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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가짜 일등 / 소하연

 

나, 서현호로 말할 것 같으면 '런너킹' 세계의 최강 무법자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필코 일등을 거머쥐어야 하는 사람이니까!

'런너킹'은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달리기 시합 게임이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모여서 동화 속 마을을 달리는데, 일등이 나오는 순간 그 판은 끝이 난다.

나는 나보다 레벨이 높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최고 고수가 '운동화' 레벨인데, 나는 그중에서도 제일 높은 '금색 운동화' 레벨이다. 뭐, 잘난 척하는 건 아니지만 한 마디로 '왕'이나 다름없다는 거다. 하하.

하지만 게임 밖 현실에서의 나는 겨우 '신하' 밖에 못 된다. 바로 우리 반 최고 미녀 오윤지 공주님의 신하. 이상하게 나는 윤지에게만 눈길이 가고 윤지 목소리만 들린다. 윤지 뒤꽁무니를 몰래 따라다닌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윤지의 부탁이라면 백 번 만 번이라도 들어줄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윤지 옆에 눈엣가시 같은 녀석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그 녀석의 이름은 김준수. 이름과 달리 모든 면에서 '준수'하기보단 '평범'한 아이다. 얼굴도, 키도, 공부도 보통. 윤지가 왜 저런 아이와 친해지게 된 건지 진짜 이해가 안 간다.

나는 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윤지가 그 녀석한테 웃어주기라도 하면 용암처럼 화가 폭발하기도 하고.

'에잇! 저대로 뒀다간 윤지를 뺏겨 버릴지도 몰라!'

나는 윤지가 내게 홀딱 반하게 할 방법을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모르겠다. 내 생각에 나는 얼굴도 멋지고, 키도 이만하면 크고, 공부도 꽤 한다. 그러니까, 준수 녀석한테 꿇릴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때, 갑자기 내 머릿속에 '반짝'하고 작은 전구가 켜졌다.

"런너킹!"

내가 제일 자신 있는 바로 그것! '런너킹' 게임이 생각난 거다. 그러고 보니 윤지한테 내가 게임하는 모습은 보여준 적이 없었다. 나는 성큼성큼 윤지 자리로 걸어갔다.

"오윤지, 너 '런너킹' 게임 해?"

윤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아아, 그거? 아이디는 있는데 어려워서 잘은 못해. 제일 낮은 '슬리퍼' 레벨이거든."

나는 마음속으로 '앗싸!'를 외쳤다.

"나 그거 초고수야. 최고 높은 '금색 운동화'. 내가 이기는 방법 가르쳐줄까?"

"진짜?"

윤지가 까만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냈다. 나는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재수 없는 준수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어, 현호야! 그거 나도 가르쳐주면 안 돼? 그 게임,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

흥, 웃기는 자식. 어딜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려고? 재빨리 안 된다고 말하려는데 윤지가 나보다 먼저 대답했다.

"준수 너도 '런너킹' 알아? 잘됐다! 현호야, 우리한테 가르쳐 줘!"

"어? 어어……. "

나는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래 봬도 벌써 열한 살이나 먹은 사나이인데, 쪼잔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내 엄청난 실력으로 준수 녀석을 제치고 일등을 차지해야지. 그럼 윤지도 내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거다. 준수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방과 후, 우리는 각자 '런너킹'에 접속했다. 오늘 달릴 곳은 '백설 공주' 마을이다. 여기에는 비밀번호가 걸려있어서 우리 셋만 들어올 수 있다.

나는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기 전에 채팅 창으로 '필승 작전' 두 가지를 소개했다. 사실 준수를 골탕 먹일 나만의 '비밀 작전'이기도 했지만.

현호 : 런너킹을 잘하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면 돼. 아이템이랑 몸싸움.

윤지 : 우와! 두 가지만 알면 된단 말이지?

신나게 호응해주는 윤지 덕분에, 키보드 위 손가락이 솜사탕처럼 가벼워졌다.

현호 : 달리다 보면 길가에 아이템이 떨어져 있어. 모두 세 종류인데, 주워서 바로 써도 되고, 보관했다가 나중에 써도 돼. 우선 '날개' 아이템은 내 속도를 두 배로 올리는 거. '바나나 껍질' 아이템은 상대를 느리게 만드는 거. 마지막으로 '폭탄' 아이템은…….

나는 미리 숨겨 둔 '폭탄' 아이템을 준수 캐릭터를 향해 발사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준수 캐릭터가 꼬질꼬질한 폭탄 머리로 변했다. 이히히! 매일 깔끔하게 머리를 빗고 오는 준수를 생각하니, 지금 꼴이 아주 우스웠다.

현호 : 이렇게 변해버리니까 무조건 피하기!

준수 : 아이, 깜짝이야! 크크.

준수는 부러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어넘겼다. 하지만 사실 창피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을 거다. 나는 어깨가 한껏 올라간 채로 계속 키보드를 두드렸다.

현호 : 그다음은 몸싸움. 달리다가 상대방이 가까이 오잖아? 그때 재빨리 제트 키를 누르면…….

나는 준수 캐릭터 옆에서 제트 키를 다닥다닥 눌렀다. 그러자 내 캐릭터가 준수 캐릭터 어깨를 팍 밀쳤다. 준수 캐릭터는 맥없이 옆으로 나뒹굴었다. 후아! 엄청나게 통쾌했다. 게임에서만큼은 꼴 보기 싫은 준수를 마음껏 때릴 수 있으니까!

현호 : 이렇게 상대방을 쳐서 방해할 수 있어. 상대보다 내가 먼저 제트 키를 누르는 게 포인트!

윤지 : 오호, 이건 몰랐던 기술이네.

신기해하는 윤지와 달리, 준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주변만 살필 뿐. 훗, 모르긴 몰라도 좋아하는 윤지 앞에서 자존심 꽤 구겼을 거다. 윤지도 이쯤 되면 준수가 하찮아 보이겠지? 곧 당당히 일등을 차지할 나와 더욱 비교되어 보일 게 틀림없다.

현호 : 그럼 이제 진짜 게임을 시작해볼까?

준수 : 아, 그런데 있잖아…….

준수가 뒤늦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자식, 인제 와서 나랑 대결하는 게 두려워진 건가? 흥, 그래도 어림없지!

"삼, 이, 일. 준비, 출발!"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빠르게 위쪽 화살표 키를 눌렀다. 내 캐릭터가 '휘이잉'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앞을 향해 달렸다. 이때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김준수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일등을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윽고 모퉁이가 나왔다. 나는 재빨리 오른쪽 화살표 키를 눌렀다. 내 캐릭터는 여유롭게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끔 장애물이 튀어나왔지만, 피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점프 기능이 있는 스페이스 키를 가볍게 눌러주면 되니까.

그런데, 순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윤지와 준수 캐릭터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캐릭터가 길 한복판에 우뚝 멈춰 섰다.

"얘네 왜 안 오지? 설마 길이라도 잃었나?"

나 혼자 너무 빨리 달렸나 싶어 조금 기다려도 봤다. 하지만 둘은 여전히 보일 기미가 없었다. 나는 마우스 커서를 채팅창으로 옮겼다.

현호 : 얘들아, 너희 대체 뭐해?

그러자 윤지가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윤지 : 현호야! 준수가 아까 그랬잖아. 달리기 전에 여기 '백설 공주' 마을 좀 구경하자고. 너 채팅창 못 봤어?

나는 뿅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달리는 데만 집중하느라 잠시 채팅창 보는 걸 깜빡한 거다.

준수 : 게임 속 마을이 너무 예뻐서 말이야. 달리기만 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못 보고 지나치잖아. 더군다나 윤지가 제일 좋아하는 '백설 공주' 마을인데.

준수는 한껏 다정한 말투로 윤지에게 말을 건넸다.

준수 : 윤지야, 저기 일곱 난쟁이가 쓰는 침대도 있어!

윤지 : 진짜? 완전 귀엽겠다. 준수야, 얼른 같이 가보자!

가슴 속에서 화가 폭죽처럼 펑펑 터졌다. 에잇! 준수 녀석 때문에 내 완벽했던 계획이 전부 엉망이 돼버렸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출발선으로 발을 옮겼다. 더 이상 둘만 가까워지게 내버려 둘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둘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계속 조잘조잘 대화를 주고받았다.

준수 : 여기 백설 공주 옷도 있네? 이 빨간 머리띠, 윤지 너한테 참 잘 어울리겠다.

윤지 : 어머, 정말? 준수야, 어떻게 이런 걸 찾아냈어?

몇 분 후, 나는 다시 출발선 근처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준수와 윤지는 이미 내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다.

준수 : 천천히 걷다 보면 달릴 때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보여. 우리 다른 데도 한 번 가볼까?

윤지 : 응, 그럼 이번엔 오른쪽으로 가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윤지는 내가 아니라 준수 녀석에게 이미 홀딱 빠져버린 것 같았다. 왜 둘이서만 노냐고 따져볼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냥 그만두었다. 이미 둘 사이엔 내가 끼어들 틈조차 없는 것 같아서. 나는 하릴없이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동안 게임 속에 있는지도 몰랐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꽃과 나무,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나비, 정답게 지저귀는 파랑새. 일곱 난쟁이의 아기자기한 통나무집과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도 보였다.

"와, 신기하다. 그저 시합 장소라고만 생각한 곳이었는데……."

대체 난 왜 몰랐을까? 게임 속에 이렇게 예쁜 것들이 많았다는 걸. '공주'로 불리는 윤지가 좋아할 만한 게 가득했다는 걸. 혹시 내가 미리 알아챘더라면, 지금 윤지 옆엔 준수가 아닌 내가 있었을까?

"아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넋 놓고 마을을 바라보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눈물을 꾹 삼키고 키보드 위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출발선을 등지고 보관해 두었던 '날개' 아이템을 눌렀다. 내 캐릭터가 바람 같은 속도로 앞을 향해 달렸다. 그러자 마을의 풍경이 안개처럼 뭉개지며 빠르게 내 옆을 스쳐 갔다. 꽃과 나무, 나비와 파랑새도 전부 사라져버렸다.

왜 두 사람에게서 다시 멀어져 버렸냐고? 이제 둘 사이를 떨어뜨릴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바로 일등을 해서 이번 판을 완전히 끝내 버리는 것. 그러면 윤지와 준수, 둘만의 데이트도 끝나 버릴 거다.

이윽고 나는 순식간에 결승선을 넘었다. 화면에는 경쾌한 나팔 소리와 함께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일등을 축하합니다!'

평소라면 좋아서 방방 뛰었을 텐데, 이번만은 그러지 못했다. 게다가 준수는 삼등. 그러니까 '꼴등' 자리에 이름이 올랐다. 맞다. 우리 셋의 등수만큼은 내가 계획한 것과 똑같았다.

하지만……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난 이 게임의 '진짜' 일등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때론, 꼴등이 일등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보고 듣고, 훨씬 더 중요한 걸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준수가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챈 걸까? 채팅창으로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준수 : 현호야! 다음 판에는 너도 같이 구경할 거지?

그래! 나 서현호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을 거다. 언젠가 우리 반 최고 미녀, 오윤지 공주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 거다. 무늬만 일등인 '가짜' 일등이 아니라, 내게 가장 소중한 것, 그러니까 '오윤지의 사랑'을 차지하는 '진짜' 일등이 되겠다는 말이다. 뭐……. 그러기 위해선 준수 녀석한테 미리 한 수 배워둬야 하겠지만.

나는 다시 어깨를 쭉 펴곤, 씩씩하게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다.

현호 : 당연하지! 이번엔 나도 같이 가자.




  <당선소감>


   "한 글자 한 글자 진심 담는 작가 되겠다"


열한 살의 여름을 기억합니다. 무더위를 잊을 만큼 책에 빠져 살았습니다. 책 속에서 정글로, 바다로 모험을 했고 새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친구를 사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울고, 신나는 상상을 하다가 다짐했습니다. 언젠가 나도 이렇게 재밌는 이야길 써야지 하고요.

고맙게도 열한 살 그 아이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수십 번의 시험과 네 번의 졸업, 두 번의 이직을 겪고 나서도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동화를 쓰기 시작한 후로 참 행복했습니다. 동트는 새벽까지 밤을 새우기도, 밥 먹는 걸 까먹기도 할 정도로 즐거웠습니다. 물론 한 글자도 쓰지 못하겠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열한 살 그 아이가 찾아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했지만, 한편으론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두려움과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아이들 마음에 진한 여운을 남길 이야기꽃을 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배우고 성장하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열한 살 그 아이의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꽃의 씨앗을 발견해 주신 김재원, 정해왕 선생님, 함께 흙을 날라준 글벗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따스한 햇볕처럼 절 보듬어주는 부모님과 여동생 사랑합니다. 언제나 옆에서 함께 비를 맞아주는 준 늘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숙한 글을 뽑아주신 임지형 작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격려의 뜻으로 삼고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을 담을 줄 아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 실명: 소지연
  ● 서울 출생
  ● 성균관대 국문과 졸업

 

  <심사평>


  주변 풍경 돌아보는 이야기 공감


언택트라는 신조어가 느닷없이 우리 삶을 지배했지만 그 누구도 저항할 수가 없었던 한 해였다. 그러는 중에도 살아야했고 살아있으므로 매년 거행하는 신춘문예 심사에 임했다. 그리고 약간 글 쓰는 사람으로서는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로 삶의 양태가 극명하게 바뀌었고 아이들 삶의 풍속도도 바뀌었으니 그와 관련 된 동화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아니, 오히려 쏠림현상이 나올까 약간 우려한 바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101편이 되는 작품 속에서 삼분의 2가 우화였다. 보통 우화는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말은 풍자하거나 교훈을 드러낼 주제가 확실히 드러나야 좋은 글일 수 있기에 자칫 방심하면 재미도 의미도 없이 흘러 보낼 수 있다는 거다. 실제 보내져온 작품들은 거의 그랬다.

나머지 작품 또한 실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의 치매, 아빠의 부재, 엄마의 가출 등으로 생긴 이야기인데, 이건 십년 전부터 다룬 질리고 질린 소재들이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세기의 획을 그을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골동품 같은 소재만 다루고 있다? 이건 작가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안이한 태도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역사적인 것과 골동품 같은 고리타분한 건 구분 지었으면 한다.

그러한 이유로 본심에서 다룬 작품은 세 편이다. '침대늘보 일냈다' '비밀놀이평가단', '가짜일등'등이다.

우선 '침대늘보 일냈다'는 침대와 일체형으로 사는 늘보 같은 아빠가 휴직을 하면서 좌충우돌 주인공 아이와 부딪히는 이야기를 다뤘다. 늘 직장일로 아이들과 온전한 일상을 보내지 못한 아빠의 반성문 같은 이야기인데 초점이 지나치게 아빠에게 맞춰져 있어 먼저 제외 시켰다.

'비밀놀이평가단'은 제목도 그렇고 이야기 시작도 아이다운 시선이 깔려 있어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작품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고, 자칫 잘 못 보면 주인공이 마음을 심하게 앓고 있는 아이로 비쳐질 우려도 보였다.

'가짜일등'은 좋아하는 여자 친구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게임 속에서 경쟁 상대의 친구를 코를 납작하게 만들려다 이겼지만 실패한 이야기다. 이기겠다는 맹목적인 마음만 앞서 진짜 좋아하는 아이와 어떻게 놀아야 제대로 노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달아가는 이야기다. 다만 게임하면서 주변 풍경을 돌아보는 이야기는 어른의 시각이 담겨 있는 듯 작위적이었지만 전체 이야기를 해칠 정도가 아니라 당선작으로 뽑았다.

어떤 심사평을 보니 '함께, 더 공부하자!' 란 말이 있었다. 끝으로 이 말을 하고 싶다. 이젠 정말 더 공부해야 한다. 안이하게 십 년 전에나 다룰 법한 소재를 가지고 아이들이 재밌게 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시대가 이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기에 시대상을 다루지 않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이야기를 다룰 때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라 믿는다.

당선자에겐 축하를 이번 기회를 놓친 분들에겐 건투를 빈다.

 

심사위원 : 임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