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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첫사랑 / 최미영

 

이슬이 데려온 아침이 느리게 안개를 먹는다

밤새 졸참나무는 치장을 더 화려하게 하고

밑둥에 쏟아낸 도토리에 횡재한 다람쥐


두근두근 내 심장은 노란 국화꽃이다

내일 또 쏟아져 내릴 빛이건만 오늘은 폭설이다

그 옛날 함께 있어도 더 함께 있고 싶던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파란 물감을 품은 호수다


작년까지의 눈가 잔주름은

눈치 없이 양반다리 틀고 앉았고

오늘따라 근엄하게 폼 잡은 팔자주름이 밉상이다

반 백년을 담은 얼굴,

분으로 주름은 덮지 못해도

손만 잡고 보냈던 그 날밤 추억으로

양 볼이 자줏빛 국화꽃이다


저만치 그가 온다

볼 빨간 낙엽을 들고......




  <당선소감>


   "따뜻한 여운이 남는 시 쓰고 싶다"


  지구 곳곳을 뒤덮은 재앙으로 모두 힘든 올해입니다. 떡갈나무 잎에 떨어지는 경쾌한 봄비 소리도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봐야했고, 나뭇잎을 흔들던 시원한 여름 바람도 바람이 잠든 후 조용히 혼자 느껴야 했고, 아파트 사이를 가로질러 치솟다가 살포시 하늘 가득 내리는 첫눈도 복면을 쓰고 혼자 감상하는 청승을 떨어야 했습니다. 덕분에 존경하는, 좋아하는 시인, 작가님들의 작품을 그 어느 해보다 많이 접할 수는 있었습니다. 내 생애 가장 큰 재앙으로 우울한 나날에 한 줄기 빛처럼 날아든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소식은 신의 축복입니다.


왜 나만 괴롭고, 왜 나만 힘들고, 왜 나만 아파야하느냐고 삶을 내려놓고 싶을 때마다 일기장이 찢어지도록 힘을 주어 하소연을 했답니다. 이제 난 나와 같은 아픔을 겪거나 상처 입은 이들에게 부족하지만 나의 시를 통해 따뜻한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부족함 투성이의 덜 익은 저의 글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진심의 감사 인사를 드리며, 이제부터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임을 가르쳐주시는 사랑의 채찍으로 겸손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날개를 펼 수 있는 등용문을 마련해 주신 동양일보 회장님과 모든 관계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에 걸맞는 문인이 되도록 치열하게 노력하겠으며, 독자들이 공감하며 따뜻한 여운이 오래 남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가을은 시들고 성난 황소같이 겨울이 왔지만, 다가올 봄이 있기에 또다시 힘을 냅니다.




  ● 1970년 충북 단양 출생. 
  ● 1999년 경남 주부 백일장 최우수. 
  ● 2003년 울산 약수초 평생어머니교실 글짓기강사. 
  ● 2018년 대전 제23회 전국우암백일장 입상. 
  ● 2019년 백수문학 신인당선


  <심사평>


  절제된 언어로 형상력 신장


  27회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들 중에서 선자에게 넘겨진 작품(367편)들을 숙독하고 볼 때 해를 더할수록 난해하거나 미숙한 작품들이 줄어들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관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난삽한 작품들이 발견되고 있다.

  선자의 손에 남아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는 김태춘의 「빌딩 타는 거미」, 홍영수의 「대흥사 천년 숲길」, 김준태의 「바지랑대」, 최미영의 「첫사랑」이란 작품이다.

  김태춘은 「빌딩 타는 거미」에서 옥상은 날기 좋은 곳, 죽기 좋은 곳이라 했다. 그만큼 운수와 의지의 삶이다. 바람에 흔들린다. 두드려도 허공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붉은 수건을 매면 전사가 되고 피켓을 들면 애국자가 되고 영웅이 된다며, 절벽은 발이 닿지 않는 남의 나라 죽음과 삶은 한 줄에 꼬여 대롱거린다고 한다.

  홍영수는 「대흥사 천년 숲길」에서 새벽달은 두륜산 끝에 걸쳐있고 여울목엔 풋잠 깬 새들이 깃들고 길 위엔 동백이 주단을 깔고 절간의 목탁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불경소리는 풍경 끝에 꽃을 피운다고, 초의 선사의 차향 내가 스칠 때 부도 밭 큰스님의 화두가 목덜미에 떨어진다며 침묵의 천년이 다가선다. 보듬어 내는 내 모습이 새롭게 거듭나게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김준태는 「바지랑대」란 작품에 한 순간도 무릎을 꺽은 적 없다며 외로이 누군가를 떠받치기 위해 태어나지 않으리라 핏기 없는 깡마른 다리로 식솔들의 생을 짊 지고 볕에 내어 말리는 영문 모를 원죄들 씻어 내린다.

  허공을 관통하는 하얀 외줄을 부여잡고 깡마른 몸에 의지한 숨 가쁜 생을 하늘로 띄워 보내려는 소임, 운명처럼 짊어진 삶을 노래하고 있다. 좀 더 압축과 절제의 수법훈련이 요구된다.

  최미영은 「첫사랑」 이란 작품에서 아침이 느리게 안개를 먹는다. 밤새 졸참나무는 치장을 더 화려하게 하고 밑둥에 쏟아낸 도토리에 횡재한 다람쥐란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두근두근 내 심장은 노란 국화꽃이다.

  그 옛날 함께 있어도 더 함께 있고 싶던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파란 물감을 품은 호수에 비견시키고 있다. 눈가의 잔주름 근엄하게 폼 잡은 팔자주름이 밉상이라면서도 반백년을 담은 얼굴, 분으로 주름은 덮지 못한다 해도, 손잡고 보냈던, 그날의 추억으로 양 볼이 자주빛 국화꽃이다. 서정적 화사花詞로 순결성을 내보인다.

  저만치 그가 온다. 볼 빨간 낙엽을 들고...란 말들은 절제 압축의 미학이다. 사물과 사유를 시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최미영의 「첫사랑」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더욱 정진 대성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정연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