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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소년범 / 임형섭

 

-줄거리

수빈(15.여)은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 밑에서 자란 중학생 소녀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 아빠가 재혼하는 바람에 엄마한테 보내졌고, 그렇게 10년 만에 만난 엄마와 별문제 없이 1년을 보냈다. 그런데 이삿날 아침 엄마가 사라지고 만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날 밤 일터에 나갔던 엄마가 돌아오지 않았다. 수빈은 부리나케 엄마가 일하던 식당을 찾지만, 엄마는 식당을 관둔 지 며칠 됐다는 것과 남자친구와 살림을 합치려 했다는 것만 알게 된 채 돌아온다. 수빈은 마지막 남은 희망을 품고 엄마의 남자 친구 집을 찾는다.

수빈은 엄마의 남자친구 집을 찾아가지만, 엄마는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잘 곳을 찾아 헤매다 인근 주차장을 찾았고, 거기서 가출팸을 만나게 된다. 허기에 지친 수빈은 가출팸의 설득에 할 수 없이 조건 사기를 함께 하기로 한다. 조건 사기의 방법은 이랬다. 수빈이 채팅 사이트에서 만난 남자와 모텔로 향하고 방 호수를 알려주면, 잠시 뒤 가출팸 무리가 방으로 쳐들어와 남자를 제압하고 협박하는 식이었다. 이들은 조건사기에 성공했고, 성 매수 남성에게 뜯어낸 돈으로 오래간만에 포식을 하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가출팸이 차를 훔치고 고깃집을 털었던 예전 범행이 뉴스를 타고 전국에 방송된다. 가출팸은 잠잠해질 때 까지 당분간 조용히 지내기로 한다. 한편 성 매수남에게 납치되어 폐 공장에 감금되었던 은수는 기지를 발휘해 도망쳐 나오는 데 성공한다.

신 형사(37.남)는 여러 번 범죄 청소년들을 검거한 실적이 있는 베테랑 형사다. 신 형사는 탐문수사를 하며 가출팸을 검거하기 위해 몰두하며 수사망을 좁혀간다. 그런데 조용히 지내기로 했던 가출팸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진다. 결국 리더였던 싸패와 꼴도가 떠나고 동생격인 지단과 당뇨 수빈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수빈과 지단, 당뇨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자기들끼리 조건 사기를 계획한다. 그런데 성 매수남이 중국산 비아그라를 잘못 먹고 숨지고 만다. 형사들은 모텔의 CCTV를 통해 동일한 가출팸의 소행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절도, 강도에 이어 살인까지 저지른 가출 팸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검거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떨어진다. 신 형사는 가출 팸과 찢어졌던 꼴도를 유인해 잡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나머지 가출팸 아이들이 서울을 떠나기 위해 터미널 대합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형사들이 버스터미널로 출동해 수색을 펼친다. 눈치가 빠른 지단과 당뇨는 터미널 밖으로 도망쳤지만, 수빈은 그만 차고지로 도망치고 말았다. 한편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기력을 회복한 은수는 경찰서에 출두해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담담히 진술한다. 자신을 차에 태워 어디론가 끌고 가던 남자가 이동 중에 뺑소니 사고를 쳤고, 피해자의 소지품까지 훔쳤다는 것 까지. 은수의 진술 속의 성 매수 남이자 뺑소니 범은 다름 아닌 신 형사였고, 뺑소니 피해자는 수빈의 엄마였다.

신 형사는 숨어있던 수빈을 찾아내 체포한다. 하지만 끝까지 반항하는 수빈을 짓밟고 총구마저 겨눈다. 이때 싸패가 아이들과 함께 차를 몰고 와 신 형사를 향해 돌진해 수빈을 가까스로 구해낸다. 이후 신 형사는 뺑소니 범으로 구속되고, 가출 팸 아이들은 서울을 떠난다.


1. 모텔촌 / 밤


좁고 어둑한 뒷골목.


가출팸 아이들이 일렬로 골목을 꽉 채운 채 걸어간다.

사내아이들은, 방망이와 쇠파이프로 애먼 벽과 땅을 탕탕 내리치고

홍일점 은수(15)는 미니스커트가 자꾸 말려 올라가 신경이 쓰인다.

모텔촌 초입으로 이어지는 골목 끝에 다다르자 아이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돈다.


은수 빨리 와. 저번처럼 늦지 마.

지단 키 받으면 바로 문자 보내. 10분 뒤에 들어갈게.

은수 10분 늦어.

당뇨 그럼 9분 59초.


은수, 장난스러운 당뇨를 째려본다.


싸패 (침을 퉤 뱉으며) 뭐해 빨리 안 가?


은수, 기분이 상해 건너편으로 홱 걸어간다.

은수가 멀어지자 싸패, 아이들에게 말한다.


싸패 바로 안 들어간다. 끝나고 들어가.

싸패 말에 놀란 아이들, 잠시 머뭇거린다.

꼴도 그게 뭔 말이야? 끝나고 들어간다니?

싸패 이따가 들어간다고.


CUT TO 모텔촌 초입


건너편 모텔촌 입구에 홀로 서 있는 은수

진한 색조 화장을 했지만 누가 봐도 앳된 얼굴이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자 화장이 지워질까 두 손으로 챙을 만든다


CUT TO 골목


사내아이들의 말다툼이 커지고 있다.

꼴도 그러다 씹창 나면? 니가 책임질 거야?

싸패 니가 쟤 남친이야? 뭐야?

꼴도 돈 몇 푼이나 더 뜯겠다고... 싸이코 새끼.

싸패 뭐?

싸패, 꼴도를 벽으로 밀쳐낸다. 하지만 지지 않고 덤벼대는 꼴도.


CUT TO 모텔촌 초입


비상등을 켠 흰색 차가 은수 앞에 멈춘다.

조수석 창문이 약간 내려간다.

은수, 입술을 깨물곤 무리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던지지만...

조수석 창문이 마저 내려간다.


은수 이동 안 해요. 차 가져온다고 안 하셨잖아요.


제법 굵어진 빗방울이 은수의 머리를 적신다.


CUT TO 골목


싸패와 꼴도가 옥신각신 하는 사이

지단,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타는 은수를 본다.

차는 꼬리만 남긴 채 큰길가로 빠져나간다.

지단, 당황해 눈으로만 차를 쫓으며 ‘어. 어. 어.’ 소리만 낼 뿐.

싸패,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재빨리 큰 길가로 뒤쫓아 간다.

하지만 차는 보이지 않고... 빗방울만 더 굵어진다.

급히 택시를 잡아보지만...

각목을 들고 있는 아이들 앞에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싸패, 각목을 집어 던지고 4차선 도로 중간까지 나와 택시 하나를 겨우 세운다.


2. 수빈의 집 골목 / 밤


수빈(15)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외투를 걸치고 엄마를 기다린다.

유난히 까맣고 큰 눈망울에는

그 나잇대 아이들이 몰라도 되는 슬픔과 고단함이 엿보인다.

기다리던 문자 알람에 핸드폰을 확인하지만, 엄마가 아니다.


‘야 걸레. 오늘 뭐냐. 뭐 좆같은 년들? 뒤지고 싶냐? 내일 보자. 쌍년 디졌어.’


타이틀. 소년범


3. 수빈의 집 / 아침


방 두 칸짜리 오래된 다세대 주택.

누런 벽지들 사이로 가구가 놓여있던 자리만 하얗게 표시가 남아있다.

거실 바닥 여기저기 이삿짐 박스들이 입을 벌린 채 어지러이 놓여있고

막 샤워를 마친 수빈이 박스를 넘나들며 등교 준비를 서두른다.

머리를 말리던 수빈,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건넛방으로 총총 향한다.

건넛방 엄마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

엄마가 깨지 않게 수빈, 까치발로 도로 나온다.

등교 준비를 마친 수빈,

식탁 위 엄마 가방 속에서 후레쉬를 꺼낸다.

그리고 자신의 가방에 달려있던 슈퍼맨 펜던트를 떼어 끝에 매단다.

슈퍼맨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수빈이 만족스러운 듯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다.


반지층에서 수빈이 나온다.

수빈은 계단에 천하장사 쏘시지를 조금씩 떼어 흩뿌린다.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온다.


4. 중학교 교실 / 오전


수업 중인데도 핸드폰을 하거나 거울을 펴놓고 화장을 하는 아이들.

그것도 아니면 담요를 뒤집어쓰고 대놓고 자는 아이들까지.

난장판이 따로 없다.

50대 중반으로 접어든 권선생, 잠시 바라만 볼 뿐 아무런 제지도 관심도 없다.


교실 끝 구석 자리, 수빈이 단잠에 빠져있다.

일진들이 몇 번 툭툭 건드려도 깨지 않자 귀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일진 야 걸레!


수빈이 깜짝 놀라 깬다.

일진들, 키득키득 거리며 천 원짜리 몇 장을 던진다.

그리고 빵과 우유 과자의 이름을 줄줄이 댄다.

수빈, 잠시 고민하더니 소리 나게 의자를 뒤로 끌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쇠가 끌리는 마찰음에 모두가 수빈을 집중한다.


수빈 씨발 좆같은 년들.


수빈은 그 길로 교실 밖으로 나간다.


권선생, 칠판을 가볍게 두드리곤 다시 수업을 이어간다.


5. 학교 옥상 / 오후


수빈, 그늘에 누워 스마트 폰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키득거린다.

담배를 피러 올라온 권선생 수빈과 눈을 마주친다.


권선생 잘 참더니만.


수빈 ...


권선생 괜찮겠어?


수빈 오늘 전학가요.


권선생 그래서 개겼구나. 잘했어.


수빈 (피식)...


권선생 근데 애들이 왜 괴롭히는 거야?


수빈 선생님은 왜 혼자 밥 먹어요?


권선생 그래... 잘 살아라.


6. 수빈의 집 / 저녁 - 밤


수빈, 머리를 질끈 묶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짐들을 야무지게 하나둘 박스에 넣는다.


장롱 안을 열어 정리하다 맘에 드는 옷을 발견했는지 슬쩍 대본다.


수빈, 어느새 엄마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선다.


옷이 한참 크다.


어느새 밖은 어두워졌다.


수빈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시계는 벌써 밤 열 시 가리키고,


아까부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문자를 보내자 잠시 후 답장이 온다.


‘응 이제 곧 들어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


7. 강력계 사무실 / 밤


대충 씻은 신형사가 슬리퍼를 질질 끌며 자리로 돌아온다.


옆자리, 강형사가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대현과 씨름 중이다.


강형사 여기 보면 니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성매매 시켰다고 적혀있어. 맞아 아니야?


대현 I don't understand Korean. I'll talk to my lawyer.


(저는 한국어를 못 해요. 제 변호사와 얘기하겠습니다.)


강형사 대기업 회장님이시네. 애들 숫자 봐라. 도대체 몇 명이냐 이게.


대현 I can't get this treatment.


(저는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없어요.)


강형사 야. 한국말 몰라? 한국말로 해!


대현 Please call an interpreter.


(통역 불러주세요.)


강형사, 대현이 내뱉은 영어를 못 알아듣곤


얼굴만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다.


옆자리에서 로션을 바르던 신형사가 끼어든다.


신형사 너 같은 애들은 뭐라고 하는 줄 알아? 한국에서 응?


대현, 신형사와 눈을 마주친다.


신형사 궁금해?


대현의 눈이 깜박인다.


신형사 알려줄까?


신형사, 씨익 웃자 어금니 안쪽에 금니가 보인다.


신형사 이 새끼 한국말 알아듣네. 알아듣는다. 얘


한편 반장은 등진 채 뉴스 시청 중이다.


앳돼 보이는 아이들 대여섯 명이 50대 남성을 구석으로 몰아


무차별 폭행하는 장면이 CCTV 영상으로 나온다.


아이들은 50대 남성을 구석에 몰아 두들겨 패고 쓰러지면 세워서 다시 때렸다.


50대 남성은 자식뻘도 안 되는 아이들에게


반항 한번 제대로 못 한 채 무참하게 폭행당한다.


앵커는 ‘미성년자인 이들은 채팅 앱을 통해 성매매를 제안한 뒤


현장에 급습하는 수법으로 폭행 및 금품을 갈취하는’ 조건 사기라고 설명한다.


이어서 전문가는 ‘청소년들의 범행 수위가 도를 지나쳐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지만,


근본 원인부터 해결해야 한다.’ 고 말한다.


신형사 먼저 갑니다.


반장 (여전히 TV에 향한 채) 손님 받을 시간이야. 어딜 가.


신형사 애인 만나러.


반장 애인도 없는 게...


 


8. 수빈의 집 골목 / 밤


 


수빈(15)이 골목에서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 옷을 입었는지 외투 끝자락이 무릎까지 내려온다.


기다리던 문자 알람에 핸드폰을 확인하지만,


엄마가 아니다.


 


‘걸레. 오늘 뭐냐. 뭐 씨발 좆같은 년들? 뒤지고 싶냐? 내일 등교해서 보자. 쌍년아 디졌어.’


 


수빈, 콧방귀를 뀌며 문자를 삭제한다.


 


9. 수빈의 집 / 아침


 


수빈의 집 앞에서 울고 있는 길고양이.


 


거실에서 이삿짐 박스에 기대자던 수빈이 고양이 울음소리에 깬다.


반사적으로 시계를 보면 일곱 시다.


‘엄마’를 부르며 넓지도 않은 집 안을 뒤지지만.


엄마는 밤새 들어오지 않았다.


수빈은 순간 울컥 눈물이 솟구쳐 오른다.


 


10. 거리 / 아침


 


수빈, 전속력으로 어디론가 뛰어간다.


이마에 쉴 새 없이 땀이 흘러내리고.


또래 교복 차림의 아이들은 등교를 서두르는 중이다.


 


11. 24시 설렁탕 식당 / 아침


 


수빈이 도착한 곳은 내부가 꽤 큰 24시 설렁탕 가게.


아침이지만 손님들이 제법 자리를 채우고 있다.


수빈, 안을 둘러보더니 주방으로 향한다.


장사 준비로 분주한 틈에서 아는 얼굴을 찾는 수빈.


다행히 주방 이모가 먼저 알아본다.


 


주방이모 수빈이 아냐? 무슨 일이야?


수빈 저기 어제 엄마가 안 들어와서요.


오늘 이사 가는데.


주방이모 다시 말해봐. 차근차근.


수빈 그러니까. 어제 엄마가 일 끝나고 아직도 안 들어왔어요.


집에요.


주방이모, 뭔가 생각한다.


 


주방이모 수빈아. 엄마. 그만둔 지 좀 됐는데? 이사 간다고.


수빈 네?


 


주방이모, 수빈을 안쓰러운 듯 쳐다본다.


수빈 아닌데요. 어제 가게 갔다가 일찍 들어온다고.


주방이모 그러지 말고 일단 집에 가 있어. 더 엇갈릴라. 어서.


 


12. 수빈의 집 내외 / 오전


 


수빈, 다시 집으로 향한다.


다행히 대문 너머 짐을 옮기는 인기척이 들려온다.


반가움과 안도감에 ‘엄마’를 외치며


집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간다.


하지만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박스를 옮기고 있다.


수빈 엄마는요?


이삿짐 ...


 


수빈, 연신 ‘아이씨’와 ‘엄마’를 내뱉으며


집 안을 뒤지지만... 엄마는 없다.


도로 집을 나와 향한 곳은 2층 주인집.


몇 번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자 세게 두드린다.


입술에 필러를 맞은 주인집노모가 나온다.


 


수빈 아줌마 혹시 엄마랑 연락되셨나요?


 


CUT TO 수빈의 집


 


주인집노모, 수빈의 집 안을 휘이 돌아보더니


상황을 파악한 눈치다. 흔들리는 식탁 다리를 만진다.


 


수빈 이사 조금만 미룰 수 있나요?


 


주인집노모, 미간에 잔뜩 인상을 쓴 채 다시 흔들거리는 식탁 다리를 확인한다.


 


주인집 이거 옵션인데.


수빈 엄마 있다가 오실 것 같아요.


주인집 유난히 상냥하게 굴길래 이상했는데. 내뺐네.


수빈 아닌데요. 엄마 올 건데요.


주인집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수빈 네?


주인집 아빠한테 가야지. 아빠랑 살다가 넘어왔다며...


 


주인집노모, 신경질적으로 집 밖으로 나선다.


나가면서 ‘괜히 애는 싸질러서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는 못된 말들을 내뱉는다.


수빈이 자리에 푹 주저앉는다.


 


13. 수빈의 집 옥상 / 오전


 


어느새 이삿짐이 옥상 한쪽에 쌓여있다.


고맙게도 이삿짐 아저씨가 옥상에 짐을 옮겨줬다.


그 옆에 수빈, 고개를 숙인 채 땅만 찰 뿐.


 


이삿짐 오류동으로 간다고 했어.


수빈 네? 오류동이요?


이삿짐 응. 주소까지는 모르고. 오류동이라고만.


수빈 거기가 어디에요?


이삿짐 그러지 말고. 아빠한테 전화해 봐.


수빈 여기서 멀어요?


이삿짐 멀지는 않은데.


 


수빈,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다.


이삿짐 아저씨도 더 말하려다 그만둔다.


그리고 수빈을 가엽다는 듯이 바라본다.


멀리 다음 세입자 용달차가 골목으로 들어온다.


 


14. 주택가 골목길 / 오전


 


세입자의 이사가 진행되고.


수빈, 먼발치서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다시 핸드폰을 확인하지만, 엄마에게 회신 된 전화는 없다.


문자를 다시 보낸다.


 


‘엄마. 제발요. 꼭이요.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사랑해요’


 


그리고 문자를 보내려는데 전화가 걸려온다.


수빈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수빈 여보세요?


(엄마친구) 아직도 연락 없니?


수빈 아. 네.


(엄마친구) 이거 웬일이니. 큰일이네. 이거 어쩌냐.


수빈 괜찮아요. 오시겠죠.


(엄마친구) 너 혹시. 엄마 남자친구 번호 알아?


수빈 남자친구요?


(엄마친구) 실은 엄마가 남자친구랑 살림을 합치려고 했었어. 몰랐지?


수빈 그런 얘기 안 했는데...


(엄마친구) 번호를 모르는데. 어쩌지.


수빈 ...


(엄마친구) 언니 고삼만 아니면 아줌마 집에 와 있어도 되는데.


수빈 아니에요. 괜찮아요.


(엄마친구) 아. 맞다 내비게이션 뒤져보면 주소 남아있겠다.


기다려봐. 오류동 어디인 것 같았는데.


 


알 수 없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수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침에 찾아왔던 길고양이가 담벼락에서 수빈을 빤히 쳐다본다.


 


수빈, 시간이 꽤 지나 어둑해졌지만. 여전히 같은 자리다.


마실을 나오던 주인집노모가 수빈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그제야 눈치를 보며 자리를 떠나는 수빈.


자리를 떠나면서도 뒤돌아 집을 바라본다.


 


15. 지하철 / 밤


 


막차를 탄 사람들이 듬성듬성 개찰구를 빠져나온다.


녹초가 된 사람들 틈으로 수빈이 몰래 개찰구를 뛰어넘는다.


 


전광판에 오류동행 마지막 열차가 전 역을 출발했다는 알람이 울린다.


수빈, 다시 핸드폰을 꺼내 엄마의 연락을 확인해보지만,


여전히 아무 연락도 없다.


아까 보내려던 문자 창에서 사랑한다고 쓴 부부만 지운 뒤 보낸다.


열차가 도착하고 무거운 몸을 싣는다.


지하철이 출발한다.


 


텅 빈 열차 안에 수빈이 홀로 자리에 앉아있다.


 


16. 모텔1, 아지트 / 아침


 


인스턴트 봉지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는 싸구려 모텔.


쌓아놓은 빨래 사이로


가출팸 아이들, 싸패, 꼴도, 지단, 당뇨가 서로 뒤엉켜 자고 있다.


시끄러운 모텔 전화벨 소리에 깬 싸패, 비몽사몽인 상태로 전화를 받는다.


오늘까지 방세를 내라는 소리다.


 


싸패, 공금부터 확인한다. 삼만 원 남짓 남았다.


‘휴.’ 찌그러진 담뱃갑을 확인하지만 빈 곽들뿐이다.


 


지단 (누워서 기지개를 켜며) 담배 없어?


싸패 알바비는 어떻게 됐어?


지단 부모님 모시고 오래. 개새끼가. 그래야 주겠대. 가출한 거 알면서.


싸패 오늘 사장한테 다시 가야겠다.


지단 그 새끼 보니까. 처음부터 줄 생각 없었어. 개새끼가 나 발로 찼다니까.


싸패 내일부터 우리 노숙해야 돼.


지단 밖에서 자면 안 되는데.


싸패 왜?


지단 밖은 위험해.


싸패 (피식) 미친놈. 애들 깨워. 씻는다.


지단 형 근데 은수는 살아있겠지?


누워서 둘의 대화를 엿듣던 꼴도와 당뇨의 눈이 깜박인다.


 


17. 폐공장 / 아침


 


인적이 끊긴 교외의 폐공장.


출입문은 시뻘건 녹이 슬었고,


한 쪽에 엉켜 버려져있는 노란 폴리스 라인 뭉치도 보인다.


폐공장 내부 어디선가 희미한 고함소리가 들린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폐공장 내 지하 보일러실.


겨우 몸 하나 뉘일 크기의 개장 안에 갇혀 있는 은수.


 


은수 사람 살려! 여기요! 밖에 아무도 없어요?


 


은수, 개장의 펜스를 죽을힘을 다해 흔들어 보지만, 소용없다.


폐공장 밖. 은수의 희미한 고함소리가 서서히 잦아든다.


 


18. 보험사 사무실 / 오전


 


깡마른 체구에 흰 머리가 수북한 중년의 박 부장(52),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직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다가와 뭐라고 속삭이자


시선이 급히 입구로 향하고.


가출팸 아이들이 유리창에 김을 불어넣고 발기된 성기를 그리고 있다.


 


19. 지하 주차장 / 오전


 


박 부장이 자신의 구형 SUV에 올라타자


뒤이어 가출팸도 덩달아 차에 오른다.


박 부장, 상기된 얼굴로 언성을 높인다.


 


박부장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어떡해? 어! 지난번에 약속했잖아!


 


박 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싸패의 주먹이 날아간다.


머리가 쿵 하고 운전석 창문에 찧을 정도의 펀치다.


박 부장,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얼굴을 움켜쥔다.


코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진다.


도망가려고 손잡이를 당기지만 싸패에게 붙잡힌다.


 


싸패 합의금.


박부장 뭔 합의금? 현금 서비스 풀로 받아서 줬잖아.


지단 아직 합의가 들 됐어.


 


박 부장, 몸을 돌려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본다.


 


박부장 환장하네. 진짜.


당뇨 아저씨 오늘 아침에 뭐 먹었어? 뭐 먹었냐고?


싸패 그건 왜 물어봐?


당뇨 잠깐만 있어 봐. 아침에 뭐 먹었어?


박부장 아침 안 먹어.


 


당황한 당뇨.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아이들의 짜증난 표정.


 


당뇨 그럼 점심은?


지단 (당뇨에게) 아씨. 500으로 쇼부 보죠. 엠창.


 


지단, 핸드폰 속 은수와 함께 찍은 박 부장의 나체 사진을 꺼낸다.


박 부장, 자신의 흉측한 나체 사진을 보곤 미간을 찌푸린다.


 


박부장 500?


 


박 부장, 지갑을 꺼내 텅 빈 속을 보여준다.


지갑에 천 원짜리 몇 장이 전부다.


 


박부장 전 재산이 5,000이야. 마이너스 5,000.


 


20. 아파트 복도 / 오전


 


수빈, 길게 뻗은 아파트 복도 한쪽에 쭈그려 자고 있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릴 때마다


반사적으로 선잠에서 깨지만 이내 곯아떨어진다.


출근하던 이웃집 부부, 수빈을 보곤


‘누군데 밤새 저러고 있느냐며’ 수군댄다.


잠시 뒤 경비가 다가와 수빈을 쏘아본다.


 


경비 얘!


 


수빈, 깜짝 놀라 잠에서 깬다.


하지만 오죽이나 피곤한지 다시 잠들고 만다.


경비, 화가 난 표정으로 수빈을 일으켜 세운다.


 


21. 오류동 거리 / 오전


 


수빈, 퀭한 눈으로 번화가 여기저기를 정처 없이 쏘다닌다.


그러다가도 엄마 나잇대 사람들이 지나치면 유심히 살펴보지만...


엄마일 리 없다. 정신없이 그렇게 걷고 또 걷는다.


 


22. 지하 주차장 / 오전


 


박 부장의 SUV가 굉음을 내며 급출발을 하더니


이내 기둥을 ‘꽝’ 들이박는다.


박 부장, 앞 범퍼가 잔뜩 찌그러진 자신의 차를 보며 어이 상실.


운전석에 앉은 싸패가 창으로 고개를 빼고는


 


싸패 후진이 뭐에요?


박부장 뭐?


 


아이들, 후진을 묻는 싸패를 보며 아연실색한 표정이다.


 


꼴도 후진 몰라?


지단 차 몰아봤다며?


싸패 카트.


당뇨 카트? 나 잘못 들은 거임?


싸패 구라야. 일부러 박은 거야.


지단 형. 개털 같은데. 그만 가자.


싸패 잡아. 한 번 더 박는다. 이래도 배 째는지 함 보자.


싸패, 일부러 앞 라인에 주차된 차를 한 번 더 꽝! 박는다.


주차장 안에 경보음이 울리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차 안의 아이들은 범퍼카를 탄 듯 흔들거린다.


박 부장, 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박부장 (힘없이) 알.


 


23. 도로 / 오전


 


SUV가 도로로 진입한다.


거북이 마냥 기어가는 바람에 여기저기 경적을 울려대고.


뒤로 긴 줄이 이어진다.


아이들은 차창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싸패의 운전을 돕는다.


 


지단 속도 좀 올려야 되는 거 아니야?


꼴도 아냐. 안전운전. 안전운전.


 


차 한 대가 추월하면서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해댄다.


하지만 그것까지 받아칠 여유가 없다.


 


지단 길은 알아?


당뇨 길은 다 통하게 돼 있어.


지단 차 그냥 버리고 가자. 우리 이거 필요해?


싸패 필요하지... 않을까?


꼴도 운전하는데 말 좀 걸지 마.


 


그런데 난데없이 와이퍼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싸패가 이것저것 만지다 와이퍼 속도만 올리고 만다.


 


싸패 아이 씨발 진짜.


 


아이들도 덩달아 애꿎은 와이퍼에 대고 괜한 화풀이를 해댄다.


 


24. 수빈의 집 / 오후


 


신형사, 수빈의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수빈 엄마의 신분증 뒤에 적힌 주소지를 다시 확인하곤


빼꼼히 안을 살핀다.


앞마당에 아직 정리하지 못한 이삿짐들.


신형사 대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인기척을 살피지만 아무도 없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른다.


옥상도 마찬가지로 이삿짐들이 쌓여있다.


신형사,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짐들을 훔쳐본다.


짐들 사이로 보이는 수빈 모녀의 사진.


그때 누군가 올라온다.


 


주인집 누가 이렇게 도둑고양이 마냥 인사도 없이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신형사, 수빈 모녀의 사진을 내려놓는다.


 


CUT TO


 


주인집노모, 가느다란 담배를 한 대 꺼내 불을 붙인다.


 


주인집 아랫집 여자가 글쎄 이삿날 도망갔잖아.


 


신형사, 다시 사진을 살핀다.


 


주인집 그 여자야. 옆에는 딸이고. 짐은 내가 일주일만 보관해준다고 했어요.


괜히 그랬나. 찾을 수 있겠어요?


신형사 누굴? 이 여자를요? 왜요?


주인집 형사가 그거 하나 못 찾아요?


신형사 못 찾는 게 아니고요.


주인집 그럼 뭐 안 찾는 거야? 저 짐은 어쩌라고?


 


신형사, 허공에 대고 피식 웃는다.


 


25. 고깃집 앞 / 오후


 


투명한 유리창으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고깃집.


고깃집 앞 노상 주차장에 잔뜩 찌그러진 SUV가 대충 주차되어있고


그 옆으로 아이들이 뭔가 꿍꿍이를 벌이고 있다.


지단, 접이식 문의 핸들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만능키를 열쇠 홈에 맞추려는데 영 아귀가 안 맞는다.


당뇨는 가게 입구의 CCTV가 영 신경 쓰이는지 자꾸 쳐다본다.


 


당뇨 (CCTV를 가리키며) 저거 작동 안 하는 거 확실해?


지단 아 씨 몇 번을 말해. 저거 모형이라고. 내가 사 왔다고!


 


홈에 겨우 키를 맞물려 돌리는데


그만 키가 부러져 안에 박히고 만다.


 


지단 아 씨. 인생.


 


꼴도가 답답한 마음에 유리창을 발로 차자


접이식 문이 살짝 흔들린다.


 


꼴도 어? 달려와서 발로 찰까?


싸패 일단 차에 타.


 


아이들, 아쉬운 표정으로 차에 올라탄다.


싸패, 시동을 걸더니 갑자기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는다.


차는 잠시 헛바퀴를 돌더니 그대로 문을 들이박고


안으로 돌진해 홀 안까지 들어간다.


충격으로 공중으로 반쯤 붕 뜬 아이들,


차체 지붕에 부딪히며 고꾸라진다.


아이들, 눈앞에 벌어진 광경이 믿어지지 않는다.


싸패가 먼저 차에서 내려 주방으로 향한다.


아이들도 비틀거리며 뒤따른다.


하이에나처럼 음식을 찾는 아이들.


밥통을 열어보지만, 안에는 밥 한 톨 없이 깨끗이 설거지가 되어 있다.


반찬 함도 열어보지만 모두 비어 있다.


지단이 냉장고를 연다.


그런데 냉장고 역시 깨끗이 비어 있다.


 


싸패 뭐야?


지단 왜 아무것도 없지? 있을 텐데.


 


당황한 아이들.


이때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 소리.


사람들이 하나둘 씩 몰려들더니 수군거리며 안을 살핀다.


가게 안으로 돌진한 SUV 차를 보며 깜짝 놀란다.


 


싸패 야야 차에 타. 어서.


 


아이들은 다시 부리나케 차에 탄다.


싸패가 시동을 걸고 다시 몰지만,


홀 깊숙이 차를 밀어 넣고 만다.


꼴도 알! 알!


싸패 알아! 알!


 


밖으로 나가려고 씨름을 하지만


이리 빼고 저리 빼다 차는 점점 더 갇히고 만다.


 


26. 오류동 거리 / 오후


 


초등학생 아이가 닭꼬치를 들고 학원을 향해 부리나케 가고 있다.


지근거리에서 쫓아가는 수빈.


수빈은 아이가 들고 있는 닭꼬치를 매의 눈으로 바라본다.


아이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닭꼬치가 사라진다.


 


CUT TO 골목길


 


수빈, 급하게 먹었던 닭꼬치를 모두 토해내고 만다.


 


27. 도로 / 오후


 


여기저기 들이박아 한눈에 보기에도 흉측한 SUV가 도로 위를 달린다.


반나절 사이 폐차 직전이 돼버렸지만


이제는 제법 다른 차들과 속도를 맞춘다.


 


아이들은 허옇게 질린 채 안전띠를 메고 손잡이에 매달려 있다.


싸패가 한 손으로 운전석 여기저기를 뒤진다.


조수석의 꼴도, 이런 싸패가 신경 쓰인다.


싸패, 글러브박스를 열어보라고 가리키고


꼴도, 안에서 뭔가를 발견한다.


 


싸패 저거 뭐야?


 


꼴도가 주머니를 살피면, 동전 지갑이다.


꽤 묵직하다.


뒷좌석에 앉은 지단과 당뇨도 몸을 일으켜 동전을 확인하곤 소리를 지른다.


 


CUT TO


 


꼴도가 동전을 세고 있다.


 


꼴도 12,000원. 12,500원. 13,000원.


 


돈이 카운트될 때마다 아이들은 탄성을 지른다.


 


싸패 당뇨 뭐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거 말해.


당뇨 그러면 나는 음... 뷔페.


 


당뇨의 살아있는 발음에 아이들은 오래간만에 웃음을 되찾는다.


싸패, 잠시 한눈판 사이 사람이 시야에 등장한다!


 


지단 사람!!!


 


지단, 놀라 소리를 빽! 지르고 싸패가 뒤늦게 속도를 늦추지만...


차는 길게 스키드 마크를 그린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눈을 돌린다.


 


꼴도 씨발 뭐야. 쳤어?


싸패 아. 진짜.


 


싸패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밖을 보면.


보도에 서서 무슨 일인지 구경하는 사람들.


눈이 반쯤 풀린 수빈이 시야에 등장하더니


죄송하다며 꾸벅 인사를 하곤 횡단보도를 마저 건넌다.


싸패, 멀어지는 수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28. 아파트 복도 / 오후


 


수빈, 엄마 남자친구 집을 다시 찾는다.


초인종을 누르지만 역시나 안에서 대답이 없다.


혹시나 해서 대문에 귀를 대보지만 마찬가지.


 


CUT TO


 


수빈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반대편 손에 든 등기 우편물.


김우빈이라는 낯선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신호음이 길어지다 끊길 때쯤 전화가 연결된다.


 


수빈 여보세요? 저.


(김우빈) (묵직한 저음)누구세요?


수빈 저기.


(김우빈) 누구냐니깐.


수빈 우리 엄마가 윤가영이에요.


(김우빈) 근데?


수빈 우리 엄마랑 같이 있어요?


(김우빈) ...


수빈 엄마 좀 바꿔주세요.


(김우빈) ...


수빈 제발요.


 


하지만 전화는 툭 끊긴다.


수빈, 다시 전화를 걸지만 수신 거부 메시지가 돌아온다.


 


29. 공용 주차장 / 오후


 


철거 예정의 공용 주차장.


관리를 멈춘 차들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이중 삼중으로 주차되어있다.


구석 자리에 어슷 주차한 SUV.


차 안, 아이들의 분위기가 냉랭하다.


 


꼴도 오늘 진짜 에바 오지게 쌌다.


싸패 재밌잖아.


꼴도 재밌어? 이게?


지단 우리가 나쁜 애들은 아니잖아.


당뇨 나쁜 애들 맞아.


꼴도 떡관종 새끼.


싸패 야. 보라돌이. 꼴도.


꼴도 왜? 싸패.


싸패 너 이씨. 뭐 그렇게 불만충이야? 처맞기 싫으면 아닥해.


꼴도 처!


싸패 아가리 여물어라.


꼴도 치라고 씨발.


싸패 여물라고 했다.


 


사나이들의 불꽃 튀는 전쟁이 시작되려고 한다.


뒷좌석에 앉은 지단과 당뇨가 둘 사이를 가른다.


스파크가 일기 직전


 


지단 미친년이다.


 


멀리 주차장 입구로 들어서는 수빈.


수빈, 터덜터덜 들어와 구석 자리에 푹 주저앉는다.


 


겁에 질린 수빈의 새까만 눈동자.


가출팸 아이들이 동그랗게 수빈을 에워싸고,


수빈은 초식동물처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수빈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당뇨 너스레를 떨려 다가간다.


 


당뇨 우리 나쁜 애들 아니야.


 


하지만 수빈의 경계는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다.


당뇨가 한 걸음 더 다가가자 수빈, 두 걸음 도망친다.


 


지단 놀라잖아. 나도 너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어.


당뇨 나도 너 보고 깜짝 놀랐거든. 대머리 무엇?


지단 처음에 너 뚱뚱한 여잔 줄 알았어. 유방 무엇?


싸패 (당뇨와 지단을 보며) 씨발것들아.


수빈 ...


싸패 어때?


수빈 ...


싸패 모텔에서 지내고 있고. (당뇨를 보며) 잘 챙겨 먹는 편이고.


 


수빈, 아이들 틈을 쏜살같이 후다닥 도망쳐 나간다.


/

 


30. 파출소 / 오후


 


수빈이 파출소 앞에서 머뭇거리자,


잠시 뒤 담배를 피우던 순경이 다가간다.


 


CUT TO 파출소 안


 


순경이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아. 네. 네. 네.’


수빈,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순경의 대화를 살핀다.


전화를 마친 순경이 잠시 수빈을 쳐다보곤


 


순경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수빈 중학교 때요.


순경 마저 얘기해볼래?


수빈 중학교 올라갈 때 재혼 하셨어요.


그래서 고모 집에 가게 됐는데. 거기서 좀 일들이 있어가지고.


그때 엄마랑 연락이 돼서 같이 살게 된 거에요.


순경 그럼 네 살 때 이후로 엄마를 처음 본 거야?


수빈 네. 근데요 엄마가 처음부터 저를 키우려고 했는데.


할아버지 반대가 심해서 키울 수 없던 거래요. 그리고 정말 착하세요.


순경 아빠 연락처는?


수빈 ...


순경 괜찮아. 지금 당장 갈 데가 없잖아. 어제도 밖에서 잤다며?


수빈 그건 좀.


순경 걱정하지 마. 잘 해결될 거야.


수빈 그 남자는 뭐래요?


순경 엄마 모른다는데.


수빈 거짓말이에요.


순경 최근에 이사 왔대. 그래도 다 조사하고 할 거야. 걱정하지 마. 그건.


 


31. 거리 / 저녁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지만,


아이들의 옷차림은 한여름이다.


반소매 티에 반바지, 거기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거리를 배회한다.


앞줄에는 싸패와 당뇨, 뒷줄에는 꼴도와 지단이 건들거리며 걷는다.


싸패와 꼴도의 신경전이 덜 끝난 모양인지


앞줄과 뒷줄의 간격이 꽤 된다.


 


지단 (작게) 참아. 싸패 형 성격 알잖아.


 


꼴도는 긴 한숨으로 화를 누른다.


 


32. 분식집 / 저녁


 


분식집 구석 자리.


네 덩치가 작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있다.


여전히 싸한 분위기.


싸패와 꼴도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외면한다.


당뇨가 이런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당뇨 삶은 달걀 먹을 사람? 달걀?


지단 아이씨. 핵노잼이야.


.


지단, 장난을 눈치 채고 인상을 쓰지만


당뇨, 지단의 얼굴을 확 잡아당긴다.


그리고 정수리 부근의 원형탈모를 형들에게 보여준다.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땜빵이 마치 삶은 달걀 같다.


 


당뇨 오졌다리.


 


지단, 이런 장난이 싫은지 몸부림을 치다


당뇨의 뺨을 때린다.


분위기는 더 살벌해지고 만다.


 


CUT TO


 


주문했던 김밥과 라면을 말없이 주섬주섬 먹는 아이들.


그런데 김밥을 먹던 당뇨의 속도가 점점 줄어든다.


당뇨의 시선이 창밖에 걸려있다.


창밖의 수빈, 김밥이모가 마는 김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당뇨 미친년이다.


 


CUT TO


 


어느새 합석한 수빈, 김밥과 라면을 미친 듯이 흡입한다.


아이들은 그저 수빈이 먹는 것만 바라본다.


당뇨가 본능적으로 젓가락을 집자 지단이 막는다.


수빈, 라면 국물까지 모두 비운다.


그리고 처음으로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싸패 나온 지는?


수빈 가출한 거 아니에요.


싸패 그럼?


수빈 가출한 적은 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아이들 ...


수빈 개인적인 사정이 좀 있어서.


당뇨 밥은 먹었는데 배가 부른 건 아니에요.


지단 몇 살이야?


당뇨 머리는 빠졌는데. 달걀은 아니에요.


지단 어그로 좀 끌지 마. 니 문제가 뭔지 알아?


당뇨 니 문제는 알아.


지단 니 문제부터 얘기해볼까?


당뇨 아니. 나 지금 바쁜데.


지단 안 바쁜 거 아는데?


당뇨 아니 밖이 바쁜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싸패, 답답한지 한숨만 내쉰다.


 


꼴도 갑뿐싸.


수빈 열다섯이요. 돌림빵 사절이고 조건 안 해요.


싸패 콜!


 


33. 폐공장 내 보일러실 / 밤


 


허겁지겁 밥을 먹는 은수.


좁은 개장 안에서 엎드린 채로 손으로 정체모를 밥을 먹는다.


이런 은수를 개장 밖에서 바라보는 누군가.


누군가, 발걸음을 돌리려하자, 은수가 애원한다.


 


은수 저기요. 제발요. 살려주세요. 아무한테도 말 안할게요.


누군가 ...


은수 어차피 얘기할 사람도 없어요. 엄마는 죽었고요.


아빠는 재혼해서 관심도 없어요. 네?


 


누군가, 피식 웃고는 마저 나가려 한다.


 


은수 개새끼야. 차라리 죽여. 살인마 새끼야.


 


은수의 말에 누군가, 발걸음을 돌려 은수에게 다가간다.


공장안에 퍼지는 은수의 신음소리.


 


34. 강력계 사무실 / 밤


 


SUV가 고깃집을 박살내는 블랙박스 영상.


조금 멀리서 찍힌 영상이다.


차는 가게 안을 말끔히 박살을 내고 난 뒤에 빠져나온다.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차가 급하게 나오자 소리를 지르며 흩어진다.


컴퓨터 모니터로 영상을 보던 신형사,


보는 내내 놀라 자신도 모르게 움찔한다.


 


신형사 뭐예요?


 


반장, 동영상의 처음 부분, 아이들이 가게 앞에 모여 있던 장면으로 돌린다.


 


반장 얘네 알아?


 


신형사,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살피지만


거리가 멀고 사람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반장 옆에 앉은 고깃집 사장이 말문을 연다.


 


사장 가출한 애들이에요.


신형사 안에 사람은 없었죠?


사장 네. 좀 번다고 동네 소문나니까. 마가 끼네요.


피크 딱 찍고 영업정지 먹었어요.


미성년자 애들한테 술 팔았다고. 근데 그게 뭔지 아세요?


 


반장과 신형사, 고깃집 사장을 본다.


 


사장 옆 가게에서 애들 시켜서 일부러 술 팔게 만든 거예요. 썅년들.


반장 여기 형사가 애들 전문이에요.


신형사 애들은 행동반경이 넓지 않아서 금방 잡힙니다.


사장 쟤네 애들 아니에요.


반장 네?


사장 악마에요. 악마.


 


 


35. 공중 화장실 / 밤


 


수빈, 세수를 하곤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곤 생긋 웃는다.


그리고 앱 채팅창을 다시 확인한다.


‘지금 15’ 라는 채팅방 안에서 성매수남(남산)과 수빈의 대화다.


 


남산 : 하이 지금 만날 수 있나요?


수빈 : 위치랑 나이요.


남산 : 여의도 45. 깔끔한 스탈 매너 있어요.


수빈 : 여기 오류동이욤.


남산 : 님 조건하고 싸이즈는요.


수빈 : 154 / 45 / 질싸 얼싸 입싸 후장 이동 X / 1시간 13, 3시간 25.


남산 : 콜. 라인 아이디 wlsgus2. 먼저 대화 거삼.


 


 


36. 모텔촌 / 밤


 


오프닝에 소개된 골목에 무리 지어 있는 수빈과 가출팸.


꼴도만 떨어져 혼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운다.


 


싸패 먼저 씻으라고 말해.


화장실 들어가면 그때 문자로 방 호수 보내면 돼. 끝이야.


지단 그리고 문 살짝만 열어두고. 우리 들어가야 되니까.


수빈 먼저 씻으라고 하면요?


당뇨 씻었다고 해.


싸패 아이씨. 당뇨 넌 좀 닥쳐 씨발 돼지련야.


 


당뇨, ‘맨날 나한테만 뭐라 한다’고 입이 나온다.


 


지단 화장실 들어가서 문자 보내. 샤워기 틀어놓고.


 


수빈, 머릿속으로 동선을 정리한다.


 


수빈 그럼 문은요?


지단 우리가 문을 막 두드릴게. 그러면 눈치껏 열어줘.


 


수빈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수빈 만약에.


싸패 걱정하지 마.


수빈 연락 안 되면?


싸패 그런 적 없어.


 


꼴도가 소리 나게 침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37. 모텔촌 입구 / 밤


 


멀끔한 양복 차림의 40대 후반의 남산, 수빈을 기다린다.


남산, 긴장했는지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른다.


잠시 뒤 수빈이 다가가 꾸벅 인사를 한다.


남산, 앳된 수빈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놀라는 눈치다.


 


남산 진짜 몇 살?


수빈 열다섯이요.


 


‘아.’ 짧게 감탄사를 내뱉곤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는지 인상을 쓴다.


수빈이 돌아서자 남산, 손목을 붙잡는다.


 


CUT TO 모텔 모퉁이


 


남산, 담배를 하나 물고 수빈에게 권한다.


 


남산 담배 펴?


수빈 아니요.


남산 많이 해봤어?


수빈 ...


남산 존내 까져가지고. 씨. 초등학생인 줄 알았어. 넌 좀 작다.


수빈 아닌데요.


남산 성깔은 좀 있네? 카운터 안 보이게 서. 오빠 뒤에.


 


남산, 신이 났는지 담배를 쭉 한번 빨고는 장초를 그대로 버린다.


남산, 모텔 후문으로 들어가고 수빈이 뒤따른다.


 


건너편 골목에서 은폐하던 아이들이 키를 세운다.


그리고 방망이며 각목, 벽돌 등 장비를 들고


모텔 후문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38. 모텔 로비


 


남산, 현금을 꺼내 카운터에 밀어 넣는다.


뒤에 비켜선 수빈의 옷자락이 슬쩍 보인다.


누가 봐도 애들 입는 옷을 입었지만, 키를 건넨다.


수빈, 키에 적힌 방 호수 704호를 눈에 담는다.


 


 


39. 모텔 밖 / 밤


 


싸패, 남산이 버린 담배를 주워 핀다.


당뇨는 야구방망이로 허공을 가르며 바람 소리를 냈고


지단은 문자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꼴도 어쩔 거야?


 


꼴도의 물음에 다들 시선이 싸패로 향한다.


 


꼴도 이따 들어갈 거냐고? 어?


 


40. 모텔 엘리베이터


 


남산, 가슴팍에도 오지 않는 수빈을 음흉하게 쳐다본다.


수빈은 양 손을 주머니 넣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이런 수빈을 보고 웃음을 흘리는 남산.


남산의 손이 기습적으로 수빈의 가슴팍으로 들어온다.


 


남산 생리 중이라고 했지?


수빈 (놀라) 네?


 


수빈이 당황해 빤히 쳐다본다.


 


남산 아니야?


 


수빈, 눈이 휘둥그레진다.


 


남산 아. 다른 애랑 헷갈렸어.


 


수빈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만다.


 


남산 괜찮아. 해도 상관없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어둡고 침침한 모텔 복도 끝 방으로 향한다.


수빈, 주머니 속에서 꽉 쥐고 있던 핸드폰을 꺼낸다.


손은 땀으로 축축해져 있다.


 


41. 모텔 방 / 밤


 


침대에 벌러덩 눕는 남산.


수빈이 현관에 붙어 머뭇거리자 다가오라고 손짓한다.


그리고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침대 맡에 올려놓는다.


수빈이 주머니 속 핸드폰을 다시 한번 꼭 쥔다.


 


수빈 먼저 씻으세요.


남산 씻고 나왔어.


 


남산, 누운 채로 셔츠를 벗기 시작한다.


셔츠를 벗자 허연 살덩이들이 출렁이며 드러난다.


러닝셔츠 위로 지저분하게 풍성한 가슴 털.


 


수빈 그럼 저 씻을게요.


 


42. 모텔 입구 / 밤


 


수빈의 연락이 없자 아이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지단은 긴장해서 그런지 다리를 엑스자로 엄청나게 꼬아댄다.


 


꼴도 그냥 들어가자.


 


꼴도, 방망이를 들고 모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싸패, 꼴도의 옷자락을 세게 잡아당긴다.


 


43. 모텔 화장실


 


세면대의 물이 틀어진 채로 수빈,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보낸다.


‘704호’를 보내려는 순간, 벌컥 화장실 문이 열리더니


남산, 알몸으로 들어온다.


수빈 화들짝 놀라 ‘아!’ 하고 소리를 지르고 핸드폰을 떨어뜨린다.


남산, 알몸으로 변기에 소변을 본다.


졸졸졸. 세찬 소변 소리.


수빈은 몸을 돌린 채 눈을 찔끔 감는다.


소변이 핸드폰 위로 튄다.


남산, 떨어진 핸드폰을 보더니


 


남산 뭐 했어?


 


수빈, 이제 죽었구나 하는 표정.


 


수빈 네?


남산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수빈은 잘못한 아이마냥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겨우 참는다.


 


수빈 죄송해요.


 


남산, 핸드폰을 줍는다.


 


남산 옷도 안 벗고.


 


남산, 핸드폰을 쓰윽 보더니 세면대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수빈을 손목을 잡고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수빈이 발버둥을 치지만 역부족이다.


 


남산 지금부터 한 시간이다.


 


남산, 한 손으로 수빈의 양팔을 붙잡고 실랑이를 벌인다.


수빈의 바지가 벗겨지고. 수빈, 반항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수빈 저 갈래요. 죄송해요.


 


수빈의 윗옷도 마저 벗기려고 하지만 쉽지 않자 뺨을 철썩 한 대 때린다.


 


수빈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안 할래요.


 


수빈, 겁에 질려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남산 울지 마. 죄책감 들어.


 


남산이 수빈의 윗옷을 마저 벗긴다.


 


44. 폐공장 내 보일러실 / 밤


 


개장 안에 죽은 듯 누워있는 은수.


얼굴과 팔 여기저기에 시커먼 멍이 보인다.


누군가, 개장을 발로 세게 차지만, 은수는 아무런 미동이 없다.


누군가, 자물쇠를 열고 개장 문을 조심히 연다.


그리고 은수의 목에 손을 대고 맥박을 확인하는데...


눈을 부릅뜬 은수.


은수, 누군가의 손을 있는 힘껏 깨문다.


 


45. 모텔방 / 밤


 


밖에서 들리는 쿵쾅거리는 소리.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울리는 초인종 소리.


남산,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 챈다.


밖에서는 방문을 두드리다 못해 방망이로 부수려는 모양이다.


 


수빈 옷 입으세요.


 


남산 급하게 속옷을 입기 시작한다.


그사이 수빈, 윗옷을 들곤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연다.


문을 열자 아이들은 수빈을 밀치고 우르르 들어온다.


아이들과 같이 올라 온 카운터 직원,


수빈과 알몸의 남산을 번갈아 보고는 좆 됐다는 표정.


바지를 반쯤 입은 남산,


사내아이들 넷이 달려들자 놀라 자빠지고.


다시 일어나 도망가려 하지만...


아이들이 각목으로 패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깊은 곳에서 올라온 분노는 쉽게 사그라질 줄 모른다.


남산, 그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머리를 감싸 쥐는 것 말고는 아무런 대응을 못 한다.


 


CUT TO


 


침대에 걸터앉은 아이들 앞에 남산이 무릎을 꿇고 있다.


백곰 같았던 남산의 몸 여기저기


까맣고 빨갛고 퍼런 멍들이 물들어 있다.


지갑을 뒤지던 지단이 명함을 꺼내 이름을 부른다.


 


지단 법무사 안진수.


남산 한 번만 봐주세요. 잘못했어요.


싸패 어떻게 봐줄까?


당뇨 가로로 봐줄까? 세로로 봐줄까? 아니면.


남산 진짜 한 번만 봐주시면 진짜 앞으론 착하게 살게요.


당뇨 알빠야? 맘대로 사세요.


지단 근데 둘이 묘하게 닮았다.


 


남산과 당뇨 순간 서로 눈이 마주친다.


그 사이 꼴도는 핸드폰에서 남산 가족사진을 확인한다.


두 딸을 둔 아빠다.


 


꼴도 니 딸한테 전화 걸어.


남산 아. 실제론 안 했어요. 진짜에요. 못하겠더라고요.


 


싸패는 남산 귀에 뭐라 뭐라 귓속말을 건넨다.


남산, 고개를 떨구고 눈을 질끔 감는다.


 


CUT TO


 


싸패와 당뇨가 남산의 양쪽 팔을 잡고 지단이 바지와 팬티를 벗긴다.


팬티를 벗기니 살에 파묻힌 새끼손가락만 한 성기가 드러난다.


 


꼴도 이거 실화냐?


싸패 기형인 거 같은데?


지단 살쪄서 그래. 당뇨도 저래.


당뇨 아니라고 씨발놈아.


 


남산, 모욕감에 그만 눈물을 쏟는다.


싸패가 아까부터 현관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던 수빈을 부른다.


 


싸패 일루와 서.


 


수빈은 벌거벗은 남산 앞에 서서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남산,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수빈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꼴도 하나둘 셋 참치.


 


46. 은행 ATM / 밤


 


아이들, ATM기에 들어간 남산을 기다린다.


수빈은 여전히 멀찍이 떨어진 채 겉돈다.


 


꼴도 근데 법무사가 뭐지?


지단 공인중개사. 부동산 주인.


당뇨 아냐. 법. 법이니까. 판사 같은 거 아니야?


싸패 와꾸 봐라. 판사 와꾼가.


지단 형이 판사랑 좀 친하잖아.


 


싸패가 지단의 헤드락을 걸고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신이 났다.


 


지단 근데 아까 귓속말로 뭐라고 한 거야?


싸패 지금 딸 치면 봐준다고.


 


싸패의 말에 아이들이 폭소를 터뜨린다.


꼴도, 혼자 떨어져 있는 수빈 곁으로 다가간다.


 


꼴도 괜찮아?


수빈 네.


꼴도 이제 말 놔. 놀랬지?


 


수빈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괜찮다고 고개를 흔든다.


그 사이 남산, 돈을 빼서 싸패에게 두툼한 돈뭉치를 건넨다.


500만 원이다.


아이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남산 지워야죠.


 


지단이 자신의 핸드폰에서 아까 찍은 남자의 나체사진을 지운다.


 


남산 볼게요.


 


남산, 핸드폰 여기저기를 확인한다.


 


남산 이제 볼일 없겠죠?


싸패 근데 요새 원룸 보증금 얼마 정도 해요?


남산 ...


 


47. 폐공장 밖 / 밤


 


죽을힘을 다해 폐공장을 뛰어나오는 은수.


맨발로 수풀을 헤치며 민가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수풀만 끝없이 이어져 있고...


빛 한 점 보이지 않는다.


미친 듯이 사력을 다해 뛴다.


눈물이 터져 나온다.


 


48. 보험 회사 로비 / 오후


 


강형사, 로비 한쪽 대리석으로 만든 아기천사 조각상을 보고 있다.


날개를 단 아기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


깁스를 한 신형사 도착하면


 


강형사 다치셨어요?


신형사 인대 한번 늘어나니까 잘 안 낫네.


강형사 보살펴줄 사람도 없잖아요. 조심하세요.


신형사 자기는 뭐 보살펴줄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하네...


애 엄마한테는 연락 와?


강형사 희한하게 그 여자 모성애가 없어요. 그 여자랑 그 여자 친구들 다.


 


그 사이 박 부장이 회사 로비로 터덜터덜 나온다.


강형사, 먼저 다가가 가볍게 목례를 한다.


 


강형사 일전에 통화했던 강형석 형사입니다.


박부장 네. 제가 계속 바빠서.


강형사 애들 확인 좀 해주시겠어요?


 


박 부장, 출력한 가출팸 사진을 보지만


누군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신형사, 박 부장 얼굴 여기저기에 난 상처들과 멍을 유심히 살핀다.


 


신형사 애들하고 무슨 사이에요?


박부장 네? 무슨 사이라뇨?


신형사 얘네들이 왜 선생님 차를 타고 다니느냐고요.


박부장 글쎄요. 저야 모르죠.


신형사 도난신고는 왜 늦었어요?


박부장 저는 피해자에요.


강형사 선생님이 도와주셔야 2차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박부장 제가 요새 좀 몸도 안 좋고. 여러 가지로. 힘들어요.


 


49. 백화점 / 오후


 


개시 전의 백화점 레스토랑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의 티셔츠에 까맣게 진 얼룩, 샌들 차림 때문에 마치 이방인 같다.


유니폼을 입은 안내 직원,


아이들을 경계하며 힐끗힐끗 쳐다보다 당뇨와 눈이 마주친다.


당뇨가 이때다 싶어 직원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흠칫 놀라 몸을 뒤로 빼는 직원.


 


당뇨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면 안 되나요?


간곡히 부탁 좀 드릴게요.


직원 네?


 


아이들은 ‘백화점에서 클라스 있게 굴라며’


당뇨를 구석으로 끌고 다구리를 시작한다.


당뇨의 목을 비틀고 머리를 발로 차는가 하면


샌들을 벗어 뺨을 때리기도 한다.


당뇨가 아프다고 고함을 지르자 층 안에 울린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집단 폭행인 줄 알고 가던 길을 멈추고 쳐다보기도 한다.


안내 직원이 안 되겠는지 구석으로 다가간다.


 


 


50. 뷔페 몽타주 / 낮-밤


 


빠른 비트의 신나는 힙합 음악이 선행하며


 


-직원이 구석 자리로 안내한다.


-아이들, 직원을 따라가다 말고 셀프바로 향해 음식을 담기 시작한다.


-접시 가득 고기를 가득 담은 당뇨. 다른 손에 잡채와 초밥을 가득 담았다.


-수빈, 케?弱빵부터 담는다. 여러 빛깔의 조각 케익을 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이들이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두 접시 세 접시. 테이블 한쪽에 접시가 쌓여가고.


-직원들은 끝도 없이 먹어대는 아이들을 훔쳐본다.


-직원이 눈치를 주며 그릇을 치우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


-탕수육이 떨어졌다며 직원을 부르는 당뇨.


-또다시 쌓여가는 접시들.


-아이들의 먹는 속도가 느려졌지만, 여전히 접시는 쌓여간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장난치는 아이들. 사람들이 아이들을 피한다.


-백화점 밖으로 나온 아이들.


-골목 한쪽에서 토를 하는 지단. 그래도 표정은 밝다.


-집중하는 싸패, 인형 뽑기를 한다. 삼발이가 인형을 물고 배출구로 이동한다.


-긴장하는 아이들의 표정. 인형이 다행히 배출구로 떨어진다. 환호성을 지른다.


-싸패가 인형을 수빈에게 건넨다. 수빈은 마시멜로 인형을 껴안고 행복해한다.


 


51. 편의점 / 밤


 


편의점 테라스에 자리를 잡은 아이들.


테이블 위에는 라면과 소시지 과자들이 한가득이다.


아이들은 각자의 캔 맥주를 들고 건배를 한다.


꼴도만 콜라를 들고 있다.


꿀꺽꿀꺽. 아이들은 단숨에 한 캔을 다 비우고 다음 캔을 딴다.


싸패, 거창한 트림 소리와 함께 뭉칫돈을 꼴도 앞에 놓는다.


 


꼴도 뭐야?


싸패 공금. 원래 니가 관리하기로 했었잖아.


 


꼴도,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당뇨 뽀뽀해! 뽀뽀해!


 


꼴도와 싸패 둘다 피식 웃고 만다.


 


수빈 헐 대박...


 


수빈의 시선을 따라가면


‘겁 없는 10대들의 일탈’이라는 제목으로


SUV 차량이 가게를 돌진하는 영상이 편의점 전광판 뉴스를 통해 나오고 있다.


뉴스 속에서 자신들의 범행을 확인하는 아이들.


‘가출 청소년들이 차를 훔쳐 대낮에 강도를 벌이는 장면입니다.


다행히 가게 안에 사람이 없어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경찰은 인근 가출청소년들을 탐문수사하며.’


테이블 위의 컵라면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52. 주택가 골목 / 밤


녹색으로 염색을 바꾼 대현이 담배를 물고 주택가 언덕을 올라간다.


그런데 어디선가 돌멩이가 날아와 얼굴에 맞는다.


 


대현 Fuck!


(젠장!)


 


대현이 돌이 날아온 쪽을 본다.


어둠 속에서 다시 돌이 날아와 대현의 얼굴을 맞춘다.


어둠 속을 천천히 살피면 신형사가 앉아 있다.


대현, 메고 있던 가방을 신형사에게 던지곤 부리나케 도망간다.


 


CUT TO


 


신형사와 대현 바닥에 주저앉아있다.


대현,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얼굴이 시뻘겋다.


신형사 특별사면의 조건이 뭐였어?


대현 Violence cannot be justified.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어요.)


신형사 전화 바로 받고 시키는 거 딱 하고. 그게 어려워?


대현 Korea is an incomprehensible country.


(한국은 이해 할 수 없는 나라에요.)


형사 너희 부모님 한국에서 너 이러는 거 아시냐?


머리는 이게 뭐냐? 잔디야?


대현 If you were in the U.S, you would go to jail.


(미국이었으면, 당신 감옥에 갔어.)


신형사 바스톤 돌아가서 또 인종차별 당할래?


아니면 형이 시키는 거 소소하게 하면서


여기서 회장님으로 지낼래?


대현 ...


 


신형사, 핸드폰을 꺼낸다. 대현의 커지는 눈.


 


대현 What are you doing?


(뭐하세요?)


 


신형사,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하더니


곧 대현의 핸드폰으로 사진 메시지가 도착한다.


신형사 걔 찾아와. 알겠어?


대현 Who is she?


(누군데요?)


 


신형사, 대현의 허벅지 한 쪽을 누른다.


아까 맞았던 곳인지 소리를 지르며 데굴데굴 구른다.


 


신형사 대답을 해야지. 엔서 미.


 


다시 세게 누르자 팔딱팔딱 뛰는 대현.


 


대현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에요.


 


53. 모텔1, 아지트 / 밤


 


‘똑똑똑 똑똑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 신경이 곤두선 채 모텔 문을 바라본다.


싸패, 방문에 귀를 대고 바깥의 인기척을 살핀다.


밖에서 작게 ‘나야.’ 하는 수빈의 목소리.


체인을 걸고 문을 살짝 여는 싸패.


수빈의 양손에는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들이 있다.


하지만 싸패는 제 눈으로 복도를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마저 연다.


 


CUT TO


 


라면과 냉동식품들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지만


다들 입맛이 없는지 젓가락을 들지 않는다.


 


싸패 먹자.


 


아이들, 주섬주섬 젓가락질을 시작한다.


 


싸패 며칠 있으면 곧 잠잠해질 거야.


지단 며칠씩이나?


당뇨 돈이 있어도 나가질 못하네.


지단 그걸 사자성어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당뇨 ...


지단 아. 이 새끼 뭔지 모르는 거 같은데? 그걸 몰라? 상식이야.


당뇨 알아 병신아.


지단 뭔데?


당뇨 너 먼저 말해봐.


지단 아. 이렇게 못 배운 애랑은 같이 못 지내겠는데.


수빈 다홍치마.


 


아이들, 수빈의 말에 놀랍다는 듯


‘워워’ 소리를 내며 수빈을 치켜세운다.


지단, 아닌 걸 알지만, 일부러 티를 내지 않는다.


 


수빈 저기 있잖아.


 


아이들이 수빈에게 집중한다.


 


수빈 아까 들어올 때 깜짝 놀랐어.


 


아이들, 수빈이 무슨 말을 꺼낼지 궁금하다.


 


수빈 시체 썩는 냄새났어.


 


무슨 말인지 생각에 잠겼다


이내 깔깔거리며 뒤집어지는 아이들.


 


CUT TO


 


핸드폰으로 신나는 힙합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하는 아이들.


지단과 당뇨, 화장실에서 손빨래를 하고


수빈은 바닥과 창틀을 걸레로 훔친다.


꼴도, 침대 위에서 비트에 맞춰 랩을 한다. 발군의 실력이다.


잠시 뒤 싸패가 소화기를 어깨에 메고 방 안으로 들어온다.


아이들은 카메라인 마냥 손을 흔들고 V자를 그린다.


CUT TO


 


모처럼 깨끗해진 방에서 코를 골며 자는 아이들.


아직 잠들지 못한 지단이 뒤척인다.


코 고는 소리 사이로 들리는 누군가의 흐느낌.


지단, 우는 소리를 찾는다. 수빈이다.


수빈, 핸드폰 속 엄마 사진을 보며 흐느낀다.


지단, 모른 척 다시 잠을 청한다.


수빈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든다.


 


54. 공원 / 밤


 


점멸하는 가로등 불빛 아래


지단과 수빈이 어둑한 근린공원 정자에 앉아있다.


오붓하게 담배 한 개비를 주거니 받거니 나눠 핀다.


 


지단 아빠하고 연락 완전 끊지는 마. 혼자서 버티려면 힘들잖아.


수빈 그렇긴 한데. 자칫하면 같이 죽어.


 


지단, 한참을 수빈의 말을 곰곰이 곱씹는다.


 


수빈 아빠는 항상 울면서 미안하다고 다 자기 탓이라고 빌었어.


새엄마가 때릴 때도 그랬고... 고모부가 성폭행했을 때도 그랬어.


지단 씨발 욕 나온다.


수빈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준 사람이야. 아빠.


나중에 나 취직하고 잘되면 연락하고 지낼 거야.


 


가로등이 수명이 다했는지 더 빠르게 점멸한다.


 


지단 나는 학교 갔다 돌아오니까 이상하게 느낌이 쎄하더라고.


수빈 왜?


지단 화장실 문이 닫혀있었어. 참다가 저녁쯤에 열어보니까...


엄마가 죽어있었어. 자살.


수빈 아빠는?


지단 교도소. 장례 치른다고 나와선 지 못 했던 거 다하고 들어가더라.


수빈 나는 정말 안 그럴 거야.


지단 나도. 내 새끼 말 무조건 믿고. 절대 안 때리고. 화풀이 안 하고.


수빈 안 버리고. 그런데...


지단 응.


수빈 왜 지단이야?


지단 아 축구 선수 이름이야. 지단.


수빈 아. 축구 잘하는구나.


지단 아니.


수빈 그럼?


지단 대머리야. 지단


수빈 아.


 


또래로 보이는 무리가 걸음을 멈추곤,


수빈과 지단을 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그리고 천천히 정자로 다가온다.


 


지단 뭐지?


수빈 아는 애들인가?


 


무리가 점점 다가오지만, 어두워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또래의 여자 둘과 남자 둘이란 것만 언뜻 느껴질 뿐.


무리는 수빈과 지단의 코앞까지 다가온다.


수빈, 그제야 누군지 알아본다.


 


일진 걸레 씨발년아.


 


일진이 다짜고짜 수빈의 머리채를 잡고 뺨을 때린다.


지단이 막아서지만, 동행한 남자들에 의해 바닥에 패대기쳐진다.


일진들, 무섭게 수빈을 밟기 시작한다.


수빈은 웅크린 채 그저 무참히 맞는다.


지단이 그런 수빈을 구해보려고 하지만 같이 밟히고 만다.


지나가던 사람이 아이들의 폭행을 보지만, 슬쩍 길을 돌아간다.


 


 


55. 모텔1, 아지트 / 밤


 


만신창이가 된 지단이 아이들을 흔들어 깨운다.


지단의 고함 소리에 아이들이 주섬주섬 잠에서 깬다.


 


지단 일어나! 일어나 보라고!


 


잠에서 깬 아이들,


얼굴 여기저기 시뻘건 피를 흘리는 지단을 보고 깜짝 놀란다.


 


지단 좆 됐어!


 


 


56. 공원 – 주택가 골목 / 밤


 


싸패를 선두로 아이들이 공원을 향해 뛰어간다.


공원에 도착하지만, 수빈이 보이지 않는다.


수빈이 보이지 않자 인근 주택가 골목으로 향한다.


아이들이 흩어져 수빈을 찾기 시작한다.


수빈을 부르며 골목 여기저기를 찾아보지만


미로 같은 구조여서 막다른 길이거나 아이들끼리 마주치고 만다.


아이들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다시 방향을 나눠서 찾기 시작한다.


이때, 골목 한쪽에서 다구리를 당하는 수빈을 발견한 꼴도!


 


꼴도 여기!


 


꼴도가 무리를 향해 몸을 던지지만,


망을 보던 상대편 남자아이들에 의해 나자빠진다.


다시 덤비려고 일어나지만... 상대가 던진 담뱃불을 얼굴에 맞는다.


뒤늦게 싸패와 지단 당뇨가 도착해 몸을 던진다.


그야말로 새벽의 개싸움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밖을 확인하곤 쏙 들어가는 주민.


싸패, 상대편이 만만치 않자 쓰레기 더미에서 각목을 하나 골라 집는다.


그리고 무리 중에 가장 덩치가 큰 녀석에게 후려친다.


그렇게 하나는 처리했지만...


수빈, 지단, 당뇨, 꼴도가 일방적으로 짓밟히는 중이다.


싸패, 아이들을 구하려고 다시 각목을 휘두르는데,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그리고 상대편 아이들이 도망치기 시작한다.


 


일진 짜바리 떴다.


 


가출팸 아이들도 피투성이가 된 채로 뒤늦게 자리를 벗어난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보란 듯이 대기하고 있는 순경들.


아이들은 각기 흩어져 골목 구석구석 돌아 도망간다.


그런데 당뇨, 그만 발목을 접질린다.


심하게 접질린 듯 자리에 몇 번 깽깽이를 하더니


그만 자리에 주저앉는다.


신발을 벗고 발목을 확인하는데.


건너편에 순경이 보인다.


하지만 당뇨 부상이 생각보다 심한 듯 도망치기를 포기한다.


 


 


57. 모텔1 앞 / 밤


 


온통 빨래질을 당한 아이들,


숨을 헐떡거리며 모인 곳은 모텔 앞이다.


그런데 당뇨가 보이지 않는다.


 


지단 당뇨는?


꼴도 몰라.


싸패 못 봤어?


 


주위를 살피며 당뇨를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발만 동동 구르는 가운데


 


꼴도 찾으러 가자.


싸패 어딜?


꼴도 아까 거기.


싸패 지금?


꼴도 그럼 언제?


싸패 있어 봐.


꼴도 그냥 이대로 있자고? 당뇨도 버리게?


 


 


58. 모텔1, 아지트 / 밤


 


싸패, 무릎을 꿇은 지단을 향해 풀스윙으로 뺨을 후려친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지단이 바닥에 고꾸라지고 만다.


나머지 아이들은 눈치를 살피며


수건으로 대충 상처 부위를 지혈 중이다.


 


싸패 며칠만 조용히 있자고 했지!


 


꼴도, 한마디 하려는데 수빈이 막아선다.


대신 수빈이 싸패에게 다가가


 


수빈 미안해. 내가 나가자고 했어.


 


싸패의 매서운 눈초리에 수빈 어찌할 줄 모른다.


 


싸패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마.


수빈 알겠어.


 


그때 밖에서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


당뇨가 숨을 헐떡이며 열어달라며 문을 두드린다.


꼴도가 문을 열자,


당뇨 깽깽이로 방에 들어와선 모텔 바닥에 대자로 뻗는다.


 


싸패 괜찮아? 어떻게 된 거야?


당뇨, 헐떡이며 손으로 창문 밖을 가리킨다.


싸패가 커튼을 열고 밖을 보면,


순경들이 모텔 주변에서 놓친 당뇨를 찾고 있다.


 


 


59. 모텔1 복도


 


아이들이 급하게 짐을 챙겨 방에서 나온다.


복도를 거쳐 뒷문으로 향한다. 다행히 뒷문에 아무도 없다.


아이들은 전속력을 다해 미친 듯이 뛴다.


수빈과 지단이 당뇨를 양쪽에서 부축한다.


 


 


60. 모텔1 밖 - 공용주차장 / 밤


 


아이들이 향한 곳은 SUV를 주차했던 공용 주차장.


싸패가 운전석에 수빈이 조수석에 나머지 아이들은 뒤에 탔다.


차에 탄 아이들은 여전히 숨이 가쁜지 세차게 숨을 내쉰다.


꼴도, 들고 나온 가방과 옷 여기저기를 뒤진다.


뭔가를 찾는데 없는 모양이다.


 


지단 뭐 안 가져왔어? 왜?


꼴도 돈.


당뇨 무슨 돈?


꼴도 우리 피통.


 


아이들의 순간 아차 하는 표정.


 


싸패 아이씨 빡대가리 새끼야.


꼴도 지금 다시 갔다 올까?


싸패 어딜 갔다 와. 병신아 진짜.


 


꼴도, 잠시 화를 누르다가 안 되겠는지


 


꼴도 씨발 이게 내 잘못이야?


싸패 그럼 내 잘못이야?


꼴도 조건 사기하고. 차 훔치고. 가게 들이박고.


씨발 그래서 지금 좆된 거 아냐!


싸패 뭐?


 


싸패, 몸을 돌려 꼴도의 머리채를 잡는다.


그런데 꼴도가 먼저 싸패의 얼굴을 가격한다.


아이들이 둘을 떼어내려고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킨다.


꼴도는 계속 욕을 해대며 덤벼댔고


싸패의 주먹이 무섭게 차 안을 휘젓는다.


조수석에 탄 수빈, 그만 눈물이 터지고 만다.


 


잠시 뒤 잠잠해진 차 안.


운전석에 앉아있던 싸패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한참 동안 아무 말 없다.


잠시 뒤 꼴도가 적막을 깬다.


 


꼴도 너희는 어떻게 할래?


지단 뭘 어떻게 해?


꼴도 다들 계획 없어?


지단 아 진짜 왜 그래.


꼴도 여기 이러고 있을 거야?


당뇨 형!


지단 형까지 이러면 어떡해?


꼴도 일단 모텔 가서 상황 좀 보고 올게. 돈 가져 나올 수 있나.


 


아이들은 다들 대답 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꼴도가 차에서 내리자 지단이 따라붙는다.


 


 


61. 골목길 / 밤


 


꼴도와 지단이 부서진 건물 담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운다.


바람에 머리칼이 눈을 찌른다.


 


꼴도 너는 나 믿어?


지단 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히 믿지.


꼴도 처음에 친구 둘이랑 나왔거든. 나까지 셋이서.


쉼터에 갔더니 보호자 연락처 적으라는 거야.


미쳤냐? 맞아서 나왔는데 또 처맞게.


그래서 밖에서 먹고 잤단 말이야.


근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친구 하나가 얼어 죽었어.


그때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지단 어떻게 했는데?


꼴도 도망갔어. 남은 친구 떼어놓으려고. 그 새끼가 좀 띨띨 했거든.


지단 지금 그 얘기 왜 하는데?


꼴도 같이 있다가 나도 죽겠다 싶었거든.


싸패 힘들었을 거야. 우리가 솔까 도움이 되질 않았잖아.


지단 그런 게 어딨어? 우리끼리.


꼴도 만약에 잡히잖아. 그럼...


지단 뭘 잡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꼴도 애초에 태어난 게 잘못이야.


지단 씨발 찐따처럼 왜 그래!


지단 장 부장이 그랬어. 엄마 죽었을 때.


 


 


62. 모텔1 안 / 밤


 


신형사와 강형사가 아이들이 지내던 모텔 안을 휘이 살핀다.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과 미처 챙기지 못한 옷가지들로 난장판이다.


신형사, CCTV에 꼴도가 입었던 보라색 옷을 발견한다.


그리고 옷더미 속에서 작은 수첩도 발견한다.


대충 훑어보니 연락처가 적힌 페이지가 있다.


 


강형사 선배님 고깃집 애들이죠? 맞죠?


강형사, 창문틀에 놓인 철제 과자 상자 안을 열어본다.


만 원짜리 뭉치가 한가득.


 


신형사 (돈뭉치를 보며) 나보다 낫네.


강형사 이거 찾으러 오겠죠?


신형사 아니.


 


모텔 주인이 뒤늦게 올라온다.


주인, 난장판인 방안을 보며 혀를 찬다.


 


주인 이래서 가출한 애들한테는 방 주는 게 아닌데.


 


모텔 주인, 신발도 안 벗은 신형사를 슬쩍 쳐다본다.


 


주인 뭔 사고 쳤대요?


신형사 애들 돌아오면 모른 척 받으시고 이리로 전화 주세요.


 


신형사, 모텔 주인에게 명함을 건넨다.


 


주인 쫓가내야죠. 받긴 뭘 받아.


강형사 부탁 좀 드릴게요.


 


신형사와 강형사, 모텔을 나선다.


신형사, 노트에서 은수의 스티커 사진을 발견한다.


신형사, 발걸음을 돌려 다시 모텔로 들어간다.


그리고 모텔 주인에게 은수의 사진을 보여준다.


 


신형사 이 아이도 있었어요?


 


모텔 주인은 안경을 이마에 걸치고


사진을 유심히 본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주인 아니요. 가시나 있으면 방을 하나 더 잡으라고 했을 건데.


그건 철저해요.


 


 


63. 뒷골목 / 밤


 


대현이 신형사에게 그동안 조사한 내용을 브리핑한다.


대현의 한국말이 꽤 유창하다.


 


대현 조건사기 하다가 싸이코패스같은 놈한테 걸렸대요.


사이코가 여자애 차에 태우고 도망갔대요.


납치죠. 납치당한 거죠.


 


신형사가 말없이 대현의 말을 듣고 있다.


 


신형사 근데?


대현 만약에 계속 연락이 없으면 납치당해서 죽은 거구요.


연락을 한다면 꼴도한테 할거래요.


신형사 꼴도?


대현 팸에서 제일 친했대요.


 


대현이 꼴도의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에는 꼴도 외에도 싸패와 지단, 당뇨의 모습도 보인다.


신형사, 꼴도의 수첩을 다시 살핀다.


수첩 속 삐뚤빼뚤 적혀있는 연락처들.


 


 


64. 공용 주차장 / 오후


 


운전석에 지단이 앉아있고


조수석엔 수빈, 뒷좌리에 당뇨가 비스듬히 누워있다.


 


당뇨 배 아파.


 


하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한참 뒤에야


 


지단 왜?


당뇨 뭐 좀 먹으면 알 것 같은데. 아픈 건지, 고픈 건지 헷갈려.


지단 돈 없어.


당뇨 먹튀 하자.


지단 당뇨 넌 1년 굶어도 안 죽어.


당뇨 당뇨라고 좀 하지 마.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스트레스 존나 받아. 당뇨병 아니라고!


지단 깐다. 당뇨병 맞잖아.


당뇨 단 거 좀 먹는다고 다 당뇨병이냐? 진짜 당뇨병 걸리면 어쩌려고.


 


당뇨, 뜬금없이 울먹이더니 눈물을 흘린다.


 


수빈 왜 울어?


당뇨 배가 계속 아파.


 


 


65. 모텔촌 / 오후


 


중년의 남자가 등진 채 서 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알람이 울리자 핸드폰을 확인한다.


‘지금 15’ 방제의 채팅창.


 


15녀 : 도착하셨나요?


 


남자는 답장을 쓴다.


 


건물주 : 네. 천천히 조심히 오세요.


 


남자와 한참 거리에 지단과 당뇨, 수빈.


핸드폰을 보는 남자를 확인한다.


지단 진짜 건물주면 대박인데.


당뇨 완전 틀딱이네. 손만 들어도 오줌 찍 싸겠네.


지단 한 천만 원 달라고 할까?


당뇨 처음에 이천만 원 불러야지. 그러다 깎아서 천만 원. 콜?


지단 아 씨발 간만에 설렌다.


오줌 존내 마렵네. 지릴 것 같다. (수빈에게) 괜찮겠어?


수빈, 지단과 당뇨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남자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수빈, 남자와 가까워지자 인기척을 낸다.


남자가 몸을 돌리자, 수빈이 깜짝 놀란다.


남자는 3씬의 권선생이다!


권선생, 몸을 돌렸지만 수빈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권선생 예. 가시죠.


 


권선생, 먼저 모텔로 향한다.


수빈은 잠시 따라가야 할지 주저한다.


멀리 아이들이 무슨 일이냐고 손짓을 보낸다.


갈등하는 수빈의 표정.


 


 


66. 모텔 엘리베이터


 


권선생, 고개를 푹 숙인 채 12층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린다.


수빈도 마찬가지.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권선생이 먼저, 수빈을 그 뒤를 따라간다.


수빈, 잽싸게 문자를 보낸다. ‘1203호’


 


 


67. 모텔 방 / 오후


 


현관에서 한번 꺾어야 침대로 연결되는 구조.


권선생, 냉장고를 열더니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킨다.


수빈이 여전히 못 들어가고 현관에서 머뭇거린다.


권선생, 음료수와 13만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음료수 마개 부분을 스윽 한번 닦는다.


 


권선생 들어와요.


수빈 먼저 씻을게요.


 


수빈, 현관 맞은편의 화장실로 쪼르르 향한다.


수빈과 권선생이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다.


하지만 권선생, 수빈을 알아보지 못한다.


화장실로 들어간 수빈, 변기에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다.


권선생, 주머니에서 약통을 하나 꺼낸다.


중국산 비아그라다.


 


 


68. 모텔 밖 / 밤


 


경찰차 여러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모텔 앞을 에워쌌고,


그 뒤로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무슨 일인가 싶어 구경한다.


사람들을 헤치며 또 한 무리의 강력계 형사들이


모텔 안으로 우르르 들어간다.


 


69. 모텔 방 / 밤


 


사체 한 구가 하얀 천을 뒤집어쓴 채 침대 가운데 누워있다.


국과수 요원들, 침대 주변의 증거들을 채집한다.


지문을 채집하는 한편, 바닥에 남은 신발 문양과 머리카락들을 채집한다.


바닥 한쪽에 각목과 벽돌이 아무렇게 놓여있다.


 


70. 모텔 카운터


 


한 눈으로 봐도 앳돼 보이는 수빈이


권선생을 뒤따라 들어오는 CCTV 영상.


신형사, 권선생을 유심히 살핀다.


수빈은 교묘하게 CCTV를 비켜섰다.


잠시 뒤 각목을 든 지단과 당뇨,


역시 빠르게 지나가느라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영상을 뒤로 돌리자 아이들이 카운터에 뭐라 뭐라 말하고는 급하게 뛰쳐나간다.


 


신형사 뭐라고 한 거예요?


모텔직원 119에 신고 좀 해달라고요.


 


신형사, 다시 영상을 돌려 수빈의 얼굴이 흐릿하게 찍힌 장면에서 멈춘다.


반장이 어느새 다가와 CCTV를 보고 있다.


반장 영감님 오신단다. 사무실 들어가자.


 


반장의 말에 똥 씹은 표정의 형사들.


 


 


71. 어느 공터 / 밤


 


아이들이 외진 공터 바닥에 쓰러져 숨을 고른다.


얼마나 뛰었는지 미친 듯이 헐떡인다.


 


당뇨 괜찮겠지?


지단 119 왔잖아. 근데 틀딱이 언제부터 그런 거야?


수빈 나도 화장실 나와서 선생님 봤어.


지단 선생님?


수빈 우리학교 사회문화 선생님이야.


지단 뭐? 그런데 왜 들어갔어?


당뇨 아니야. 차라리 잘 됐어. 그러면 우리 얘기 못 꺼내.


그런데 뭐 때문에 그런 거야?


지단 그거 뭐야. 약 때문에 그런 건가?


당뇨 그거 먹는다고 그래?


 


당뇨가 누운 채로 권선생의 경련 증상을 따라한다.


 


지단 알빠야. 돈 챙긴 사람?


 


아이들 주머니를 뒤지며 돈을 찾는다.


반으로 접힌 만 원짜리 뭉치가 당뇨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런데 당뇨의 주머니에서 약통도 같이 툭 나와 바닥에 굴러간다.


아이들은 순간, 약통을 보고 표정이 새하얗게 질린다.


바닥에 누워있던 아이들이 몸을 일으킨다.


수빈이 약통을 줍는다.


권선생의 중국산 비아그라다.


 


수빈 이거 아까 그거잖아.


당뇨 이게 왜 주머니에 있지.


 


한참동안 아무 말도 못 잇는다.


 


지단 씨발 좆 된 거 같은데.


 


 


72. 형사들의 추적 몽타주 / 밤


 


빠른 비트의 메탈 음악이 선행하며


 


반장은 형사들을 모아놓고


‘이번 조건사기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팀에게 일계급 특진과 포상휴가가 주어진다.’는 내용과


‘죄질이 나쁜 소년 범들을 훈방조치하지 말고 우선 검찰로 송치’하라는 공문을 읽는다.


 


형사들이 핸드폰에 저장된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탐문 수사를 벌인다.


 


-찜질방에서 무리 지어 있는 날라리들을 살펴보지만, 아니다.


-아이들이 모인 유흥가 뒷골목. 형사들이 다가가자 아이들 썰물처럼 빠진다.


-PC방, 게임을 하던 아이 하나가 형사와 눈이 마주친다.


본능적으로 키를 낮추는 아이.


형사가 다가가 얼굴을 살피곤 머리를 한 대 툭 친다.


-모텔 카운터, 형사들이 사진을 내밀지만, 고개를 젓는 주인들.


 


73. 유흥가 거리 / 밤


 


큼지막한 하이바를 쓴 싸패,


오토바이를 타고 출장 마사지 찌라시를 뿌린다.


찌라시를 흩뿌리다 무슨 일인지 유턴을 한다.


선술집 안쪽, 벽걸이 TV에서 뉴스가 나온다.


 


‘10대 조건 사기단에 50대 남성 살해’당했다는 뉴스다.


CCTV 영상으로 흐릿하게 당뇨, 지단, 수빈의 모습이 포착된다.


‘피해자의 몸에 눈에 띄는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폭행 협박 등에 의한 심장마비로 추정되며


경찰은 인근 가출팸들을 수사 중’이라고 뉴스가 흐른다.


하이바를 벗은 싸패,


뉴스를 한참 보다 걸려온 전화에 정신이 든다.


 


싸패 누구세요?


(은수) 나... 은수...


싸패 너 지금 어디야?


 


 


74. 맥도날드 / 밤


 


여중생 하나가 구석 자리에 앉아있다.


잠시 뒤, 모자를 푹 눌러 쓴 꼴도가 맞은편에 앉는다.


 


여동생 살 좀 빠졌네.


 


꼴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꼴도 잘 지내?


여동생 보시다시피.


꼴도 장 부장은?


여동생 똑같지 뭐.


꼴도 가봐야 돼. 왜 보자고 했어.


여동생 그냥.


 


이제야 긴장이 풀린 꼴도, 앞자리에 있는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문다.


 


여동생 나쁜 짓 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꼴도 왜?


 


꼴도 여동생의 놀란 표정.


 


여동생 왜긴. 그러면 안 되니까.


꼴도 너는?


여동생 나? 왜?


꼴도 별일 없냐고.


여동생 순종적인 스타일이잖아. 스무 살까지만 참고 살기로 했어.


 


꼴도는 더는 할 말이 없는 듯 고개만 끄덕인다.


 


 


75. 맥도날드 화장실 / 밤


 


화장실 칸 안에서는 터지는 눈물을 겨우 틀어막는 꼴도.


혹여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안간힘을 쓴다.


 


잠시 뒤 화장실 칸에서 나와 세수를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울을 보며 웃는데,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신형사와 눈이 마주친다.


꼴도, 순간 형사임을 직감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고 차분하게 행동한다.


빛의 속도로 도망가려 하지만...


신형사의 발차기에 그만 쓰러진다.


신형사, 꼴도를 질질 끌고 화장실 칸 안으로 도로 밀어 넣는다.


 


꼴도 왜 이러세요?


 


신형사는 뒷주머니에 꽂아둔 성인용 기저귀를 툭 던진다.


 


 


76. 뚝방 밑 / 밤


 


싸패의 오토바이가 뚝방을 한참 달려 약속한 장소에 도착한다.


싸패,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구석에 숨어있는 은수를 발견하곤 깜짝 놀란다.


그 사이 비쩍 마르고 시커먼 몰골에 놀라 입이 벌어진다.


 


싸패 야...


 


은수, 겁에 질린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오다 그만 자리에 쓰러진다.


 


 


77. 노상 주차장 / 밤


 


신형사의 차 조수석에 앉아있는 꼴도.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있고


수갑의 다른 쪽은 조수석 창문 손잡이에 걸려있다.


차 안 내비게이션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다.


‘10대 조건사기로 50대 남성 사망, 사인은 급성 쇼크로 인한 심장마비’라는


자막이 나오고 수빈과 지단, 당뇨가 모텔을 벗어나는 영상이 흐른다.


꼴도, 뉴스 속 아이들을 보며 참담한데...


 


신형사 얘네 어디 있어?


꼴도 모르는데요.


신형사 자 마지막으로 묻는다. 어딨어?


꼴도 진짜 몰라요.


 


 


78. 재개발 지역 / 밤


 


철거를 잠시 멈춘 재개발 지역.


전봇대는 길게 전깃줄을 늘어뜨렸다.


입구는 빨간 테이프로 봉인되어 있고,


해골표시와 엑스 등의 어지러운 낙서로 음산하다.


창문이 뻥 뚫린 어느 건물 3층에 당뇨와 지단 수빈이 보인다.


 


당뇨 할아버지 집인데 돌아가시고 나서 그냥 버려져 있어.


거기 가면 먹고 자는 건 문제없어.


 


하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당뇨 깡촌이라 사람이 찾아오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1년 내내 낚시도 할 수 있어.


지단 형들 연락 올 거야. 기다리자.


 


잠시 뒤 수빈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모르는 번호다. 수빈 받아야 할지 망설인다.


당뇨와 지단이 몸을 일으켜 수빈에게 다가간다.


신호 대기음이 꽤 오랫동안 울렸다 전화를 받는다.


 


수빈 여보세요?


 


 


79. 강력계 사무실 / 밤


 


패싸움으로 잡혀 온 아이들이 경찰서에서 2차전을 벌인다.


서로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고.


형사1,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워 울상이다.


강형사, 한 쪽 귀를 막고 당뇨 엄마와 통화 중이다.


 


강형사 미성년자라서 부모님 동의가 있어야 조사를 할 수 있거든요.


(당뇨엄마) 바빠서 못 나가니까. 구워 먹던 삶아 먹던 알아서 하세요.


신경 안 쓸 테니까.


강형사 그럼 혹시 아이랑 연락되시나요?


(당뇨엄마) 걔 연락 안 받아요.


강형사 예? 자식 아닙니까?


(당뇨엄마) 최대한 길게 잡아넣으세요.


아무리 부모라도 사람 죽인 자식을 어떻게 보듬습니까?


 


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형사2에 이끌려 사무실로 들어온다.


하지만 먼저 끌려온 아이들 때문에 자리도 없고, 어수선하다.


형사2가 난감한 표정으로 돌아보다


강형사와 눈이 마주치지만, 강형사 바쁘다고 절레절레.


형사2, 안 되겠는지 아이들을 벽 한 쪽에 세운다.


 


강형사 애들 부모요. 아이들이 왜 이 모양인지 알겠어요.


반장 그치? 예전에 절도하다 잡힌 애 부모는 아예 밖에서 뒈졌으면 하더라.


강형사 애들 부모도 똑같이 처벌해야 돼요. 아니면 형을 반반씩 때리던가요.


 


한 줄로 선 아이들, 이 와중에도 웃고 장난친다.


 


 


80. 재개발지역 / 밤


 


수빈, 씩씩거리며 구불구불한 골목을 빠른 걸음으로 벗어난다.


지단이 그런 수빈을 세운다.


그 뒤로 쫓아온 당뇨가 숨을 헐떡인다.


 


지단 잠깐만.


수빈 왜?


지단 좀 이상하지 않아?


수빈 뭐가?


지단 왜 하필 지금 연락이 온 거냐고?


수빈 소지품이 없어서 그동안 신원 확인을 못 했대.


지단 엄마가 가방 들고 나갔다며?


수빈 현장에 가방이 없었대. 뺑소니범이 가져간 걸 수도 있대.


지단 수빈아.


수빈 왜?


지단 아닌 것 같애.


수빈 뭐가?


지단 경찰이라고. 타이밍이 이상하잖아.


 


수빈, 지단의 말에 다소 충격을 받은 표정.


 


수빈 그럼 지금 나보고 어쩌라고!


엄마가 나 버린 게 아니었단 말이야!


 


수빈, 마치 일곱 살 아이처럼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당뇨가 달래보지만 신경질만 낼 뿐이다.


 


 


81. 경찰서 주차장 / 밤


 


신형사의 차가 경찰서로 들어선다.


노상 주차장 구석에 주차한다.


 


신형사 들어가자.


꼴도 진짜 몰라요. 은수는 찢어진 지 좀 됐구요.


수빈이가 들어온 건 얼마 안 됐어요.


신형사 계속 읊어봐.


꼴도 그리고 저는 애들하고 싸우고 따로 나왔어요. 진짜 몰라요.


신형사 (혼잣말) 아 씨 그냥 죽여버릴까.


꼴도 ...


 


신형사 뒷좌석의 군용담요를 꼴도의 얼굴에 덮더니


갑자기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꼴도, 몸을 뒤틀고 소리를 지르며 발악한다.


 


신형사 그렇게 호흡 가빠지면 이산화탄소 농도 올라가서 기절한다.


 


신형사, 여전히 꼴도의 목을 조르고 있다.


꼴도, 고통스러운지 손가락과 발이 뒤틀린다.


 


신형사 우리 엄마가 밤에 나갈 때마다


이렇게 뒤집어 씌우고 나갔어.


말도 못하는 애한테. 울고불고 소리 지를까 봐.


 


신형사, 목을 조르다 반장의 전화를 받는다.


신형사 네. 한 놈 잡을 것 같고요.


그 다음에 싸그리 잡을게요.


 


신형사가 전화를 끊고 다시 조르려고 하자,


담요 안의 꼴도가 소리친다.


 


꼴도 전화해서 물어볼게요.


 


 


82. 응급실 / 밤


 


싸패, 은수를 들쳐 업고 응급실에 뛰어 들어간다.


간호사들이 싸패와 은수의 행색을 보곤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싸패 여기요! 사람이요!


 


 


83. 택시 안 / 밤


 


수빈, 지단, 당뇨,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향한다.


아무 말이 없다.


택시기사, 룸미러로 아이들을 살핀다.


 


기사 몇 학년이야?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기사 우리 애들하고 비슷한데.


중2? 중3?


 


여전히 대답이 없다.


 


기사 어디 학교야?


 


무안해진 택시기사, 라디오 볼륨을 키운다.


 


 


84. 경찰서 주차장, 택시 교차 / 밤


 


담요를 벗은 꼴도, 눈물 콧물을 쏟으며 기침을 해댄다.


신형사, 노트에 해골 그림을 그리고 있다.


꼴도의 기침이 그치지 않자


 


신형사 적당히 해.


꼴도 네.


 


꼴도, 기침을 참지만 목구멍에서 계속 기침이 튀어나온다.


신형사, 핸드폰을 건넨다.


그리고 노트에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라고 쓴다.


꼴도, 천천히 핸드폰 번호를 누른다.


신호 대기음이 얼마간 울린 뒤


 


지단 여보세요?


꼴도 나야.


지단 형?


꼴도 응 어디야?


지단 이거 누구 폰이야?


 


신형사, 노트에 ‘동생 꺼’라고 쓴다.


 


꼴도 동생 꺼.


지단 아 동생 만났구나. 어디서 지내?


 


신형사가 노트에 찜질방이라고 쓰는 사이,


 


꼴도 나? 쉼터.


 


신형사와 꼴도의 눈이 마주친다.


 


지단 쉼터 무엇?


꼴도 그냥. 어디야?


지단 병원 가는 길이야.


꼴도 병원? 누구 다쳤어?


지단 아니 지금 수빈이 엄마 찾았다고 연락이 왔어.


 


신형사, 노트에 뭐라 쓰려다 다시 지운다.


 


꼴도 정말? 수빈이 엄마?


지단 응. 뺑소니 당했었대.


꼴도 뺑소니?


 


신형사, 잠시 고민하더니 노트에 ‘마무리’ 하라고 쓴다.


 


지단 형도 지금 올래?


꼴도 지금?


 


꼴도, 신형사의 사인을 기다린다.


신형사, 아까 쓴 ‘마무리’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꼴도 응.


지단 ...


꼴도 ...


지단 할 말 없어?


꼴도 은수랑 연락돼?


지단 갑분싸. 은수는 왜 갑자기?


어디냐고 안 물어봐?


신형사, 아차 하는 표정.


 


꼴도 어 어디야?


지단 술 마셨어?


꼴도 한잔했어.


지단 알았어. 이따 봐. 문자로 보낼 게.


 


지단, 전화를 끊지만 뭔가 찜찜한 표정이다.


당뇨 형이 뭐래?


지단 그냥.


당뇨 온대?


지단 안 올 것 같애.


 


수빈, 초조한 표정으로 차창에 머리를 기댄다.


눈가가 시큰해지자 눈을 감는다.


 


 


85. 회상 / 수빈의 집 골목, 1년 전


 


수빈은 제 몸보다 큰 가방을 메고 쪽지에 적힌 주소를 보며 골목을 헤맨다.


그러다 멀리 엄마인 듯 한 여자가 마중 나온 걸 보고 천천히 다가간다.


수빈, 엄마에게 다가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엄마, 눈물이 가득 고여 수빈을 찬찬히 훑어본다.


 


수빈 안녕하세요?


 


그 말을 듣자 엄마 그만 주저앉아 오열하고 만다.


 


엄마 미안해. 수빈아. 다시는... 다시는


그렇게 떠나지 않을게. 수빈아.


 


수빈은 그저 무안한 손가락을 튕기며...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기만 바란다.


 


인서트) 수빈의 엄마,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깊은 잠에 빠져있다.


 


 


86. 중환자실 / 밤


 


신형사, 무표정한 얼굴로 수빈의 엄마를 내려다본다.


산소 호흡기를 낀 수빈의 엄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있고


그 옆으로 ‘삐.삐.삐.삐.’ 바이털 사인이 일정한 속도로 소리를 내고 있다.


이때 복도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


신형사, 한 쪽 벽으로 몸을 숨긴다.


 


 


87. 택시 안 / 밤


 


비상등을 켠 택시. 차선 한쪽에 정차한다.


지단, 꾸깃꾸깃한 돈을 꺼내 미터기에 나온 금액을 계산한다.


그런데 수빈이 내리지 않는다.


 


지단 안 내려?


 


수빈, 입이 삐죽 나온 채 밍기적 거리다 택시에서 내린다.


 


지단 내 말이 맞다니까.


수빈 뭐가!


지단 수빈아.


 


 


88. 중환자실 / 밤


 


신형사, 복도의 인기척을 살피느라


뺑소니 담당 형사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담당형사 지문도 안 나오고 신분 확인도 안 돼서 늦었습니다.


고무 알러지가 있어서 장갑을 못 끼셨다고 하더라구요. 가게에서요.


 


신원 미상이라고 적힌 베드 위에 잠든 수빈의 엄마.


 


담당형사 따님 얘기가 가방 안에 지갑하고 다 들고 나갔다고


하는데 현장하고 부근에는 없었어요.


만약이 범인이 지문이 닳은 거 보고


가방까지 일부러 가져간 거면 아주 악질이죠.


신형사 저기 나가시죠.


 


뺑소니 담당 형사, 신형사를 쳐다본다.


 


담당형사 네?


신형사 저도 직원이에요.


 


 


89. 고속버스터미널 / 밤


 


멀리 붉은 글씨의 고속버스터미널 간판이 보인다.


수빈은 여전히 마음이 없는지


계단 밑에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씩씩거린다.


 


수빈 왜 지 마음대로야 지가 대장이야 웃겨 아주.


지단 만약에. 내가 틀렸으면 스무 살 전에 죽을게. 엠창.


 


수빈 몸을 돌려 들으라는 듯 크게 혼잣말을 내뱉는다.


 


수빈 경찰에 잡혔는지 아닌지 지가 어떻게 알아?


신이야? 진짜 쉼터에 있을 수도 있는 거지.


 


수빈, 성큼 성큼 계단 위를 올라간다.


그 뒤로 지단과 당뇨, 수빈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며


보통이 아니라고 눈짓을 주고받는다.


 


 


90. 원무과 데스크 / 밤


 


신형사, 원무과 데스크에 앉아


CCTV로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병실복도를 확인하지만


늦은 시간이라 방문객이 없다.


신형사, 벽에 걸린 시계를 한참 바라본다.


아이들이 도착할 시간이 지났다.


째깍째깍 초침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신형사, 더는 안 되겠는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신형사 핸드폰 위치 추적 좀 할게요.


 


 


91. 경찰서- 도로 / 밤


 


반장, 신형사의 전화를 받는다.


반장의 지시에 서둘러 사무실을 벗어나는 형사들.


형사들 봉고차를 타고 급히 경찰서를 벗어난다.


 


반장 (전화에 대고) 지금 터미널에 몽타주 뿌리고 협조 요청 해.


 


92. 도로 / 밤


 


신형사의 차도 무서운 속도로 도로 위를 질주한다.


 


꼴도 저기. 갈아야 되는데요.


신형사 뭐?


꼴도 ...


신형사 오줌이야?


꼴도 아니요.


신형사 내일 갈아. 내일.


꼴도 그래도 같이 내릴게요.


신형사 왜!


꼴도 마지막일수도 있으니까요.


신형사 뭐가.


꼴도 인사하고 싶어서요.


신형사 눈물 난다. 눈물 나. 기저귀 차고.


 


 


93. 터미널 1층 경부선 라인 내부 / 밤


 


반장과 형사들이 도착한다.


반장의 지시에 따라 조를 나누고 터미널을 수색한다.


쏜살같이 흩어지는 형사들.


복잡한 1층 내부. 사람도 많고 넓기도 넓다.


 


매표소 주변에서 마스크와 모자를 쓴 아이들을 유심히 살핀다.


스낵코너를 돌며 아이들을 살피는 형사들.


음식점들이 즐비한 가운데 아이들이 갈만한 패스트푸드점에서 걸음을 멈춘다.


큰 덩치의 뒷모습. 그리고 슬쩍 다가가 얼굴을 확인한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발견한 강형사, 사람들을 헤치고 쫓아간다.


- 뒤늦게 도착한 신형사, 대합실에서 잠복 중이던 반장과 만난다.


 


신형사 마지막 신호가 어디쯤이에요?


반장 애매해. 딱 중간 지점에서 꺼진 거 같은데.


신형사 반대편으로 가보시죠? 그럼.


 


 


94. 호남선 대합실 / 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북적이는 호남선 대합실.


콘센트에 충전 잭을 연결하고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전화를 받는 지단.


 


(싸패) 니네 미쳤냐?


지단 ...


(싸패) 미쳤냐고!


지단 ...


(싸패) 야! 듣고 있어?


지단 듣고 있어.


(싸패) 씨발 아주 지랄이 풍년이다.


지단 잘못했어.


 


사람들 틈으로 겨우 자리 잡은 수빈과 당뇨가 지단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싸패) 꼴도는?


지단 꼴도 형.


(싸패) 그 새끼 잡혔지?


지단 그런 거 같애.


(싸패) 어디야? 지금.


지단 고속터미널.


(싸패) 거긴 또 왜!


지단 당뇨가 할아버지네 가자고 해서.


 


당뇨,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바짝 긴장한다.


 


(싸패) 하.


지단 형도 같이 가면 안 돼?


 


전화를 끊은 지단의 얼굴이 어둡다.


당뇨, 차표를 만지작거리며 차표 시간을 확인한다.


30분 남짓 남았다.


 


당뇨 화장실 갈 사람?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형사들, 무전을 받고 호남선 라인으로 넘어온다.


지단과 당뇨, 대합실을 벗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지단, 맞은편에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신형사를 알아본다.


신형사는 둘은 보지 못했다.


 


지단 누구지?


당뇨 뭐가?


 


지단은 뒤를 돌아 신형사를 다시 확인한다.


 


지단 어디서 봤는데?


당뇨 고깃집 손님이었겠지.


지단 그런가.


 


호남선 대합실에 도착한 형사들, 인파를 속에서 아이들을 찾지만


복잡한 대합실에서 아이들 찾기가 쉽지 않다.


 


 


95. 터미널 화장실 / 밤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는 지단. 당뇨를 기다리는 중이다.


 


지단 야 멀었어? 몰래 뭘 쳐먹었길래 많이 싸?


당뇨 스트레스성 장염. 싸패 형 목소리 들으니까 바로 반응 오네.


지단 야 빨리 나와!


당뇨 한번만 더 쏟으면 돼.


지단 야 씨발 버스시간 다 됐다고.


 


 


96. 호남선 대합실 / 밤


 


대합실 벽걸이 TV에서는


‘아기 태우고 고의 교통사고, 억대보험사기’라는 제목으로 뉴스가 나오고 있다.


 


당뇨와 지단이 대합실에 도착한다.


아까 앉아있던 자리에 수빈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차 시간이 다가오자 일어나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찾기 힘들다.


한참을 사람들 속에 수빈을 찾다.


잠시 후 두리번거리는 수빈을 발견한다.


지단, 수빈을 향해 손을 흔든다.


이때, 아기 엄마와 부딪힌 어떤 남자, 아기 엄마의 핸드폰을 대신 주워준다.


남자의 가슴팍에서 수갑과 권총 멜빵끈을 본 지단, 순간 얼어붙고 마는데


 


당뇨 수빈아!


 


지단의 커지는 동공. 수빈,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향해 돌아보고


지단, 눈동자만 굴려 주위를 살핀다.


순간 복잡한 대합실에 이 소리에 반응하는 잠복 중이던 몇몇 형사들.


때마침 하차장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있었다.


 


지단 야 튀어!


 


지단이 당뇨의 손목을 잡아끌고


수빈도 이상한 낌새에 재빨리 인파들 속으로 몸을 숨긴다.


형사들 사방으로 흩어진 아이들을 쫓아간다.


하지만 복잡해진 사람들 때문에 잡기 어렵다.


지단과 당뇨, 미친 듯이 터미널 밖으로 향한다.


 


 


97. 터미널 외부 골목 / 밤


 


지단, 당뇨 터미널을 벗어나 골목 외진 곳에 몸을 숨기며 숨을 고른다.


당뇨 수빈이 어떡하지?


지단 나 생각났어. 누군지 아까 그 남자.


당뇨 누군데?


지단 은수!


당뇨 은수?


 


 


98. 고속버스 안 / 밤


 


형사들이 출발 하는 버스를 세운다.


차 안의 승객을 확인하는 형사들.


뒷자리에 빼꼼히 머리만 보이는 누군가.


형사들이 다가간다.


 


 


99. 차고지 / 밤


 


수빈, 주차된 고속버스 뒤에 숨어 숨을 고른다.


주위를 둘러보면 옆으로 컨테이너 박스가 있고 뒤로는 높은 벽이 있다.


수빈, 다시 도망을 치려는데 멀리서 들리는 무전기 소리.


그리고 발걸음 소리도 점점 가까워진다.


수빈이 숨은 고속버스 쪽으로 신형사가 다가온다.


수빈, 몸을 숙여 버스 밑으로 반대편의 동태를 살핀다.


신형사의 운동화가 시야에 들어온다.


신형사,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푹 허리를 숙여 반대편 수빈을 바라본다.


신형사와 눈이 마주치자 수빈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만다.


 


 


 


 


100. 경찰서, 여청계 / 밤


 


칸막이가 쳐져있는 상담실.


평상복 차림의 중년의 여경 앞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은수가 링겔을 꼽고 불안한 듯 손톱을 뜯고 있다.


 


여경 처음부터 얘기해볼까? 채팅으로 만났다고 했지?


은수 네. 일단 차에 타라고 하더니. 무인텔로 가자고.


여경 무인텔?


은수 자기가 미성년자 킬러라고.


그런데 각목 냄새가 난다고 장소 옮기자고 했어요.


 


 


101. 차고지, 여청계, 중환자실 교차 / 밤


 


-차고지.


 


수빈, 구석으로 뒷걸음질 친다.


신형사, 고속버스를 삥 돌아 수빈이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수빈, 사방이 갇힌 신세다.


신형사, 후레쉬를 켜 수빈의 얼굴을 비춘다.


 


-여청계.


 


은수 제가 내려달라고 난리를 치다가 아저씨가 사람을 쳤어요.


세게요. 그 분은 지금 죽었을지도 몰라요.


 


차에 치여 쓰러진 여자. 다름 아닌 수빈의 엄마다.


-중환자실.


 


수빈의 엄마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다.


 


-차고지.


 


신형사, 잠시 수빈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다가간다.


 


-여청계.


 


은수 차에서 내려서 친 사람을 한번 보더니 가방을 들고 차에 탔어요.


 


차에서 내린 남자. 쓰러진 수빈의 엄마를 확인한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남자... 다름 아닌 신형사다.


 


-차고지.


 


신형사, 수빈의 앞에 다가가서는 후레쉬로 얼굴을 비춘다.


수빈, 눈이 부셔 손으로 눈을 가린다.


그런데 후레쉬 끝에 달린 펜던트를 본다.


슈퍼맨 펜던트다.


 


수빈 그거 우리 엄마껀데.


그거 왜 아저씨가 들고 있어요?


수빈이 신형사 손에 쥔 후레쉬를 가리킨다.


신형사, 후레쉬를 집어던지고...


수빈을 발로 걷어찬다. 수빈 바닥에 나뒹군다.


신형사, 수빈의 팔에 수갑을 채우려는 순간,


수빈이 신형사의 팔을 문다. 팔의 살점이 뜯겨져 나간다.


신형사, 잠시 고통에 펄쩍 뛰다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수빈을 무참히 밟기 시작한다.


얼굴이 온통 피 떡이 된 수빈.


하지만 신형사의 발을 양팔로 움켜쥔다.


 


신형사 너도 죽여줘?


 


신형사, 총구를 수빈에게 겨눈다.


하지만 수빈은 여전히 빤히 바라본다.


 


신형사 너나 니네 엄마나... 죽는다고 누가 신경이나 쓸 것 같애?


 


신형사, 악마의 미소를 띄우며 방아쇠를 천천히 당기는데


멀리 엔진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면, 헤드라이트를 켠 SUV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온다.


놀라서 자리를 피해보지만...


SUV, 꽝 하고 신형사를 친다.


신형사 허공에 붕 뜨더니 바닥에 고꾸라진다.


그 사이 지단과 당뇨가 차에서 내려 수빈을 확인한다.


 


싸패 빨리!


 


지단과 당뇨가 수빈을 부축해 일으키지만


수빈, 신형사가 쪽으로 걸어가 후레쉬와 총을 줍는다.


그리고 총구를 신형사에게 겨눈다.


아이들 모두 놀라


 


싸패 뭐해!


지단 안 돼!


 


수빈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총구를 보며 당황하는 신형사. 그리고 아이들.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빵— 자동차 경적소리.


 


-중환자실.


일정한 속도로 소리를 내던 바이탈 사인이 삐-하는 소리를 내며 멈추자,


간호사와 의사가 급하게 병실로 들어온다.


 


 


102. 뉴스클립


 


모텔 CCTV에 잡힌 지단, 당뇨, 수빈의 영상을 배경으로 앵커가 멘트가 흐른다.


 


‘정부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미성년자 연령을


만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살인,강도,강간 등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은


무조건 형사 처벌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소년범의 경우 형사 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는데


앞으로 소년부 송치를 제한하는 법률을 개정할 계획입니다.‘


 


마스크를 낀 신형사가 수갑을 찬 채 조사를 받는다.


 


’다음은 뺑소니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공무원이 검거되었습니다.


피의자는 대포차를 이용 했으며


현재 다른 범죄사실 여부를 조사 중에 있습니다.’


 


 


103. 교복집 밖 / 오전


 


엄마와 수빈이 교복이 든 봉지를 들고 교복집을 나온다.


 


수빈 뭐야? 안 이쁘잖아.


엄마 교복은 원래 낙낙하게 맞춰요. 한 해 한 해 클 건데.


수빈 누가 옷을 이렇게 입어? 아 진짜. 패션 테러리스트야.


 


수빈, 입을 삐죽인다.


 


수빈 근데 이사 전날 어디 간 거야? 남자친구랑 있었지!


엄마 아니. 엄마가 가게 옮긴 걸 깜빡하고 말 안했어.


수빈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엄마 미안해. 수빈아.


수빈 어휴 진짜. 나 이제 엄마 사랑 안 해.


엄마 수빈아. 엄마 이제 가야 돼.


 


엄마가 걸음을 멈춘다.


엄마 이렇게 두고 가서 미안해. 수빈아.


수빈 뭐야 왜 그래 갑자기.


엄마 (울먹이며) 이럴 줄 알았으면 떡볶이 왕창 해주는 건데.


수빈 나도 같이 갈래.


엄마 안 돼 수빈아. 엄마가 정말 많이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104. 바다 위 / 오후


 


울면서 잠에서 깬 수빈.


작은 돛단 배 위에 검은 상복을 입은 수빈과


당뇨, 지단, 꼴도, 싸패. 그리고 은수.


 


수빈이 바다 위에 엄마의 유골을 뿌린다.


유골에 바람에 흩날리다 바다 위에 살포시 스며든다.


수빈, 바다 속으로 신형사의 총을 떨어뜨린다.


바다 깊은 곳으로 총이 하염없이 하강한다.


바다 한가운데 아이들이 탄 돛단배가 출렁인다.


 


끝.




  <당선소감>


   "고되게 버티는 아이들에 대한 먹먹함"


영화 조감독을 마칠 무렵 우연히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예고 선생님이 되었고 그렇게 영화를 꿈꾸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즘 애들은 애들답지 않다고 하지만 제가 만난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항상 밝고 활기찼으며 착하고 예의 발랐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시나리오를 통해 어른들 때문에 생긴 이런저런 일로 자기보다 큰 바윗덩어리들을 껴안고 지낸다는 사실을 엿보게 되었습니다. 한없이 밝고 쾌활해 보이는 아이들이 실은 하루하루를 고되게 버티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강릉 여중생 폭행 사건이 터졌습니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그 사건은 별다른 사회적 성찰도 없이 소년법 개정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갈수록 잔인해지고 흉악해지는 청소년 범죄가 실은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는 생각에 ‘소년범’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행복 추구 시대에 아이들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탈고를 했습니다.

부족한 시나리오를 좋게 봐주신 동아일보사와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오춘기를 함께 해준 사랑하는 예고 제자들에게도 감사한다는 말을 남깁니다.


  ● 1982년 서울 출생
  ●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졸업
  ● '조난자들' 조감독


 

  <심사평>


  상처받은 아이들 내면에 들어가서 쓴듯


당선작을 내는데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두 심사위원의 선택이 같았기에 이견이나 재고 같은 단어가 나설 일이 없었다. 하지만 별로 뿌듯하진 않았다. 당선작과 2등의 간격이 너무 넓어서다. 결선에 오른 작품들이 심사위원을 괴롭힌다면 그건 우열을 가리기 힘들거나, 당선작이 못 된 작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때가 바람직하다. 하지만 올해에 맛 본 괴로움은 다르다. 열편의 결선 작들을 읽어나가며 올해에는 당선작을 못 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다행히 <소년범>을 만났고, 날 것의 생생한 대사와, 마지막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드는 구성이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다. 상처 받은 아이들의 심리가 돋보였는데,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봤다기보다 그들의 내면에 들어가서 쓴 듯했다.

<화사한 현자의 가을>은 좋은 주제에 재미난 설정인데도 겉만 핥고 지난 듯 매력이 없고, 안타까우리만큼 편하고 쉽게만 흘러갔다. 아깝다. <친애하는 나의 적>은 솔직히 말하면 반가웠다. 벌써 여러 번 만났다. 해마다 조금씩 다듬어지기에 우리 심사위원들도 관심 있게 보게 된다. 내년에도 심사에서 만난다면, 민기의 활약상이 축소되길, 살인을 저지른 형사가 죄책감을 좀 더 갖기를, 결정적인 위기마다 유치한 상황으로 모면하는 설정을 진지하게 바꿔보길 바란다.

시나리오는 영화화가 목표다. 그러지 못한 시나리오는 완성품이 아니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머릿속에 스크린을 펼치고 영사기를 돌려야한다. 그렇게 쓴 글이 실제로도 극장에 걸린다.

심사위원 : 이정향, 주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