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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터널, 왈라의 노래 / 정무늬

  예고 없이 내린 폭설이었다. 10년 만에 최저 기온이라고도 했다. 일기예보를 듣다가 라디오 볼륨을 줄였다. 차가 막힐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앞차의 브레이크 등 때문에 눈앞이 새빨갰다. 벌써 이십 분째, 터널은 주차장이 되었다. 두 개의 환풍기가 천장에 나란히 달려 있었다. 검고 커다란 통 안에서 프로펠러가 쉼 없이 돌아갔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친숙했다. 나는 비행장 근처에 오래 살았다. 집은 밤낮으로 시끄러웠다. 집이라고 해봤자 고철상에 딸린 컨테이너 한 칸이 전부였다. 주위엔 인가가 없었다. 아버지가 쌓아둔 고철이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마다 까무러치듯 삐걱댔다. 녹슬고 망가진 것들의 음울한 합창이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왈라는 비행기를 증오했다. 사람은 나고 자란 땅에서 살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믿음을 배반한 대가로 벌을 받는 거라며 왈라가 울었다. 김치가 매워서, 밤하늘이 까매서, 드라마를 볼 수 없어서. 왈라가 우는 이유는 날마다 달랐다. 아버지는 우는 왈라를 때렸다. 나도 맞았다. 아버지라는 단어에서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폭력이었다. 죽으라고 팼는데 결과적으로는 살았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렸다. 시동은 끄지 않았다. 05년식 스타렉스의 엔진 소리를 듣다가 창문에 묻은 지문을 닦았다. 삼십 분이 더 지났는데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지루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좁은 것, 어두운 것,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비참함에 익숙했다. 아버지는 나를 버려진 옷으로 가득한 벽장에 가두고 문과 손잡이에 덕트 테이프를 붙이곤 했다. 그 짓거리를 패킹이라 부르며 모처럼 웃었다. 처음엔 벽장을 긁으며 꺼내 달라고 애원했다. 컨테이너에 실린 채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로 팔려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며칠뿐이었다. 패킹은 일상이 되었으므로 두려움이나 불안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다만 자기 똥오줌 냄새에 익숙한 어린애는 커서 뭐가 되는지는 궁금했다. 나는 무뎌졌고, 아버지는 흥미를 잃었다. 그런데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거르지 않고 날 패킹했던 걸 보면, 아버지는 어떤 면에서 꽤 노력가였다.

  가장 먼저 밖으로 나온 건 남자들이었다. 담배를 피우며 터널 앞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기웃거렸다. 앞차도, 그 앞차와 그 한참 앞차도 왜 움직이지 못하는지 몰랐다. 차에 쌓였던 눈이 줄줄 흘러내렸다. 남자들이 구정물을 밟고 다니다가 구두와 바짓단을 더럽혔다. 남자 둘이 실랑이했다. 환풍기 소리 때문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쉰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점퍼와 내의를 한꺼번에 뒤집어 배를 깠다. 석회 반죽처럼 새하얗고 살집이 오른 배였는데 뜻밖에 위협이 된 모양이었다. 다른 쪽이 물러섰다. 터널 뒤에서 고함이 터졌다. 뭐! 뭐! 마지막 뭐는 으악과 뒤섞여 기묘한 소리가 났다. 무슨 축포 같았다. 뭐라도 지껄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공기가 터널 안에 꽉 차 있었다.

  -어디서 탄내 나지 않냐?

  늙은 개가 말했다. 뒷자리에서 꿈틀거린 것뿐임에도 고약한 냄새가 움직였다. 나는 소맷부리로 코를 막고 다른 손으로 글로브 박스를 열었다. 롤 빗과 비누, 치약, 핸드크림, 목장갑……. 쓸 만한 물건이 별로 없었다. 일자 드라이버를 꺼내 보조석을 때렸다. 늙은 개가 움찔 뒤로 물러섰다.

  -무슨 일이 난 것 같은데.

  제 몸에서 풍기는 지린내도 못 맡는 늙은 개가 중얼거렸다. 라디오 채널을 바꿨다. 사람들이 터널에 갇혔다는 뉴스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디제이가 겨울밤에 어울리는 노래를 선곡했다. 쓸쓸하지만 영영 슬프지는 않은 노래였다. 눈이 내린 곳은 여기뿐이고, 터널 속 사람들은 세상에서 잊힌 것 같았다. 어린애 한 명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갇혔는데. 어쩌면 모른 척하는 걸 수도 있었다. 겨울밤과 눈의 정취를 노래하며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오직 당신만이 그걸 잊은 거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모이 날라만 몽 이까우이 낭까마리mo’y nalaman mong Ikaw’y nagkamali.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왈라가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왈라의 싸구려 립스틱과 암내가 연상되는 노래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건 한 곡뿐이었다. 내 콧노래에 맞춰 늙은 개가 무릎을 떨었다. 운전석까지 덜덜 떨릴 지경이었지만 그 정도는 봐줄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패킹되었다.

  먼지, 메탄가스, 시궁창 구린내가 습한 공기와 뭉쳐 움직이질 못했다. 터널의 천장에는 번개 모양으로 방수 페인트가 발라져 있었다. 벽마다 낡은 소화전이 묶여 있었다. 그 사이를 걸어서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처음에는 가방을 멘 청년들이, 그다음에는 중년 남녀가 터널을 탈출했다. 버스나 택시에서 내린 승객 같았다. 차주들이 부럽다는 투로 도망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터널 밖은 10년 만의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폭설까지 왔으니 걷기 쉬울 리 없었다. 터널을 나서자마자 후회할 게 분명했다. 돌아갈까, 말까. 고민은 쉬워도 결정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니 아무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터널에 갇힌 사람들은 싸우거나 소리를 지르는 일에도 시들해진 모양이었다. 기지개를 켜러 나오는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차 안에 있었다. 졸린 고양이처럼 눈을 끔뻑거리며 아직은 괜찮다고 자조하거나, 누군가 구해줄 거라고 믿고 있겠지. 대수롭지 않은 일에 흥분할 필요는 없다고, 곧 해결될 거라고 중얼거릴 것이다. 물론 성질을 못 이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앞차의 긴 파마머리 여자만 해도 그렇다.

  -소방차를 보냈다는 겁니까? 소방차가 여길 어떻게 들어오는데요?

  휴대폰에 대고 여자가 외쳤다. 정중한 체하지만 경솔하고 날 선 목소리였다. 흰색 경차 앞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노란색 핸들 커버와 고양이 캐릭터 방향제가 보였다. 여자는 나를 등지고 있었다. 얼굴이 궁금했다. 발목은 그렇지 않지만, 탄탄한 종아리가 내게 영감을 줬다. 몇 살이나 됐을까. 오늘 점심엔 뭘 먹었을까.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실컷 팬 뒤에 아버지는 물었다. 무얼 배웠느냐고. 그럴듯한 목적 때문에 주먹을 휘두른 사람처럼 턱을 쳐들고 있었다. 나는 터진 눈두덩이를 누르면서 어디선가 들었던 단어들을 주워섬겼다. 겸손을 배웠습니다. 인내를 배웠습니다. 포용을 또 용기를, 때로는 사랑을 배웠노라고 대답했다. 부끄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사는 게 중요했고, 살자면 뭐든 답해야 했다. 곰곰이 따져보면 그때 배운 것이 없지 않았다. 이 여자도 뭔가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도와준다면 말이다.

  -신고가 이미 들어왔다고요? 당연히 그랬겠죠. 여보세요? 제 말 들려요?

  여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터널에 울렸다. 차에 태운다면 입부터 막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룸미러로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몇 마디 연습했다. 공무원들은 책임을 떠넘길 거예요. 그쪽에서 하는 일이 다 그렇잖습니까. 이 정도면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손바닥에 입김을 불어 구취를 확인했다. 항상 처음이 제일 중요했다. 나는 그것을 오래전에 배웠다. 막 움직이려는데 달갑잖은 시선이 끼어들었다. 뒤를 돌아봤다. 버스 기사가 나와 여자,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나치게 밝은 형광등 탓에 기사의 얼굴 아래로 기괴한 그림자가 졌다. 버스는 텅 비어 있었다. 혼자 남은 기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죽치고 앉아 시간을 때울 수 있어서 기쁠까. 도로를 달리지 못해 갑갑할까. 적어도 손님들을 정류장에 내려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퇴근 시간이 되면 기사도 버스를 버리고 터널을 빠져나갈지도 모르겠다.

  -소피를 보고 싶다.

  늙은 개가 말했다. 곧 목마르다고 할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한동안 물을 마시지 않았다. 500밀리 생수병에 물이 반쯤 남아 있었다. 두 모금을 마시고 생수병을 글로브 박스 안에 넣었다. 그때 파마머리 여자가 차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동물 특유의 감각으로 어떤 변화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아마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늙은 여자 둘이 터널 안을 두리번거렸다. 똑같이 키가 작았고 펑퍼짐했다. 꽃무늬 양산을 들고 툭탁거리며 하수구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하나가 양산을 펴자, 다른 하나가 바지를 까고 쪼그려 앉았다. 앞은 가렸을지 몰라도 내 쪽에서 옆 엉덩이가 훤히 보였다. 지나치게 희고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팽팽한 엉덩이였다. 늙은 여자의 오줌이 시멘트 바닥을 천천히 적셨다. 그것과 비슷한 속도로 발기했다. 우산을 바꿔 들고 다음 여자가 오줌을 쌌다. 손이 땀으로 끈적거렸다. 물휴지로 닦고 핸드크림을 발랐다. 너무 늙은 데다가 둘이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사타구니를 주물렀다.



  패킹 당하면 춥지 않았다. 버려진 옷에 파묻혀 있었으니 추위보다는 더위가 문제였고, 더위보다는 악취가 고역이었다. 옷을 걸친 사람 수만큼 체취도 딸려왔다. 각각의 옷은 개성적으로 시큼하고 퀴퀴했다. 아버지는 구닥다리라도 나이키나 리바이스는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나머지는 대충 쌓아두었다. 좀먹은 한복은 깔깔했고 인조 모피는 근질거렸으며 초등학생용 걸스카웃 단복은 빳빳했다. 그런 감촉들을 모으는 것이 내 유일한 취미였다. 역겨움은 하나의 종류로 수집되었으므로 매번 새로운 역겨움을 찾아나섰다. 옷에 묻은 핏자국, 토사물, 개털, 음식 찌꺼기, 곰팡이와 함께 포장된 나날들. 그리운 나의 어린 시절.

  덕트 테이프를 뜯고 날 꺼내준 건 왈라였다. 아버지가 대폿집에 갔거나, 대폿집에 다녀와서 곯아떨어졌을 즈음이었다. 왈라는 오줌 싼 바지를 벗기고 내게 찬물을 뿌렸다. 차갑게 오그라든 자지를 제 입에 넣었다. 왜? 난들 알겠는가. 왈라는 죽을 때까지 그 짓을 했는데 내가 물을 때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비가 와서. 어깨가 쑤셔서. 제육볶음이 먹고 싶어서. 왈라의 눈물처럼 왈라의 혀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대체로 나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왈라는 내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처럼 내 엉덩이를 손톱으로 찍어 눌렀다. 언제부턴가 허리를 비틀어 빼지 않았다. 왈라의 혀가 닿을 때 헛바람을 삼키지도 않았다.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그 정도였다.

  나는 왈라의 입술과 그 안으로 사라진 자지를 유심히 보았다. 나와 똑같이 맞고 똑같은 자리에 멍이 든 왈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 밑에서 무릎을 꿇고 자지를 빠는 것이 왈라가 아닌 나 자신인 것 같았다. 못 견디게 역겨웠지만 왈라가 아버지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왈라도 가끔 아버지와 내 이름을 바꿔 불렀다. 아버지와 나와 왈라는 서로가 없으면 하루도 견디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진짜 가족이었다. 팡시시시 앗 사 이십Pagsisisi at sa isip 웃음을 참기 위해 왈라의 고향 노래를 불러보기도 했다. 완전히 틀려. 부르지 마. 놀랍게도 왈라는 자지를 빨면서 말을 할 수 있었다. 왈라의 입술 안에서 나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국어가 아닐 때가 더 많았지만 왈라도 끊임없이 말했다. 우린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함께 웃을 수 있었다. 그 뒤엔 어린 개처럼 뒤엉켜 잠들었다.

  나는 자랐고, 운전을 배웠고, 여자들이 빨아주면 나도 빨아줬다. 다만 왜? 라고 물으면 참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왈라가 떠올랐고 그녀가 아주 오래전에 죽어버린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왜? 모르겠다. 모르는 건 괜찮지만, 알려 드는 건 다른 문제였다. 세상에 완전히 알 수 있는 문제가 얼마나 될까. 왜 2시간째 터널에 갇혀 있는가? 언제 움직일 수 있는가? 왜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가? 이처럼 삶은 모르는 것투성이다. 그러니 입을 다물고 얌전히 고개를 숙이는 편이 좋다. 당장은 모르겠지만 분명 배우는 게 있을 테니까.

  -지금 터널에 갇혀 있단 말이야. 재난을 당했다고.

  중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창은 발 닦고 잠이나 자라고 했다. 나는 재난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할 만큼 그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엄청난 일에 휩싸여서 지금까지와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 같았다. 물론 현실은 시시했다. 인터넷, 전화, 라디오, 그 밖의 모든 것이 멀쩡했다. 흔한 추돌사고도 없었다. 그저 갇힌 채 잊혔을 뿐이었다. 총이나 폭탄테러 같은 진짜 재난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다. 그래서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건 뉴스에 나오게 되어 있다. 오늘 밤 이 터널 안에서 벌어진 일은 흔해 빠진 일상에 불과했다. 그 사이 여자 한 명쯤 사라진다고 누가 관심을 두겠는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후드를 쓴 남자가 스타렉스 옆을 지나갔다. 남자는 무의미했다. 젊고 억센 것들은 특히 그랬다. 나는 억지로 라디오에 집중했다. 휴대폰 액정 보호 필름, 대리운전, 꽃 배달 광고가 연속으로 나왔다. 늙은 개가 끅끅거렸다. 잘린 발가락을 문지르면서 주기적으로 저랬다. 터널 안에 패킹된 지 두 시간이 지났다. 날 꺼내주고 자지를 빨아줄 왈라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왈라도 이미 죽어버렸기를. 그래서 터무니없이 짧은 교훈이 터널 안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지기를 바랐다.

  모두가 떠난 줄 알았던 버스에서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가 내렸다. 네댓 살짜리 어린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제 몸집보다 큰 솜옷을 입은 남자아이였다. 머리카락이 굽실거렸고 코와 볼이 빨갰다. 아이가 주춤거리다 여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허리가 아파. 네가 걸어야 해.

  여자가 말했다. 아이 엄마라고 하기엔 너무 어려 보였지만 보통 엄마들처럼 지친 얼굴이었다.

  -소매로 입 가려.

  아이는 곧잘 말을 듣는가 싶다가 손을 떨어뜨렸다. 여자의 걸음이 빨라서 아이는 반쯤 끌려갔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룸미러에 얼굴을 한 번 비춰 보고 차에서 내렸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보이지 않는 터널의 끝을 응시했다. 정말 어디선가 탄내가 났다. 간격을 유지하며 여자와 아이를 따랐다. 생각보다 긴 터널이었다. 나에게는 이로웠다. 아이는 배고프다며 칭얼댔다. 여자는 답이 없었다. 추위가 귀 끝에 먼저 닿았다. 여자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가며 보폭을 맞췄다. 관자놀이가 뜨끈뜨끈했다. 서둘러야 했지만 금방 끝내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 시간만큼은 제어가 잘 안 됐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좋아서 돌아버리는 것만큼 흉한 것도 없다. 너무 뒤처져 버렸다. 보는 눈이 많았고 차마다 블랙박스도 달려 있을 것이다. 손에 땀이 찼다. 주머니에서 자잘한 꽃무늬가 들어간 가제 손수건을 꺼냈다. 구겨지지 않게 땀만 닦은 후 다시 넣었다. 중지 손톱 아래에 허옇게 말라붙은 치약을 꼼꼼히 긁어냈다. 터널 끝에서 눈 밟은 소리가 들렸다. 쌓인 눈 때문에 한밤중임에도 환했다. 여자는 몇 번 나를 돌아보았다. 침울하고 경직된 얼굴이었는데 무표정을 흉내 내고 있었다. 눈을 치켜뜨거나 입을 활짝 벌리면 좀 더 흥미로울 것 같은 여자였다. 찡그린 얼굴은 항상 별로였다. 가능하다면 웃어줬으면 좋겠다.

  -저기요,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꽃무늬 가제 손수건을 여자에게 내밀었다. 내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지만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여자가 아이 손을 놓고 손수건을 받았다. 유심히 보다가 자기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거짓말에 능숙한 여자였다. 그것이 기뻤다. 여자가 칭얼거리는 아이의 바지를 벗겼다. 오줌에 눈이 녹는 동안 여자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봤다. 구겨진 신문지처럼 바스락거리는 얼굴을, 거기 적힌 회색 이야기를 손으로 짚어가며 읽고 싶었다.

  터널 안과 밖은 큰 차이가 없었다. 언덕 때문에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앞까지 꽉 막혀 있었다. 터널을 탈출한 이들이 실망했을 법한 광경이었다. 끝날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이의 바지를 입히고도 여자는 움직이질 않았다. 다시 버스로 돌아가야 할지 걸어서 내려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눈 위에 남은 발자국이 어지러웠다. 많은 사람이 터널 앞에서 오줌을 싸고 한동안 망설인 모양이었다. 걷기에는 너무 추운 날씨였다. 얼어붙은 눈이 미끄러웠다. 아이는 얼마 걷지 못하고 업어 달라고 조를 것이다. 아이가 여자의 바짓단을 흔들었다. 엄마. 여자는 아이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끝 모르고 서 있는 자동차 행렬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이가 여자를 더욱 힘차게 흔들었다. 하나로 묶은 여자의 긴 머리가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엄마. 대답해, 엄마. 왜 엄마가 왈라로 들리는 걸까. 내겐 아버지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인간은 아니었는데.

  -차에 물이랑 바나나가 있는데 아이에게 줘도 될까요?

  내가 느긋하고 친절한 말투로 물었다. 여자가 돌아보았다. 아이도 나를 올려다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는 핸들을 치면서 도로 행정을 탓하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밀린 잠을 청하고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들키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취미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공평하게 밀폐된 시간. 패킹 된 이들에게 허락된 건 하룻밤 지나면 기억나지 않을 상념뿐이었다.

  -눈길이라 걷기 힘들 거예요. 아이에게 뭘 좀 먹이시고 차에서 좀 재우셔도 돼요. 저는 일 좀 보겠습니다…….

  쑥스럽다는 듯 말끝을 흘렸다. 여자와 아이를 남겨둔 채 터널 옆 작은 언덕을 올랐다. 여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줘야 했다. 스스로 결정했다고 믿어야 여러 가지가 편해진다. 물론 여자가 떠났을 수도 있다. 떠났다면 다시 쫓아갈 수는 없다. 떠났을까, 남았을까. 아랫배가 묵직했다.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짧은 관목을 넘었다.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언덕에서 오줌을 쌌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오줌 줄기에 눈이 흠뻑 젖었다. 한 방울까지 털어냈다. 추위 탓에 자지가 오그라들었다. 안타깝게도 손가락 한 마디 크기였다.

  -아이가 정말 힘들어 보이네요.

  아이는 여자가 안아주지 않아서 울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자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날 의심하겠지. 분명 미심쩍은 구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떠날 거였으면 내가 오기 전 사라졌겠지. 어제 여관에서 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감았고 아침에는 칼 면도도 했다. 나는 왈라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낯선 노래에 흥미를 보인 건 아이였다.

  -70년대 유행했던 필리핀 노랩니다. 팡시시시 앗 사 이십 모이 날라만 몽 이까우이 낭까마리. 네가 가야 하는 곳이 어디든지 우린 항상 문을 열고 널 기다리고 있단다. 가사 참 좋지 않나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죽은 개의 노래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터널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어둠이 거기 있었다. 추위는 그대로였고 악취는 심해졌다. 포근하고도 흐뭇한 광경이었다. 나는 나갈 때보다 천천히 걸었다. 내 뒤로 여자와 아이가 따라오고 있었다.

  왈라와 나는 남아도는 시간을 함께 처리할 때가 많았다. 왈라는 쓸모없는 질문을 자주 했는데 기억에 남은 건 하나뿐이다. 어떤 초능력 갖고 싶니? 딱 하나만 골라. 왈라는 머리카락을 꼬며 물장구치듯 발을 까딱거렸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머리 회전이 빠른 편이 아닌 데다가 찬물을 뒤집어쓰고 자지를 빨린 뒤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말 못 해? 머리 나빠? 왈라가 날 비웃었다. 뭐라 입을 떼려 하면 내 말을 끊고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초능력 필요 없어. 다시 태어나는 게 빨라. 네 아빠 같은 새끼 만나지 않으려면. 왈라는 새끼라는 단어만 또렷하게 발음하곤 했다. 너 같은 새끼라고 할 때도 한국인처럼 발음했다. 그리고 깍지 낀 손으로 내 코를 비틀었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어떤 초능력을 골라야 할지 고민했다. 시간을 멈추게 할까, 아니면 하늘을 날까.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나 번개를 치게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단 하나만 고르라는 건 어린애에게 너무 가혹했다. 상상뿐인데도 다 가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야한 생각 하는 거지? 왈라가 내 뺨을 한 대 갈기고 늘어진 티셔츠를 끌어올렸다. 왈라가 날 때려도 화가 나지는 않았다. 왈라는 항상 나보다 더 많이 맞았으니까. 머리가 터져 피가 흘렀고, 누레진 멍이 빠지기도 전에 피멍이 들었다. 온몸이 얼룩덜룩해서 동화책에 나오는 달마시안 같았다. 왈라에겐 정말 개 같은 면이 있었다. 맞지 않을 땐 짖었고, 맞으면 도망쳤다가 끌려 와서 또 맞았다. 내가 왈라였다면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세상 어디로든 도망칠 수 있는 능력을 골랐을 것이다. 아버지가 찾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버리면 되니까. 솔직해지자면 나는 왈라가 그냥 왈라인 채로 살길 바랐다. 왈라를 잡기 전까지 아버지는 평소 보다 미쳐 날뛰었다. 그동안의 배움이 쓸모없어질 정도여서 나는 왈라가 어서 잡히기만을 두 손 모아 기도했다.

  -119에 전화를 했거든요. 이럴 때는 보통 119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나요? 잘못 걸었다고 뭐라 할 수도 있지만 기다리는 데 지쳐 버려서. 그런데 119가 자기 소관이 아니래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112로 다시 걸라고 하는 건 진짜 경우가 아니잖아요?

  터널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여자는 말이 많아졌다. 불안하거나 겁에 질리면 무슨 말이든 떠드는 여자들이 있는데 이 여자도 그럴 줄은 몰랐다. 왠지 모를 배신감이 밀려왔다.

  -112는 더 황당해요. 눈이 많이 와서 그렇다는 거예요. 누가 그걸 모른대요? 눈 때문에 여기저기 다 그렇다는 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럼 터널마다 사람들이 갇혀 있는 거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또 대답을 안 해요. 조치 중입니다, 이러기만 하고. 무슨 조치 중이냐고 다시 물었죠. 또 조치 중입니다, 하고는 전화를 끊었어요! 제가 끊은 게 아니라, 그 경찰이 먼저 끊었단 말이에요. 이게 다 말이 돼요?

  여자는 화가 나 있었고 더, 다시, 다란 말을 자주 썼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성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조용한 여자를 다시 찾을 순 없었다. 다 끝난 일이었다.

  -탄내가 나요. 대체 무슨 일일까요?

  주눅 든 아이처럼 여자가 물었다. 끈이 반쯤 풀린 운동화는 눈에 푹 젖어 있었다. 여자가 갑자기 솔직해진 이유가 뭘까.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손바닥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서둘러 스타렉스 운전석 손잡이를 잡았다. 정전기가 튀었다. 예리하고 불쾌한 통증이 쉬 가시지 않았다. 글로브 박스에서 생수병을 꺼냈다. 여자가 생수병을 받았다. 아이에게 조금 먹이고 남은 물을 자기가 다 마셨다. 가방을 뒤져 검게 무른 바나나를 찾았다. 다디단 향을 맡은 아이가 고개를 바짝 들었다. 여자가 마지못해 스타렉스에 올라탔다. 아이를 부적처럼 끌어안은 채였다. 터널 안은 조용했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만 아니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손바닥에 거무스름한 얼룩이 보였다. 나는 늘 손을 깨끗이 하는데 어디선가 그을음이 묻어 버렸다. 닦아낼 수 있었지만 내버려 뒀다. 이제 급할 것이 없었다. 어차피 다시 더러워지게 되어 있었다. 터널 안에 고인 시간들이 터질 듯 팽창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한 주제에. 라디오를 듣고, 전화를 걸고, 인터넷을 뒤지며 사람들이 각자 시간을 허비했다. 같은 터널 안에 다닥다닥 붙어 있을 뿐 누구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터널은 침묵했고 침묵은 언제나 내 편이었다.

  왈라는 다시 태어나나요? 내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먼저 말을 거는 법이 드물었기 때문인지, 그날만큼은 손찌검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아버지가 순순히 대답했다. 글쎄다.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냐? 그게 왈라의 소원이었거든요. 미친 개년이. 아버지가 씨익 웃었다. 나는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개를 그슬릴 때보다 지독한 냄새가 났다. 검은 연기가 소각로에서 하늘까지 이어졌다. 아버지는 내가 겁을 먹거나,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스러워했다. 나로서는 도통 울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왈라가 싼 오줌이 내 양말을 적셨다. 나도 모르게 미친 개년이, 라고 내뱉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날 패킹하지 않았다. 내가 배울 만큼 배웠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벽장이 그리웠다. 각양각색의 역겨움과 날 꺼내주던 왈라, 왈라가 발을 달랑거리며 건네던 시답지 않은 질문이 그리웠다. 기회가 된다면 왈라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초능력은 아니지만 나도 조금은 비슷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사실 나는 뭔가를 영영 사라지게 하는 능력이 갖고 싶었다. 그 능력으로 왈라를 구해주고 싶었다.

  남자가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두 시간쯤 지난 뒤였다. 누추한 옷을 겹겹이 껴입은 초로의 남자였다. 그는 차의 진행방향 반대로 거슬러 오고 있었다. 자동차 전용도로라 인도도 없었는데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남자를 발견한 운전자들이 차에서 내렸다. 그라면 터널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을 터였다. 운전자들이 다가오면, 남자는 뭐라 대답하고 몇 발자국 걸었다. 그러면 다른 운전자들이 내려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남자는 싫은 기색도 없이 그들이 원하는 말을 들려주고 다시 걸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남자는 주름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뭐든 물어보라는 투였다. 내가 아무것도 묻지 않자 당황한 기색이었다. 남자가 내 스타렉스를 훑어보았다. 보조석에 앉아 잠든 아이를 발견하고는 기어코 말을 걸었다.

  -아이가 참 고생이네. 앞에 사고가 났어요. 눈이 이만저만 내렸어야지.

  남자는 눈을 굴릴 뿐 떠나지 않았다. 뭔가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가 뭘 하고 싶은 건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정말요? 벌써 네 시간이나 갇혀 있었다고요! 따위의 반응을 바라고 있었다. 남자는 시시한 재난과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러 나온 구경꾼이었다. 이런 부류를 만나면 살며시 웃음이 나올 만큼 인간이 사랑스러워졌다. 남자가 제풀에 지쳐 떠들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이 희미한 기쁨으로 번들거렸다.

  -요 언덕 아래서 버스가 미끄러졌거든. 옆으로 넘어졌는데 2차로를 다 막고 섰어. 길이 꽝꽝 얼어서 견인차도 얼씬 못해요. 염화칼슘을 뿌리고 앉았는데 눈이 언제 다 녹겠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앞으로 몇 시간이 더 걸릴지 아무도 몰라.

  나로서는 염화칼슘 몇 봉지로 패킹이 끝난다는 게 안타까웠다. 터널 속 사람들은 이제 막 배우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악을 대비해야 하는 것. 그 전에 인내와 순응을 익혀야 하는 것. 모든 책임은 자신한테 있다는 것과 원망은 내면을 갉아먹는 해충이라는 것 따위를. 이 중요한 순간에 억지로 눈을 녹인다니.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오늘 중에 처리될 리 없다고! 밤새 갇혀 있어야 할 거야!

  내 반응이 시원치 않았는지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낙담하며 머리를 감싸 쥐어야 할까. 다른 방식으로 애걸해야 할까. 그때 짓눌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은 욕지기 같기도 하고, 고통에 찬 신음 같기도 했다. 스타렉스가 삐걱거렸고 남자의 눈동자에 빛이 스몄다.

  -뒤에 누가 있는 거요?

  지금이야말로 내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터널은 너무 조용했고, 뒤에서 남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버지가 편찮으세요.

  -무슨 병인데?

  -당뇨요. 발가락도 다 잘라냈죠.

  -당뇨가 제일 무섭지. 겨울엔 눈이 무섭고, 늙으면 당뇨가 제일 무서워.

  남자가 정말 겁에 질려 말했다. 여자의 기척은 잊은 것 같았다. 하얀 경차에서 내린 파마머리 여자가 다가왔다. 무슨 사고가 난 거냐고 물었고, 남자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몇 시간 안에는 절대 안 끝나. 밤새 갇혀 있어야 할 수도 있어. 눈이 이만저만 왔어야지.

  순수하게 즐거워서 하는 말이었다. 남자가 퍼뜨린 불안이 터널에 엄습했다. 뒷자리를 돌아봤다. 여자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늙은 개의 인중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불현듯 늙은 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베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주 사소한 절차를 미루고 있었는데 그것은 오직 왈라 때문이었다. 다시 태어나는 게 빨라. 네 아빠 같은 새끼 만나지 않으려면. 왈라는 죽음으로 소원을 이뤘다. 내가 개를 태운다면 왈라의 소원은 깨져 버릴 것이다. 개들은 죽어서도 개들끼리 만날 테니까.

  터널이 소란스러웠다. 이윽고 붉은 브레이크 등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형광 조끼를 입은 경찰관이 보였다. 그는 운전석을 일일이 확인하며 시동을 걸라고 지시했다.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길게 이어진 눈물 얼룩을 가제 손수건으로 닦아줬다. 경찰이 아이와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 시선이 기분 좋았다. 지금껏 뒷좌석을 보여 달라던 경찰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늘 손이 깨끗이 하고 머리를 빗었다.

  -이제 다 해결된 건가요?

  내가 먼저 물었다. 경찰이 붉은 경광봉을 아래위로 흔들며 대답했다.

  -제설작업 끝났습니다. 바로 나가실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터널을 걷던 남자와 정반대의 말이었다. 나는 순응했고, 경찰의 무심함에 진심으로 고개 숙였다.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차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거의 다섯 시간 만이었다. 터널 초입에 서 있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눈에 띄었다. 뒤에서 빵빵거리는데도 검은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꿨다. 속도를 줄이고 검은 차 안을 살폈다. 운전석은 닫혀 있지만, 차창은 내려져 있었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새것으로 보이는 신사용 구두 한 켤레가 보조석 위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차를 버리고 터널을 빠져나간 걸까. 아니면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만난 것일까. 기분 좋은 소름이 오소소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나도 우리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도로가 뻥 뚫려 있었다. 폭설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 많은 눈을 어떻게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시속 60km가 아찔하게 빨랐다. 다른 차들이 앞 다투어 스타렉스를 추월했다. 아이는 얕은 호흡을 뱉으며 잠들어 있었다. 나는 아이가 오래 자기를 바랐다. 깨서도 울지 않았으면 했다. 터널 사고는 자정 라디오 뉴스에 방송되었다. 의외이긴 했다. 폭설로 인해 터널에 극심한 정체가 있었다는 내용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폭설과 정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조금의 상상력만 발휘했다면 그 틈에 쌓인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이란 뜻이었다. 아버지도, 왈라도, 나도 뉴스에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비행기가 떴다. 쌓아둔 고철들이 흉측한 소리를 냈다. 소각로에 불을 붙이고 몇 가지 번거로운 준비를 마쳤다. 스타렉스 뒷문을 열었다.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늙은 개가 굴러떨어졌다. 등에는 선명한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나는 발가락이 잘린 늙은 개를 보다가 여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여자는 일자 드라이버를 감아쥐고 있었다. 거짓말을 잘하고 배우는 것이 빠른 여자였다. 나는 오늘 무엇을 배우게 될까. 사랑을, 아니 그리움을. 개처럼 짖는 법과 비굴하게 웃는 법을. 잠에서 깬 아이가 목청껏 울었다. 그을음 냄새가 진동했다. 어디선가 왈라의 노래가 들렸다. 네가 가야 하는 곳이 어디든지 우린 항상 문을 열고 널 기다리고 있단다. 왈라는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선소감>

   "구르는 것 멈추지 않는 알찬 돌멩이 될 것"

  언젠가일 줄은 알았지만 언제일지는 몰랐다. 될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와락 올 줄은 몰랐다. 나는 작은 사람이라 당선의 기쁨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데데한 글을 쥐고 끙끙거리던 날을 잊은 채 동네방네 자랑할 궁리만 한다. 일단 숨부터 골라야겠다.
  들숨과 날숨.
  휘청거리는 낮과 꿈꾸지 못하는 밤 사이에 나는 무슨 노래를 불렀나. 무엇을 들이켜고 무엇을 토했나. 고꾸라진 것은 언제이며 누구의 어깨 위에 내 몸을 짐 지웠는가. 이제야 뒤돌아보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다. 달리고자 했으나 늘 절뚝거렸던 길 위에서 이제야 내 몫의 문과 마주한다. 돌아 나올 구멍은 메워졌다. 문을 연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한다.
  소설도 문학도 나는 잘 모른다. 그래서 마구잡이로 덤빌 수 있었다. 매번 박살나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선의 먹먹함이 두려우나 움츠리지는 않겠다. 나는 좀 더 뻔뻔해질 것이고 크고 굵은 목소리를 소리 내어 연습할 것이다.
  당선이 나를 단박에 아무것으로 만들어 주리라곤 믿지 않는다. 머리 쥐어뜯는 것도 순서가 있고, 분노를 토할 때도 나름의 음계가 있는 법이다. 주량이 늘고 주사가 느는 동안 수도 없이 더듬던 나를 모르랴. 당선 소식을 접한 지금, 깃털 하나를 주운 기분이다. 빠진 것인지 돋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단지 조금 조급해진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서 즐기던 나태함을 반납할 때가 왔다.
  부족한 글의 어깨를 두드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구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 굵고 알찬 돌멩이가 될 것 역시 약속드린다.
  모자라고 뾰족한 나를 항상 응원해주셨던 우리 가족, 우리 선생님, 우리 친구들. 단 한 분께 드리는 감사로 모두에게 전할 감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당신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1982년 경기 의정부 출생
  ● 서울여자대학교 서양학과 졸업
  ● 웹소설 작가


  <심사평>

  "간명하게 구성한 탄탄한 기본기 눈길

  본심에 올라온 11편 중 ‘터널, 왈라의 노래’ ‘평범한 결정’ ‘먼 아리랑’을 마지막까지 살펴보았다.

  후보작 중 제목에 ‘터널’이 들어간 소설이 두 작품, 아버지의 가족 폭력을 소재로 한 것이 세 작품이나 겹쳤다.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가 희화화되기도 하고 불쌍한 연민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하더니, 이번에는 가정 폭력의 정도를 넘어 살인자로, 사회의 쓰레기로, 죽어서는 장기를 척출한 속 빈 껍데기로 등장했다.

  ‘터널, 왈라의 노래’는 갇힌 터널과 아버지의 폭력이 합쳐져 극단까지 간 작품이다. 이야기의 수위와 사건의 강도가 높은 데 비해 느슨하고 덤덤한 표현력과 소설을 간명하게 구성한 탄탄한 기본기에 신뢰가 갔다.

  ‘평범한 결정’은 좀 오래된 연인의 동거생활에 쌓여가는 먼지와 권태와 미세한 불안과 동요의 물결을 청소기를 매개로 섬세하게 그렸다. 소소한 디테일을 쌓아 기억할 거리 없이 쌓여가는 동거생활의 세부를 맑게 드러낸 점을 주목했지만 소설적 결말을 도출하지 못하고 끝나 아쉬웠다.

  ‘먼 아리랑’은 표현과 구성에서 아직 서툴고 미숙한 부분이 눈에 띄었지만 오래된 소재를 새로운 세대의 캐릭터와 접목시켜 도식을 벗어나며 사회적 과제를 계승한 내용이어서 소중했다. 이 소설의 뛰어난 점은 최대한 힘을 뺀 채로 사회적 책임감을 안은 예술적 유희 정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설 쓰는 기량은 출중하지만 의미를 묻게 되는 작품과 아직 서툴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를 생산하려고 노력한 작품, 또 평범을 지향하는 요즘 소설의 경향성이 담긴 소소하고 가벼운 작품을 두고 두 심사위원이 논의한 끝에 소설적 완성도가 가장 높은 ‘터널, 왈라의 노래’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심사위원 : 김화영, 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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