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비누, 마리안느와 마가렛 / 여운

스치는 손길에도 부끄럼을 타는 비누
낯선 뱃길 따라 외따로 건너가서
여윈 섬 가슴에 묻고
마흔 해를 씻었다

병든 사슴 곁에 사슴이 와서 앉듯
파도가 일 적마다 파도를 움켜쥐고
비누는 제 몸을 풀어
흰 포말을 재웠다

마디 굵은 사투리에 향기는 시들어도
맨 처음 온 그대로 닳지도 않은 비누
거품은 섬을 안았다
옹이진 발 감춘다


  <당선소감>

   "-"



  추위를 타는 자에게 겨울은 길고 더위를 타는 자에게 여름은 길다. 삶의 궤도에서도 길게 느끼는 힘든 계절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길더라도 계절은 바뀌고 활기를 되찾을 때가 오기 마련이다. 빛과 어둠의 순환을 보며 느린 걸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지내다 보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따뜻한 봄과 선선한 가을은 오리라.

  특별한 형식 없이 제멋대로 자유시를 쓰다가 만난 시조는 수식어가 많지 않은 절제된 언어의 미와 일정한 구조로 유지되는 소리의 질서와 운율이 가득한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한민족의 집단 무의식과 숨결이 깃든 서정적 장르였다. 시조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졌다. 뒤늦게 접했지만 서두르지 않고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비상을 꿈꾸던 초심은 우선 백일장으로 눈을 돌렸다. 백일장은 해마다 봄이나 가을에 전국적으로 열렸다. 그러나 백일장 장원으로 뽑힌다고 하더라도 문단에서는 대부분 그것을 등단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등단은 원칙적으로 신문이나 계간지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언제까지나 땅바닥에 앉아 허리를 구부린 채 한 시간 혹은 반 시간 안에 주어진 시제에 따라 즉흥적인 시만 쓸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때 익힌 잘못된 버릇은 계속해서 따라다녀 떨쳐버리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좀 더 깊이 있고 세련된 습작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제대로 된 일간 신문 지면을 통해 문단에 데뷔할 결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랜 날을 그렇게 붙잡고 살았는지 계산도 하기 어렵다. 아마 십 년도 넘게 흘러간 것 같다. 물론 중간에 포기했던 시절이 있었다. 매년 늦가을과 겨울 사이 뛰놀던 설렘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열정은 식어버렸다.

  찬바람이 스며들어도 끝까지 글줄을 놓지 않고 기다린 덕분인지 갑자기 당선을 축하하는 전화를 받아 떨리던 가슴은 더 떨리고 있다. 모든 이웃이 함께 나누는 정감 어린 시적 소통으로 봄이 올 때까지 한파를 무사히 견딜 수 있기를 바란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같은 손길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훈훈하다.

  ● 본명 나동광
  ●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입선
  ● 구제활동가


  <심사평>

  "생을 건 역주를 기대한다

  문제는 새로움이다. 늘 처음이면서 또 다른 처음을 꿈꾸는 시! 요컨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느냐다. 낯선 비유, 삐딱한 시각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시조는 선험의 형식을 따르는 이 땅 유일의 정형시다. 그렇다고 그 형식에 갇히거나 끌려 다녀서는 낭패다. 형식을 부리되, 작위나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움의 미학에 닿아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전제로 응모작들을 읽어갔다. 전국을 망라한 응모자의 지역 분포는 예년과 다를 바 없었으나, 가파른 인구 고령화 탓인지 노년층의 응모 비율이 부쩍 높아졌다. 응모작 전반의 수준은 상향 평준화 추세가 뚜렷했다. 그러면서 사회현실에 직핍한 서정, 자연과 인간의 결속, 역사의식의 표출 같은 퍽 다양한 미학의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정독과 숙고의 과정에서 '팔분음표 일어선다'·'꽃총포 쏘아 올린다'·'독거 혹은 풍장'·'슴베를 뽑다'·'폐철선을 들다'·'장사리 서신'·'모란이 오는 저녁' 등이 눈길을 끌었다. '도예'·'거짓말'은 20대의 감각이 신선했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메가시티 동굴'·'덧니, 날아가다'·'욱', 그리고 '비누, 마리안느와 마가렛'. 앞뒤를 가리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차피 언어의 건축인 시의 완성도 측면에서 '비누,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당선작으로 낙점했다.

  당선작은 얼개와 짜임이 견고한 데다 맞춤한 비유와 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누"에 비유된 두 수녀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들이 물 설고 낯선 땅, 그것도 편견과 비탄의 섬 소록도에 온 까닭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스치는 손길에도 부끄럼을 타는" 20대에 와서, "마흔 해"가 넘도록 "제 몸을 풀어"낸 것인가? 그 답은 이 작품의 행간에 오롯하다. "낯선 뱃길" 끝의 "여윈 섬"을 안고, 그 섬의 "병든 사슴 곁에"서 가없는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산 것이다. "파도가 일 적마다 파도를 움켜쥐고" "마디 굵은 사투리에" 끊임없이 사랑의 "향기"를 베푼 것이다. "맨 처음 온 그대로 닳지도 않은 비누"가 한결 같은 그들의 정신을 표상한다. 실존 인물의 삶을 좇는 따뜻한 긍정의 시각을 높이 산다. 영예의 당선을 축하하며, 생을 건 역주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 박기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