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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그, 자리 / 김진수

 

우리 그날 마주보며 깊도록 껴안을 때

정겨운 너의 손이 깍지 끼던 그 자리

내 손은 닿지를 않아 그만큼이 늘 가렵다

 

찌르르, 앙가슴에 불현듯 전해오는

무자맥질 신장소리에 사과 빛 물든 등 뒤

네 손길 지나간 자리 바람이 와 기웃댄다

 

그 여름 지나느라 소낙비 지쳐 울고

푸르던 내 생각도 발그레 단풍졌다

아직도 남은 온기가 강추위를 견딘다




  <당선소감>


   "나를 지탱해준 동아줄 같은 믿음"


  먼 남녘바다 草島(초도)의 작은 풀씨에게 섬과 섬을 돌아 환청의 거리로 달려온 목소리, ‘축하합니다’ “뼈속까지 내려가 보라”던 나탈리 골드버그의 목소리가 뒤따라 들려왔습니다.

  온 세상의 소리란 소리, 생각이란 생각들이 일순간에 멈춰 합성되는 듯한, 당선을 알리고 확인하는 몇 마디도 아득한 저쪽의 소리였습니다. 문득 나의 이름과 나이, 오랜 날을 끌고 온 시심까지 한순간에 아득히 지워졌습니다. 불혹의 나이에 ‘건넌다’ 는 것이 참으로 아찔한 모험과 긴장이였지만, 어쩌면 지치고 무너지려는 나를 떠받쳐 지탱해주는 힘이기도 했습니다. 할 수 있다는, 질긴 동아줄 같은 믿음이었습니다.

  비바람과 풍랑이 시시때때로 휘몰아쳐도 금세 서로를 끌어안아주던 수평선. 이념과 사상, 빈부와 계층 간의 분열과 갈등을 한없이 보듬어준 것이 내 고향 푸른 바다였습니다. 그 깊은 가르침을 새해 첫 마음으로 올립니다. 손 내밀면 언제나 따뜻한 ‘그, 자리’ 에서 마음을 이어주는 벗이 되고 위로가 되고, 더불어 가는 꿈이 되고 싶습니다.

  부끄럽기 그지없는 작품을 더 큰 의미로 보듬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변함없는 믿음으로 힘을 주신 스승님과 아내, 어머니와 아이들의 얼굴이 맑게 얼비칩니다. 진정으로 다가서기위해 한걸음 물러서서 견뎌온 나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고요해집니다.




  ● 1959년 여수에서 태어나서 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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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주제의식·참신성 돋보이는 수작"


  신춘문예 당선 작품은 기성시인을 뛰어넘는 새롭고 신선한 것이어야 신인으로서의 조건을 갖춘 것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예선을 거쳐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 16편을 읽은 후 8편을 골라내었다. 이들 작품을 다시 반복해 읽은 다음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그, 자리’ 를 선택했다.

  작품 ‘그, 자리’ 는 깔끔한 시어 선택에, 짜임새 있는 구성, 강한 주제 의식으로 작품의 참신성을 획득한 수작(秀作)이다.

  이외 최종심에 오른 ‘비’는 섬세한 묘사에 시적 서정을 담아냈으며 작품의 균형 감각을 이뤄낸 점이 돋보였으나 기성세대에서 흔히 다뤄졌던 소재여서 망설이게 했다.

  ‘휴대폰’은 우리 생활 속에서 일상화된 소지품을 시적 대상으로 삼아 현대적 감각으로 이끌어간 점이 우수했고, ‘조간신문을 읽다’는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을 대상으로 시상을 유연하게 풀어나간 솜씨가 뛰어났으나 당선에는 미치지 못했다.

  ‘섬에서 온 편지’ ‘파씨’ 등도 저마다의 개성과 특색 있는 소재를 선택하여 글감을 다루는 솜씨가 세련되었으나 한 편만을 당선작으로 뽑아야 하는 고충이 따랐다. 더욱 분발하여 앞으로 좋은 기회를 맞이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 한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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