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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춤추며 간다 / 송현진

 

  ◆ 등장인물

  강시내(24세·여)

  강선흥(50세·남) 송혜연(52세·여)


  ◆ 무대


  단칸방. 무대 뒤편에 소파가 놓여 있다. 소파 왼편에는 옷장이 있고, 오른 편에는 책장이 있다. 책장에는 가방 여러 개가 들어 있고, 그 옆에 빨래 건조대가 접혀 있다. 무대 한 편에 이불이 개어져 있다.


1장

  선흥, 요란한 복장에 얼굴에는 하얗게 분칠을 하고 등장한다. 양손에 가위와 낡은 라디오를 들고 등장해서 옛날 트로트 가수처럼 공손하게 인사한다. 곧 신나는 뽕짝이 흘러나오고, 선흥은 가위질을 하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선흥 : 왔어, 왔어! 엿이 왔어요! 땅콩엿, 호박엿, 생강엿, 가락엿, 엿이란 엿은 다 있어. 시집살이 시키는 시어머니, 내 편 아니고 남 편인 남편 놈, 남북통일보다 어려운 메뉴 통일시키는 직장 상사, 성적 걱정, 취직 걱정, 결혼 걱정, 내 걱정이 넘치는 친척들, 다 엿 먹여요. 엿 먹으라고 갖다 줘요. 안 사도 돼. 하나 잡숴 봐요. 엿 먹어, 엿 먹어. 다들 엿 먹어요!

  선흥, 음악에 맞춰 가위질을 한다. 곧 시내가 등장해서 라디오를 끈다.

  선흥 : 왔냐?

  시내 : 미쳤어?

  선흥 : 밥은.

  시내 : 오늘 카페 앞에 왔었지.

  선흥 : 서울에 커피숍이 한둘이야?

  시내 : 나 일하는 카페 앞에서 엿 팔았잖아!

  선흥 : 남 이사.

  시내 : 어떤 미친 엿장수가 가로수길에서 엿을 팔아.

  선흥 : 엿장수 마음이다.

  시내 : 엄마 교회 앞에도 갔었다며. 일부러 그래?

  선흥 : 엿장수가 장소 가리는 거 봤어?

  시내 : 이제 좀 가려봐. 우리 눈에 안 띄게.

  선흥 : 네가 안 보면 그만이지.

  시내 : 아버지가 안 보이면 그만이야.

  선흥 : 난 싫다?

  시내 : 나도 싫어.

  선흥 : 싫으면 시집가라.

  시내 : 사람이 왜 이렇게 나잇값을 못 해? 철 좀 들어. 아버지가 애야?

  선흥 : 내 대신 네가 나이 먹었냐? 꼬장꼬장하긴… 꼰대야?

  시내 : …말을 말자.

  그 때, 혜연, 등장한다. 혜연이 가방을 내려놓으면, 시내가 다가가 그것을 주워든다.

  선흥 : 왔어?

  혜연 : 안 갔니?

  혜연, 선흥을 한 번 보고는 지나친다. 시내, 가방을 구석으로 치워놓는다. 선흥, 주머니에서 엿을 꺼내 입에 문다.

  선흥 : 엿 먹을래?

  시내 : 아버지나 엿 먹어.

  선흥, 노래를 흥얼거린다.

  혜연 : 강시내, 빨래 돌렸어?

  시내 : 아, 맞다.

  혜연 : 좀 해놓으라니까.

  시내 : 아니, 아버지가…

  혜연 : 핑계대지 마. 그거 안 좋은 습관이야. 성공한 사람 중에 그런 습관 있는 사람 봤어?

  시내 : ……

  혜연 : 기도는 했어?

  시내 : …아니.

  혜연 : 그럼 엄마 할 때 같이 하자.

  시내 : 나중에 할게.

  혜연 : 지금 해. 미루는 거 안 좋아.

  시내 : 아버지가 저러고 있는데 무슨 기도를 해.

  선흥, 노래를 흥얼거리며 몸을 흔들고 있다. 혜연, 한숨 쉰다.

  혜연 : 신경 꺼. 며칠 저러다 가잖아.

  시내 : 그래도…… 짜증나.

  혜연 : 용서해. 그래야 너도 천국 간다. 기도하자.

  혜연, 무릎을 꿇는다. 시내, 그 옆에 무릎 꿇으면, 혜연, 시내의 손을 붙잡는다. 혜연과 시내, 눈을 감고 기도한다. 선흥, 여전히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혜연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선흥 : (노래)어얼씨구, 저절씨구! 너를 안고 내가 내가 돌아간다.

  혜연 : 오늘 하루 일용할 양식과 할 수 있는 일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선흥 : 내일이면 간다, 너를 두고 간다, 황진이 너를 두고.

  혜연 : (큰 소리로)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작지만, 아버지 안에서 더 큰 결실을 맺을 것을 믿습니다.

  선흥 : (더 큰 소리로)사랑아, 사랑아, 내 사랑아!

  시내, 슬쩍 눈을 떠서 선흥을 바라본다. 선흥, 어느새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다. 혜연, 고함을 지르듯이 기도하고, 선흥은 노래를 부르다 이내 가위질을 시작한다.

  혜연 : 아버지! 저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나쁜 길로 가지 않게 인도하소서!

  선흥 : 그래도 가야지, 너를 위해 가야지! 황진이 너를 위해!

  혜연 : 아버지의 사랑으로 저희를 보호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선흥 : 내가 사랑한 나의 황진이!

  혜연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선흥 : 어얼씨구, 저절씨구!

  혜연 : (악을 지르며)아멘!

  선흥 : 황진이 황진이 황진이!

  혜연, 선흥을 노려본다. 선흥, 혜연을 마주 보며 춤춘다. 선흥의 노랫소리와 가위질 소리만 들린다.

  아버지가 그런 거 궁금해 할 자격 있어?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돼? 그럼 하나 딸란다.


2장

  시내, 앉은뱅이 상을 펴놓고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그 옆엔 가방이 놓여 있다. 시내, 잠시 고민하는 듯 볼펜을 입에 문다. 선흥, 비틀거리며 등장한다. 한 손에는 비닐봉투를 들고 있다. 시내, 황급히 노트를 덮고 상 아래로 밀어 넣는다.

  선흥 : 시내 왔냐!

  시내 : 술 마셨어?

  선흥 : 마셨다! 기분이 좋아서!

  시내 : 아버진 기분 안 좋은 날 없잖아.

  선흥 : (웃으며) 그치, 맨날 좋지. (노래)비가 와도 좋아, 눈이 와도 좋아, 바람 불어도 좋아.

  선흥, 시내의 옆에 가서 앉는다. 비닐봉투를 펼쳐 엿을 집어 먹는다.

  시내 : 좀 씻고 먹든가.

  선흥 : 씻는 것도 일이다. 화장 다시 하려면 얼마나 귀찮은 지 아냐?

  시내 : 더러워.

  선흥 : 네가 지워줄래?

  선흥, 시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면, 시내 질색하면서 퇴장한다. 선흥, 웃으며 엿을 집어 먹는다. 시내, 빨래 바구니를 들고 등장해 빨래를 널기 시작한다.

  선흥 : 좀 놀다가 하지.

  시내 : 알바 가.

  선흥 : 아직 안 갔냐?

  시내 : 알 바야?

  선흥 : 그래, 네 알바, 내 알 바는 아니지.

  시내, 피식 웃는다.

  선흥 : 혜연이는.

  시내 : 엄마 오늘 안 들어올 걸.

  선흥 : 왜?

  시내 : 홍천에 무슨 세미나 있대.

  선흥 : 대단하다, 대단해.

  시내 : 뭐가.

  선흥 : 너나 혜연이나 열심히 산다고.

  시내, 잠시 멈칫한다. 곧 다시 빨래를 널기 시작한다.

  시내 : 열심히 살아야지.

  선흥 : 하고 싶은 거라도 있냐?

  시내 : 남들 다 그렇게 살잖아.

  선흥 : 근데 뭐 하러 너까지 그래.

  시내 : 다 아버지처럼 살진 않으니까.

  선흥 : 난 놀고 먹냐?

  시내 : 아냐?

  선흥 : (웃으며)맞지, 그럼. 먹고, 놀고, 노래하고, 춤도 추고.

  시내 : 좋겠다, 편하게 살아서.

  선흥 : 사는 게 편해진 거지.

  시내 : 우리 버리고 도망갔으니까 그렇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다가 1, 2년에 한 번씩 불쑥 불쑥 찾아와도 우리가 받아주니까. 편하겠네. 그래.

  선흥, 노래를 작게 흥얼거린다.

  선흥 : 홍천 갔다 언제 온대?

  시내 : 내일이나 오겠지.

  선흥 : 세미나 그거는 뭐 하는 거냐?

  시내 : 다단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하 호호 하고, 강연 듣는 거.

  선흥 : 별 게 다 있네. 넌 가봤어?

  시내 : 아버지가 그런 거 궁금해 할 자격 있어?

  선흥 :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돼? 그럼 하나 딸란다.

  시내, 대답 없이 빨래를 넌다.

  선흥 : 예전에 왜, 네가 인형 만들어준 적 있었잖아. 분홍색 코끼리.

  시내 : ……

  선흥 : 나 그거 아직 갖고 다닌다?

  시내 : 기억 안 나.

  선흥 : 잘 생각해봐. 너 초등학교 땐가 인형 만들기부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봤었잖아. 그래서 내가 그냥 하지 왜 물어보냐고 그랬더니 재료비 들어서 좀 그렇다 했잖아.

  시내 : 그래서 뭐.

  선흥 : 그냥. 고창인가 어디 갔을 때, 어떤 꼬마애가 내 허리춤에 달린 인형이 갖고 싶다는 거야. 안 준다 그랬더니 드러누워서 울고불고… 걔네 부모가 딴 거 사준다면서 겨우 달랬는데, 고게 날 끝까지 째려보데. 그래서 나도 째려봐줬다. 근데 보고 있으니 좋더라. 애답고, 떼쓸 줄도 알고. 안타깝지도 않고.

  시내, 대답 없다. 선흥,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시내 : 언제 갈 건데.

  선흥 : 가고 싶으면 가겠지.

  시내 : 오고 싶으면 오고.

  선흥 : 알면서 뭘 묻냐.

  잠시 정적.

  선흥, 흥겨운 듯 몸을 흔든다.

  선흥 : (노래)비가 와도 좋아, 눈이 와도 좋아, 바람 불어도 좋아…

  시내 : 좋아?

  선흥 : 뭐가.

  시내 : 그렇게 사는 거.

  선흥 : 좋지.

  시내 : …난 싫어.(사이)난 아버지처럼 안 살아.

  시내, 가방을 들고 퇴장한다. 선흥, 빈자리를 바라본다.

  선흥 : 비가 와도 좋아, 눈이 와도 좋아, 바람 불어도 좋아.

  좋아, 좋아, 당신이 좋아.

  선흥의 노랫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3장

  선흥, 바닥에 엎드려서 노트를 보고 있다. 혼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그 때, 혜연, 가방을 잔뜩 들고 등장한다. 혜연, 가방을 내려놓으며 선흥을 본다.

  혜연 : 얼씨구. 뭐가 그렇게 좋아?

  선흥 : 어, 왔어? 일찍 왔네.

  혜연 : 당신은 안 가니?

  선흥 : 갈 때 되면 갑니다.

  선흥, 여전히 노트를 보고 있다. 혜연, 선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혜연 : 근데 당신한테 그 소리 들으니까 묘하네.

  선흥 : 왜?

  혜연 : 옛날엔 내가 당신한테 ‘일찍 왔네’ 그 소리 했던 것 같은데.

  선흥 : 당신도 늙었나보네. 옛날 생각을 다 하고.

  혜연 : 내가 옛날 생각이라도 안 했어봐. 진작 이혼했지.

  선흥 : 하고 싶음 해.

  혜연 : (피식 웃으며)돈 좀 있어? 이참에 위자료 왕창 뜯어내게.

  선흥 : 돈은 없고, 북이라도 줄까?

  혜연 : 됐어. 다 늙어서 이혼은 무슨.

  선흥 : 늙은 거랑 뭔 상관이야?

  혜연 : 시내 혼삿길 막을 일 있어?

  선흥 : 걱정도 많다. 당신은 당신이고, 시내는 시내지.

  혜연, 말없이 빨래건조대로 가 널려있는 빨래를 쫙쫙 편다.

  혜연 : 탈탈 털어서 널라니까…

  선흥 : 열심히 털던데.

  혜연 : 그걸로 안 돼. 성에 안 차. 시내는. 알바 갔어?

  선흥 : 응.

  혜연 : 기도는 하고 가디?

  선흥 : 당신이 물어봐.

  혜연 : 내 말은 안 듣잖아. 기도해야 천국 간대도 나 있을 때만 하는 것 같고, 세미나 가서도 좀 사근사근하게 굴라니까 마지못해 인사 까딱 하고. 이제 알바 그만하고 나 하는 사업 같이 하재도 어영부영. 기껏 생각해줘도…

  선흥 : 당신은 알았어?

  혜연 : 뭘?

  선흥 : 시내 글 쓰는 거.

  혜연 : 뭐?

  혜연, 놀라서 돌아보면, 선흥, 자신이 보고 있는 노트를 들어 보인다. 혜연, 선흥에게서 노트를 뺏어 읽어본다. 그 때, 시내, 등장한다. 시내, 혜연이 노트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뺏으려한다. 혜연, 노트를 뒤로 감춘다.

  시내 : 내놔!

  혜연 : 너 이거 뭐야.

  시내 : 별 거 아니야. 빨리 줘.

  혜연 : 너 아직도 글 써?

  시내 : 그냥 심심해서 쓴 거야. 줘.

  혜연 : 심심하면 책을 읽던가,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 쓸 데 없는 짓 하지 말고.

  시내 : 내가 알아서 해.

  혜연 : 알아서 뭘 해, 네가. 엄마가 말했지. 옥자 이모 아들도 글 쓴다더니 몇 년째 알바만 하고 있다고. 나이가 서른둘인데 이제 공무원 준비한다더라. 비전 없어, 그거. 너 부자 안 될 거야?

  시내 : 그냥 취미라고 했잖아.

  선흥 : 그래, 그냥 둬. 재밌던데.

  (시내에게)근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냐?

  혜연 : 내가 널 몰라? 몇 년째 여기에 한 눈 팔고 있잖아!

  시내 : 그런 거 아니라고.

  혜연 : 그런 거 아니면, 엄마랑 같이 사업할래?

  시내 : ……

  혜연 : 이거 봐. 대답 못 하지.

  선흥 : 하기 싫은가 본데 냅둬.

  (시내에게) 싫으면 싫다고 해.

  혜연, 선흥을 노려보고, 선흥은 어깨를 으쓱한다. 시내, 바닥만 본다.

  혜연 : 시내, 네가 몰라서 그렇지 진짜 비전 있는 사업이야.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작해야 빛을 빨리 본다니까? 다 네트워크가 있어서…

  시내 : 노트 줘.

  혜연 : 사업한다고 해. 그럼 줄게.

  시내 :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혜연 : 언제까지 알바만 하면서 살 거야, 어?

  시내 : 내가 그래서 돈 못 벌어와? 아니잖아. 집세도 보태고, 엄마 용돈도 가끔 주잖아.

  혜연 : 그거 얼마나 된다고. 그렇게 벌어서 언제 성공할래?

  시내 : 엄마도 잘 버는 건 아니잖아.

  혜연 : 엄마는 비전이 있으니까!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잘 될 거란 비전이 있잖아! 넌 알바로 성공할 거야? 글 쓰는 걸로 성공할 거야? 뭘로 성공할 건데?

  시내 : 엄마는 잘 될 거라고 확신해? 다단계 때문에 날린 돈이 얼만데.

  혜연 : 이번엔 진짜야. 엄마 얼마나 열심히 하는 지 너 알잖아.

  시내 : 난 열심히 안 해? 난 열심히 안 살아?

  혜연 : 더 노력해야지. 너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이 한둘이야? 성공하려면 그 정도로 안 돼. 엄마 회사 대표님도 젊을 때부터 하루에 세 시간씩 자면서…

  시내 : 내가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돼? 얼마나 더…!

  혜연 : 너도 네 아버지처럼 살고 싶어?

  잠시 정적. 선흥, 멀뚱멀뚱하게 서 있다.

  선흥 : 내가 뭘?

  시내 :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게.

  선흥 : 그래, 갑자기 나는 왜 끌어 들이냐?

  혜연 : 나 겁나. 너 네 아버지처럼 될까봐, 그거 겁나서 이렇게 아등바등 하는데…넌 뭐야, 뭐냐고!

  시내 : 난 아버지랑 달라. 아버지랑 다르게 살려고 이래!

  근데 엄마 그거 하나도 안 보잖아. 난 엄마 일 이해하려고 하는데, 엄만 아니잖아.

  혜연 :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시내 : 엄마는 그래서 얼마나 잘 됐는데?

  혜연 : …앞으로 잘 될 거라고 믿어야지!

  시내 : 난 엄마 미래도, 내 미래도 못 믿겠어. 기대가 안 돼. 평생 이 단칸방에서, 가끔 오는 아버지나 기다리면서 이렇게 살 것 같아.

  혜연 : ……

  시내 : 사람들이 다 나보고 열심히 산대. 그 말 들을 때마다 비참해서 죽어버리고 싶어. 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야만 살 수 있는 사람 같아서, 남들 보기에도 그럴 만큼 열심히 사는데 나아지지가 않아서. 도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되는지, 난 뭘 보고 이렇게 사는 건지. 나도 모르는데, 엄마는 알아?

  잠시 정적.

  시내 : 나 열심히 살기 싫어.

  혜연 : ……

  시내 : 싫어, 엄마…

  시내, 고개를 숙인다. 혜연, 그런 시내를 바라보고만 있다.

  혜연 : …성공할 거야. 너는… 성공해야 돼.

  시내 : 정신 차려. 엄마는 다단계에 빠져서 돈 갖다 바치고 있는 거고, 나는 그냥 이 나이 먹도록 알바나 하는 애야.

  혜연 : 무슨 말이 그래.

  시내 : 맞잖아. 엄마 거기 사람들한테 돈 빌려줬다가 못 받은 게 한두 푼이야?

  혜연 :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다 엄마 사업 파트너들이야.

  시내 : 엄마 그냥 사기 당한 거야.

  혜연, 시내를 노려보다가 노트를 찢어버린다. 시내, 그 모습을 쳐다보고만 있다. 혜연, 너덜해진 노트를 던진다.

  혜연 : 지옥에나 갈 년.

  혜연, 시내를 노려보다 나가버린다. 시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 선흥, 찢어진 노트를 쓸어 모은다. 곧 그것을 주워들어 시내에게 건넨다.

  선흥 : 아깝게… 테이프 있냐? 어떻게, 엿으로라도 붙여 볼까?

  시내 : ……

  선흥 : 기분 잡칠 땐 춤추는 게 최곤데. 한 번 흔들래? 응?

  선흥, 몸을 우스꽝스럽게 흔들어 보인다. 시내, 한숨 쉰다.

  시내 : 아버지… 그냥… 좀 꺼져, 좀…

  선흥 : 내가 촛불이냐? 꺼지게.

  시내 : (사이) 다 아버지 때문이야.

  시내, 노트를 뺏어들고 퇴장한다. 선흥, 시내가 나간 자리만 바라본다.


4장

  혜연, 걸레질을 하고 있다. 바닥을 닦는 손이 빠르고, 거칠다.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잠시 멍해진다. 곧 고개를 젓고, 다시 걸레질을 한다.

  시내, 등장한다. 혜연을 보고 잠시 멈춰 선다. 혜연, 묵묵히 걸레질만 한다. 시내, 소파에 앉으며 혜연의 눈치를 살핀다. 혜연, 시내 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레질한다. 시내, 움찔하며 핸드폰을 보는 척한다. 혜연, 걸레질을 하다 시내의 발을 툭 건든다.

  잡고 있던 건 나였어. 때론 떠나야 보이는 게 있어.

  좋을 대로 살아…다 살아진다. 다 살아져…

  혜연 : 발.

  시내, 놀라서 다리를 들면, 혜연, 그 밑을 닦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시내, 작게 한숨 쉬고, 혜연에게 다가간다.

  시내 : 줘.

  혜연 : 됐어.

  시내 : 무릎 안 좋잖아.

  혜연 : 불편할 정돈 아냐.

  시내 : 내 마음이 불편해. 엄마 그러고 있으면.

  혜연, 잠시 멈추는데, 시내, 걸레를 뺏어 바닥을 닦는다. 혜연, 그런 시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혜연 : …내 마음은 편하겠니.

  시내, 모른 척 계속 걸레질한다. 그 때, 뽕짝 음악이 크게 들린다. 두 사람, 고개를 드는데, 선흥, 엿판을 매고, 한손엔 라디오를 든 채 등장한다. 남은 한 손으론 큰 북을 굴리고 있다.

  선흥 : (큰 소리로)왔어, 왔어! 엿이 왔어요!

  혜연 : 뭐해!

  선흥 : 특별쇼. 내가 둘이 보여주려고 하는 거야. 땅콩엿, 호박엿, 생강엿, 가락엿, 엿이란 엿은 다 있어!

  선흥, 춤을 추기 시작한다. 시내, 노래를 끈다.

  시내 : 민원 들어와.

  선흥 : 내 집에서 내가 노래 틀고, 춤추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선흥, 다시 노래를 튼다.

  선흥 : 야금야금 남의 돈 떼먹어서 형편 나아진 사업 파트너들, 내 마음도 몰라주는 야속한 딸내미, 퇴근하고 힘들어 죽겠는데 기도하자고 앉히는 엄마, 가족 버리고 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무책임한 아빠, 다 엿 먹여요. 엿 먹으라고 갖다 줘요. 일단 하나 잡숴 봐. 엿 먹어, 엿 먹어. 엿 먹어요!

  시내, 그 모습을 보고만 있다. 선흥, 노래에 맞춰 북을 친다.

  선흥 : (노래)아리 아리 아리 동동, 쓰리 쓰리 쓰리 동동!

  혜연, 시내에게 손짓하고, 시내, 노래를 끈다.

  시내 : 그만해.

  선흥 : 나만 해서 재미없냐? 너도 쳐볼래?

  혜연 : 애한테 헛바람 넣지 말고 정리해, 빨리.

  선흥 : 이게 왜 헛바람이냐? 같이 놀자는 건데.

  선흥, 시내에게 다가가 북채를 쥐어준다.

  선흥 : 쳐봐. 스트레스 쫙 풀린다.

  시내 : …싫어.

  선흥 : 해보라니까? 저 북이 나라고 생각해.

  시내 : 안 해.

  선흥 : 그렇다고 네가 나를 치진 않을 거 아니냐. 아니면, 칠래?

  시내 : 그만 좀 해!

  시내, 북채를 던져버린다. 잠시 정적.

  시내 : 난 싫어도 아버지 장단에 맞춰야 돼? 이게 어떻게 우릴 위한 거야. 그냥 아버지 재밌자고 하는 거지. 이게 재밌니? 웃겨? 사는 게 즐거워서 주체가 안 돼?

  선흥 : 나라고 그러겠냐.

  시내 : 그럼 왜 이러는데. 우리한테 왜 이래.

  선흥 : 내가 몰라서 그런다. 너희를 몰라서.

  시내, 대답 없다. 혜연,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다.

  선흥 : 나 가끔 엿 팔 때, 카세트 고장 나면 구경하는 사람 붙잡고 북 좀 쳐 달라 그런다. 거기에 맞춰서 나는 노래하고, 춤추고…. 근데 신기한 게 다 자기 속도, 자기 장단이 있어. 그거 들으면 그 사람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더라. (사이) 너도 알고 싶지 않냐?

  시내 : ……

  선흥 : 알려줘라, 나한테.

  선흥, 다시 시내에게 북채를 내민다. 시내, 받지 않고 망설인다.

  선흥 : 그리고 네가 북 치고, 내가 춤추면 내가 네 장단에 맞추는 거지. 안 그러냐?

  시내, 천천히 북채를 받아든다. 선흥, 시내를 북 앞으로 데려간다. 시내, 한참 망설인다.

  선흥 : 그냥 막 쳐! 방법 같은 거 없다. 네 맘대로 해!

  (노래)아리 아리 아리 동동, 쓰리 쓰리 쓰리 동동!

  시내, 조심스럽게 북을 쳐본다.

  선흥 : 잘 한다! 한 번 더!

  선흥,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 시내, 북을 친다. 살살 치다가 점점 격렬하게 치기 시 작한다.

  선흥 : (노래)잘난 사람 못난 사람 따로 있더냐. 서로 믿고 사랑하면 그것이 멋진 인생.

  시내, 북을 세고 강하게 친다.

  선흥 :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가 났구나!

  시내, 북을 치다가 마지막으로 강하게 내려치고는 멈춘다. 숨을 고른다. 선흥, 춤을 추다가 시내를 바라본다.

  선흥 : 춤도 출래? 흔들면 더 신나!

  시내 : 됐어.

  선흥 : 싫으면 말어.

  선흥, 신나게 스텝을 밟다가 머리와 엉덩이를 흔든다. 그의 옷에 주렁주렁 달린 인형들이 흔들린다. 시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선흥, 시내를 돌아본다.

  선흥 : 추고 싶지? 춤춰. 뭐라 할 사람 없다.

  시내 : 춰서 뭐해.

  선흥 : 기분 좋잖아. 내가 맨날 기분 좋은 것도 요 춤 덕분이다. 너도 춰봤으면 알 거 아냐.

  시내 : 제대로 춰본 적 없어.

  선흥 : 추고 싶은 대로 추면 그게 춤이지. 따라해 봐라, 완 투 쓰리 포.

  선흥, 멋대로 스텝을 밟는다. 시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는다.

  선흥 : 자, 완 투 쓰리 포!

  시내, 주춤거리다 선흥을 따라한다. 이내 멋대로 추기 시작한다.

  선흥 : 아리 아리 아리 동동! 쓰리 쓰리 쓰리 동동!

  두 사람의 춤이 점점 격렬해진다. 혜연, 그 모습을 보고만 있다. 선흥, 춤추면서 혜연에게 다가간다.

  선흥 : 당신도 춰!

  혜연 : 됐어! 음악이나 좀 줄여!

  선흥 : 신나잖아! 그냥 춰!

  혜연 : 민원 들어와!

  선흥 : 나중에 엿 좀 쥐어주지, 뭐! 엿 먹으라 그래!

  혜연 : 미쳤어, 진짜!

  선흥 : 미쳐, 당신도!

  선흥, 혜연의 손을 잡고 무대 가운데로 향한다. 곧 혜연의 손을 놓고, 다시 춤을 춘다. 시내와 선흥, 몸을 미친 듯이 흔든다.

  혜연 : (시내에게) 계속 출 거야?

  시내 : 몰라, 나도!

  혜연 : 그만하고 아버지 좀 말려봐!

  시내 : 신나잖아! 엄마도 춤춰!

  혜연 : 민원 들어온다니까!

  시내 : 엿 먹으라 그래! 춤춰!

  혜연 : 얘가 진짜…!

  시내 : 지금은 자기만 생각해!

  혜연 : ……

  시내 : 춤춰! 춤추자!

  선흥, 혜연의 손을 붙잡고 혜연을 한 바퀴 돌린다. 곧 시내가 다가와 혜연을 또 한 바퀴 돌린다. 선흥, 따라해 보란 듯이 천천히 춤을 추고, 시내가 그것을 따라한다. 혜연, 피식 웃는데, 선흥과 시내, 계속 해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춰 보인다.

  혜연 : 나도 몰라, 이제!

  혜연, 따라서 춤추기 시작한다.

  선흥 : 아름다운 이 세상에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멋지게 살아 보세 멋지게 살아 보세!

  세 사람의 춤이 점점 격렬해진다.



  에필로그


  시내와 혜연, 이불 위에 누워있다. 선흥, 짐을 싸고 있다. 시내, 일어나 앉는다.

  시내 : 가?

  선흥 : 일어났냐?

  시내 : 말도 없이 가게?

  선흥 : 언젠 말하고 가디?

  시내 : 그건 그래. 말없이 오고, 말없이 가지.

  선흥 : 넌 항상 알면서 묻더라.

  시내, 소리 없이 웃는다. 선흥, 계속 짐을 싼다.

  시내 : 맨날 어딜 그렇게 가.

  선흥 : 가고 싶은 곳.

  시내 : 아직 남았어?

  선흥 : 많지. 평생을 써도 다 못 갈지도 모른다.

  시내 : …아버지.

  선흥 : 왜.

  시내 : 안 무서워?

  선흥 : 뭐가.

  시내 : (사이) 떠나는 거.

  선흥, 짐을 싸다 잠시 멈춘다. 곧 다시 짐을 싸기 시작한다.

  선흥 : 옛날엔…머무는 게 더 무서웠다. 너네가 날 잡고 있는 것 같았어. 너네가 너무 불쌍한데, 너무 미운 거야. 미워서 숨이 안 쉬어져. 근데 또 보면 안타까워. 서러워. 그래서 풀어줬다. 어디로든 가자고, 가보자고…

  선흥,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말이 없다.

  선흥 : 근데…잡고 있던 건 나였어. 때론 떠나야 보이는 게 있더라.

  시내 : …그러다 우리도 가버리면?

  선흥 : 집으로 돌아올 때 항상 그 생각을 한다. 늘 생각했는데…좋더라. 좋겠더라, 그것도.

  잠시 정적. 시내, 선흥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선흥 : 좋을 대로 살아. 네 이름처럼, 흐르듯이.

  시내 : (사이) 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선흥 : 다 살아진다. 다 살아져.

  선흥, 짐을 단단히 묶는다.

  시내 : 나 아직 아버지 원망해.

  선흥 : 그러냐.

  시내 : …상관없어?

  선흥 : 네가 그러고 싶음 그렇게 해.

  시내 : ……

  선흥 : 근데 나는…(사이)후회 안 한다.

  시내 : …그래?

  선흥 : 상관없냐?

  시내 : …아버지가 그러고 싶으면.

  선흥, 웃으며 일어난다. 시내,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시내 : 또 올 거야?

  선흥 : 엿장수 마음이지.

  시내 : :…가.

  선흥, 가려다 말고 잠시 멈춘다.

  선흥 : 네 소설 그 다음엔 어떻게 되냐?

  시내 : 몰라.

  선흥 : 알고 있잖아. 뭐든 알면서 묻더만.

  시내 : …써봐야 알지.

  선흥 : 그러냐.

  선흥, 나가려 한다. 시내,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난다. 선흥, 돌아본다.

  선흥 : 너도 어디 가게?

  시내, 망설인다. 선흥, 시내를 바라보며 웃는다.

  선흥 : 가라, 너도.

  선흥, 퇴장한다. 시내, 선흥이 나간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혜연은 어느새 눈을 뜬 채 가만히 누워있다. 시내, 혜연의 굽은 등을 바라본다. 곧 고개를 돌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본다. 망설이다 첫 발을 뗀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막>





  <당선소감>


   막막했던 글쓰기 허락받은 기분에 스스로 위안


  당선 소식을 들은 날,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습니다. 한없이 기쁜 와중에 일을 하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많은 것이 달라진 것 같은데, 실제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월세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걸어 다니는 하루를 보냅니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낯설기도 하고, 묘하게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래도 되나’ 싶습니다. 얼떨떨하기도 하고, 한 편으론 두렵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기에 이 순간이 과분한 행운처럼 느껴집니다. 대학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글 쓰는 것을 ‘허락받은’ 기분입니다. 스스로의 재능을 의심하고, 비교하고, 낙담하는 데만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 기분조차 낯섭니다. 선물이라 생각하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진득하게 쓰는 법을 알려주신 조광화 교수님, 항상 감사합니다. 소중한 가르침들 잊지 않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경상일보에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송진록 님, 어머니 안수연 님, 송지훈, 송유빈, 송보빈, 우리 가족 모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언제나 응원해주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준 현실, 슬아, 수지, 지우, 두비, 빛나, 소영, 민희, 성현, 지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모두가 그렇지만, 특히 지난 한 해 저에게 자극제이자 위로가 되어준 현실이와 슬아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축하해주신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 글로 다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직도 저에게 글은 참 어렵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어렵고 막막하지만, 여전히 좋으니까 계속 쓸 예정입니다. 다시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하겠지만, 저만의 속도로 꾸준히 써 나가겠습니다. 지금 이 마음을 잃지 않고, 언제나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994년 부산 출생.
  ●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졸업.


 

  <심사평>


  절제된 언어로 인물성격 역동적으로 그려내” 


  희곡은 시, 소설과 함께 문학의 3대 장르 중의 한가지인 동시에 극장무대, 희곡, 배우, 관객 등 연극의 4대 요소이기도 해서 색다른 문학 형태라 말할 수가 있다. 이 말은 곧 희곡은 시나 소설처럼 대중에게 읽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움직이는 문학이란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극작가가 되려면 인문학적 소양과 무대 메카니즘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 한다. 문학적 소양은 양서를 많이 읽으면서 여러 가지 경험과 깊은 사색을 통하여자연스럽게 쌓여지지만, 무대 메카니슴은 좋은 공연을 많이 접해야 터득이 된다.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응모작 대부분이 극작가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 소양을 갖추지 못 한 채 개인적 망상이나 푸념식의 내용들이어서다. 사실 문학이란 언제나 인간이 살아온 이야기이거나 살고 있는 이야기지 황당무계한 비현실적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가운데 다행히 금년에는 극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는 ‘춤추며간다’를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이 작품을 주목한 것은 작가가 성격창조에 능할 뿐만 아니라 개성이 다른 부모와 딸이라는 세 명 가족구성원간의 이화(異化)와 갈등, 그리고 연민을 역동적이면서도 흥미롭게 묘사한데 따른 것이다. 즉 정처를 못 찾고 엿장수로 가장한 채 떠도는 아버지(낭만주의자), 신앙보다는 황금에 눈이 어두워 다단계 사교(邪敎)에 빠진 어머니(현실주의자), 그리고 이들의 행태에 실망한 자유분방하면서도 소설가의 꿈을 가진 딸(이상주의자)은 바로 오늘의 세태를 농축(濃縮)한 듯이 보였다. 또한 절제된 언어와 사건의 완만한 진전도 괜찮았다. 그렇기 때문에 30분 정도의 무대극을 4장(에필로그 포함)으로 나눈 구성상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손색없다고 보았다. 희곡은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밀도 있는 구성을 해야 한다. 


 

심사위원 : 유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