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혼’을 읽고

category 국어 및 교육학 자료 2012. 7. 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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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고은 시인이 대구에서 강연도중, 작가 김원일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푸른 혼을 꼭 읽어보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대구에 사는 친구를 통해 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평소 좋아하는 시인, 고은 선생이 추천한 김원일의 푸른 혼에는 무슨 내용을 품고 있는지 궁금했다. 읽어 본다고 다짐한다는 게,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입학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하게 되었다. 옛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작가 김원일은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저력이 있는 작가이다. 90년대 그의 소설 마당 깊은 집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될 정도로 그의 작품 세계는 우리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가 쓴 푸른 혼은 연작 소설집이다. 해방 이후 인혁당 사건을 다룬 여섯 편의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주로 작가가 그 사건 속 인물의 내면으로 깊게 파고 들어가 그들의 눈과 귀와 음성으로 사건을 전개하고 있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받은 건 두 동무를 읽으면서였다. 처음에 동무라는 용어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었다. 북한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두 동무두 친구만큼이나 친근하게 다가왔다. 두 동무인 이준병과 김길원은 모진 가난을 겪으면서 어렵게 공부하여 안정된 직업을 구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 나라의 국민으로써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자신의 이념에 충실한 삶을 산, 뜻 깊은 사내들이었다. 이준병이 사범학교를 졸업해 코흘리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에서는 추후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뿌듯했다. 하지만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리고 김길원 자신도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친구 이준병의 부탁으로 여의남을 도와주는 장면에서는 사나이들의 끈끈한 의리를 엿볼 수 있어 가슴 벅찼다. 그 시대의 삶을 살은 나 같았으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먹고 살만한 세상, 자유주의라는 사상이 말로만 뿌리 내린 이 세상에 안주하는 삶을 살았을 못난 시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김길원이 끝내 사형 당하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운 느낌도 들었지만, 그 시대 정권에 대한 욕마저 나왔다.

다른 이야기인 팔공산1인칭 주인공 시점을 통해 이야기를 진술하고 있다. 송상진은 팔공산으로 숨어든 빨치산들을 만나 교류하면서 온건한 사회주의의 편을 들고 있었다. 사회주의는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했다. 내가 배운 교육은 무조건적인 사회주의 비판이었고, 나의 의식은 쉽게 깨어나지 않았기에 송상진이라는 인물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다. 해방 직후, 사회는 극도로 혼란하여 굶어죽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지주부농은 미군정에 아부하며 부를 축적하기에 바빴고, 친일파들이 다시 미군정에 의해 고용되어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죽이는 시대였다. 이 부분에서 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표방한 우리의 정권의 유린을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에 아부하는 사람들을 통해 현재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우리 정부가 미국의 아부를 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는 변화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친일파가 다시 고용되는 거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 ‘친일파라는 단어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같은 민족인 이들의 손에 죽은 애국지사와 국민들이 몇 명이었던가. 이들을 잡아 죽여도 시원하지 못할 판에 다시 고용하여 민중을 억합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민주주의의 탈을 쓴 친일파와 권력을 잡든 이들은 흔히 우리가 빨갱이라고 불리는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이들보다 더했다. 나는 여기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떠올렸다. 왜 그가 공산당 선언이라는 책을 발간하게 되었으며, 왜 사회주의라는 사상이 현재에도 자주 거론되며 많은 사람들의 유토피아적 삶을 그려주는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사회주의에 대한 강렬한 비판은 북한에 대한 원망이자,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에 대한 저항적인 산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송상진은 교사가 되면서 교원노조인 경북교총에 가입하여 대의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사상운동에 열성적인 사람들을 만나 술자리를 나누며 친분을 나누고, 민민청이란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된다. 결국 박정희의 반공정책으로 인해, 그는 고문을 당하고 풀려나게 된다. 교직에 종사할 수 없게 된 그는 양봉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으나, 결국 그는 아무런 죄도 없이 사형을 당한다. 그 이유는, 한일외교를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경찰청을 불태우는 등 과격해지자 경찰은 배후 세력으로 인민혁명당이란 당을 지목하는데 송상진이 그 배후라는 것이었다. 송상진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그 당의 일원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또 다시 풀려나게 된다. 결국 송상진은 인혁당재건위사건이라는 고문으로 날조된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하고 사형을 당하게 된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평범한 국민을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이는 이 사회에 난 가래라도 뱉고 싶었다.

이 소설은 사상의 대립과 군사정권의 틈 속에서 어처구니없게 희생된 사람들의 억울한 눈물이자 하소연이자 고발이었다. 푸른 혼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사람들인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여정남은 모두 사형되어, 그들의 웃음과 울음소리는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진 현 시점에서 그들은 가볍게 눈을 감았으리라 생각했다.

현장감이 느껴지는 그의 소설은 작가 김원일만의 역량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내가 그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듯 짜릿함마저 엄습해왔다. 이 작품은 환상소설기법을 이용해 희생자들이 혼령이 되어 만나고 회포를 푸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왜 그렇게 급하게 사형시킬 수밖에 없었는지 시국을 토론하기도 하고, 서로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해준다. 이로서 이들은 각자의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내고 씻김을 하게 된다.

몇 년 전, 뉴스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무죄판결과 오열하며 법정을 나오는 유가족들을 본적이 있다. 30년 이상을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왔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안타깝다. 이제 와서 무죄판결 받으니 잘된 일이라면서도 허무하다고 얘기하는 한 유가족분의 말에서 눈물마저 굳어버린 슬픔을 멀리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빨간색만 보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명절만 되면 자주색 치마를 입어왔지만 그것 때문에 일이 일어난 것 같다며 빨간색 계통은 접하지도 않는다는 유가족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항상 진실은 정권의 유린과 사회이념 속에서 감추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혼란들을 우리는 무엇을 옳고 그르다고 판단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현실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나 자신임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막강한 권력 앞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는 현재의 삶이 지루하다고, 슬프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단지 불쌍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