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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입수 / 김재필

 

하염없이 눈물 쏟는 애인을

또 하염없는 입맞춤으로 달래본 사람이 알 것이다

같은 이에게 다른 피가 돌 때가 있단 사실을


지뢰를 밟았을 때 떠오르는 감정은 아직 발 떼지 않았다는 것

너는 위험한 마음으로 바닥을 문지른다


너도 이제 그만 목소리를 내보려 한다

그러나 침묵하고 싶지 않을 때에야 침묵다운 무거움이 온다는 걸

우린 이제 알고 있다


네 혀에 도달할 문장을 기다린다

난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늘어지는 고드름처럼

오랠수록 흉기가 되는 


조금씩 심장 가까이

이 겨울 속으로 완전히 입수하기 전에




<당선소감>


 함께 해줬던 사람에게 보상 되길 바라며 써

 

 Soli Deo Gloria.

 준모 형께 감사하다. 이런 날이 오면 가장 먼저 형의 이름을 쓰고 싶었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언어로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런 무능이 허락되기 전까지 어떻게 견뎌야 할까. 이런 태도가 모두에게 중요할 수 없으므로 농담은 필연적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자기 언어를 삼키기 때문에 외롭단 걸 알게 되면 농담은 미운 애인 같다. 만약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을 인간이 언어를 연마한다면, 그런 생은 도대체 어떤 수수께끼의 대답이 되는 건지 생각하며 웃었다. 그런 세계에 누가 거주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언젠가 그런 인간이 방문했을 때, 그에게 필요한 대답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오랜 시간 함께 해줬던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되길 바라며 썼다. 

 뽑아주신 황동규 선생님, 정호승 선생님, 김기택 선생님, 문태준 선생님께 감사 인사드리고 싶다. 부족한 작품이지만 가능성을 봐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마음의 빚을 덜게 해주심에 감사하다. 스승이신 박찬일 교수님께 감사하다. 조금이나마 힘이 되셨기를 바란다. 졸업 후에도 이끌어 주신 이형우 선생님께도 감사하다. 제자라 말하기엔 민망하여 성함을 적진 않지만 청강을 허락해주셨던 선생님께도 감사하다. 인정이란 걸 가르쳐주신 김미향 선생님께도 감사하다.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하다. 역시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되신다면 행복할 거 같다. 더 많은 분께 감사하고 있다. 말 대신 찾아뵙는 걸로 대신하겠다.




◎ 약력

▶ 1988년 전북 무주 출생

▶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최근 응모작 추상·관념의 유희 과해 … ‘입수’ 소통의 모호성 벗어나

 

 최근 신춘문예 응모 시는 갈수록 모호성이 두드러지는 부정적 특성을 지닌다. 구체에서 일탈된 추상과 관념의 언어 유희가 지나쳐 소통의 길이 꽉 막혀 있다. 언어와 언어의 시적 관계가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 도대체 무엇을 왜 이야기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배배 꼬인 언어의 꽈배기를 맛도 보지 못하고 마냥 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도 인간을 위해 쓰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인간과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갈수록 그 소통의 길이 막혀있다. 이제는 시의 불통마저도 유행인가. 불통으로 훈련된 투고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분별없는 불통의 세계에서 분별 있는 소통의 세계로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최종심에 오는 작품은 4편이었다. ‘패러글라이딩 하는 새’(김영미)는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보다 “날개를 펼칠 때보다 접을 때가/ 더 어려운 결정이라는 것을” 등의 통속적 단점이 더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강물학교’(진창윤)는 강물을 찾아오는 겨울 철새들에 대한 진술적 묘사가 진부하고 지루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먼저 탈락하였다. ‘평행한 세계’(강은재) 또한 꿈속과 꿈 밖의 경계를 넘나드는 만남의 세계가 펼쳐져 있으나 결국 “멀리 있어도 우리는 하나인 것 같다” “나도 내가 좋아질 때가 있다 이런 것은 혼자만 아는 비밀이다” 등의 통속적 산문성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당선작 ‘입수(入水)’(김재필)는 비교적 소통의 모호성에서 벗어난 시다. 내가 너(애인)의 사랑의 강물 속으로 입수하는 과정의 순간을 짧으나마 극명하게 그렸다. ‘지뢰를 밟았을 때 떠오르는 감정은 아직 발 떼지 않았다는 것/ 너는 위험한 마음으로 바닥을 문지른다’라는 표현은 이 시의 백미다. 지뢰를 밟았을 때 발을 떼면 생명을 잃게 되므로 발을 떼지 않고 있는 상태, 그 절체절명한 상태에서의 기다림과 그리움이 이 시의 전체적 정조를 이룬다. 

 다른 시에 비해 작품성이 높다는 장점도 있지만 소통이 가능한 시라는 장점에 더 마음이 기울어져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시를 쓰는 일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이므로 당선자는 남다른 노력을 통해 한국시단을 풍요롭게 꽃피워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 황동규·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