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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검은 고양이 / 최영동

 

전봇대 밑을

두리번거리는 그림자

그 속에서 발톱이 솟아올랐다


날카롭게 가다듬은 발톱에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아

등뼈는 어제보다 하늘로 솟구치고

뱃가죽은 전단지처럼 펄럭거리네


사방에 참치 캔이 구르고

살코기가 있던 자리

혓바닥보다 콧잔등이

먼저 파고들었어


살코기 한 점 남아있지 않은

오늘 저녁


지붕 너머로

번쩍

저녁을 낚아채려는

고양이의 앞발


솟아오르는 발톱에

걸려드는

생선 꼬리 같은




  <당선소감>


   "검은 고양이가 활보할 세상을 지켜봐 주세요"


정말이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하나도 생각나질 않았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앞뒤가 딱 끊긴 시점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제게 동시는 멀리서만 지켜보던 짝사랑 같은 존재입니다. 제 가장 안쪽의 시심을 적어 내려가면서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서랍 속에 그 마음을 오래 묵혀두었습니다. 잊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제 언어들은 동시 언저리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색깔의 어둠과 어깨동무 하며 지내왔지만, 올해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아픈 색깔의 어둠과 손잡고 지냈습니다.

얕은 바람만 불어도 자주 마음이 넘어지던 어릴 적 어느 날이었습니다. 혼자 무척 깜깜한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을 때였어요. 그때 부리나케 달려와 제 손을 꽉 잡아주셨던 아빠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터널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아빠는 울고 계셨습니다.

믿기지 않는 수상 소식을 듣고, 멍하니 앉아있는데 그때의 아빠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해봅니다. 올해 당신을 떠나보낸 자리가 한없이 크게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부족한 작품에 환하게 길을 내어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과 제 영혼의 고향과도 같은 한국일보사에 먼저 큰절을 올립니다.

아픔의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랑하는 엄마와 누나, 그리고 매형, 조카 루오에게 새해 선물을 바칠 수 있어 참으로 기쁩니다. 묵묵하게 곁을 지켜주고 계신 김재만 삼촌께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금 같은 조언으로 끝까지 동시를 쓸 수 있게 도와준 든든한 동료 작가 김성진 시인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어려움의 순간마다 거울이 되어주신 존경하는 동료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수없이 절 일으켜준 벗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절대고독의 시간마다 제 손을 꽉 잡아준 더없이 아름다운 나의 친구들. 절 지탱하게 해준 그 소중한 이름 앞에 제 모든 사랑의 마음을 바칩니다.

가장 여린 자리에서 가장 단단한 힘이 나온다는 걸 알려주신 사랑하는 나의 아빠, 보고 싶어요.

여기, 검은 고양이가 활보할 세상을 지켜봐 주세요. 앞으로 넘어지지 않겠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계속 넘어지더라도 제 언어의 힘을 믿고, 수많은 터널을 지나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 1981년 부산 출생
  ● 서강대 언론대학원 졸업
  ● 2019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


 

  <심사평>


  제도와 규정 너머의 강렬한 목소리


신종 전염병으로 달라진 일상을 꼬박 사계절 동안 지나오며 문학도 앞으로 달라질지 생각해보는 시절이다. 철저한 방역을 준수하느라 등교도 못한 어린이야말로 가장 많이 달라진 일상을 경험했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 아동문학은 무엇을 말해야 할지도 고민한다. 이 순간을 재현하고 위무하는 작품만큼이나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좀 더 너른 지평에서 바라보게 하는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응모작에서는 자신만의 언어로 새로운 동시를 만들어가려는 시도가 많이 보여 무엇보다 반가웠다. 그러한 태도라면 어린이와 만나고 나눌 이야기가 많아질 거라는 믿음이 들었다. 최근 동시가 획일화되는 경향에 대한 우려도 잠재울 만했다.

그런 기대를 안고 최종 논의한 작품은 '인디언', '초록을 되찾는 비법', '검은 고양이', '일기' 4편이었다. 먼저 '인디언'은 인디언 놀이를 통해 어린이의 현실 세계가 색다른 시공간으로 성큼 변화하는 가운데 어린이가 환상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장면을 한 권의 그림책처럼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외 작품에서는 이만한 즐거움을 찾거나 완성도를 담보하기 어려웠다. 이에 비해 '초록을 되찾는 비법'을 포함한 응모작은 큰 흠을 하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작품이 안정됐지만 독자의 마음에 가닿는 힘이 잘 보이지 않았다. 상상이 공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주시길, 모든 응모자께 아울러 부탁드린다.

'검은 고양이'와 '일기'는 어느 편을 내놓아도 신춘문예 당선작에 맞갖을 만한데다가 둘의 스타일이 너무나 달라 마지막에 이 두 작품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거듭했다. 제도와 규정 너머의 강렬한 목소리가 자신감 넘치는 '검은 고양이'와, 지적이고 세련된 감성으로 자기 성찰을 아름답게 그린 '일기' 모두, 우리 동시를 전복하고 확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검은 고양이'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묵직한 끌림으로 소통하는 지점이 좀 더 넓다 판단하고 당선작으로 정했다. 당선자께 큰 축하를 건네며, 복종에 길들여지지 않은 길고양이 같은 동시를 계속 만나길 기대한다. '일기'의 응모자 또한 ‘생생한 기억’ ‘잊혀진 친구’ ‘어지러운 기억’의 구체성을 어린이에게 말할 수 있을 때 어디서든 곧 만날 수 있으리라 바라본다.

 

심사위원 : 김개미,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