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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까치밥 / 이상태

 

새로 이사한 3층 우리 아파트 창 밖에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서먹서먹해하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키가 꼭 우리 아파트 높이만큼 큰 감나무는 마치 나를 위로하듯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골집 감나무를 여기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이런 곳에 감나무 심을 생각을 하다니, 아파트 조경을 한 사람이 참 따뜻한 사람이겠구나 생각했다. 자세히 보니 감나무는 벌써 조롱조롱 새끼들을 달고 있었다. 나는 창을 열고 감나무 우듬지며 감잎들을 어루만져보았다. 감나무는 저도 반갑다는 듯 친숙한 냄새로 나를 감싸 주었다.

나는 감나무가 유달리 정겹다. 아마도 어렸을 때 감나무와 친하게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시골집에는 구석마다 감나무가 서 있었다. 아버지께서 손수 접붙이고 가꾸신 나무들이었다. 내게 감나무는 개나 소처럼 한 식구로 여겨졌다. 전쟁이 터져 우리 식구들이 봇짐을 이고 지고 피란을 떠난 뒤에도 감나무들은 파수꾼처럼 꿋꿋이 집을 지키고 있다가 지쳐 돌아온 식구들을 제일 먼저 반겨주었다.

감나무가 부끄럼을 많이 탄다는 것은 감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잎도 나기 전에 제 잘났다며 활짝 피어나는 다른 꽃들과는 달리 감꽃은 늦은 봄 잎사귀 뒤에 숨어서 수줍게 핀다. 갓 시집 온 새색시를 닮았다. 감꽃이 피면 동네 아이들은 우리 집 삽짝 안 감나무 밑을 기웃거리다가 감꽃 몇 개를 주워서는 잽싸게 달아나곤 하였다. 아이들은 우리 집 뒤란 큰 감나무들 밑에 감꽃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거기까지는 몰래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애가 타던 아이들은 나를 불러냈다. 딱지나 구슬을 따가며 약을 올리던 몇 살씩 위 또래의 아이들도 우리 집 감나무 밑에서는 내 비위를 맞춰주어야 했다. 감나무는 움츠러들었던 내 어깨를 펴 줄줄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감나무 덕분에 나는 잠시 대장이 될 수 있었다.

주전부리거리가 귀하던 시절, 감나무는 때맞추어 먹을 것을 던져주었다. 도사리 땡감을 삭혀 먹기도 하고 볏짚 속에 넣어 홍시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감은 어른들도 즐겨 먹었다. 살평상에 모여앉아 삼을 삼다가 입이 궁금해지면 삼 톺던 뭉툭한 삼칼을 옷에 쓱쓱 문지른 다음 땡감을 뚝뚝 쪼개어 소금에 찍어 먹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먹을 것이 귀할 때였으니 떫은맛이야 약이 되려니 했을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감 맛의 일등은 나무 위에서 서리를 맞고 제대로 익은 홍시다. 겨울방학이 되어 고향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다락에 몰래 숨겨 두었던 빨간 홍시를 꺼내주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 위에 차가운 홍시 속살을 얹어 먹으면 꿀맛 같다.

수줍어 꽃 자랑도 하지 못하던 감나무는 가을이 깊어 서리가 내릴 때쯤이면 돌변한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올까. 발가벗은 몸에 가지가 부러질 듯 빨간 알감들을 매달고 사람들을 유혹하는 용기가. 낯선 시골길을 가다가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쏟아질 듯 매달린 알감들을 만나면 나는 금세 거기가 고향마을인 듯 착각하게 된다.

그 많은 감들을 어떻게 하였을까. 더러는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을 터이고, 더러는 장에 내다 팔아 어려운 살림에 보태기도 하였을 것이다. 어른들은 때가 되어 감을 따면서도 언제나 맨 꼭대기 서너 개씩은 반드시 남겨두셨다. 새들이 먹을 까치밥이라고 하셨다. 배가 고플 때 까치밥마저 따 달라고 졸라 보지만 그것만은 절대로 따주지 않으셨다. 어린 내 눈에도 어른들의 까치밥 아끼는 정성이 부엌 살강 속 조왕님을 모시는 것처럼 깊어 보였다.

뜻밖에 만난 감나무 덕분에 서먹했던 새 아파트 생활이 그런대로 견딜 만하였다. 어느덧 여름이 가고 창밖의 감들도 조금씩 붉은 색을 띄어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감나무는 용감하게 누드쇼를 시작할 것이고 사람들은 그 정경에 홀려 탄성을 지를 것이다. 아파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이들도 길을 멈추고 서서 한마디씩 할 것이다. 마치 시골에 우리 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사각형 창문과 회색 벽뿐인 아파트단지에 모처럼 화색이 돌 것이다. 나는 새로 산 운동화를 머리맡에 놓고 명절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하루는 밖에 나갔다 돌아와 보니 감나무에 감이 한 알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 밑에는 꺾인 잔가지들과 떨어진 잎들이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한바탕 치른 듯하였다. 아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아내는 낮에 경비원 복장을 한 사람들이 감을 야짓 다 따 가더라고 하였다. 아내도 속이 상했던지 이웃에 물어보았더니 그 감나무는 1층 사람이 이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가져다 심은 것이고 그래서 1층 사람이 경비원들을 시켜서 따 가지고 나누어 갖는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또 누군가가, 나무에 매달아 두고 함께 보면 좋을 것을 왜 그렇게 일찍 다 따버리느냐고 거들었다가 내 감나무 내 마음대로 하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고 1층 사람이 얼굴을 붉히며 대드는 바람에 쩔쩔매더라고 하였다. 아내의 말속에는 그러니 나도 이 일에 나서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당부가 숨어있었다.

나는 감나무를 다시 보았다. 일 년 동안 정성을 들여 길러 온 자식들을 자랑도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다 크기도 전에 모두 빼앗긴 감나무가 거기 우울하게 서 있었다. 먹을 감이라면 시장에 지천으로 깔려있지 않던가. 그게 얼마치가 된다고 감나무를 결딴내가며 그렇게 익기도 전에 다 따버린단 말인가. 가을이 다 가도록 두고 보면 여러 사람들이 좋아했을 것을. 마음이 아렸다.

어떻게 할까. 반상회에 가서 호소해볼까도 생각해 보았고, 아파트 관리소장을 찾아가 상의해 볼까도 궁리해 보았지만 아내는 극구 말렸다. 그런다고 떨어진 감이 다시 나무에 붙을 것도 아니고,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우리가 괜히 말썽을 일으켜서 앞으로 살아가는 데 득 볼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긴 아내의 말이 맞을 것이다. 여기저기 말해 보았자 새로 이사 온 낯선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지도 의문이고, 요즘처럼 약은 세상에 그런 일에 선뜻 동조해줄 사람이 또 얼마나 되겠는가. 더구나 이미 누군가가 비슷한 말을 해보았다가 1층 사람한테 혼이 났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리 궁리해보아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내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내년에는 어떻게든 내가 나서보리라. 일단 감나무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1층 사람을 직접 만나 감을 그렇게 일찍 따버리지 말고 황홀한 알감의 정경을 함께 감상하자고 진지하게 설득해 볼 작정이다. 만일 그가 끝내 고집을 부려 올해처럼 또 일찍 감을 모두 따버린다면 그 때는 내가 어디든 가서 잘 익은 감을 스무 개쯤 구해올 것이다. 그래서 감나무 꼭대기에 야무지게 매달아 까치밥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까치밥이 도시 사람들의 꽁꽁 언 가슴을 어떻게 녹여주는지 지켜볼 것이다. 




  <당선소감>


   가슴에 묻어둔 첫사랑과의 만남


중학교 2학년 때 운 좋게 장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생활을 쫓아가다보니 글쓰기는 첫사랑처럼 가슴에만 담아 둘 수밖에 없었다. 퇴직하고서야 다시 찾아가 애원해보았다.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랬을까. 첫사랑의 냉대가 만만치 않았다. 내 얼굴이 너무 두꺼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굳이 내가 고생 고생하면서 쓰는 것보다 훌륭한 분들이 쓴 깊이 있는 수필을 읽고 즐기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수필을 쓸 사람이야 내가 아니어도 많을 터, 열성 독자나 되자고 마음먹었다. 한동안 그렇게 좋은 수필 읽기에 맛을 들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발길이 또 첫사랑을 찾아가고 있었다.

수필은 다른 문학 장르와 달리 체험이 바탕이 된다. 체험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하고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더불어 한다. 수필이 머리에서 짜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나오는 글이라는 말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차분히 사람 되는 공부부터 해야 될 것 같다. 정성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싸늘했던 첫사랑의 마음도 돌아서리라 믿으면서. 자리를 마련해주신 동양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고 그동안 지도해주신 구인환 선생님, 한상렬 선생님, 임헌영 선생님께 큰절을 올리고 싶다. 함께 공부하는 강남문화원, 현대문화센터 문우들과도 따뜻한 차 한 잔 나누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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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일상 풍경을 보는 남다른 시각 ‘눈길’


전국 각처에서 57명이 137편의 작품을 보내왔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수준이 높아지고 문장력과 글솜씨가 점차 좋아졌다. 소재가 향수와 어머니, 추억거리가 대세인 건 다름없지만 문학성을 부여하는 실력들은 더 향상되었다.

응모자들이 지역적으로 대구, 경주, 부산, 울산 등 경상도가 단연 많고 전주 등 전라도도 많은 셈인데 유독 충청도 신문의 고향에서는 출품 수도 적고 작품도 출중하지 못하다. 타 지역에서는 수필문학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는 그룹이 많은 듯한데.

당선작으로는 ‘까치밥’(이상태)을 꼽았다. 일상의 평범한 풍경에 범상치 않은 시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사한 아파트에서 만난 감나무와 교감하며 겨울이 다 지나도록 나뭇가지에 까치밥 몇은 남겨두던 여유가 사라진 세태를 조근조근 나무란다. 시골 출신 아니고는 도저히 쓰지 못할 문장이 호감을 준다. ‘살평상에 모여앉아 삼을 삼다가 입이 궁금해지면 삼 톺던 뭉툭한 삼칼을 옷에 쓱쓱 문지른 다음 땡감을 뚝뚝 쪼개어 소금에 찍어 먹었다’는 글의 분위기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토착어도 잘 활용한다. 우듬지, 도사리 땡감, 입이 궁금해지면, 삼을 톺던, 살강, 야짓, 아렸다 등 잊고 있던 말들이 반갑다. 삭막한 도시 생활에 까치를 배려하던 까치밥을 남기는 인정어린 광경을 기대하는 심리가 잘 살아 있다. 어쩌면 이 분은 이미 많은 글을 써본 솜씨다.

함께 제출한 ‘속내’도 상당한 수준의 작품이다. 일본인의 친절한 겉과 한국인을 얕보는 속을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감정을 내세우지 않고 그들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개미’(이순미)는 여름날 계곡에서 쉬면서 돗자리 위로 지나는 개미를 무심코 튕기며 사실은 자기가 침입자이고 개미는 열심히 산 일꾼임을 깨닫고 퇴직당하여 농사 짓고 있는 이를 연상하며 개미에 연민을 느끼는 깔끔한 작품이다. ‘닻을 내린 배’(김정화)는 삶의 생기를 잃은 갯벌과 폐선을 삶의 의지를 잃은 요양원의 환자와 잘 비유했으나 더 다듬었으면 싶다.

‘시장과 마트’(이순종)는 지난해 ‘소금’이란 좋은 작품을 보냈던 분의 작품으로 당선에 손색이 없으나 그동안 이미 문학지에 당선되었기로 제외시켰다.

 

심사위원 : 조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