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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가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다. 그 이유는 방가라는 단어가 반갑다를 변형시킨 신조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채팅이 대중화 되면서, 많은 용어가 생겨났다. ‘방가는 반갑다는 인사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방가는 주인공 방태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방가는 사람들에게 방가 방가하면서 인사를 하다. 늘 웃음으로 인사하는 외국인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처음 이 영화를 접하게 된 것은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잠깐 소개 된, 영화의 예고편 때문이었다. 평소 좋아하는 배우 김인권이 주연으로 나오기에 더더욱 흥미가 되었다. 짧은 시간에 영화의 재미를 보여주어야 하는 예고편에서 방가 방가는 외국인 노동자의 삶의 모습을 다루었다기보다는, 상업적 코미디 영화로 판단했다. 이 영화가 노린 것이 전자였다면, 예고편에서는 실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튼 짧은 예고편 속에서 많은 관객들은 웃고 있었다. 이 영화의 개봉을 기다리는데, 마침 시사회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평소 보고 싶은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었으니, 나에게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영화는 처음, 외국인 노동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어색한 인사말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이 담겨 있다. 가족을 남겨두고 온, 그들의 사연은 자칫 영화 초반 관객들의 웅성거림으로 묻힐 수 있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서글프다.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에 허겁지겁 달아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의자 공장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방가가 나타난다. 부탄에서 왔다는 방가의 말에 사장은 부탄과 네팔마저도 잘 모른다.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려는 전형적 한국인 사장의 모습인 것이다. 방가는 여러 일을 하다가, 사장이 한 베트남 여성을 성추행 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녀를 구하려고 하다가 결국 성추행범으로 몰리게 된다. 그 모습에 관객들은 큰 웃음을 보이지만, 사연은 안타깝고 슬프다.

일이 끝난 후, 함께 모여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한국에서의 고된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방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도 학생들에게 수모를 당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방가는 사실, 부탄 이외에 파키스탄, 베트남, 몽골, 네팔 등의 국적을 이용하여 취직을 했다가 정체가 드러나 쫓겨나게 되었다. 한국에는 찾아보기 힘든 부탄 국적을 가진 사람, 주인공은 이 점을 노린 것이다. 영화 속에서 한국인과 외국인 노동자는 다른 식탁에서 밥을 먹는다.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홀대하는 한국인의 모습은 너무나 익숙했다.

 

휴대폰에 저장 된, 아내의 사진을 보며 노래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 속에서 국가와 인종을 넘어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다. 방가는 실수로 엉덩이를 만진 베트남 여성에게 바지를 선물해 주는데, 결국 호되게 맞는다. 베트남에서는 남자가 바지를 선물한다는 것이, 그 바지를 입으면 자신을 허락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차이 속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가족들에게 전화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 속에서 관객들은 조용히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에 영화는 다시 긴박감 속에서 웃음을 선사한다. 경찰에 잡히려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경찰로 분장한 친구에게서 구출하게 된다. 이로 인해 방가는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 영웅이 된다. 노래방을 운영하는 친구의 매출을 올려주고 위해 방가는 친구들을 데리고 노래방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친구에게 외국인 노동자들은 노래를 배우게 되는데, 그 모습이 재밌기만 하다. 비가 오는 소리를 국가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모습은 이 영화 속에서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다.

 

한국인은 가족이 있으니 퇴근시키고, 외국인 노동자들만 남겨 일을 시키는 공장 사장의 모습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노래를 부르며, 밤까지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 속에서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의 모습이 나타나는 듯 했다. 만국공원에 모인 외국인 노동자들 속에서 방가는 시위대의 회장이 된다. 또 방가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강의를 하게 된다. 칠판에 적힌 욕들은 웃음을 선사하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욕이라 하니 무작정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데리고 온 베트남 노동자 여성의 사연이 소개되면서, 영화는 또 다른 감동으로 치닫는다. 아들을 위해 한국 국적의 남성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여성의 목소리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결국 방가의 정체는 들통 나고, 외국인 노동자들은 방가에게 가짜 민증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공장 안에서 시위를 벌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은 영화의 재미이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우리의 실상이었다. 결국 돈을 들고 도망치려는 방가는 다시 돌아오게 된다. 법무부에서 방가와 그의 친구들은 외국인 노래자랑을 핑계로 빠져나오게 된다. 노래자랑 속에서 울리는 그들의 울림은 영화가 마지막에 치달았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관객들에게는 큰 감동이었다.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방가는 끝까지 법무부 사람들과 싸운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영화는 예고편과는 달리 단순히 웃음만 주는 코미디가 아니었다. 영화는 노동자들의 실태를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다.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외국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짧은 영화 속에서 감독은 바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다문화 수업을 듣기 이전, 나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가르쳐본 적이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들 가족이 생각났다. 그리고 수업을 들으면서도, 내가 가르쳤던 찬혁이란 이름을 가진 학생이 생각났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찬혁이가 잘 생활하고 있을지 가끔씩 생각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문화의 경험을 해보았다. 외국에 갔다 오거나, 외국 영화를 보거나, 외국어를 배우는 것 등이 모두 간접적인 다문화의 경험이다.

 

우리는 민족 공동체라는 끈끈한 줄을 이제는 풀어야 한다. 세계는 하나가 되고 있으며, 다원화 되고 있다. 백인이 우수하고, 흑인이나 황인이 지능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떨어진다는 생각 따위는 이제 버려야 되지 않을까. 또 다른 희망을 꿈꾸며 한국에 발을 내딛는 수많은 외국인의 삶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방가 방가속에서 묻어나는 친근한 미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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