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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돔 / 이명숙


지느러미 가시 같은 까칠한 손잔등이

햇살을 뒤척이며 꾸득꾸득 말라간다

함지 속 대여섯 뭉치 하얗게 핀 소금꽃

갈매기 비린 문자도 졸고 있는 오후 세시

굵은 주름 행간마다 서린 미소 너른 여백

때 늦은 국수 한 사발 입술주름 펴진다

식용유 한 스푼에 열 올려 튀겨내면

뼈째 먹는 보약이라나 오일장 할망 입심

바다도 통째 팔겠다 검정 비닐 속 찬거리




[당선소감]

미용실 쉬는 날, 중문 가는 길 1,100도로 전망대에서까마귀들이 하늘을 업고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흑요석 같이 땅에 앉은 까마귀의 검은빛 그 단색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순간 그것이 그리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이런 뜻밖의 좋은 소식을 접하려는 전조였던 것 같다.

몇 십 년 넘게 살던 서울에서 제주까지 와야만 했던 이유가 시조를 쓰기 위해서였나 보다.'고통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아름다움을 얻게 된다'는은혜로운 선생님의 시론을 기억한다.

아직은 제주의 오름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잘 모르지만제주의 뿌리 깊은 아픔을 조금이라도 녹일 수 있기를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많은 정성과 시간을 제주를 이해하는데 쏟게 될 것이며 시조를 쓰는 것으로아름다운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또한, 뭍에서 제주를 찾는 인구들이 늘어나는 요즘제주를 알리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글을 쓰려거든 제주로 오라'잊고 있던 모든 감성이 제주에 와서 활화산처럼 폭발한 것은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높고 큰 하늘과 부드럽고 넉넉한 바다가내게 주는 느낌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바람 그리고 초록빛 생명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쓰는 내 시조의 바탕은 사랑이다.도로를 해안을 중심으로 한 겉모습만 봤지만이제 사람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속의 사랑을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시조, 율격이 아름다운 춤사위로선보이고 싶다. 젊은 사고로 우리 시조의 나이까지도 줄여서'시조' 하면 고루하게 생각하는 젊은 영혼에 신선한 충격이 되는 시조를 짓고 싶다.

부족한 작품에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늘 격려를 아끼지 않는 남편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약력: 서울 출생. 
2013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10월 장원
현재 헤어디자이너



[시조부문 심사평]

시조는 정형양식의 시이다. 정형양식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현대시로서 불리한 점이기도 하다. 좋은 시조는 시각과 청각을 자극해야 하고 3D 동영상처럼 입체적이며 동적으로 다가올 때 실감과 감동을 일으킬 수 있다.

영주신춘문예에 공모된 작품들의 수준은 고르게 높았다. 여러 차례 정독을 하고 심사위원간 돌려 읽기와 소리 내어 낭송하는 과정을 거쳐 이명숙의 「옥돔」을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함께 보내온 9편의 응모작도 당선작을 결정하는데 역할을 했다.

「옥돔」은 오일장에서 옥돔을 파는 좌판의 풍경을 배경으로 우리 시대의 서정을 우려낸 작품이다. ‘갈매기 비린 문자도 졸고 있는 오후3시’에서는 감각의 수준을, 할머니의 구수한 입심이 실린 ‘바다도 통째 팔겠다’에선 시의 너른 품이 읽혀진다.

최종심에서 겨룬「여줄가리 닭의장풀」과 「가을적벽」이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손을 떠나지 못했음을 밝힌다. 아쉬움을 전하며 더욱 정진을 빈다. 거듭 이명숙 님의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권갑하(시인, 글) 박명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