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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브라토

김석이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의 발밑으로

수없이 저어대는 물갈퀴의 움직임

점선이 모여서 긋는 밑줄이 떠받치는 힘

차선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들

꿈틀거리는 지면을 가속으로 쫙쫙 펴는

평평한 길 아래 있는 주름들의 안간힘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의 손가락들

소리의 맹점 찾아 이리저리 누를 때

닫혔던 물꼬를 틀며 길을 여는 강물소리

부딪쳐야 파문으로 밀려오는 그림자

짓눌려야 짓물러야 풀어지는 소리 가닥

발끝에 온힘을 모아 중심을 잡고 있다

 

<당선소감>


신춘! 봄이 한걸음씩 다가오네요

 

지나온 날들이 발 밑에 엎드려 길이 되네요.

낙엽처럼 떨어져 나간 하루하루가 추운 등을 감싸줍니다. 낙엽은 떨어진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었네요. 겨울의 밑둥치에서 자라고 있는 초록의 꿈을 바람이 흔들어 깨웁니다. 신춘!

봄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었네요.

바위에 짓눌려 있던 시조의 씨앗을 흔들어 깨워주신 현대 문화센터 시창작반 권애숙 선생님께 큰절 올립니다. 바위 뒤에 숨어 주춤거리는 저를 앞으로 나오게 해 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비브라토로 시조의 싹을 틔워 짓눌렀던 바위까지 감싸 안는 숲을 이루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한 걸음 뒤에서 무심한 척,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께도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눈빛으로 끝까지 엄마를 응원해 준 영민아, 예슬아 꿈은 역시 이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 해주고 싶구나. 오늘도 열심히 창작의 길을 열어가는 문우들에게 문운이 깃드시길 바라면서, 2012년 새해에는 모두에게 희망의 물결이 밀물처럼 밀려들기를 기원 드립니다.

김석이(본명 김인숙) 1959년 부산 출생 동의공업대학 식품공업과, 방송대 초등교육과 졸업

동주대 음악과 졸업 부산문예창작아카데미, 영남여성문학회 회원

 

<심사평>


주제의 깊이·시적 긴장 모두 제대로 구현

 

화려한 등단의 길인 신춘문예에 사설시조가 당선된 적은 한 번 있다. 그러나 단시조가 당선된 예는 없다. 특기할 점은 응모작들 중에 단시조 편수가 의외로 적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조의 본령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도 되고, 역량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연시조여야 한다는 생각에 붙들린 측면도 있다. 단시조 한 편에 못 담을 소재는 없다. 빼어난 단시조가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나올 때 시조는 새로운 물꼬를 트는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최종심에서 거론된 이로는 심순정, 이한, 김석이 제씨였다. 심순정 씨의 '꽃의 부호'는 감각과 새로움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메시지의 전달이 명쾌하지 못하였다. 내공은 쌓였는데 비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실패하고 있는 점을 면밀히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이한 씨의 '운림산방에서' 외 네 편의 작품들은 주목할 만하였다. 모두 고른 목소리를 유지했고 참신한 감각과 주제 구현 능력이 돋보였다. 그런 까닭에 오랫동안 고심하게 하였다. 그러나 개성적이고 새롭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 강렬한 에스프리에 비해 작품 곳곳에서 음보의 파탄을 보인 것이 아쉬웠다. 시조는 엄연한 정형시이므로 기율 곧 정형률을 잘 숙지하고 형식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하여 김석이 씨의 '비브라토'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신선한 제목에서 비롯된 시적 긴장감이 네 수 전편에 고르게 깔려 있다. 음의 떨림 현상인 비브라토라는 음악 용어에 착안하여 결국 사람살이가 어떠해야 함을 구체적이면서도 명징하게 육화한 '비브라토'물갈퀴, 자동차 바퀴, 바람의 손가락들을 동원하여 주제를 탄력적으로 잘 구현하고 있고, 끝수에서 인생에 대한 품격 높은 자세를 보인다. ‘짓눌려야 짓물러야 풀어지는 소리 가닥이라는 대목에서 고개를 절로 끄떡이게 하는 깊이를 획득하고 있는 점을 특히 눈여겨볼 일이다.

이 영광에 값하는 혼신의 정진이 있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이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