망 노망 들었져 손가락질 할 거 아니라?"

  "예 좋습니다."

  100에서 7을 계속 빼나가기도 장사를 해 본 적이 없는 할머니로서는 그런대로 해냈다. 변별력이 떨어지는 오각형 겹쳐 그리기는 생략하고

  "할머니 이게 뭐우꽈?"

  나는 웃 호주머니에서 꺼낸 볼펜과 손목에 찬 시계를 보여주었다.

  "볼펜광 시계주, 그게 뭐라?"

  "예 맞수다. 이따 내가 다시 물어 볼 테니까 잘 기억해 둡써"

  "응 알아서."

  자기 때문에 난 불로 풀이 죽은 할머니는 사뭇 고분고분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내가 헛짚었지 싶었다. 보통 시공간 지남력은 끝까지 남아있는 법이라 나는 별 기대 없이 오늘이 몇 년 몇 월이냐고 물었을 것이다. 방심한 채 무슨 자년 섣달이라는 대답을 흘려듣던 내 귀가 쫑긋 섰다. 어럽쇼. 작년이 광복 60주 을유년이고 그러면 에 또 올해는 병술년인데…. 간지에 어두운 나도 해방되던 해 생겼다는 어느 출판사 덕에 을유년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무더위로 잠 못 이룬 게 엊그젠데 섣달이라니…나도 모르게 연고를 바르는 손에 힘이 들어가 종아리에서 피가 둑둑 들었다.

  "에그그그 조금 솔솔 허여게."

  "어이쿠 미안허우다. 그러면 할머니 집 주소는 마씸?"

  "화북동 곤흘이주, 자기 사는 주소도 몰라?"

  그럼 그렇지. 나는 뭔가 실마리를 잡은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 집은 벌랑이라고 화북 마을 동쪽 끝이고 곤흘은 서쪽 끝으로 숫제 사람이 살지 않는 바닷가였다. 나는 바싹 할머니에게 다가 앉았다.

  "할머니 아까 제가 뭐 두 가지 보여줬지예?"

  할머니는 곰곰이 기억을 더듬는 눈치더니 버럭 화를 냈다.

  "원장은 내가 노망든 줄 알암서? 게난 지금 나를 미친 할망 취급허는 거라?"

  할머니 기세에 움찔한 나는 한 발짝 물러서 바르던 연고를 내처 발랐다. 아마도 할머니는 볼펜과 시계를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치매 환자의 망상 중에 흔한 것이 누가 내 돈을 훔쳐갔다는 것이다. 어디다 돈을 뒀는지를 까먹어 도둑맞았다고 변명하는 것인데, 모르되 할머니는 그 누명을 김 영감에게 씌웠을 수도 있다.

  금방 아침상 물리고도 돌아서민 또 밥 달랜 성화 아니꽈. 며느리 곰보각시가 뒤따라 나오며 거들었다. 굴묵 냄새는 예기치 않은 것이었지만 할머니는 내 예상대로였다.

  그 무렵 굴묵 때는 냄새처럼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다 주는 것들이 때 없이 찾아왔다. 쇠붙이가 자석에 끌리듯 고향 제주시 화북동, 시골이라 하기에도 그렇고 도회지라 하기에도 어중간한 마을에 내려와 개업한지 어언 십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판에 박힌 생활에 염증이 나설까? 아니면 사십 줄에 들어선 나이 탓일까? 하긴 나이 사십이면 인생의 반환점을 돈 것이다. 반환점을 돌면 자연스레 출발점으로 고개가 돌아가기 마련인 줄 모른다. 나는 무슨 소중한 것을 흘리며 예까지 왔는지 지난 시절을 더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했다….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찾아온 어린 손자에게 가끔 굴묵 일을 시켰다. 가지런히 팬 장작이나 솔가지, 볏짚, 마른 소똥 같은 것이 타는 연기에 눈물을 흘려가며 나는 굴묵을 땠다. 무섭게 활활 타오르던 볏짚이 일순 고운 재로 사라지는 것을 나는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기억이란 종잡지 못할 것이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던 첫사랑 전화번호는 국번조차 까마득한 반면 무심코 지나쳤을 코흘리개적 일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르는 것이다. 한번은 군고구마 장수 드럼통 곁을 지나는데 어느 가을날이 불쑥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붉은 삼나무 마냥 화염이 하늘로 치솟고 검댕이 부슬부슬 눈처럼 날리는 풍경. 아마 할아버지 논에서 추수가 끝나고 한데 모은 이삭이나 검불을 태우며 덤으로 구어 먹던 고구마 냄새가 나의 뇌리에 남아 있었으리라…. 당시 권농일이면 도지사가 모 내는 시늉을 하고 가던 논. 지금은 매립된 그 논을 휘돌며 마을 사람들이 무드내, 멋없이 그냥 화북천이라고도 하는 하천이 흐른다. 제주시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낚시나 봄 소풍으로 가봤을 무드내. 그 무드내 하구가 할머니가 말한 곤흘이었다.

  창고에서 재고품 꺼내듯 내가 한 가지씩 기억을 끄집어내 툭툭 먼지를 터는 동안 문 할머니는 하나 둘 기억을 잃어가는 게 역력했다. 화상이 아물고 다시 병원 출입을 시작한 할머니는 간혹 신발을 품에 안고 들어왔다. 신발을 벗어야 할지 신어도 되는지 헷갈리는 것이다. 아가씨 새로 왔네, 개원 이래 죽장 눌어붙어 있는 송 간호사에게 인사를 건넨 뒤, 전에 간호원 시집 간? 참 참했는디, 서운해 하기도 했다. 누누이 백 오십에 구십을 일러줘도 진료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게난 나 혈압이 몇이라? 똥개 훈련시키듯 똑같은 답을 요구하는 것도 여전했다. 알기 쉽게 사람의 뇌를 공책이라 쳐보자.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적어 놓는 공책. 건망증이 공책 군데군데 퇴색되거나 찢어진 거라면 치매는 공책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과 같다. 백 오십에 구십을 아무리 외쳐도 기입할 공책 자체가 없는 것이다.

  내가 이명이지 여겼던 것은 환청임이 드러났다. 숭헌 소리 남쪄어…. 할머니는 이따금 청진기를 낚아채 자기 귀에 갖다 댔다. 그 소리란 것도 누구 죽어신가? 곡허는 소리 들렴서, 식으로 할머니가 중계하는 것을 대충 옮겨보면 통곡 소리, 비명소리, 아기 울음소리, 고함 소리, 따당- 따당- 아닌 밤중에 총소리 따위 흉흉한 것들. 게다가 그렇게 깔끔 떨던 할머니는 철을 잊으며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겹겹이 옷을 껴입고 다녔다.

  그래도 처음에는 공책의 한두 쪽 낙장이라도 남았던 걸까? 어느 날 처방전을 든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길래 누굴 찾느냐 물었더니 눈에 번쩍 불이 켜졌다.

  "아 그 덕대 크고 머리 벗어진 놈 어디서?"

  피이 또 김 영감, 자기 아들도 대머리면서.

  "할머니, 영감 여기 안 살암수다. 시에 살암수께, 성내. 내가 몇 번이나 얘기합디가?"

  행정 구역상 같은 제주시 관내이면서도 화북 사람들은 무드내 건너 시내 중심지만을 시, 성내 또는 성안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도 나를 우리 성안 손주, 우리 성안 손주 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김 영감 내놓으라고 막무가내 떼를 쓰던 할머니는 급기야 지팡이를 내리쳤다. 내가 숨기고 있다며. 얼굴을 가리다 애꿎게 팔을 얻어맞은 나는 순간 화가 치솟아 벌떡 자리서 일어서다, 말았다. 그래도 할머니는 병원 환자 머릿수를 채워주는 사람 아닌가? 식당과 병원은 사람이 북적일수록 더 손님이 꾀는 법이라고 할머니 같은 이라도 문전을 어질러 줘야 좋은 것이다. 게다가 내게 '채시'가 저승 차사를 가리키는 제주 말임을 가르쳐 준 이고…. 나는 퍼렇게 멍이 든 팔뚝을 어이없이 바라보며 분을 삭이려고 애썼다. 서울서 제주 촌놈 소리 듣다 고향에 돌아온 나는 서울 촌놈 소리 듣기 딱 맞게 제주도 사투리에 반 귀머거리였다. 헛갱이나 게틀레기가 무슨 증상인지 몰라 헤맬 때 할머니가 게난 원장은 제주도 사람 아니라? 나무란 뒤 에취, 끄윽, 몸소 시범을 보인 뒤에야 나는 이 말들이 재채기와 트림인 줄 알았다.

  슬슬 분이 풀린 자리에 묵은 의문이 되살아났다. 정말 둘 사이에 무슨 면식이라도 있는 걸까? 사사건건 걸고넘어지게…무턱대고 내놓으라고만 하니 나로서는 영문을 알 수 있나? 내가 갖고 있는 공책, 기억의 갈피 어디를 뒤져도 문 할머니와 영감을 잇는 끈이나 공통점은 쉬이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둘 다 팔십을 넘긴 노인이라는 것 외에는…. 아닌 말로 진료비만 해도 내가 몇 번 사양하자 이제는 으레 그냥 가는 영감과 달리 문 할머니는 꼬박꼬박 돈을 내기 시작했다.

  "였다. 진찰료"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접은 만 원권 지폐를 꺼내 꼭 내 손에 쥐어줬다.

  "할머니, 할머닌 1종 의료보호니까 돈 안내도 됩니다. 그냥 갑써"

  할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냥 가도 돼? 그게 무신 말이라?…"

  어리둥절해 하다 곧 횡재한 표정으로 돈을 빼앗고는 병원 문을 나섰다. 그것도 잠시 이내 지린내를 풍기며 되돌아와 포갠 손을 내밀었다.

  "아까 만원을 내신디 잔돈도 안 받고 그냥 갈 뻔 했네."

  한 동안 누군가를 찾는 눈치던 할머니는 점점 멍-하니 앉았다 그냥 가는 날이 많아졌다, 처음엔 자신이 누구를 찾는지 그 대상을 까먹더니 나중에는 누구를 찾는다는 사실 자체를 잊은 듯 했다. 가면을 쓴 것처럼 무표정하고 싸늘히 식은 얼굴로 병원 문을 닫을 때까지 온종일 앉아 있을 때도 있고. 반짝이던 두 눈은 초점을 잃고 성에 낀 유리창처럼 흐려갔다. 그 눈을 들여다보면 할머니는 그 속, 수명이 다 된 전구가 간신히 비추는 어둡고 적막한 곳에 갇혀 있으려니 싶었다.

  어찌 할머니뿐이랴. 나 또한 내가 어쩔 수 없는 수인으로 느껴지던 때였다. 병원에 들른 한 친구는 어허 창살 없는 감옥이로고, 권태와 피로에 찌든 내 모습에 위로 반 조롱 반 한마디 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도합 열 시간을 진료실 의자에 묶여 외양간 소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으니…. 짬이 나면 쇠여물 대신 지난 시간을 게워내 꼭꼭 되씹는 게 할머니와 다를 뿐. 그 여물에는 굴묵 냄새처럼 지금은 좀체 맡을 수 없는 냄새도 있고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무적이나 오포 소리 따위도 있다. 바다가 온몸으로 신음하는 것 같던 무적 소리, 엥- 에엥 모기 소리를 증폭시킨 것 같던 오포 소리. 어릴 적 일쑤 낚싯대는 내팽개치고 무드내를 거슬러 가보던 것처럼 나는 그런 허드레 기억을 주우며 시간을 더듬는 것이다.

  그나마 할머니는 길눈이 어두워지면서 발길이 뜸해지고 곰보각시가 대신 약을 받으러 왔다. 병원에 왔자 이젠 원장님도 못 알아볼 거우다. 거울에 비친 자기한테 놀라 누구시우? 묻는 판이니…. 어두워진 게 길눈만이 아닌 모양이다. 하루는 아들이 죽은 남편으로 뵈는지 자기를 밀치고 아들 곁에 누운다고 했다. 어디 갔다 이제 오냐고 타박하면서…. 그렇게 밤에는 안팎거리를 들락거리며 온통 사람을 깨운다 흉을 보고 가더니 며칠 후 반갑지 않은 연락이 왔다.

  처방해 준 수면제를 먹여도 할머니가 연 삼일 잠 못 이루고 서성거리며 소리를 질러댄다는 것이다.

  비명인지 욕설인지, 괴성을 지르다 지치면 퍼질러 앉아 우는데…줄초상 난 것처럼 그칠 줄 모르니 동네 창피해서 살 수가 어수다…음성은 또 어찌나 괄헌지…붉은 빛만 돌면 불났다고 난리굿 벌이는 거야 저번 화재 때문이라 쳐도…. 의심과 소란과 불면. 치매 환자가 주위 사람을 괴롭히는 세 가지. 이제 벽에 똥칠할 일만 남았군. 나는 내키지 않는 마음을 추슬러 퇴근길에 차를 벌랑으로 몰았다. 해는 나도 턱이 덜덜거리게 추운 날이었다.

  예의 양철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굴묵 냄새 대신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가 나를 맞는다. 마당 한 구석에 온갖 쓰레기들이 폴폴 악취를 풍기며 봉분처럼 쌓여있다. 대문만 열려시믄 밖으로 싸돌아 다념수께. 쥔 없는 것은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오고. 마중 나와 있던 곰보각시가 푸념했다. 이젠 아예 유모차로 실어 왐시니…. 쯧쯧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보상심리일까? 안 봐도 집 나온 개처럼 덜레덜레 거리를 헤매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코를 움켜쥐고 각시를 따라 불이 났다는 밖거리로 갔다.

  불이여 불! 안절부절 못하는 할머니를 붙들고 무근 씨가 쩔쩔매고 있다. 아이고 어떵허리 세간살이 다 타켜, 불이여 불. 지는 해가 들창에 걸려 방 전체가 벌겋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들 손을 뿌리치고

  "순경 온다 혼저 숨으라, 순경 왐서 어서 숨어!" 외치며

  이리 호륵 저리 호륵 숨을 구멍을 찾아 달린다.

  바로 눈앞의 문을 놔두고 쿵-쿵- 벽에 부딪힌다. 흙벽이 금방 무너질 것만 같다. 나는 서둘러 앰풀을 땄다. 주사기에 약을 재는 사이 살려줍써 제발 살려줍써, 할머니가 싹싹 빈다. 누가 죽인데요? 묻고 싶은데 맙소사 할머니가 홀라당 하의를 벗고 벌렁 뒤로 자빠졌다. 불두덩 거웃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

  "뭣들 해요? 빨리 잡읍서!"

  두 내외가 한 팔씩 붙들자 나는 푹- 바늘을 찔렀다. 발륨이 들어가기 무섭게 할머니가 쭈욱 뻗는다. 곰보각시가 달려들어 안짱다리에 소중이를 꿰기 시작했다. 며칠을 뜬 눈으로 샜는지 할머니는 코를 골며 깊은 잠 속으로 나가 떨어졌다.

  노루 꼬리만큼 짧은 겨울 해. 밖에는 벌써 어둠이 내려앉았다. 일몰 현상이라고 치매 환자가 해 질 무렵을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래도 그렇지. 할머니가 늘 입에 달고 다니던 말대로 늙으면 얼른 채시라도 납시어 데려가야 되는 것인지 원…. 할머니를 지켜보다 일어서던 나는 한사코 무근 씨가 붙드는 바람에 못 이기는 체 눌러앉았다. 어버 버버. 숟갈 뜨는 시늉을 보니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는 듯 했다.

  "오늘 누구 제사꽈?"

  그러잖아도 공연히 흘레붙는 암캐가 떠올라 입맛이 쓴 나는 젓가락으로 고사리를 집으며 인사치레를 했다. 곰보각시가 들고 온 상에 고사리와 숙주나물 데친 것, 대꼬챙이로 꿴 고기적, 전 지진 것 등 대충 제사 음식이다.

  어릴 땐 그렇게 싫던 고사리가 이제는 맨 먼저 손이 간다.

  각시는 꼬챙이를 빼고 잔을 채우며 심드렁 말을 흘렸다.

  "우리 시아버지 제사 마씸…곤흘 살다 난리통에 죽은…."

  그러고 보니 건넌방 장지문을 통해 펄럭이는 게 젯상의 촛불인가 보다. 퍼뜩 할머니가 여기는 곤흘이라고 한 게 머리를 스쳤다.

  "아 곤흘에도 사람이 살아났구나예?"

  이상한 느낌에 나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아니 원장님은 화북 사람이면서 것도 몰람수꽈?… 한 60호 되는 동네였덴 헙디다…곤흘서 사람 많이 죽어수께…."

  곤흘. 한라산을 쉼 없이 달려 내려온 무드내가 마지막 숨을 고르는 하구. 해풍으로 꾸부정 허리 굽은 노송과 그 그늘에 건물 한 채. 단골 알레르기 환자인 박 기사 아니면 대체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을 '화북 펌프장'과 외소낭. 그 말고는 온통 억새밭일 뿐인데…. 입도조부터 할아버지까지 육 대에 걸쳐 닦은 터이니 고향이라 아니 할 수 없지만 의대 마치랴 군대 갔다 오랴 전문의 자격증 따고 개업하랴, 근 이십 년 진을 뺀 나로서는 사실 살아보지도 않은 땅, 태어나기도 전 일에 차마 관심을 둘 여력이 없었다.

  "우리 집 아방도 유복자 아니꽈…어이쿠 말 시키지 맙써…정말 맨 정신으론 헐 수 없는 얘깁주."

  나는 얼른 각시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오랫동안 벙어리 남편 입노릇을 해선지 말문을 열자 곰보각시는 청산유수였다. 무드내가 시작하는 중산간에서 심성 고운 신랑이란 말만 듣고 시집오던 날 딱 한 번 시어머니로부터 들은 얘기라 했다.

  지금 우리 병원이 있는 조금 언덕진 커브 길을 그때는 훼싼 거리라 했다. 밤에 관솔불이라도 밝히던 길인지…. 무드내를 건너 온 경찰 쓰리 쿼터가 막 훼싼 거리를 지날 때 기다리던 무장대가 습격했다. 진짠지 꾸며낸 것인지 경찰 한 명이 죽고 곤흘 쪽으로 무장대가 달아났다. 경찰은 그날 밤 병력을 총동원하여 곤흘을 찾았다. 진눈깨비가 희끗희끗 날리고 칼바람이 불었으니 꼭 오늘 같은 날이었으리라. 검정 제복을 입고 온 그들은 굶주린 까마귀 떼 같았다. 경찰은 부지깽이로 도새기 몰 듯 주민들을 공회당에 한 데 모은 뒤 한 사내를 불렀다. 경찰 유족이라는 그 분기탱천한 총각이 찍은 사람들은 따로 총부리를 들이대 바다로 내몰았다. 엄동설한 창졸간에 해수욕을 하게 된 사람들 허리께 물이 찰 즈음 따다다당- 총구가 불을 뿜었다. 해녀 태왁처럼 시체들이 둥둥 물에 떠다녔지만 아무도 건질 엄두를 못 냈다. 끽소리 한 번 못하고 벌벌 떨며 겁똥을 싸지른 이가 한둘이 아니었으리…. 텅 빈 마을에는 석유를 뿌린 뒤 불을 질렀다. 저승차사가 따로 없었다.

  "그 때부터 곤흘이랜 허는 동네는 지도에서 완전히 없어진 거주…."

  꼬챙이로 상다리 장단을 맞추며 각시가 사설을 푸는 동안 어버버버 어버…무근 씨는 고비마다 목에 핏줄을 세우며 추임새를 넣는다.

  자세한 말은 피했지만 시어머니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 쳤다. 열두 살 소녀 상군부터 새색시던 당시까지 물질로 번 돈도 모두 바쳤다. 다행히 남편은 그 날 목숨을 건졌다.

  "아이고 고맙수다 삼신 할망 고맙수다 부처님도 고맙수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남이사 죽건 말건…우리 시어멍 지꺼졌는데…다음날 바로 다음날 연대 밑에 끌고 가 설라무내…설라무내…"

  얘기를 잇지 못하고 자꾸만 뜸을 들이던 각시 두 눈이 순간 이글거리며

  "죽창으로 콱!… "

  하고는 찌를 듯 꼬챙이 쥔 손이 부르르 떤다. 부릅뜬 눈이 희번득, 제 정신이 아니다. 나는 슬그머니 꼬챙이를 빼앗았다. 시어머니는 결국 자기 갖은 모든 것을 털어 남편 수명을 딱 하루 더 연장시켜 준 셈이다.

  "그때 혼절한 덕분에…."

  곰보각시는 다시 눈에 힘을 풀고 눈물 콧물 다 쏟는다.

  "나중에 버버리 아들 낳았다고…울며 말헙디다…나도 곰보지만…아맹해도 벙어리 신랑 맡기는 게…미안했던 생이라…."

  그 뒤 할머니는 다시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 그런 시상 또시 살랜 허믄 어이구 자진허고 말주, 하는 이에게 며느리도 차마 되물을 염이 안 나 서로 잊은 듯 살아왔다.

  각시가 내게 도로 잔을 건넸다. 끈끈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불같은 화기로 치솟아 오른다. 다시 각시에게 잔을 돌리며

  "그때가 언제우꽈? "

  묻자 저고리 섶으로 핑- 코를 푼 후 각시가 더듬는다.

  "가만 서 보라…이 양반 생일이 음력으로 49년 9월생이니까 48년 12월, 에 또 무자년 섣달될 차례우다 "

  그래. 언젠가 할머니를 떠볼 때 무심코 지나친 무슨 자년이라는 게 꼭 무자년이었을 것 같다. 무자년. 어쩐지 무자비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해다. 바람이 세졌는지 붕-붕- 문풍지가 운다.

  술병이 바닥을 드러낼 때쯤 나는 건넌방에 가 망인에게 절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밤은 이슥한데 하늘에는 별 하나 없이 캄캄하다. 못 마시는 술에 취한 나는 차를 놔두고 걷기 시작했다. 옛날 자정이 지나 파제 하면 할아버지 집에서 우리가 셋방 살던 성내까지 꼼짝없이 걸어야 했다. 무드내를 건너고 고으니마루 언덕을 넘어. 막차도 끊기고 택시도 귀한 때였다. 하늘엔 별들이 지천으로 깔리고 치르르 치르르 풀벌레 소리가 바짓단을 적시던 길…아버지와 단둘이 손잡고 걷던 밤길이 나는 마냥 뿌듯했다. 집도 절도 없는 두 부자가 온 우주를 전세 낸 듯…별들은 그 자리 그대로련만 별빛은 이제 가로등이나 네온사인, 주택가에서 흘러나온 불빛들에 가려 희미한 기억처럼 가물거린다.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불빛이 별빛을 지워버리고 소음이 소리를 묻어버린 것이다.

  차츰 술이 깨자 냉기가 뼛속까지 사무쳐 왔다. 어쩌면 할머닌 받아 적을 공책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잃었던 공책을 되찾은 건지도 모른다. 내게 굴묵 때는 냄새나 고구마 굽는 냄새 같은 무언가가 그네의 기억을 억누르던 뚜껑을 열어준 것은 아닐까? 다만 감당키 어려운 되찾은 기억의 무게 때문에 사소한 등짐 같은 일상의 기억을 부려버린 건 아닌지. 혹은 그 기억이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어서 한 갑자 닫혀있던 뚜껑을 여는 순간 온갖 재앙과 불행이 홍수처럼 쏟아져 할머니를 혼돈에 빠트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알량한 기억이 아니라 망각이고 우리는 모두 조금씩 기억 상실자로 건재한 것인지….

  보름 전.

  무근 씨 부부가 한눈 판 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할머니를 찾아 병원에 들렀다. 노인당에도 밭에도 없고 신작로까지 나가 봐도 아무데도 어수다게…. 그 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할머니가 병원에 온 적이 있기는 했다. 나는 낙심한 부부를 차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며칠 내리 폭우가 쏟아지며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늦더위를 물리친 뒤였다.

  무드내에는 밤새 내린 비로 거세게 물이 흐르고 있다.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에 제주 사람들 말로 내창이 터진 것이다. 터진 내창은 모든 걸 쓸어버릴 듯 도도히 흘러간다. 웃 무드내의 토사가 씻겨 내려와 검붉은 물살에 온갖 잡동사니가 떠내려간다. 나는 할머니 마당의 쓰레기들도 휩쓸려가는 듯한, 아니 할머니까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콰르르- 콰르르- 화북 펌프장을 끼고 돌면서 물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평소 물웅덩이에 불과한 시시한 2급 지방 하천이 새삼 만만찮게 보인다.

  어머니가 여기 와시면 손에 장을 지지쿠다. 곰보각시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나는 외소낭에 바싹 붙여 차를 세웠다. 윙-윙-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펌프장 담벼락을 타고 넘어 온다. 펌프장은 내창의 범람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박 기사 간만에 땀 좀 빼겠군…. 에취 이 짓도 못할 노릇이우다. 맨날 똥물이나 퍼내는 게…에취 일이니 헛갱이가 그칠 날이…에에취…이따금 끼긱- 끼기긱- 모터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낸다. 박 기사 말대로 펌프장이 역부족이면 도두리에 있는 하수 종말 처리장으로 물을 떠넘기겠지. 강기슭의 수위표는 마지막 눈금 하나를 남겨놓고 있다. 나는 내창을 따라 바다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종말 처리장에선 우선 쓰레기나 오니들을 일일이 걷어낸다고 했어. 나머지 부유물들은 그물로 거르고. 그래도 용케 그물을 빠져나온 것들은 꽁꽁 뭉쳐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혀 버린다던가. 다시는 떠오르지 말라고. 거꾸로 응어리진 것들을 산산이 부숴버릴 때도 있다고 했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산을 중화시키는 석회도 뿌리며 최종적으로 약품 처리를 하고. 소독과 탈색, 탈취를 위해.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은? 어떤 약품이나 세제로도 지워지지 않는 색깔이나 냄새 같은 것들은? 기억들은? 그만 돌아가자는 곰보각시를 나는 조금만 더 가보자, 달랬다. 아 그거야 별 수 있나. 진짜 종말 처리장인 바다로, 먼 바다로, 망각으로, 완벽하고 영원한 망각인 죽음으로 방류하겠지.

  바닷가에 이르자 거짓말처럼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와 무드내가 퍼 날라 온 것들을 덥석 물고 달아난다. 흐르던 피가 멈추고 딱지 앉은 듯 거무죽죽한 바위 위에 웬 아이들이 백두래- 백두래- 소리지르며 할머니를 에워싸 있다. 지팡이로 쿡쿡 찌르는 놈도 있다. 제주말로 두래가 광인인 건 알겠는데 백두래는 머리가 센 늙은 미치광인가?…이놈들! 내가 소리치자 아이들이 갯강구 마냥 삽시간에 흩어진다.

  "씨이 할망 물에 빠지는 거 우리가 건져 줬는디."

  그 중 똘망지게 생긴 녀석이 뒤로 내빼며 대든다. 할머니는 내를 건너려 했던 모양이다.

  "돌아도 돈돈히 돈 모양이라예?"

  곰보각시가 혀를 찼다.

  "죽기 전엔 곤흘 쪽으로 똥도 누지 않는덴 헌 어른이…."

  가까이 다가가도 할머니는 내창 건너에 시선을 박은 채 꿈쩍없다.

  컹-컹- 내 건너 어디선가 개들이 사납게 짖는다. 허공을 찢을 듯. 폐동된 마을 한 귀퉁이를 외지인이 개 사육장으로 쓴다고 들은 것 같다.

  간신히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자 할머니가 뭐라 웅얼거렸다.

  "할머니 누가 불러요?"

    "………………………"

    꼭 누가 부른다고 한 것 같은데….

    차에 태울 때 다시 한 번 들릴 듯 말 듯 웅얼거리는 소리를 나는 이번엔 놓치지 않았다.

  "채시…채시가 불러…"

  그 날 몸 져 드러누운 할머니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왕진 다음날 할머니가 종명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순간 새 한 마리 조롱을 빠져나와 포르릉 하늘로 날러가는 듯했다. 육지서 공장 다니는 손자가 내려올 수 있게 이러이러한 팩스 번호로 사망진단서를 넣어주면 고맙겠다고 곰보 각시가 덧붙였다.


  <당선소감>

   "생의 면도날 위에 선 그대여, 마지막 힘을 내기 바란다"

  당선 소식을 듣고 나는 벌떡 일어나 병원을 나왔다. 소설 속의 무드내를 건너 별도봉을 오른다. 오름 중턱 자살터에서 나는 잠시 숨을 돌렸다. 4·3때 억울하게 갇힌 사람들을 푸대에 싸서 쓰레기 버리듯 바다로 내던졌던 벼랑. 이른바 (인생) 대석방! 그 후로도 삶에 지친 이들이 하나 둘 기어와 스스로 몸을 던졌다.

  벼랑 끝에는 과속 방지턱 같은 자그마한 바위가 있고 누군가 그 위에 붉은 페인트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썼다. 고개를 돌려 산기슭을 바라본다. 지금은 건강을 위해,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 등산객들이 개미떼처럼 올라오고 있다.

  지금 생의 면도날 위에 서있는 사람들이여! 부디 마지막 힘을 내기 바란다. 봄이 멀지 않았다. 나는 그대의 용기와 불굴의 노력을 위해 당선의 기쁨 따위 흔쾌히 맞바꿀 용의가 있다. 지금 막 나는 서머셋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인생은 별 뜻이 없고 그러니 두려워 할 것도 없다'는 필립의 독백을 읽고 있다.

  '광야'의 정찬 선생님과 문학평론가 김중하 선생님의 선을 받아 더 없는 영광이다. 두 분께 큰 절 올린다. 우리 집은 여느 집보다 일찍부터 '현대문학'이니 '신춘문예'니 하는 말들이 굴러 다녔다. 영원한 문청이신 어머니. 그러니 나의 당선은 어머니의 당선이나 다름없다. 씨익 웃으며 "국제신문 오래됐지비, 내가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부터니까니"하고 딴청 피시는 아버지. 의사에게 시집보낸 줄 알았는데 소설가한테 갔네, 하실 장인어른과 장모님.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군분투하는 아들 이재영. 너와 나는 함께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도반이노라! 네가 좋아하는 '소설 알렉산드리아'의 이병주 선생이 주필로 있던 국제신문이어서 더욱 기쁘구나.

  내 기쁨의 원천인 딸 이서영. 3년 전 앉은 자리서 엉덩이 한 번 떼지 않고 몰두하던 그 겨울처럼 또 한 번 너의 저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겸손과 침묵 속에서. 나의 일심동체 아내 장인실. 너와 내가 분간이 안 돼 소홀히 한 점을 인정하노라. 조금 떨어져 더 잘 할게!


  ● 1960년 제주 출생

  ● 1987년 연세대 의과대 졸업

  ● 2001년 제주작가회의 소설부문 신인상, 2003년 신동아 논픽션 대상, 2004년 제주 문협 소설부문 신인상 

  ● 2005년 제1회 보령의사수필 대상

  ● 가정의학과 및 산업의학과 전문의 

  ● 현 제주 연세가정의학과 의원 원장


  

  <심사평>

  "차분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잔잔한 목소리 담아

  신춘문예 소설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독창성과 참신성이다. 기존의 모습과 다른, 실험정신이 충만한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충격은 우리의 문학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의 국제신문 신춘문예 응모 소설은 그러한 기대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작품은 없었다.

  최종심에 오른 8편의 작품은 세 부류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뭔가 새롭고 유별난 소재이긴 하나 서사의 힘이 잘 느껴지지 않는 소설이다. '물개박수' '기록자들' '오동동'이 그런 작품이다. 둘째, 이야기 거리를 붙잡긴 했으나 그것을 형상화하는 힘이 부족하여 흩어져버린 소설이다. '두려움 없이 성큼성큼' '흔들리며 피는 꽃' '벵골의 성'을 들 수 있다. 셋째 이야기가 참신하지는 않으나 소설을 형상화하는 힘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로프노르를 기다리며' '무드내 건너 저 쪽'이 여기에 속한다.

  '물개박수'는 재미있게 읽히나 인간 혹은 역사에 대한 질문이 없다. '기록자들'과 '두려움 없이 성큼성큼' '흔들리며 피는 꽃'은 잔가지는 눈에 잘 띄는데 큰 줄기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벵골의 성'은 잔가지가 없이 큰 줄기만 덩그렇게 드러난다.

  '로프노르를 기다리며'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그런데 화자와 관계를 맺는 두 여자의 캐릭터가 어색하게 충돌함으로써 작가가 힘들게 조성해놓은 미학적 긴장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당선작인 '무드내 건너 저 쪽'은 한 개인의 일생이 역사의 비극과 마주칠 때 일어나는 일들을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잔잔하게 보여준다.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 작가가 역사 쪽으로 지나치게 힘을 부여하여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해치는 우를 범하기 쉬운데, 작가의 차분하고 냉정한 시선은 그 함정을 비켜나가고 있다.

심사위원 : 정혜경, 이상섭, 김중하, 정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