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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유향나무, 탐라에 서다 / 이선호

 

추레한 낯꽃들이 작은 배로 몰려든다
와글대는 무리, 무리, 놉으로 팔려가고
댓바람 유향乳香을 싣고 품 넓은 옷 추스른다

서귀포항 찰진 목새 다목다리 헹궈낼 때
곱지 않은 눈길 너머 타관 땅, 타향 밥에
캐러밴 젖은 눈자위 무비자로 울고 있다

빗기雨期에 젖은 하늘 소름 돋는 겨울 냉기
포장박스 한뎃잠에 뼈마디 죄 욱신거리고
허옇게 버짐 핀 얼굴 몸 비비며 버팅긴다

내전으로 움츠러든 갈맷빛 잎새 하나
이에 저에 떠밀려서, 탐라까지 떠밀려서
꽃망울 만개할 봄날 오돌오돌 기다린다


  <당선소감>

   "이제 출발선, 힘찬 항해 시작하겠다"



  일요일은 종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느라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집에 와서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낯선 번호가 있었다. 지역번호 064. 누굴까? 순간 머리가 멍했다. 그날 저녁 8시쯤 한라일보 담당자와 통화가 되었고 응모작에 대해 몇가지를 물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긴 시간을 보낸 후, 이튿날 비로소 당선 소식을 들었다.

  먼저 아내에게 알린 뒤 세 자녀에게도 차례로 소식을 전했다. 모두들 기뻐했다. 완성은 아니지만 정식으로 시작됨에 감사하다. 지난 수많은 날들, 시조와 함께한 시간들이 뇌리에 스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나와 함께하고 나를 위로한 보이지 않는 친구, 시조가 고맙다. 시조란 배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거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거다.

  매년 말, 원고를 부치러 우체국에 갈 때마다 설레이곤 했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언젠가 당선통보가 나에게도 온다'는 말을 수 없이 되뇌었다. 아득하게 여겨졌던 문단의 세계, 그 말석에 섰다. 내 안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이야기들을 시조라는 정형의 세계에 녹여내겠다.

  걸음마 밖에 할 줄 몰랐던 저를 걷게 해 주신 윤 교수님, 고비 때마다 격려와 질책을 아끼지 않았던 목요모임 학형들, 모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어설프지만 힘찬 항해를 시작하겠습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한라일보에 감사를 드립니다.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라는 걸 잘 압니다. 감사합니다.

  ● 1975년 충남 보령 출생 
  ● 한국성서대학교 졸업(신학전공, 사회복지학 석사)
  ● 제35회 샘터상 수상, 중앙시조백일장 2회 입선
  ● 현 아름요양보호사 교육원 전임강사


  <심사평>

  "난민과 유향나무 통해 시대 아픔 공감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서 올해로 다섯 번째 시인을 내보낸다. 예심을 통과한 11명의 작품 모두를 숙독했다. 오랜 논의 끝에 4편을 가려냈다.

  '호두 그리고 매미'(정경화)는 명징한 이미지와 투명한 시어가 절묘하게 결합된 가편이다. 호두와 말매미, 산돌과 호두 씨앗이 잘 엮였고, "말매미 더늠 대목", "푸른 이마 언저리쯤 두레박을 퍼 올리고"가 주는 울림이 컸다. 게다가 여름 한낮 말매미가 "공명실 한껏 조였다 단숨에 풀어낼 때", "온 우주가 익는 소리"에 이르러서 잠시 숨을 멈추게 했다.

  '운주사의 달'(이봉렬)에서는 시상을 자연스레 끌어가는 능력이 돋보였다. 세 번째 수 종장에 이르러 "폐경기 겨울 산속에/ 확!/ 불 지른다/ 진달래가"에서 시선이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시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시편이 낯익다는 뜻이다.

  '일출'(김종순)은 새해 새 아침을 여는 작품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작품은 일출의 장면을 노트북 화면과 대비 시켜 그 효과를 세 번째 수 종장 "눈부신 절창 한 구절/ 뿌리째 뽑아 올린다"로 극대화하지만, 드문드문 의미망에 따른 음보가 다소 불안하고 긴장감이 덜했다.

  '유향나무, 탐라에 서다'(이선호)는 '지금·여기'에 기반을 둔 사회상을 유향나무를 통해 잘 그려냈다. 유향나무는 아라비아반도 예멘이 주산지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외면하지 않았다. 언뜻 거친 표현도 눈에 띄지만, 그게 작품의 현장성을 높이는 효과로 읽히기도 했다. 유향나무의 밑동이나 난민의 다목다리는 차가운 댑바람에 시리지 않을까. 무비자인 난민과 유향나무를 통해 디아스포라의 아픔에 공감하고 평화를 희구하는 시인의 마음을 우리는 높이 샀다.

  '시인은 모름지기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하며 이선호의 '유향나무, 탐라에 서다'에 힘껏 방점을 찍는다. 시조는 형식이라는 특수성과 시라는 보편성을 다 아울러야 한다. 건필을 기원한다.

심사위원 : 고성기, 홍성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