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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슈팅 / 김유현

 

“어제 형이 업로드한 영상 대박 났어! 슈팅 조회수 1위라고!”

술이 덜 깬 채 전화 한 통을 받는 영기. 호들갑 떠는 민혁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눈만 껌벅인다. 업로드? 조회수 1위? 어제 한 것이라곤 포장마차에서 진탕 술 마신 것밖에 없는데? 영기가 어젯밤을 떠올려 본다. 먹방 BJ(인터넷방송 진행자)가 꿈이라는 청년에게 그깟 먹방 영화감독인 내가 찍어주겠다며 핸드폰으로 촬영해준 기억이 난다. 그래도 여전히 민혁의 말은 이해할 수 없다. 어젯밤 찍은 영상을 업로드한 적이 없으니까.

사실 확인을 위해 슈팅 어플을 켠 영기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만다. 영기의 디렉터 와이(Director Y) 채널에 올라온 청년의 먹방이 실시간 조회수 1위를 찍고 있기 때문! 더 이상한 건 영상의 배경이 포장마차가 아닌 스튜디오인 데다 자막과 효과음, 인서트 삽입까지 완벽하게 편집됐다는 것이다. 청년이 업로드한 것이라 생각한 영기는 그를 찾아 확인하려 하지만, 청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아무도 청년을 기억하지 못한다.

터무니없는 상황에 혼란스러운 영기. 핸드폰이 망가졌나 싶어 길가의 행인을 촬영해 보는데, 영기가 녹화 완료를 누르는 순간 화면에 찍히고 있던 행인이 폰의 렌즈 속으로 빨려가듯 사라진다! 그리고 잠시 후 폰에 뜨는 알람. [디렉터 와이(Director Y)님, 슈팅에 영상이 업로드되었습니다]

녹화하면 완벽한 영상이 되어 저절로 슈팅 채널에 올라가지만, 찍힌 사람의 존재는 사라진다. 폰의 기이한 능력이 두려워 벌벌 떠는 영기의 머릿속에 불현듯 생각이 스친다. 이 폰의 능력을 이용하면 빚을 청산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이 착하게 살아온 내게 주는 선물이라면? 나쁘게만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 없잖아? 핸드폰을 바라보는 두려운 눈빛이 희망으로 바뀌는 영기.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든다.




  <당선소감>


   "'모르는 번호로 온 당선 전화 받기' 소원 성취"


신년 소원, 생일 소원, 산타에게 비는 소원까지 가족의 건강밖에 없던 나에게 글쓰기를 시작한 후 추가된 소원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당선 전화 받기’였다.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했는데, 이렇게나 행복할 줄은 몰랐다. 소원을 이뤘다는 성취감이 정말 짜릿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부모님께 선물을 드린 것 같아 기쁘다. 성과 없는 몇 년 동안 잠드는 것조차 죄스럽게 느껴져 불면증에 걸렸다.

그래도 무식하게 일하고 글만 썼다. 힘들어도 달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이 미친 듯이 재밌다는 것 말고는 없다. 그렇게 쓴 글이 나에게만 재밌는 걸까 고민하던 2020년. 한경 신춘문예가 ‘김유현 씨, 부정적인 생각 집어치우고 키보드나 두들기세요!’라고 응원을 보내줬다.

그 응원 덕에 ‘내가 쓴 시나리오가 영상화되는 것’이라는 소원이 추가됐다. 새로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돌진하자! 미친 듯이 재밌으니까.

감사합니다.

‘슈팅’을 당선작으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 슈팅에 영감을 준 친구 동명 님, 슈팅 기획부터 시나리오 완성까지 여러 번 피드백을 해주고 응원해준 이성진 님, 외로운 길을 함께 달려준 동료와 선후배님, 2020년에 새로운 기회를 주신 이 이사님, 정 대표님, 나의 자존감 지킴이 인생 롤모델인 ‘킹키부츠’의 롤라, 마지막으로 곁에서 많이 도와주는 언니와 오랜 기간 불안했던 것도 모자라 불안정한 직업까지 선택한 저를 따스하게 지켜봐 준 사랑하는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1989년 강원 강릉 출생
  ● 중앙대 연극영화과 중퇴


 

  <심사평>


  동시대의 욕망을 과감하게 담아낸 스릴러, ‘슈팅’


쉬운 심사는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심사는 있다. 시나리오의 우열을 가리는 작업에는 확실히 완성된 영화를 평가하는 것보다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다. 100분가량의 영상물로서 얼마나 매력적인지, 실제로 영화화 될 수 있는 작품인지 판단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의 발전 가능성까지 점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한경 신춘문예에는 참신한 아이디어, 탄탄한 구성력, 영상에 대한 깊은 이해도 등 저마다의 강점을 가진 120여 편의 시나리오가 출품되었다. 일정 수준의 완성도를 갖춘 수작들이 여러 편 눈에 띄었지만 심사위원들은 동시대의 이슈를 보다 날카롭게 관통하고 있는 작품에 손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올해 당선적인 유상 작가의 '슈팅'에는 영상을 찍기만 하면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서 인기 콘텐츠가 되는 수상한 스마트폰이 등장한다. 문제는 그 영상에 찍힌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슈팅'은 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게 된 인물의 아슬아슬한 행보와 커져가는 욕망, 윤리적 고민을 스릴러 장르의 외피를 빌어 담아낸 작품으로, 치밀한 심리 묘사와 흥미진진한 전개가 돋보인다.

최종 후보작으로 첫사랑의 기억과 SF적 요소를 결합시킨 '첫사랑은 죽었다', 치매에 걸린 전 판사가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그라나다의 기사들', 정조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를 다룬 사극 '천붕' 등이 있었다. 특히, '천붕'은 구성이나 대사에서 원숙함과 노련미가 느껴지는 작품으로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던 작품이다. 상업적 매력이 큰 작품이니만큼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영화라는 지난한 작업의 가장 의미 있는 걸음을 내디딘 모든 출품자들에게는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심사위원 : 김성환, 윤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