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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엄마의 꽃밭 / 김광희

 

종일 튀김솥 앞에 서서

오징어 감자 튀기는 엄마

밤늦게 팔에다 생감자 발라요.


그거 왜 발라?

예뻐지려고

웃으며 돌아앉아요.


얼마나 예뻐졌을까

곤히 잠든 엄마 팔 걷어 봐요.

양팔에 피어 있는 크고 작은 꽃들


튀김기름 튄 자리마다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

동생과 나를 키운 엄마의 꽃밭


팔뚝에 가만히 얼굴을 묻으면

아릿한 꽃향기에

눈이 촉촉해져요.




  <당선소감>


   "엄마 팔뚝에 남은 튀김꽃 그 꽃이 나를 만들었다"


우리 동네 이름은 쉰능골이다. 능이 오십 개라는 뜻이다. 그 능 속에 너는 있다고 한다. 너에게 가는 길은 어느 왕족의 무덤을 파는 일이라 어렵고 설레고 기대도 크다. 무덤 위에 무성하게 자란 나무며 풀뿌리들 잘라내고 조심스레 흙을 걷어내야 한다. 걷어내는 흙들은 네 모습을 쉬이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자꾸만 무너져 내려 제자리를 덮는다. 그럴수록 더 파보고 싶은 궁금증이 생긴다.

너는 너무 오래 잊히어 뼈도 없이 흙만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이미 누군가가 파내어 가버렸을 수도 있다. 그래도 쉬지 않고 파 내려가다 보면 귀걸이 한 쌍이나 자디잔 유리 목걸이 혹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색다른 왕관 같은 대작을 만날지도 모를 일.

더구나 나는 오래전 그 어느 왕족의 후손이라는 족보에 얹힌 이름 아닌가. 내 몸이 파낸 흙에 점점 묻히어 갈 무렵 겨우 그 관 뚜껑 앞에 이르렀다. 부디 네가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를 기대한다.

생전에 아버지는 문장이 되려면 한 우물을 파야 한다고 하셨다. 그 문장이라는 것이 익히 타인에게 배움을 주는 작가라는 뜻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엄마가 서른넷일 때 어린 사 남매가 딸린 과부로 만들었다.

종일 튀김솥 앞에서 팔뚝에 꽃밭을 가꾸던 엄마는 나에게 ‘문장이 밥 먹여주나 치워라’ 하셨다. 사십이 넘어서 다시 널 찾는 나에게 너는 아직도 엄마의 팔뚝에 채송화, 맨드라미, 봉숭아로 남아 나에게로 왔다. 엄마는 ‘잘 찔락거린다’고 하시면서도 눈시울을 붉히신다.

이 까끕증 나는 코로나 시대에 든든한 등을 내어주시고 더할 수 없는 영광을 주신 조선일보에 감사하고 선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허동인 선생님 생전에 제게 주신 숙제 이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편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함을 질러야 말귀를 알아들으시는 엄마 찐으로 사랑합니다. 나의 늑대 목도리 김일호 시인과 언제나 아이들에게 초롱초롱한 시선을 맞추는 내 딸 보람이, 4년 안에 헌혈 100번 채우는 것이 목표인 아들 도형이 고맙고 사랑한다.


  ● 1957년 경주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2006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 2016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심사평>


  엄마의 상처 가득한 팔뚝에서 사랑을 보았다


예년에 비해 발상이 새롭고 기법이 세련된 작품이 늘어나는 등 전반적으로 수준이 향상되었다. 소재도 다양해졌으며 특히 코로나19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점이 눈길을 끌었다. 대상을 동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발견을 보여주거나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생생한 동심을 건져 올린 작품들이 늘어난 것은 긍정적인 점이었다. 다만 아직도 머릿속으로 짜 맞춘 작위적인 작품들이 있어 아쉬움으로 남았다.

‘유리 어항’은 열대어를 기르게 된 가족들의 설렘과 기쁨을 깔끔하고 산뜻하게 표현했으나 비유가 너무 평범했다. ‘반짇고리 속 우리 가족’은 동시조로서 가족들의 특성을 바느질 도구에 비유하여 재미있게 표현하였으나 틀에 박힌 가족관이 흠이었다. ‘명탐정’은 동화적인 구성으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가는 솜씨가 돋보였지만 뚜렷한 메시지가 없어 아쉬웠다. ‘요술 지팡이’는 예사롭지 않은 시적 기량을 보여준 작품이었으나 아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탐정’과 ‘요술 지팡이’는 떨어뜨리기 아까운 작품들이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엄마의 꽃밭’은 잔잔한 감동의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종일 튀김솥에서 오징어 감자를 튀기느라 화상을 입은 팔뚝을 엄마의 꽃밭에 비유하여 엄마의 사랑과 헌신을 나타냈다. 아이들 앞에서 의연하게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엄마의 마음과 상처투성이 팔뚝에서 엄마의 뜨거운 사랑의 향기를 맡는 아이들의 마음을 짧고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으로 표현하였다.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과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는 엄마와 아이의 마음이 꽃밭처럼 어우러져 우리에게 아릿한 아픔과 함께 가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심사위원 : 이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