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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오래된 골목 / 장정희

 

작은 아버지 바지가 걸린 바지랑대 사이로 푸석한 골목이 보였다.

구암댁 할아버지 이끼 낀 돌담을 짚으며 모퉁이를 돌아가고

양철대문이 덜컹, 삽살개가 기다림의 목덜미를 물었다.

입대한 큰아들 주검으로 돌아오던 그날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작은 아버지는 좀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발가락이 오그라든 대문은 문패를 버리고 밤새

신작로 쪽으로 귀를 던져 놓고 있었다.

낮은 지붕을 내려온 거미가 먼저 발을 내딛는 골목,

목줄을 잡아 맬 수 없는 굴뚝으로 연기는 담쟁이넝쿨같이 기어 나왔다.

뼈마디 드러난 상처를 덮듯 배추는 또 자라나고

햇살은 어두운 골목에 도둑고양이의 눈빛을 씨앗처럼 심어주었다.

다섯 살 박이 손자가 작은 아버지 팔을 잡아당기며 대문을 나서고.

나는 빨랫줄 문 집게처럼 뻣뻣한 골목의 시간을 만지고.

바람이 골목에 발을 담글 때마다, 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수없이 들여다보았다.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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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쓰겠다고 대들었던 날부터 혼자 놀기에 익숙해져 갔다. 콩깍지 낀 눈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함께 걷기를 자청했던 유명 시인들의 시집이 때론 오래된 친구처럼 편해져 가던 어느 날, 갑자기 시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에게 무엇일까? 하나씩 더 알아 갈수록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도망치고 싶어 뒤돌아 보았을 땐 이미 늦었다는 걸 알았다. 용감하게 연필을 놓을 자신이 없어 매달렸다. 스스로의 무게에 눌려 주저앉고 싶을 때 항상 나를 응원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넘어지려 할 때 말없이 손 잡아준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십년을 함께 해온 '샘시문학회'의 이병관 선생님과 문우들은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리고 마산대학 시창작반 문우들과 함께 공부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마산대학 시창작반 문우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나에게 시심의 뿌리를 준 이영옥 선생님 고맙습니다. 자신의 언어나 머리를 믿지 말고 더 좋은 언어를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라, 사소한 것도 깊게 보라며 다른 사람보다 한 발 더 진보한 시 쓰기를 가르쳐 주신 김륭 선생님께 진심으로 큰 절 올린다.

  시로 인해서 알게 된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일일이 열거 하지 못함이 아쉽다. 시의 바탕이 되어준 부모님, 아주 특별한 내 동생들 고맙다. 항상 엄마의 자리를 빛내주었던 아들, 딸 사랑한다. 이 자리 오기까지 묵묵히 지켜봐 준 남편에게 이 영광을 돌리며, 부족한 글 뽑아주신 황동규 선생님, 안도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나에게 "시란 아름다운 구속 이었다."고 외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시와 아름다운 사이로 나란히 걷기위해 나는 다시 연필을 깎는다.



  ● 1965년 대구 출생.
  ● 마산대학 시창작반과 김해문협.
  ● 샘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
 



  <심사평>


  참신한 묘사적 표현, 시에 생기 불어 넣어


  좋은 시는 남들과 다른 언어를 건지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그렇게 태어난 시는 이기적이면서 품이 넓다. 그런데 비유가 생경한 시, 비문이 노출된 시, 인위적으로 제작하는 데 급급한 시들이 적지 않았다. 다들 조바심을 내는 듯했다.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 시들이 그만큼 아쉬웠다는 말이다.

  네 분의 시가 마지막까지 남았다.

  정지웅 씨의 '매미'는 매미 울음이 공중에 구멍을 뚫는다는 재치 있는 발상의 시다. 발상이 그저 발상으로 끝난 아쉬움이 크다. 소재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이명옥 씨의 '사과 연대기'는 어투가 매우 발랄하고 상상의 진폭이 크다. 시에서 감각을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는지 아는 사람 같다. 하지만 시를 만지는 손끝이 너무 쉽게 드러나 보이는 게 흠이다.

  최병국 씨의 '구름을 걷는 달팽이' 외 몇 편은 상당히 현란한 상상력과 언어 구사 능력을 보여준다.

  문장과 문장 사이 의미의 연결이 불투명한 약점을 시급히 보완하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장정희 씨의 '오래된 골목'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했다.

  언뜻 보면 평이해 보이지만 자신의 사유를 잘 간추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는 시다. 군데군데 참신한 묘사적 표현이 시에 생기를 더하면서 '오래된 골목'의 전경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시를 보여주는 시인으로 성장하시기를 바란다.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 : 황동규, 안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