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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납탄의 무게 / 오은숙

  안전수칙과 총기 사용법을 들은 후였다. 장전된 총을 들고 있던 나는 박의 옆 라인에 자리를 잡았다. 십 미터 사격이라 그런지 표적지와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청원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을 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계속 지켜보겠다는 듯 서 있는 그가 부담스러웠다.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왼손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납탄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사격이 끝나면 총기도 수거해야 한다며 물어보지도 않은 것에 대해 말했다. 알겠으니 자리 좀 비켜주세요,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가 스타디움식 의자가 수백 개 놓여 있는 관중석 뒤로 갔다. 그가 통로 쪽 의자에 앉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린 나는 들고 있던 총과 총알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총 길이는 생각보다 길었고 총알은 장난감 총에나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짝이 맞지 않는 볼트와 너트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상했다. 영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들이 들고 다니던 총이 아니었다.

“권총이 아닌 것 같아.”

  혼잣말이었는데 목소리가 컸는지 박이 듣고 말했다. 공기 권총이라 일반 권총보다 길어서 그럴 거라고. 권총의 종류가 많다는 것인지, 일반 권총과 공기 권총만 있다는 것인지 그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냥 쏴.”

  그녀가 툭하고 뱉은 후 옆으로 선 채 총을 들어올렸다. 그래, 그냥 쏘면 되지. 나는 총을 든 손 위로 시선을 옮겨 팔꿈치 안쪽을 보았다. 네 개의 붉고 작은 결절은 한 시간 전보다 더 부어올랐다. 엄마에게 물린 자국이 두드러기처럼 부어서 가라앉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매를 맞거나 꼬집혀도 피부 재생이 빨랐는데 나이가 들면 체질도 변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하면 되는 거야. 엄마를 자개농 안에 넣기도 했잖아. 그때도 그냥 하면 되는 거였어.’

  삼 년 전, 나는 장편 영화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가까스로 얻은 기회였으나 제작자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나리오가 수정되기를 원했다. 수없이 고친 시나리오에 트집을 잡으며 시간을 축내던 나이 어린 제작자의 마음을 나는 돌리지 못했다. 결국, 장면 하나 하나에 제 입김을 넣으려던 제작자에게 맞서고 말았다. 그는 설정만 좋고 아무 것도 없는 시나리오에 투자할 사람이 자기 말고 누가 있는 줄 아느냐고 했다. 너 말고도 그런 식으로 뜯어고칠 사람은 많아, 하고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뭐, 너? 이게 아주 이성을 잃었구나. 마흔 넘어 영화 한다고 징징대는 것이 불쌍해서 봐줬더니. 제작자는 나를 몰아붙였고 나도 지려 하지 않았다. 막말이 오갔고 찍기로 한 영화는 엎어졌다. 그즈음, 집 주인이 월세 보증금을 올리는 바람에 방을 빼야 했는데 더 싼 월세 방을 찾아 서울 변두리를 전전하다 영화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 정상에 오르기는커녕, 산 아래서 등산로 입구만 찾아 헤매다 힘이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이불에 생리혈을 묻혔을 때나 도시락 통을 꺼내 놓지 않은 다음날, 씻지 않은 도시락 통에 담긴 미끈거리던 밥알을 씹었던 때가. 그럴 때 엄마는 내가 두 아들보다 게으르고 못돼서 평생 고생할 거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바라는 대로 되었다고 생각하며 밤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어둠을 뚫고 달리던 기차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내 주제에 감독은 무슨, 하며 자조 섞인 웃음을 웃었다.

  박은 졸업 한 뒤 바로 방송국에 취직했다. 그녀를 통해 들은 바로 그녀 엄마는 무조건적으로 그녀를 지지했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졌으며 야무진 그녀는 원하는 것을 놓치거나 실패해 본 적이 없어 보였다. 그것은 언제나 그녀를 믿어주었던 그녀 엄마 덕분이리라. 누구라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에게 걸맞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아닌가. 나는 박을 알게 된 후로 줄곧 그런 생각을 했다. 동기들 중에서 제일 먼저 취업한 그녀가 첫 월급을 탄 날이었다.

“이차도 내가 살게.”

  한정식 집을 나오며 그녀가 말했다. 다섯 명의 밥값을 치른 후였다.

“마흔 전에 집 살 거라며, 무리하지 마.”

  누군가 말했고 친구 중 한 명이 회비를 걷자고 거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동기들 모임이라 서로의 사정을 뻔히 알아서 생각해주던 말이었다. 그녀는 첫 월급이라 괜찮다며 손사레를 쳤다.

“이런 식으로 살면 집은커녕 생활비도 힘들겠다.”

“방송국을 아무나 들어가나, 저도 기분 내고 싶겠지.”

“평생 가도 서울에 집 한 채 못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마흔 전에 집을 산다고.”

“그러니까, 철이 없는 거지.”

  저마다 한 마디씩 뱉은 후 잔을 들었다. 나는 노가리를 뜯으며 생각했다. 그녀라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그녀가 화장실로 간 뒤에 나누던 대화여서 그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노가리만 뜯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함께 잔을 들어올리자는 시늉을 했다.

  박은 내가 월세방에 살면서 영화 현장을 전전할 때 국내는 물론 세계의 정치, 경제 뉴스를 파더니 주식을 시작했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은 주변에 많았지만 투자를 하려고 그녀처럼 국내외 정치, 경제를 공부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손해를 몇 번 본 후, 당시 작은 아파트 한 채 정도 살 수 있는 돈을 벌었다. 아파트 값이 모아지자 과감히 주식에서 손을 뗐다. 동기들은 평생 운을 다 쓴 것 아니냐고 했지만 나는 그녀가 한 종목의 주식을 사고파는데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대가(代價)로 여겼다. 박을 보면서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영화에 쏟아붓겠다고 마음먹었다. 착실히 돈 모아서 시집가라던 엄마 말은 귓등으로 날려버렸다.

  박은 삼십 대 중반에 서울에 작은 아파트를 샀다.

“역시, 난 년이야.”

  집들이에 초대된 동기들은 말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에서 한 번도 눈을 돌린 적이 없었다. 야무진 그녀라면 제작자와 마찰을 빚기 전에 다른 대안을 찾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향으로 내려오던 날 용산역까지 배웅 나온 그녀가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선택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선택했으니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나도 그러길 바랐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뒤뚱거리며 걷는 엄마 손을 잡고 근처 공원에 다녀온 날이었다. 밤근무를 나가기 전 한 시간 정도 자려고 알람을 맞출 때 박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나는 항상 똑같지, 하고 답했다. 사이를 두고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짧게 들이마신 뒤 내뱉은 긴 숨이었다. 그녀는 아파트를 팔고 작은 빌라로 이사할 생각이라며 똑같은 방식으로 숨을 쉬었다. 왜, 하고 묻던 내 목소리가 그녀의 한숨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정적이 흐른 뒤 그녀가 대뜸 말했다. 땅으로 꺼지고 싶어.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어. 나는 또 왜 그러느냐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일이야 항상 있지. 그녀가 더는 묻지 말라는 듯 자신이 뱉은 말을 눙쳤다. 그러더니, 그녀가 아니면 추석이나 설날도 그렇지만 어버이날조차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엄마를 찾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재혼도 하지 않은 채 자신만 바라보고 산 엄마가 짐으로 느껴진다고. 너만 바라보고 너만 믿어주기 바빴던 엄만데, 왜.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말을 삼켰다. 몇 주 전, 그녀의 전화를 다시 받았을 때 그녀는 내가 일하는 요양 병원으로 엄마를 옮기고 싶다고 했다. 그녀 엄마는 오 년 전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요양원 생활을 하다가 몇 달 지나지 않아 서울 근교에 있는 요양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 엄마는 특이하게 정수기 물 대신 특정 상표의 생수를 마셨다. 요양원에서 오백 밀리미터 생수 한 병을 하루에 다 마시도록 했는데 요양 병원에서도 같은 상표의 물만 고집했다. 그 물을 마시면 기운이 난다고 했기에 그녀는 매번 생수를 사가지고 엄마를 만나러 가거나 생수를 주문해 택배로 보냈다. 생수와 간식만 해결되면 내가 일하는 병원에 엄마를 맡기고 일 년 정도 인도로 나가 있고 싶다고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아, 사직서를……. 그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버티라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면 다시 돌아와서 무얼 하겠냐며 다그쳤다.

“……, 생수와 간식을 부탁하면 안 될까. 카드 주고 갈게.”

  그녀 집에 얹혀살았던 적이 있던 내게 그녀가 처음으로 하는 부탁이었다. 더는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생채기를 내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알겠다고 말함으로써 그녀가 선택한 것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녀는 확답이라도 받고 싶은 듯 몇 번이나 생수를 떨어뜨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녀가 옆에 있으면 어깨라도 토닥여주고 싶었던 나는 걱정 말고 준비나 잘 하라고 했다. 이삿날을 알려주면 오프를 받아 올라가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세계는 명확해지고 삶은 어떤 식으로든 뚜렷해질 것이라고 믿었던 오래 전 생각은 틀렸다고. 주식을 해서 돈을 벌었어도 그때뿐이었고 영화 감독을 꿈꾸며 청춘을 보냈어도 남은 것은 없었다. 가족이라고는 늙은 엄마가 전부인 우리는 마흔 여섯의 나이에 흔들리는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두 시간 전, 박을 만나 그녀 엄마 입원 수속을 도왔다. 병원에 미리 말해둔 터라 수속은 금방 끝났지만 그녀는 엄마가 점심을 먹는 것까지 보고 가자고 했다.

“어서 올라가서 짐 싸야지. 먼 길 떠나는 사람이 왜 이렇게 굼떠.”

  그녀 엄마가 병실 안에서 서성이던 박을 부르더니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이거 갖고 어서 올라가. 빨리 가야, 빨리 오지.”

  박의 엄마는 박에게 흰 봉투를 건넸다. 그런 뒤 박을 밀어내던 낯빛이 차가웠다. 쌀쌀맞다기보다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는 듯 올찬 표정이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해내려고 잠시 떠나는 것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그러니 성공해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병원을 나온 후 박은 서너 시간 여유가 생겼다며 임실에 있는 종합 사격장에 가자고 했다. 한 시간 남짓한 거리였고 기본 열 발만 쏘고 오자고 해서 나도 그러자고 했다. 사격장으로 오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창밖 풍경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도심을 빠져 나온 지 한참이 지났을 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엄마를 자개농에 가뒀어.”

  운전을 하고 있던 박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나도 그래.”

  추임새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네 엄마는 우리 병원에 있잖아.”

  내 목소리가 퉁명스러운 것을 뒤늦게 알았다.

“아, 자개는 아니구나.”

  박은 여전히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말을 하고 나서야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할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랬다. 그녀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죄책감이라도 떨쳐내려고 그녀에게 엄마를 자개농에 가뒀다고 말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였다. 어쩌면 그녀도 그녀만의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내게는 말하지 못한 그녀만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더 있는 것 같았다.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는 시골 길을 지나 산 중턱으로 오르자 사격장 건물이 보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숨이 턱 막혔다. 자개농 안에 있는 엄마를 생각하니 급하게 나오면서도 안방에 있는 에어컨을 켜고 나온 것은 다행이었다. 입구를 달리한 건물 세 동 앞에서 박이 주춤거렸다. 어느 쪽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반 년 전까지 그녀의 연인이었던 남자는 은퇴한 사격 선수였다. 나는 그녀가 그와 함께 이곳에 왔던 기억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와 함께 사격장을 찾았던 그녀가 나를 만나고 갔었는데 그때 그녀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었다.

“저 바윗돌을 지났는데.”

  박은 손가락으로 중앙에 세워져 있는 바윗돌을 가리켰다. 바윗돌에는 ‘사격인의 요람’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시합을 앞둔 선수들이 연습을 하거나 대회를 치르려고 많이 찾는다고 그녀가 말했다. 장난감 총조차 잡아본 적 없었던 나는 그렇게 그녀를 따라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다.

  탁, 소리가 났다. 총을 쏜 것은 박이었다. 공중으로 날아간 탄알이 정확하게 표적지 중앙을 뚫었으리라. 기대감을 안고 테이블 위에 놓인 그녀의 모니터를 보았다. 6점이었다. 사격을 해본 사람치고는 좋은 점수가 아니었다. 첫발이라 긴장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자세를 바로하고 표적지가 있는 곳으로 총을 겨눴다. 총 머리 부분에 패인 홈은 가늠자, 총구 쪽에 볼록 솟은 곳은 가늠쇠였다. 달리 말해, 가늠자와 가늠쇠는 음과 양이었다. 0.5밀리미터가 될까 싶은 음과 양이 평행을 이룰 때 방아쇠를 당기라고 청원 경찰은 말했다. 수평을 이룬 음과 양은 미세한 떨림에도 쉽게 틀어졌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치고 최대한 손 떨림을 없앴다. 십 미터 밖 검은 동그라미를 향해 총구를 맞추고 방아쇠를 당겼다. 탁, 소리가 난 후 내 앞에 있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여러 개의 검은 동그라미 중 하나에 구멍이 뚫렸다. 9점이었다.

“처음인데 잘 하네.”

  박의 칭찬을 듣고도 나는 무덤덤했다. 처음인데 잘 하네. 오래 전에 그 말을 들었다면 엄마를 자개농에 가두지 않았을까.

  열다섯 살 때였다. 하루는 엄마가 고등어 두 마리를 던져주며 말했다.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찌개를 끓여 놓으라고. 나는 화들짝 놀랐다. 명태나 고등어로 찌개를 끓인 적은 있었지만 엄마가 깨끗하게 손질한 것에 칼집을 넣어 끓인 것이 전부였다. 엄마는 배를 가르고 핏물을 뺀 뒤 토막 쳐서 김치와 물을 넣으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바쁘면 고등어 손질을 내게 맡기고 나가버렸을까.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용기를 냈다. 도톰하고 하얀 고등어 배 위에 칼을 댔다. 솜씨가 없어서인지 칼이 무뎌서인지 쓱싹대길 반복했다. 피가 섞인 내장이 칼끝을 비집고 나올 때 엄마가 돌아왔다. 처음인데, 잘하네. 나는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배 갈라서 핏물 씻어내고 토막 치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엄마가 뱉은 말은 송곳이 되어 내 가슴을 후볐다. 엄마는 딸인 내가 그 정도는 도와야 한다며 악다구니를 더 퍼붓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날 저녁 엄마가 자개농을 배달시켰다. 가구점 직원이 자개농을 안방에 들여놓을 때 나는 끓고 있던 고등어찌개 간을 맞추고 있었다. 석자 반 되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비싸요. 들뜬 목소리가 안방 너머에서 들렸다. 엄마가 가구점 직원에게 하는 말이었다. 엄마는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며 소리 내어 웃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농을 왜, 어울리지 않게 우리집에 놓아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고등어찌개를 끓여놓으라고 해놓고 자개농을 사러 갔다는 사실이 얄궂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자개농에 내가 밀린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나는 곱씹었다. 처음인데 잘 한다는 칭찬 한마디 없이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해야 한다던 엄마의 악다구니를.

  탄알을 넣고 방아쇠 왼쪽으로 길쭉하게 휘어진 쇠막대기를 앞으로 꺾었다. 딸각 소리가 났다. 손가락이 방아쇠를 건드리면 탄알이 나갈 수도 있다고 했기에 총을 든 손을 조심스럽게 쭉 폈다. 총을 쏘는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했지만 매번 다른 느낌이었다. 숙련자들도 그렇다고 박은 말했다. 매번 같은 일상이지만 정확히는 다른 날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처음에 9점을 쏜 것과 다르게 내 점수는 내리 평균점을 밑돌았다. 박은 6점을 쏜 후로 갈수록 점수가 올라 방금 전에는 10점 만점을 받았다. 우리는 탄알 두 발을 각각 남겨 놓은 상태였다. 남은 두 발 중 한 발이라도 표적지 중앙에 구멍을 뚫었으면 하고 바랐다. 박을 따라 하느라 한 손으로 총을 쏜 탓에 아까부터 심하게 손이 떨렸다. 가늠자와 가늠쇠는 평행을 이루지 못하고 들쑥날쑥 요동을 쳤다. 테이블에 총을 내려놓고 오른 손을 탈탈 털었다. 왼손으로 오른쪽 삼각근을 주물렀다. 평소에 쓰지 않았던 근육은 알이 배긴 듯 뭉쳐 있었다.

“총 무게가 1.5킬로그램이래.”

  박이 납탄을 집으며 말했다. 무겁다는 것인지 가볍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총을 들고 있는 동안 내 손은 심하게 떨렸지만 박은 알지 못했다. 무게가 1.5킬로그램이라는 말만 하고 자신의 총을 들어올렸다. 나도 그녀같이 한 손으로 총을 들며 웅얼거렸다. 너는 무겁지 않은 거구나. 탁, 소리가 났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그녀의 모니터에 10이라는 숫자가 더해졌다. 처음에 나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든 후 방아쇠를 당겼다. 자세에서 초보자 티가 나는 것 같아 박을 따라 옆으로 서서 한 손으로 총을 쏜 것은 그 다음부터였다. 별 것도 아닌 것을 따라 하느라 애먹은 것은 아닌가. 멋쩍은 마음에 총을 들고 있던 손으로 화장기 없는 볼을 문질렀다. 볼에 닿은 손가락이 이상하게 꿉꿉했다. 엄마의 굽은 등허리 감촉이 손가락 끝에 엉겨 있는 듯했다.

  어제 저녁, 나는 욕조 안에 앉아 있던 엄마 등을 밀었다. 일하면서 살림을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엄마를 씻기지 않아 밀어도 밀어도 때가 나왔다. 그럴수록 나는 더 세게 밀었다. 너무 세게 밀어 붉게 변한 살을 보자 아플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는 오히려 시원하다고 했다. 영화 한 편 볼 여유 없이 집과 병원을 오가며 엄마를 돌봤어도 엄마 살에서 떨어져 나온 때가 몽글몽글 손에 잡혔다. 제 엄마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내가 박의 엄마에게 간식과 생수를 사다주며 얼굴을 비추겠다고 했다. 허세였나, 오지랖이었나. 쓴웃음이 나왔다. 어딘가로 떠나고픈 마음은 없었지만 인도로 떠나는 박이 부러워졌다.

  엄마의 아픈 손과 아픈 손이 닿지 않는 몸에서 떨어져 나온 때가 욕조 안을 둥둥 떠다녔다. 무엇인가 되겠다며 버둥거렸던 지난 시간이 스쳤다. 고생만 하다가 떨어져 나왔구나, 둥둥 떠 있는 때 같아. 불쑥 떠오른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미련스러웠다. 머리를 가로 저었다. 엄마 등을 위아래로 밀었다. 손가락에 마치는 등뼈 열두 개가 빨래판 물결인 양 울퉁불퉁했다. 더욱 세게 밀었다. 그 옛날 엄마가 해주던 목물처럼 까슬하고 아프게.

  때를 미는 일이 힘에 부쳤다. 허리를 펴고 이마에 흐르던 땀을 훔쳤다. 안 아파? 엄마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응, 시원해. 엄마는 둥둥 떠 있는 때를 손으로 퍼서 욕조 밖으로 걷어냈다. 감각이 무뎌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시원하다는 말이지. 나는 살갗이 붉어진 엄마 등을 보았다. 응. 들려오던 목소리가 태연했다. 왠지 억울했다. 응, 이라는 대답이 고등어 배를 갈라 찌개를 끓여 놓으라고 하고서는 자개농을 사왔던 날 내게 했던 말로 들렸다.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아침이 되어 상을 일찍 물렀다. 박을 만나려면 삼십 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아빠는 매 끼니 뒤에 달달한 믹스 커피를 두 잔 타서 엄마와 함께 마셨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작년 이후로 그 일은 내 몫이 되었다. 나는 커피 두 잔이 담겨 있는 쟁반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식초 탄 물에 마른 수건을 적시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푸르딩딩한 구름과 희뿌연 달 아래로 두 마리 학이 부리를 맞대고 서 있는 자개농 문을 닦았다. 아무리 닦아도 코팅 된 자개는 제 빛을 내지 않았지만 엄마는 수시로 걸레질을 했다. 오래된 기억이라고 해서 다 지워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지워진 듯 사라진 듯 기억에도 없다가 어느 날 불쑥 드러났다. 엄마 등을 밀었던 전날과 마찬가지로 자개농을 들여놓던 날이 떠올랐다.

“그러지 말고 그 속으로 들어가 살지 그래.”

  나는 깨끗해졌지, 하고 묻던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그게 무슨 말본새냐며 한 마디 할 법도 했지만 엄마는 조용했다. 말없이 자개농을 닦았다. 삼십 년이 훨씬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자개농에 밀렸다. 나를 돌아보지 않고 자개농만 닦고 있던 엄마를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 작은 방으로 가서 책상 밑에 있던 박스를 뒤적였다. 장편 영화를 준비할 때 썼던 소품이 들어 있는 박스였다. 박스 속에서 노란색 끈 하나를 꺼냈다. 일 미터 가량 되는 긴 끈을 양쪽으로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첫 출근하면서 한 번 신은 싸구려 인조 가죽 구두를 일 년이 지나 신발장에서 꺼냈을 때 삭아서 문드러진 걸 보고 황당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물건에도 기운이라는 것이 있어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빨리 헤진다며 제 물건 하나 간수하지 못한다고 나를 나무랐었다. 나는 긴 끈을 대충 뭉쳐 안방으로 갔다. 자개농 앞에 있던 엄마가 방으로 들어선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아!”

  엄마가 외마디를 질렀다. 한쪽 문이 열려 있는 자개농 바닥에 앉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자개농 속으로 들어가라고!”

  나는 두 다리를 방바닥으로 떨어뜨린 채 버둥거리던 엄마의 다리를 들었다. 그러자 엄마가 마구잡이로 발길질을 했다. 주먹으로 나를 때렸다. 아프지 않았다. 내 겨드랑이 안쪽 살을 꼬집어 비틀었다. 순간, 섬뜩한 기운이 들었다. 얼얼한 통증이 머리까지 올라왔다.

‘엄마 살은 삶은 호박처럼 물컹거려도 자개농 문짝처럼 단단해. 봐봐. 자개농에 부딪혀도 아무렇지 않지. 이봐, 크기만 했지 아귀힘조차 없는 내 손을. 나는 지금 엄마를 아프게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자개농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또 꼬집으려고 하지. 몇 개 밖에 없는 이로 어딜 물려고 하는 거야. 그래, 물고 싶으면 물어. 여길 봐. 엄마 이가 내 팔에 깊게 박혔다 사라졌어. 난 피하지 않았다고. 이봐, 깊게 박혔던 이가 자국을 남겼지만 피가 나거나 살점이 떨어져 나가진 않았어. 누군가 울음소리를 듣고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엄마 옆엔 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옷장 안으로 들어가세요.’

  엄마를 가까스로 자개농 안에 넣고 자개농 손잡이 양쪽에 끈을 묶어 야무진 매듭을 지었다. 일인용 침대와 탁자, 의자를 자개농 앞에 일렬로 늘어뜨렸다. 매듭이 풀려도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도록 자개농 문 밖에 있던 틈을 없앴다.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부터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내 행동은 치밀했다. 울음소리와 함께 쿵, 쿵, 쿵 소리가 들렸다. 나는 쉬지 않고 주먹으로 옷장 문을 두드리던 엄마를 뒤로 하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탁, 소리가 난 뒤였다. 처음 9점을 쏘았던 자세로 방아쇠를 당긴 뒤라서 어떤 점수가 나올지 궁금했다. 모니터를 확인했다. 표적지에 그려진 원 안에도 밖에도 총알이 뚫고 나간 자리가 없었다. 총알은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어안이 벙벙했다. 안전사고를 우려해 자리를 뜨지 않는다고 했던 청원 경찰이 생각났다. 스타디움식 의자에 앉아 있던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할까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표적지를 다시 보았다. 아홉 발을 쏘았으나 탄알 구멍은 여덟 개뿐이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탄알 흔적으로 방금 전, 나는 총을 쏘았지만 총을 쏘지 않은 듯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오늘 아침을 거슬러 어제 저녁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았다. 총을 테이블에 내려놓다가 팔꿈치 안쪽을 보았다. 엄마에게 물려 부어올랐던 곳이 가라앉았다. 박이 볼까 싶어 가리기도 했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붉은 결절이 사라졌다.

  박은 이번에도 만점이었다.

“왜 그렇게 잘 쏴? 나도 알려줘.”

  탄알 구멍이 가운데에 몰려 있는 박의 표적지를 보며 말했다. 탄알 한 개만 남겨 놓은 상태라 잘하고 싶었다. 9점은 바라지도 않았다. 지금 상황이라면 5점 이상만 나와도 족했다. 옆으로 쏴, 자세로 서 있던 그녀가 들고 있던 총을 내렸다.

“으응, 죽이고 싶은 걸 떠올렸어. 왜, 있잖아. 머릿속에서 맴맴거려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게 되는 것.”

  죽이고 싶은 게 그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무엇을 죽이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병원에 있는 엄마를 죽이고 싶은 것인지, 아파트를 팔고 빌라로 이사하게 만든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지.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의지가 되어주는 친구지만 박과 나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애써 캐묻지 못하는 자기만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남은 탄알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엄지와 검지 사이를 오가는 납탄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있는 작은 것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1.5킬로그램의 공기 권총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무게였다. 실제보다 너무 커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무게감이었다. 오래 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납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머리를 굴리자 아슴푸레 돋아나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단편 영화를 찍고 있었으니 십 년은 족히 넘었다.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집에 내려왔다 올라가면 왕복 차비를 써야 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꼭 고향집을 찾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돈도 없으면서 왜 자꾸 내려오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늦은 나이에 향수병에라도 걸린 듯 그렇게라도 집에 다녀와야 한 달을 견딜 수 있었다. 하루는 집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뇌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뇌경색이 원인이라며 퇴원 전에 한 번 다녀가라고 했다. 나는 그 달에 다녀왔으니 다음 달에 가겠다고 했다. 다음 달 초가 되어 고향에 내려갔다. 엄마가 퇴원하고 한참이 지난 후였다. 촬영과 아르바이트 일정이 빠듯해서 내려온 지 만 하루가 안 되어 일찍 집을 나섰다. 새벽 기차를 탈 것이라고 말해둔 터라 간다는 말도 않고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서리가 내린 새벽은 어두웠다. 찬 기운이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녹슨 대문을 밀고 나오는데 대문 밖에 엄마가 서 있었다. 자다 일어나 바로 나왔는지 위아래 내복만 걸친 채였다. 잠 안자고 왜 나와 있어. 나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너 가는 것 보려고 나왔지. 키 작은 엄마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알아서 갈 건데 나왔느냐며 추운데 어서 들어가라고 엄마를 재촉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팬티 고무줄 끈이 보이는 내복 안에 손을 넣으며 내 쪽으로 바투 다가섰다. 흰 머리카락이 내 턱을 쓸어서 엄마 키가 이렇게 작았나, 생각할 때 엄마가 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편마비가 생겨 어정쩡하게 구부러진 손으로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꼬깃꼬깃하게 접힌 지폐가 손 안에서 놀고 있다는 것을 감으로 알았다. 됐어, 괜찮아. 그렇게 말한 뒤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해야 한다며,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에게 지폐를 돌려주려 했으나 엄마는 차비라도 하라며 받지 않았다. 고생이 많지, 우리 딸. 이전까지 들어보지 못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가슴에 박혔다. 무겁고 무거운. 한 없이 무거운 무언가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아니라 엄마가 먼저 내게 등을 보였으면, 하고 바랐다. 엄마는 내가 가는 것을 보겠다며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대문 안으로 밀고 등을 돌렸다.

“힘들면 내려와.”

  등 뒤에서 들리는 낮고 어눌한 목소리가 귓바퀴를 파고들었다. 괜스레 서러웠다. 쓸쓸한 여운으로 남은 목소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앞만 보고 걸었다. 깜깜한 새벽 도로를 걸으며 손 안에 있는 꼬깃꼬깃 접힌 지폐를 느꼈다. 몇 장일까. 걸음을 멈췄다. 한 번, 한 번, 또 한 번. 몇 번을 더해 접은 곳을 펼쳤다. 쫙 펴진 지폐는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그 돈을 평생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월급날을 앞두고 돈이 떨어졌을 때 집에 내려갈 일이 생겼다. 나는 그 돈으로 칠 천 얼마 하는 무궁화 표를 샀다. 이후로 지금껏 그날 일에 대해서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마지막 탄알을 넣은 후 총을 들었다. 1.5킬로그램짜리 총은 버둥거리던 엄마를 자개농 안에 넣을 때처럼 무거웠다. 탄알 하나의 무게와 오래전 종이 지폐 무게까지 덤으로 올려져 있어 그럴지도 몰랐다. 떨리는 손을 한 손으로 받쳤다. 맴맴거려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게 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이 내게는 없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떨어.”

  그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진작 마지막 탄알까지 10점을 맞췄고 내가 총을 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딴 생각하지 마. 박이 말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본 것만 권총은 아니라며 그냥 쏘든지 아니면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녀 말 대로면 나는 여태껏 권총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 내가 알고 있는 것만 권총은 아니지. 마음을 가다듬었다. 가늠자와 가늠쇠가 가까스로 수평을 이루자 방아쇠를 당겼다.


  <당선소감>

   "내가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은 진실을 마주하고픈 호기심"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당선 소감을 쓰는 일이 이렇게 힘들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시인의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소감을 대신할까. 아니면 BTS의 노래를 검색해서 그것으로 채울까. 그것도 아니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고마운 이들에게 감사만을 나열하고 끝낼까. 생각만 오갈 뿐 적당한 것이 없다. 귀한 지면을 낭비하는 꼴이다. 어떻게든 내 안에 있는 것을 써야 한다. 소설이나 다를 게 없다. 그렇게 끙끙대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순간이지만 오래도록 살아 있는 느낌. 느낌 안에 숨어 있는 감정. 이런 것이 내게는 소설적 진실이다. 진실을 마주하고픈 호기심. 호기심이라고 해두자. 그것은 내가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이다. 소설적 진실에 대한 천착. 천착으로 끝나지 않는 소통. 현재로선 그것이 소설에 대한 나의 비전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소감문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해 난감하다. 이럴 땐 기분 전환하듯 문단이라도 바꿔야 한다.

  어둑한 밤이다. 지나온 삶이 내게 손을 흔들고 있다. 잘 가라고. 다시는 비틀거리지 말고 기웃거리지 말고 어떤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라고. 글을 쓸 때마다 찾아오는 절망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말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쓰라고. 미래의 삶 또한 같은 말을 하며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좋다. 기꺼이 가겠다. 나는 애써 두려움을 떨쳐낸다.

  어머니, 아버지와 삼 형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가족으로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당신들의 안녕을 빕니다. 소설을 쓰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신 윤후명 선생님과 동서문학 멘토링의 연으로 만나게 된 이태형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다연 선생님과 현숙, 현진 언니 당신들이 주신 사랑 고마워요. 항상 기억 할게요. 효진, 희단, 서진과 등단을 제 일처럼 기뻐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끝으로, 세상에 눈을 뜨게 한 K와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 오은숙 작가는 현재 요양 병원 근무하고 있으며 서울을 오가며 창작 수업을 들었다. 
  ● 앞으로도 일하며 글쓰는 단순한 삶이 이어질 것이다.


  <심사평>

  "고달픈 삶, 폐쇄 모티브로 그린 독특한 구성 돋보여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7편이었다.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작품은 기성 작가들의 작품과 다른, 새로운 소재와 구성으로 주제를 심화해야 한다. 응모작품 대부분 이러한 요구를 잘 만족시키며 일정 수준에 이르렀으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조금씩 흠결을 지니고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서사를 이끄는 구성은 완벽한데 주제를 심화시키지 못했거나 결말에서 집중력이 흩어지는 작품이 의외로 많았다. 독자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치밀하고 완벽한 서사구조가 완성되어야 훌륭한 소설이 된다.

  그런 가운데 심사위원의 시선을 끈 작품은 ‘납탄의 무게’ ‘불편한 편의점’ ‘10cm’다. 심사위원들이 다시 이 세 작품을 정독한 결과 ‘불편한 편의점’은 오늘날 갈등구조를 일으키는 사회현상을 ‘편의점’이란 공간으로 이동시켜 아르바이트 청년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으나 결말 처리가 미숙한 점이 아쉬웠고, ‘10cm’는 의료현장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서사구조가 시선을 끌었으나 주제를 심화시키지 못한 점이 흠결로 남았다. ‘납탄의 무게’는 처음부터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작품이다. 사격장을 배경으로 불편한 가족 관계와 고달픈 삶을 폐쇄 모티브로 그린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다. ‘나’와 친구 ‘박’을 대칭 관계에 두고 엄마를 공통분모로 등장시켜 갈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이를 10m 사대(射臺)를 배경으로 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표적지를 고달픈 삶의 현장과 오버랩(overlap)한 구성이 매우 신선하다. 친구 ‘박’과 달리 ‘나’에게만 무거운 ‘납탄’은 바로 그녀의 삶의 무게다. 서사를 전개하는 소설 미학 또한 나무랄 데 없다. 특히 마지막 한 발을 쏜 뒤, 점수 확인을 생략한 채 작품을 마무리한 결말 또한 산뜻한 여운을 남긴다. 작가로서 독립하기에 충분한 요건을 잘 갖춘 작품이다.

  당선한 분에게 축하를, 응모한 모든 분께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김호운, 우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