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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달항아리 / 이다온

 

진열대 위로 둥실 달이 떠오른다. 은은한 불빛이 바닥에 고인다. 조명을 받은 항아리는 방금 목욕하고 나온 아낙네 같다. 천의무봉의 살결이 백옥처럼 희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데도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진다. 자세히 보면 달항아리는 좌우균형이 맞지 않는 비대칭이다. 보름달이 약간의 기울기를 가진 것처럼.

가슴이 사라졌다.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왼쪽 가슴을 확인했다. 불룩하게 솟아있던 자리가 분화구처럼 푹 꺼져 있다. 움푹 팬 곳에 낯선 어둠이 만져졌다. 두꺼운 밴드가 선홍색 칼자국을 애써 가렸다. 와락, 울음이 밀려왔다. 재빨리 환자복을 내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덮었다.

이태 전이었다. 부산스럽게 외출준비를 하고 있을 때 왼쪽 가슴에서 심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급하게 달려간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들었다. 의사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지만 내 귀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벚꽃이 만발했던 어느 봄 날, 그렇게 암은 내게로 왔다. 아무 예고도 없이.

임파선으로 퍼진 암 덩어리 크기를 작게 하고 나서야 수술을 할 수 있었다. 크기를 줄이기 위해선 먼저 여덟 차례의 항암치료를 해야 했다. 일차 항암치료를 받기위해 수술실 안쪽의 긴 복도를 따라갔다. 암 환자를 위해 마련된 별도의 공간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곳이었다. 민둥산처럼 머리를 깎은 환자들이 침대마다 누워 있었다.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어야하는지 실감나지 않았다. 이건 꿈이라고, 잠시 꿈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애써 위로했지만 현실은 결코 꿈이 되지 않았다.

시부모를 모시는 맏며느리였지만 고부간에 큰 갈등은 없었다. 남편은 자상했고 어머님은 집안일에 서툰 나를 딸처럼 대해 주었다. 결혼한 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도록 가끔씩 동서들과의 갈등이나 속상한 일이 더러 있었지만 크게 상심하거나 어려운 일은 겪지 않았다. 아이 둘도 잘 자라주어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런 내게 신은 암이라는 시련을 툭! 던져주었다.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돌멩이 던지듯 무심하게.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이름이 불리어졌다. 간호사는 친절하게 몇 개의 액체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보여주면서 의례적인 설명을 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이렇게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닐까? 다시 병실 밖으로 나갈 수는 있을까? 도대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임종을 맞았던 것일까? 항암제가 잘 스며들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준다는 조형제가 몸속으로 들어오자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전율이 흘렀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자줏빛 종이상자 안에 있던 항암제가 천천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 까무룩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열흘 정도가 지나갔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마다 한 움큼 검은 시체들이 손아귀에 쥐어졌다. 숭덩숭덩 빠지는 머리카락은 책상 위며 화장대, 거실탁자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삶의 의지마저도 한 움큼씩 빠져나갔다. 항암치료는 마흔 살 나이에 생리를 멈추게 했고, 모든 일상의 시간들을 정지시켰으며, 까마득한 벼랑 끝에 나를 세워놓았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날 즈음 왼쪽 유방절개수술을 했다. 임파선을 제거한 팔은 조금만 무리해도 붓고 아팠다. 나이가 젊을수록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삶의 의지와 죽음의 두려움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했다. 때론 침대 난간에 머리를 쥐어박으며 죽고 싶다며 야단을 피웠고 어떤 날엔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다섯 개가 넘는 피 주머니가 흔들릴 때마다 통증은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을 놓아 버렸다.

불행은 먼 나라의 것이라 생각했다. 이따금 들려오는 남의 고난은 그냥 타인의 일일 뿐이었다. 어느 나라에선 지진이 일어났다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기아가 넘쳐난다고 해도 관심 밖의 일들이었다. 쇼핑을 하고 몸매를 가꾸고 먼 곳으로 여행을 하고, 그런 순간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거라 믿었다. 가끔씩 현기증 같은 게 찾아왔지만 그건 내가 너무 행복해서 느껴지는 감정 같은 거라고 가볍게 넘겨버렸다. 불행의 씨앗이 조금씩 내 몸에 똬리를 틀기 시작하는 것도 모르고.

아마조네스는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군대이다.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트로이를 구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강력한 특수부대였다. 아마조네스의 ‘아’는 ‘없다’는 뜻이며 ‘조네스’는 ‘유방’이라는 뜻이다. 즉, 유방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들로 구성된 이들 부족은 활을 쏘는데 오른쪽 유방이 불편했기 때문에 그것을 미련 없이 제거했다. 조국이라는 더 큰 가치를 위해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버린 것이다.

어쩌면 나의 전생은 아마조네스인지 모르겠다. 가슴에 활시위를 대고 적의 심장을 바라보던. 그래서 한 쪽 가슴을 도려내야했는지도. 행복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인걸까. 암은 무의미한 일상에 함몰된 내게 삶을 향해 제대로 활시위를 당기라며 가슴을 도려내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파르르 떨리는 그 활이 너무 무겁고 감당하기 벅차긴 했지만.

달항아리는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도자기다. 둥글고 커다란 모습이 달덩어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가 사오십 센티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항아리를 제작하려면 흙으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에 서로 이어 붙여야 했다. 그래서 접합 부위가 약간 뒤틀린 모양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 도공들은 이것을 칼로 깎아 내거나 매끈하게 다듬지 않았다. 인위적인 힘을 가해서 정교하고 둥글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비대칭인 상태 그대로 둔 것이다.

수술결과는 좋았다. 더 이상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몇 번의 작은 수술과 치료가 있었지만 처음의 두려움은 조금씩 사라졌다. 벼랑 끝에서 아스라하게 버텼던 지난날의 흔적은 가족들의 관심으로 조금씩 치유되어져 갔다.

전시대 위로 떠오른 달을 쳐다본다. 어린 시절 초가지붕 위의 박처럼 푸근하다. 문득 항아리 속의 달이 내 안으로 파고든다. 가슴이 사라진 자리에 밀물처럼 고요하게 달이 들어찬다. 보름달이면서 비대칭인, 한 쪽이 약간 기울어져 슬픈 달, 그러나 어떤 대칭의 사물보다도 완벽한 구형이다. 달을 품은 내가 어느새 달항아리가 된다. 따뜻한 달무리가 빈 가슴에 둥글게 번진다.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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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공중부양 하듯 중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느 때 만져지던 허방처럼, 그리곤 내게 온 이 반가운 기별이 현실이란 걸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상실은 늘 내 곁을 맴돌았습니다. 유년시절, 매일 같이 놀아주던 언니가 전염병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일. 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일. 지난 해, 중환자실에서 눈 맞춤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어느 해, 갑자기 찾아온 암은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몸과 마음의 자유는 물론, 사소한 일상까지 잃어버린 채 매일 죽음과의 사투를 벌여야했습니다. 천 길 낭떠러지 같은 캄캄한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병상에 놓인 노트와 연필은 나의 유일한 위로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뭔가를 끼적거리지 않으면 불안했던 나는 언젠가부터 상처를 제 안으로 치유하는 달항아리처럼 상실의 아픔을 글로 치유하려 했습니다. 갑자기 떠난 언니와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가버린 친구며,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아버지의 휴대폰, 어느 날 잃어버린 한쪽 가슴까지. 어쩌면 그 기록들이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무리처럼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습니다. 늘 부족한 나를 격려해주던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니, 지칠 때마다 용기를 준 남편과 두 아이, 다정다감한 직장 동료들과 서로 이끌어주며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시거리 문우들. 그리고 나를 지켜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제 글이 달항아리가 되게끔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귀한 상을 주신 전북일보사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두고두고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본명 이수정. 
  ● 경주 출생. 
  ● 2018년 머니투데이 직장인 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 
  ● 울산문인협회 회원.
  ● 현재 물푸레 복지재단 국공립 베니 어린이집 교사 근무.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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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가는 대로만 써서는 안 된다는 것. 수필 쓰기의 이중성 내지는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그거야 어쨌든 짧지 않은 세월을 두고 삶의 애환을 웬만큼은 축적해야 비로소 수필스러운 성찰이 가능한 건 아닐지. 예심을 거친 열네 분 응모자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성찰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옅어 아직 덜 여물었거나 붓끝의 농담이 들쭉날쭉인 글을 하나씩 내려놓다 보니 <산골 변사>, <점선, 여백을 품다>, <희생에 대한 회상>, <달항아리> 네 편이 남았다.

시골 마을로 계절을 바꿔가며 무시로 찾아오는 ‘트럭장수’들의 ‘찰진 목소리’를 해학적으로 풀어낸 <산골 변사>는 에피소드의 전개 과정이 좀 어수선하긴 했어도 읽는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점선, 여백을 품다>는 붓끝이 정갈해서 선뜻 내려놓기가 아까웠다. 그런데 수사적 성찰이 전체 분위기를 이끌고 있어서일까. 독서의 속도감이 떨어지는 문제점까지는 덮고 갈 수 없었다. <희생에 대한 회상>은 읽을거리가 풍부하다는 게 장점이었다. 어미 우렁이와 어머니의 삶을 희생 모티브로 연계시킨 구성도 크게 나무랄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정돈되지 않은 문체였다. 거친 붓끝을 정갈하게 다듬어 썼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는 조언을 사족으로 덧붙인다.

<달항아리>를 끝까지 손에 붙든 까닭은 앞선 세 편의 글이 갖고 있는 단점이 두드러지지 않아서였다. 안정감 있고 세련된 문체가 읽는 맛을 더해준 까닭도 있었다. 글의 문패로 내건 ‘달항아리’의 둥글지만 비대칭인 이미지를 ‘가슴이 사라진 자리’에 채움으로써 ‘사라진 가슴’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픔을 따뜻하고 담담하게 어루만질 줄 아는 구성력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다.

최종심에 올랐으면 그다음은 ‘운수소관’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속뜻이야 글을 쓰는 이들에게는 불문가지일 터.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말이 있는데, 명(名)은 어떨지 몰라도 실(實)에 있어서만은 네 분 응모자 모두 훌륭한 수필가에 상부(相符)하고도 남는다.

 

심사위원 : 송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