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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커피포트 / 김종영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비등점의 포말들

음이탈 모르는 척 파열음 쏟아낸다

적막을 들었다 놓았다

하오가 일렁인다

선잠을 걷어내어 베란다에 내다건다

구절초 활짝 핀 손때 묻은 찻잔 곁에

식었던 무딘 내 서정

여치처럼 머리 든다

설핏한 햇살마저 다시 올려 끓이면

단풍물 젖고 있는 시린 이마 위에도

따가운 볕살이 내려

끓는점에 이를까




  <당선소감>


   "마흔 넘어 얻은 소중한 친구"


  마흔 넘어 새 친구를 얻었다. 그는 남의 말을 들어주기를 좋아한다. 어설픔과 쉬 흔들리는 변덕, 거친 호흡과 설익은 말도 그를 통하면 편안한 언어가 되었다. 내상을 치유한 감정은 자유를 갈망하며 길을 나서고 앞서간 임들의 땀방울을 통해 그의 마음을 전해들은 날, 나목의 시린 발을 덮어주는 낙엽처럼 믿음이 쌓여 마침내 서로에 대한 의지가 깊어진 것일까?

  시조, 그 친구는 나를 신춘문예 당선으로 이끌었다. 기쁨에 떨려 며칠 밤을 잠 못 이루게 하는….

  청춘의 사랑 그 불꽃처럼 나에게도 아직 무엇을 태울 여력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나이 오십이 되어도 난 아직 천명은 알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시조의 혜안을 빌려 예순 칠순이 되어도 계속 앞으로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처음 차를 몰고 먼 직장에 도착했던 날. 뿌듯함보다 더 두려웠던 그 초보자의 심정으로 열심히 정진하여 나를 지켜 준 모두에게 시조의 향기로 보답하고 싶다.

  문득 그리워진다. 맑게 얼음 언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오래된’ 친구들이. 그리고 늘 먼저 읽고 새로움을 일깨워준 아내, 기쁨으로 외워준 아들 딸, ‘아이들에게 시조를 짓게 하자’며 묵묵히 시조지도에 애써 온 우리 경남동시조연구회 회원님들, 해마다 신춘문예의 장을 마련해주시는 경남신문사와 졸작을 어여삐 여겨 뽑아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1963년 창녕 출생.
  ● 진주교육대학교, 창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 경남초등교사 예능연구대회 시조백일장부문 장원(2008).
  ● 경남초등시조백일장 개최(2008~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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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군더더기 없는 시어 돋보여"


  다양한 매스미디어의 활성화에 반해 문학의 침체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기라도 하듯이 신춘문예 심사장의 분위기가 뜨거웠다.

예년에 비해 응모자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실험적인 작품도 눈에 띄었으며, 무엇보다 응모작품의 질적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는 ‘경남신문 신춘문예’가 지역의 한계를 넘어 전국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응모작품 가운데는 시조의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치열한 에스프리로써 시적 성취를 보이는 작품도 있었지만, 내용과 형식의 부조화를 드러내는 작품도 있었다. 또한, 시조의 기본인 음보에 대한 이해 부족과 가장 우리말에 대한 신뢰를 보내야 할 장르에서 모국어에 대한 아쉬운 정성도 지적되었다.

  언어의 절제와 응축의 미학을 추구하며 선명한 이미지를 구축한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마지막까지 끌었던 올해의 작품은 ‘오징어 일어서다’, ‘모래산에서 쓰는 편지’, ‘커피포트’ 등 3편이었다.

  ‘오징어 일어서다’는 오징어에도 뼈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작품으로 세속적 풍자성은 평가되지만, 시적 구성의 치밀성과 깊이가 지적되었다. ‘모래산에서 쓰는 편지’는 비교적 시적 완성도가 높으며 상당한 수련을 쌓은 응모자의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관념의 구체적 이미지화에 아쉬움을 남겼다. 2수 종장의 음보 문제도 논의점이 되었다.

  언급한 2편의 작품에 비해 ‘커피포트’는 신춘 도전자들의 심경을 정갈한 시조의 형식에 잘 다듬어 갈무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군더더기 없는 시어의 처리가 돋보였다.

  ‘적막을 들었다 놓았다’라든지 ‘식었던 무딘 서정이/ 여치처럼 머리 든다’라는 첫수와 둘째 수 종장의 산뜻한 비유가 격조를 더하고 있어 후한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울림의 진폭이 좀 더 컸으면 하는 여운이 남지만,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할 수 있는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관점에서 심사위원들은 김종영씨의 ‘커피포트’를 당선작품으로 선정하였다. 오늘의 영광이 대성의 길로 이어지길 기대하며 다시 한번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 : 이우걸, 김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