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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암실 / 정원채

 

캄캄한 공간 속에서 암등의 붉은 빛만이 흘러나왔다. 나는 확대기 캐리어를 열고 사각형 틀에 필름을 장착했다. 필름의 먼지를 에어브러시로 제거한 뒤 확대기 헤드에 캐리어를 끼웠다. 조임 레버를 내려 캐리어를 고정시키고, 확대기 보드에 올려놓은 이젤의 가로 세로 폭을 조정했다. 컨트롤러의 포커스 스위치를 켜고 확대기 렌즈의 조리개 수치를 5.6에 맞췄다. 네거티브 필름의 상이 이젤 위에서 어른거렸다.

확대기 헤드 옆면의 다이얼을 돌리면서 초점을 잡자 상의 윤곽이 점점 분명해졌다. 현미경처럼 생긴 포커스 스코프를 이젤 중앙에 놓고, 필름의 입자가 선명해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초점 다이얼을 살짝 돌렸다. 컨트롤러의 스위치를 끄고 포커스 스코프를 옆으로 치웠다. 이젤을 들어 인화지를 한 장 끼우고, 타이머 다이얼을 돌려 노광 시간을 맞췄다. 확대기 전구로부터 뿜어져 나온 빛이 인화지 위로 베일처럼 쏟아져 내렸다.

노광이 끝난 인화지를 현상액 트레이에 집어넣고 타이머 버튼을 눌렀다. 유제면 쪽으로 뒤집은 뒤, 현상액이 골고루 젖도록 인화지를 스테인리스 집게로 살살 눌러주었다. 암등의 붉은 불빛 아래에서 어떤 형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강원도 산골의 한 공소(公所)를 찍은 사진이었다. 어머니가 입원하기 전 어느 날, 함께 어머니의 고향에 찾아갔다가 방문한 곳이었다. 초겨울이어서 건물 주변의 나무들은 잎이 다 떨어진 헐벗은 몸으로 서 있었다. 눈이라도 내리려는지 하늘에는 무거운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 아래로 지은 지 오래된 허름한 건물이 보였다. 건물의 벽은 이곳저곳 금이 가 있거나 모서리 부분이 패어 있었다. 먹구름을 배경으로 첨탑의 십자가가 두 팔을 허허로이 벌리고 있었고, 출입문 처마 위로 때가 탄 성모 마리아 상이 두 손을 합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인화지를 집게로 집어 정지액 트레이 속으로 옮겨 넣었다. 다시 인화지를 꺼내 정착액 트레이에 넣을 때,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옆집에서 들려왔다. 그와 함께 여자의 비명 소리와 남자의 욕설이 터져 나왔다. 오래된 다세대주택의 벽은 토스트처럼 얇아서 옆집의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칩거할 조용한 공간을 찾아 이사 온 내 의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밤만 되면 옆집에서는 부부의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싸움 소리는 잦아들 줄을 몰랐다. 한여름인 데다 확대기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암실 안은 찜통이었다. 약품 냄새에 머리는 아프고, 유일하게 보이는 오른쪽 눈은 침침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떠도 눈에서는 진물이 흘러나왔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암실 문을 열자, 옆집에서 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표정 없는 어떤 얼굴이 인화지 위의 형상처럼 떠올랐다.

며칠 전날 밤, 편의점에서 술을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근처 골목을 지나는데 누군가 보도블록 턱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보였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발치에 고인 물웅덩이에 담배꽁초를 던지고 일어서던 여자애와 시선이 마주쳤다. 가로등 불빛 속에서 드러난 여자애는 무표정하고 뚱해 보였다. 조금 둥근 얼굴은 창백했고, 큰 눈 위의 일자형 눈썹은 눈에 띄게 짙었다. 시큰둥한 표정에 뚱하니 다물어진 입술을 보자니, 좀 웃어 보지 그래, 라고 슬며시 조언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자애는 투명인간 바라보듯 나를 보더니, 고개를 돌려 골목 앞쪽으로 걸어갔다. 뒤를 밟는 모양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여자애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걸음을 늦췄다.

골목 한편의 다세대주택으로 나는 돌아왔다. 어둠과 습기가 켜켜이 고인 계단을 오를 때였다. 자동 센서 등이 켜지는 순간 나는 주춤했다. 옆집 앞 계단에 여자애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옆집에서는 여전히 여자의 우는 소리와 남자의 욕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은 자고로 이웃을 잘 만나야 하는 것일까. 전셋값이 싸다고 이 집으로 이사 오는 것이 아니었다. 한 달 전 나는 충무로의 작업실을 처분하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강이 가까운 시골 마을이었다.

충무로에서 나는 필름을 현상·인화해 주거나, 암실 교육을 하면서 내 나름의 사진 작업을 하고 있었다. 5년 가까이 운영해 온 작업실을 접었을 때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하나하나 모아 왔던 카메라들과 암실 장비들을 무언가에 복수하듯 단숨에 처분해 버렸다. 그것은 내게 욕망의 찌끼에 불과했다.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남은 장비라고는 소형 필름 카메라와 낡은 확대기, 몇몇 현상·인화 용품뿐이었다.

그것들이 아직 남아 있는 이유는 물품들이 낡고 인기가 없어서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대기와 카메라를 적당한 가격으로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자잘한 물품들까지 덤으로 넘길 생각이었다. 이미 중고 거래 사이트에 물품을 올려놨으니 언젠가는 임자가 나타날 것이었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옆집에 주의를 주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등이 켜지는 순간 나는 주춤했다. 옆집 여자애가 등을 보인 채 계단에 앉아 있었다. 여자애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혼자는 아니었다. 하얀색 바탕에 검은 점이 군데군데 박힌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고양이는 늙고 기력이 쇠해 보였다. 몸이 말라서 뼈가 앙상하게 드러났고 살덩어리는 탄력 없이 늘어져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가 했는데, 고양이는 한쪽 눈이 없었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고함 소리에 상황이 짐작이 갔다. 등이 자동으로 꺼졌을 때 나는 현관문을 닫았다.

싸우는 소리가 조금 잠잠해졌다. 거실 소파에 누워 침침한 오른쪽 눈에 안약을 집어넣었다. 눈가로 안약이 도르르 흘러내렸다. 안약을 몇 방울 더 집어넣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시력이 남은 유일한 눈이 요즘 따라 자주 침침해져서 기분이 울적했다. 어둠 속에서 옆집 여자애의 뚱한 얼굴과 외눈 고양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안약이 말랐을 무렵 나는 다시 소파에서 일어났다. 현관문에 다가가 렌즈 구멍으로 바깥을 바라보았다. 구멍 바깥으로 어둠이 카메라 셔터막처럼 내려와 있었다. 벌써 집으로 들어간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현관문을 열었다. 등이 켜지면서 여자애의 뒷모습이 빛 속에서 드러났다.

거기서 뭐하냐고 내가 물었다. 하지만 일자형의 짙은 눈썹만 미세하게 움직였을 뿐 여자애는 대답이 없었다. 현관문을 잡고 서 있는데 등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내가 말했다.

"잠깐 들어올래? 찬 바닥에 앉아 있으면 몸에 안 좋잖아."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죠?"

어둠 속에서 여자애의 굵고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톤은 낮았지만 단단하게 굳어 있는 목소리였다. 그래도 벙어리는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나는 말을 이었다.

"안고 있는 녀석 생각도 좀 해라. 고양이가 졸린 것 같은데."

여자애는 잠깐 망설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상 집으로 여자애를 데려오니 분위기가 조금 어색했다. 거실 카펫에 내려놓자 고양이는 젖은 손수건처럼 늘어지더니, 얼마 안 있어 혀를 빼물고 잠이 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부엌에서 빵과 음료수를 가져왔다. 여자애가 목구멍으로 빵 조각을 느릿느릿 넘기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물었다.

"고양이는 원래 한쪽 눈이 없는 거야?"

"수술했어요, 눈동자가 하얗게 변해서. 눈을 빼지 않으면 다른 쪽 눈에도 암 세포가 전이된다고 해서요."

눈동자가 하얗게 변했다는 말이 내 기억을 건드렸다. 태어나고 몇 년 뒤에 앓은 열병 때문에 나는 왼쪽 눈의 시력이 없었다. 게다가 다섯 살까지 내 왼쪽 눈의 색깔은 하얀색이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눈동자가 검은색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상실된 시력은 끝내 회복되진 않았다. 자세히 거울을 보고 있으면 내 왼쪽 눈동자는 초점 없이 오른쪽 눈과 따로 놀고 있었다. 나는 내 눈의 상태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세상은 자신의 약한 부분을 거침없이 드러내도 좋을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고양이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내가 물었다.

"이름이 뭐니?"

"장미요."

장미. 나는 이름을 되뇌면서 참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이름을 따라간다는 세간의 말은 죄다 헛소리인 모양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우중충해 보이는 장미라니.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어도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곰살궂거나 말주변이 좋은 인간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건네면서 보고 싶은 걸 보라고 장미에게 말했다.

소파에서 일어난 나는 괜히 집 안 이곳저곳을 서성거렸다. 그러다 습관처럼 암실로 들어갔다. 불을 켜고 의자에 앉아 등을 길게 기댔다.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았다. 암실 문밖으로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왔다. 주제넘게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시 눈을 떴다. 눈앞에 확대기가 원수처럼 버티고 있었다.

암실의 실내등을 껐다. 암등의 불빛만이 어슴푸레하게 빛났다. 확대기의 전원 버튼을 켜고 컨트롤러의 타이머 다이얼을 조정했다. 확대기로부터 쏟아져 나온 빛살이 인화지에 떨어졌다. 확대기 램프가 꺼졌을 때, 이젤에서 꺼낸 인화지를 현상액 트레이에 집어넣었다.

타이머 버튼을 누르고 액정의 붉은색 숫자가 변하는 것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암실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바깥의 빛살이 쏟아져 내렸다.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빛에 노출된 인화지는 이미 까맣게 변해 있었다. 일그러진 내 표정을 의식했는지 장미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암실 문을 닫았다.

"집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암실 안을 둘러보면서 장미가 변명하듯 말했다. 하기는 인화지 한 장 못 쓰게 됐다고 무슨 대수인가. 지금 작업하는 것은 미처 현상·인화하지 못한 필름들 가운데 하나였다. 중요한 작업도 아니었고, 어차피 소일거리 삼아 가끔씩 하는 일에 불과했다. 나는 못 쓰게 된 인화지를 집게로 집어서 수세 트레이에 담갔다. 까맣게 변색된 인화지가 물 위로 둥둥 떠다녔다.

암실 안이 더워서 혼자 있으면 좋겠는데, 장미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암등의 붉은 불빛을 사광으로 받은 장미의 얼굴에 어렴풋이 감탄의 표정이 피어나고 있었다. 장미가 확대기 쪽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저씨, 사진작가예요?"

"내가 작가라고 하면 작가냐. 사람들이 작가로 봐야 작가지."

사진에 콘트라스트를 약간만 더 주기로 했다. 확대기의 마젠타 필터 수치를 올리고 인화지에 노광을 주었다. 이젤에서 꺼낸 인화지를 현상액 트레이에 집어넣었다. 인화지에 아까보다도 짙고 분명한 상이 떠올랐다. 장미는 인화지가 정지액과 정착액 트레이로 옮겨 가는 과정을 숨죽인 채 바라보고 있었다.

실내등을 켰다. 환기를 위해 암실 문을 열었다. 장미가 인화지를 만져 봐도 되냐고 물었다. 내가 승낙하자 인화지를 트레이에서 꺼내 한참 들여다보더니 장미가 물었다.

"교회예요?"

"공소."

"공소가 뭔데요?"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조그만 예배소야."

"오래되어 보이네요.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아요."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지도 벌써 일 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날 어머니는 왜 그곳에 가려 했을까. 죽음에 대한 예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공소를 기억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공소(空所)라는, 사전에도 없는 단어가 자꾸만 떠올랐다. 모든 것이 휘발되어 버린, 생의 숨결이 죄다 빠져나간 것 같은 텅 빈 공간. 어머니의 고향 마을 자체가 이제는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는 곳이기도 했지만, 산골의 공소는 관리가 안 된 탓인지 더욱 황량해 보였다. 문짝은 떨어져 나갈 듯했고, 건물 주위로 부서진 돌덩어리들이 세월의 잔해처럼 널려 있었다. 십자가와 마리아 상만이 그곳이 예배소임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장미는 늦은 시간까지 암실 작업을 구경하다가 돌아갔다. 내가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다면 더 눌러 있을 기세였다. 그러려니 했다. 암실을 처음 구경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신기해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값비싼 비용과 번거로운 과정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잃곤 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장미는 오후가 되면 고양이를 안고 내 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는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가곤 했다. 특히 저녁이 되면 무척 가기 싫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장미가 도둑고양이처럼 어슬렁대는 곳은 암실이었다.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암실 안에 들어가더니, 고해 성사를 하는 사람처럼 한참 동안 그곳에 있다 나오곤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정도로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암실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 장미에게 물었다.

", 넌 이 늦은 시간에 집에 안 가냐?"

장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애가 이렇게 눈치가 없나. 조금 짜증이 난 내가 말을 이었다.

"이 시간까지 여기 있으면 부모님들이 걱정하실 거 아냐."

하지만 장미는 뚱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장미가 오랫동안 생각한 것을 어렵게 꺼낸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 나 암실 작업하는 거 가르쳐 주면 안 돼요?"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설마설마하면서 회피했던 상황이었다. 나는 최대한 깊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척하다가, 수강료를 내면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다. 장미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못을 박듯 말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 원래 프로는 돈 받고 기술을 전수하는 법이야."

"작가 아니라면서요. 돈 대신 다른 거는 안 돼요?"

"가령?"

"요리나 청소 같은 걸로……."

"나는 가정부가 필요 없는 사람이야."



그 이후로 일주일 동안 장미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삐졌나? 귀찮던 인간이 보이지 않으니 시원해야 하는데, 기분이 뭔가 이상했다. 그리고 내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오후만 되면 현관문 벨이 울리는 환청이 들려왔다. 장미와 고양이가 암실 구석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내가 새싹의 마음에 대못을 박았나. 사실 돈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다만 혼자 있고 싶었을 뿐이다.

심심파적 삼아 해오던 암실 작업도 하기 싫어졌다. 텔레비전을 보기에는 오른쪽 눈이 침침했다. 남은 한쪽 눈마저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게는 늘 잔존해 있었다. 안약을 몇 방울 집어넣고 거실 등을 껐다. 소파에 드러누워 몸에 힘을 빼고 있었다. 강이 가까운 이곳의 여름밤은 덥고 습했다. 눈을 감고 누워 있으니 검은 망망대해 위에 홀로 떠 있는 것 같았다. 거대한 외눈으로 변한 내 몸이 어둠 저편으로 둥둥 떠 내려갈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문득 어떤 형상이 떠올랐다. 희미했지만 나는 그것이 어머니의 손임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수백 번도 더 마음속에서 마주쳤던 이미지였다. 주름투성이의 앙상한 손. 병상의 이불 바깥으로 맥없이 빠져나온 그 손은 내 손을 간신히 잡고 있었다.

눈을 뜨고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로 들어가 내가 올린 게시물을 살펴보았다. 아직 아무도 댓글을 달아놓은 사람은 없었다. 게시물에 첨부한 사진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확대기와 필름 카메라는 연식이 오래되어 신뢰감이 없어 보였다. 그래, 먹고 떨어져라. 나는 수정 버튼을 클릭했다. 가격을 낮추고 다시 게시물을 올렸다.

휴대폰을 머리맡에 다시 내려놓을 무렵, 옆집에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입에 담기 힘든 욕지거리를 내뱉는 옆집 남자의 목소리였다.

얼마 후 벨 소리와 함께 현관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 어떤 덩어리가 짐승처럼 안으로 들어왔다. 그 짐승은 너무나 익숙하게 암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름 달빛이 혀처럼 흘러들어오는 거실에서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암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확대기가 놓인 테이블 아래쪽에 누군가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앓는 듯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가만히 보니 장미는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내가 실내등 스위치를 누르려 하자 장미가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 내가 물었지만 장미는 몸을 떨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아빠 때문에 그래?"

내가 묻자 어둠 속에서 장미의 잔뜩 도사린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아니에요."

"내가 얘기해 줄까? 너한테 피해 안 가게."

그 말을 해놓고 내가 너무 앞서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장미의 차게 내뱉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의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나는 암실 바깥으로 나갔다. 베란다로 가서 달을 올려다보았다. 달은 습기로 뿌연 밤하늘 속에서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둠과 빛, 검은색과 흰색. 그런 단어들을 떠올리다가, 베란다를 나와 안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서랍을 열고 그 안에서 필름 카메라와 감도 400짜리 필름 한 통을 꺼냈다. 안방에서 나온 나는 암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불을 켜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미는 대답이 없었다.

"줄 게 있어서 그래, 불 켜도 되지?"

"뭔데요?"

실내등을 켜자 장미는 부신 듯 눈을 깜박거렸다. 외눈 고양이는 좀 더 깊이 장미의 몸에 고개를 파묻었다. 장미의 팔목에 피어오른 멍 자국에 내 눈길이 머물렀다. 반바지 아래 다리에도 멍이 있었다.

나는 무릎을 굽히고 장미와 눈높이를 맞췄다. 카메라를 내밀었다. 내장 노출계가 있을 뿐, 모든 것을 직접 조작해야 하는 수동 필름 카메라였다. 장미가 엉거주춤 카메라를 받아들면서 무슨 의도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필름을 건네면서 말했다.

"뭘 찍어야 암실 작업을 할 거 아냐."

"주는 거예요?"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돼. 주는 게 아니라, 빌려 주는 거야."

"필름은 어떻게 끼우는 거예요?"

장미는 테이블 아래에서 나와 다시 카메라를 내밀었다. 암실 바닥에 장미와 나는 양반다리를 하고 마주앉았다. 뒤에서 누군가 봤다면 고스톱이라도 치나 생각했을 모습이었다. 나는 덮개 잠금 레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약간 돌린 후, 필름 되감기 손잡이를 들어올렸다. 덮개가 톡 소리를 내며 열렸다. 필름 끝을 빼서 스풀에 끼우고 손가락 끝으로 조금씩 돌렸다. 덮개를 닫았다. 촬영 매수계의 숫자가 1이 나올 때까지 필름 감기 레버를 돌리고, 셔터를 눌렀다. 필름 감도를 맞춘 후 나는 장미에게 카메라를 내밀었다.

초점을 맞추고 노출계를 보는 법,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를 조절하는 방법을 장미에게 가르쳤다. 진지하게 듣는 장미의 눈이 은 입자처럼 반짝였다. 내가 말했다.

"필름값 비싸니까 아무거나 찍지 말고, 한 장 한 장 공들여 찍어. 셔터 한 번 누를 때마다 한 세계를 담는다는 기분으로."

"그런데 뭘 찍어야 좋을까요?"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댄 채 초점 링을 돌리면서 장미가 물었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정말 찍고 싶고, 좋아하는 것들. 그것들을 네 눈에 보이는 대로 찍어, 남 흉내 내지 말고."

스스로가 던진 말은 본인을 채우는 수갑이 되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장미가 돌아간 이후에도 나는 장미에게 했던 말을 자조적인 기분으로 되씹고 있었다.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는 내가 묻고 싶었던 말인지도 몰랐다. 내 눈에 비친 세상을 찍어야 한다는 말도 실상 내게 되돌려주어야 할 말이었다.

나는 십 년 동안 사진, 즉 포토그래피에 대해 고심해 왔었다. 어원을 따지자면 포토그래피는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 빛 그림이 어느 순간 내게 거대한 어둠 절벽으로 다가왔다. 암실도 나를 가두는 어둠의 형무소처럼 느껴졌다. 내가 사진학과 근처를 얼씬대거나, 해외 유학을 가본 적 없는 독학파라는 자격지심 때문이 아니었다. 십 년 동안 내가 쫓아다닌 빛 그림은 진정한 내 빛 그림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마지막 개인전 때였다. 십 년 동안의 작업을 정리한, 내 나름으로는 야심찬 전시회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전시회는 폭발적으로 썰렁했다. 한 평론가는 내 전시에 대한 짧은 평에서 '무엇을''어떻게'에 대한 새로움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투적인 전시회라고 혹평을 늘어놓았다.

전시회 마지막 날, 액자를 철수하기에 앞서 나는 사진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네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하나 사진들을 살필수록 평론가의 말은 더욱 강한 창이 되어 나를 찔러 왔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에 이르렀을 때, 나는 창 맞은 들소가 되어 무릎을 꺾었다. 네 사진은 흉내 내기에 불과해라는 비웃음이 귓가에 어른거렸다. 액자를 철수하던 날, 나는 그것들을 모두 소각장에 가지고 갔다. 그리고 망치로 액자를 하나하나 남김없이 깨뜨렸다.

며칠 후 장미가 필름을 현상하기 위해 집으로 왔다. 병따개처럼 생긴 피커로 필름 끝을 뽑게 했다. 그리고 흰색 플라스틱 릴에 못 쓰는 필름을 감는 훈련을 시켰다. 현상 작업을 망치면 그 필름은 아예 못 쓰게 되는 것이었다. 은이 발라진 필름에 상이 나타나게 하려면 빛 하나 들지 않는 공간에서 작업해야 했다. 필름을 릴에 감고, 릴 아랫구멍에 중간봉을 끼운 뒤, 그것을 현상 탱크에 넣고 뚜껑을 닫는 과정까지가 암실 속에서 손끝의 감각으로만 진행되어야 했다. 눈을 감고 필름을 릴에 감는 것에 성공한 장미에게 내가 가위와 현상 탱크를 내밀었다. 암실에 들어가라는 내 말에 장미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혼자요?"

"인생은 원래 혼자야."

암실 안에 들어간 장미가 혼자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사이 암실 옆의 싱크대에서 현상 약품들과 비커, 온도계를 준비했다. 릴에 필름을 다 감았는데 어떻게 하냐는 장미의 말에 필름 끝을 가위로 자르라고 소리쳤다. 암실에서 나온 장미가 현상 탱크를 들고 싱크대 쪽으로 다가왔다. 십 년 감수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현상액과 정지액, 정착액을 준비했다. 현상 과정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현상액의 온도였다. 온도가 정확히 20도가 되었을 때 현상 탱크에 현상액을 쏟아붓도록 했다. 일 분간 연속으로 현상 탱크를 흔든 뒤, 25초 쉬고 5초간 교반하도록 시켰다. 945초쯤 되었을 때 현상액을 수챗구멍에 버리고, 물을 넣어 1분간 교반했다. 다시 물을 버리고 이번에는 정착액을 넣어 5분 정도 교반하도록 했다.

수세까지 끝났을 때, 현상 탱크에서 꺼낸 릴에서 필름을 쭉 뽑아냈다. 필름을 펼치고 불빛에 비추어 보았다. 고양이를 찍은 것으로 보이는 필름은 현상이 잘 되어 있었다. 수적 방지 용액에 필름을 적신 후 집게로 집어 화장실에 걸어놓았다.

"무슨 사진이에요?"

다음 날 집으로 찾아와 내 인화 작업을 구경하던 장미가 물었다. 실내등을 켜고 암실의 출입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면서 내가 말했다.

"공소 안을 찍은 사진."

수세 트레이 위에 인화지가 둥둥 떠 있었다. 나는 사진을 건져서 들여다보았다. 어머니와 방문했던 그 공소의 내부는 어둡고 침침했다.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자욱했고, 벽의 구석에는 거미줄이 가득했다. 어디선가 곰팡이 냄새가 스멀스멀 풍겨왔다. 정면 벽에는 십자가와 성화가 걸려 있었고, 그 앞으로는 흠집투성이의 장의자들이 차례대로 놓여 있었다. 사람이 없는 어둡고 적막한 공간이었다. 오른쪽 창가로부터 흘러들어온 희미한 빛만이 어둠을 힘겹게 밀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장미가 사진의 한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예요?"

"내 어머니."

맨 앞줄의 장의자에 어머니가 정물처럼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두 손을 모은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날 어머니는 무엇을 빌고 있었을까. 그날의 동행이 자신의 마지막 외출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어머니의 굽은 등 위로 희미한 빛이 사선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장미가 갑자기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저씨, 나도 언제 한 번 이곳에 데려가 줘요."

"별 거 없을 텐데. 혹시 너, 종교 있니?"

"아뇨. ……나 같은 애의 기도도 왠지 이곳에선 들어줄 것 같아서요."

강가로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장미가 사진 찍는 법을 좀 더 알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온 이후 밤이 되기 전에 바깥으로 나간 것은 처음이었다. 장미의 고양이는 눈에 띄게 쇠약해져 있었다. 이제는 먹을 것에도 흥미를 잃은 채 대부분의 시간을 꾸벅꾸벅 조는 일에 바치고 있었다. 관절마저 성치 않아서 이제는 혼자서 거동도 하지 못했다.

장미가 가져온 고물 유모차에 고양이를 싣고 집을 나섰다. 동네를 지나고, 재래시장을 지나 일 킬로미터 정도 걸어가면 강이 나왔다. 장마 기간이기 때문인지 공기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어 있고, 풀과 나무들은 진한 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강의 수면은 임신부의 배처럼 불어 있었다. 나는 유모차를 밀고, 장미는 사진을 찍으며 숲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갔다. 피사체에 좀 더 다가가서 찍으라는 내 말을 듣던 장미가 휴대폰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내 마지막 전시회 포스터 사진이었다. 전신주가 드문드문 서 있을 뿐 허허벌판인 눈길을 찍은 사진이었다. 하늘은 눈이라도 퍼부을 듯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수평선 부근으로 외등이 하나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한쪽 눈밖에 보이지 않는 나의 사진은 어딘가 수평이 맞지 않고 삐딱해 보였다. 수평을 맞추려 안간힘을 써도, 내 카메라에 포착된 피사체들은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었다. 장미가 엄지를 치켜들더니 말했다.

"아저씨 사진은 뭔가 독특한 것 같아요."

"독특한 게 아니라 이상한 거지. 잘못 찍었거나."

"아녜요, 정말 좋아요. 적어도 내 마음에는 쏙 들어요. 그런데 왜 요즘은 사진 안 찍어요?"

"사진 찍는 일이 재밌지만은 않아."

"왜요? 나는 아저씨처럼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데."

"사진가가 되면 뭐하려고?"

"이곳저곳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필름에 담고 싶어요. 그땐 아저씨도 같이 찍으러 가요."

"카메라가 한 대 더 필요하겠군."

다음 날 장미에게 인화 작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필름 전체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밀착 인화를 해야 했다. 확대기 보드 위에 네모난 밀착기를 올려놓고 유리 덮개를 열었다. 덮개 홈에 다섯 컷씩 잘린 필름을 끼우고, 다시 덮개를 닫았다. 확대기 헤드를 위로 올리고 조리개 수치를 조절했다. 초점 링을 돌려 빛이 떨어지는 영역을 맞춘 후, 포커스 스위치를 껐다.

유리 덮개를 열고 인화지를 한 장 밀착기에 올려놓았다. 덮개를 닫은 후 확대기 타이머를 3초에 맞췄다. 유리 덮개에 끼워진 필름을 십분의 일 정도만 남겨 놓고 종이판으로 가렸다. 3초마다 빛 가림 판을 십분의 일씩 사선 방향으로 옮기며, 10회의 노광을 주었다.

노광이 끝난 인화지를 현상액, 정지액, 정착액 트레이에 차례대로 집어넣었다. 인화지를 트레이에서 꺼내, 필름 베이스의 구멍이 검은색으로 변하는 시간을 찾았다. 15초가 나왔다. 다시 15초 동안 인화지에 노광을 주고 현상, 정지, 정착, 수세의 과정을 반복하도록 시켰다.

인화 용액이 트레이 바깥으로 더러 튀기도 했지만, 장미는 처음 하는 것 치고는 작업을 꽤 잘했다. 소질이 있었다. 밀착 인화를 한 인화지를 장미에게 건네며 사진 한 컷을 고르라고 했다.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든 고양이의 사진을 장미가 가리켰다. 시간이 늦었으므로 나는 테스트 인화를 거쳐서, 고양이의 검은 점이 까맣게 되는 지점을 노광 시간으로 잡고 인화 작업을 마저 해주었다. 인화지를 흐르는 물에 수세하면서 나는 암실 작업이 재미있냐고 물어 보았다. 장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물었다.

"약품 냄새 나는데 머리 안 아파?"

"아뇨, 괜찮아요. 이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필름을 몇 개 더 장미에게 주면서,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 보라고 말했다. 장미가 돌아간 후 나는 소파에 누워 안약을 눈에 넣었다. 안약 때문에 시야가 뿌옇게 흐렸다. 암실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장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며칠 동안 장미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는 장미가 내 집에 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장미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기간이 일주일을 넘어서자 별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암실 작업에 싫증을 느낀 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은 쉽게 열광하다가도 금방 싫증을 내기도 하니까. 재미있는 일은 얼마든지 널려 있는 세상이었다.

낮잠을 자던 나는 벨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현관문을 열었다. 장미가 무언가를 꽁꽁 싼 이불을 안고 서 있었다. 장미의 팔과 다리에는 전보다 더 크고 검붉은 멍 자국이 피어올라 있었다. 무언가를 간신히 견디는 표정을 지으며 장미가 말했다.

"고양이가 죽었어요……."

동물병원에 가서 비용을 내고 화장을 맡기자, 며칠 뒤에 유골함을 받을 수 있었다. 재를 강에 뿌려 주고 싶다고 장미가 유골함을 꼭 안은 채 말했다. 바깥에는 빗방울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공기는 습기로 가득했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우산을 챙겨들고 장미와 나는 강가로 나갔다.

재를 강에 뿌리는 장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의 얼굴은 희미했고, 앙상한 손만이 달처럼 떠올랐다. 수분이 증발한 손의 감촉. 마지막 전시회 이후 반년 뒤, 어머니는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늘 툴툴대면서, 자기 좋을 대로 살았던 나였다. 외눈의 아들을 말없이 응원했던 어머니에게 나는 해준 것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그랬나 싶어서 자기 혐오감이 들었다. 사진, 그까짓 게 뭐라고.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강 건너편 산기슭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어나는 강을 나란히 바라보다가 그동안 사진은 많이 찍었냐고 내가 장미에게 물었다. 장미는 대답이 없었다. 암실 작업하러 왜 안 왔냐는 물음에 장미가 친구 상담을 해주느라 바빴다고 말했다. 어떤 친구냐고 묻자, 세상에서 제일 멍청하고 어리석은 친구라고 장미가 대답했다. 친구를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하자, 새 아빠한테 성폭행을 당한 친구라고 장미가 차게 내뱉었다. 먹구름 낀 하늘에 시선을 두며 장미가 말을 이었다.

"병신처럼 가만히 있었데요. 갈 곳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했더니, 창피하고 두렵다는 거예요."

"……"

"그래서 너같이 더러운 년은 그냥 콱 죽어 버리라고 했어요."

침묵 사이로 빗소리가 요란해졌다. 나는 장미의 손을 잡았다. 그 위로 다른 손을 포갰다. 따뜻했다. 내가 말했다.

"언제 공소에 사진 찍으러 갈래? 그 친구랑 셋이서."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장미가 어둠 속에서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세상이 비의 암실이 되었을 무렵, 장미와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헤어지기 전 현관문 앞에서 장미가 가방을 열었다. 카메라와 필름을 내밀면서 장미가 말했다.

"내일 작업하러 갈 게요. 이것들 좀 암실에 놔둬 주세요. 집에서 자꾸 뭐라고 해서요."

그러나 장미는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집으로 오지 않았다. 문자나 전화를 해보았지만 장미에게서는 응답이 없었다. 또 하루가 지나갔다. 장미에게서는 소식이 없고, 장마만 계속되었다. 그 사이 확대기와 카메라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휴대폰을 통해 게시물의 댓글을 확인하던 나는 암실로 들어갔다.

테이블 한편에 덩그러니 놓인 필름과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카메라를 들었다. 필름 감기 레버를 당기고 셔터를 누르는 일을 반복하던 나는 무심코 뒤 덮개를 열었다. 그러자 덮개 안 필름실에서 접은 종이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종이를 펼쳤다. 고양이의 장례 비용을 꼭 갚겠다는 말과 함께 집을 잠시 떠나 있겠다는 내용이 종이에 적혀 있었다.

혹시 장미에게서 문자라도 온 것이 있나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다시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로 들어갔다. 물건의 임자가 이미 정해졌다는 댓글을 나는 게시물에 남겼다.

장미가 남긴 필름을 현상하기 시작했다. 현상한 필름을 밀착 인화한 뒤, 인화지를 살펴보았다. 골목의 외등, 빈 그네, 덩그러니 서 있는 나무, 찢어진 인형, 팔걸이가 떨어져 나간 의자, 팔다리의 멍 자국, 부서진 가게 간판, 한쪽 전조등만 빛나는 자동차, 외눈 고양이…….

사진들을 빠르게 훑던 내 눈길이 한 컷에서 멈췄다. 손바닥으로 한쪽 눈을 가린, 장미의 클로즈업한 얼굴이 찍혀 있었다. 언제부터 장미는 눈치챈 것일까. 장미의 외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필름을 인화하기 위해 암실로 들어갔다. 장미의 눈이 현상된 필름을 확대기 캐리어에 끼웠다. 실내등을 껐다. 나는 사진의 검은색을 잡으려 애썼다. 검은색이 잡혀야 다른 빛깔의 색들도 오롯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장미는 아직 암실 작업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의 형상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장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자면 이번에는 내가 먼저 장미의 마음속 암실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엄습해 왔다. 노광을 끝낸 인화지를 현상액 트레이에 집어넣었다.

인화 작업을 끝낸 나는 서둘러 암실 문을 열었다.

암실 속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당선소감>


   "인간의 문제, 이야기로 풀어낼 것"

당선 통보 전화를 받고 뭔가 멍해진 기분이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어두워가는 겨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한동안 이게 제게 일어난 일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취재차 암실에서 필름 인화를 배웠던 여름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붉은 암등만이 켜진 암실은 덥고 약품 냄새가 진하게 풍겼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에 왜 많은 사진가들이 여전히 필름을 고수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 또한 그 순간만큼은 현실의 고단함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을 잠시 잊고 마음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퀘렌시아 같은 공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선 오랫동안 소설 쓰기와 작가의 자세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신 박상우 선생님께 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학교 은사님이신 이정숙, 김동환 선생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 말씀 드립니다. 제 글이 암실에서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늘 격려해주시고 따뜻하게 감싸주신 소행성 문우님들 덕분에 모자란 제가 힘을 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상하게 챙겨 주시는 형모 형님께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늘 걱정만 안겨 드리는 부모님께는 죄송한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동생인 정인채 군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언제나 소설 쓰기의 길을 지지해 주었고, 쓴소리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수시로 흔들리는 저를 붙잡아 주었습니다.

인간의 문제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975년 부산 출생.

  ● 한성대학교 강사.

  ● 사고와 표현 연구실 연구원.


 

  <심사평>


  "다양한 상징들, 곳곳사 반짝반짝"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는 과학의 시대에 '소설'이 아직도 우리 곁에 머무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결론은 '공감'이었다. 사람의 감정에 대한 '공감', 낯선 상황에 대한 '공감', 이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작가가 이런 공감을 얻으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이 점에서 전체 117편의 응모작 중 공감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품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꽃 내음 사람 내음', '뜰의 회한', '도도한 나미꼬', '암실' 등은 그 범주에 충분히 들 만한 작품들이었다.

'꽃 내음 사람 내음'은 동명의 식당을 찾아가는, 그러나 결국 그 식당에 도달하지 못하는 과정을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무리 없이 그려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린 시절 성폭행의 경험을 다룬 '도도한 나미꼬' 역시 흡인력이 강한 작품이었다. 노년의 문제를 다룬 '뜰의 회한'은 집 마당의 돌을 파가는 소소한 일과 노년의 삶을 연결하는 힘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신춘문예에서 압도적으로 돋보인 작품은 '암실'이었다. 일을 그만두려는 사진작가와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옆집 어린애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는 '공소', 눈동자가 하얗게 변한 '고양이', '암실 작업' '어머니' 등 다양한 상징들이 딱 정확한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 무엇을 이야기할지와 어떻게 이야기할지를 정확히 아는 작품이다. 여기에서 장미라는 아이의 슬픔과 그 아이와 소통하는 ''의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낸다. 매우 좋은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의 의견 합치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고, 좋은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기쁨을 공유할 수 있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당선자의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 유익서, 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