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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목각인형 / 김응현

 

학교가 끝나고 나왔을 때 잔눈발이 날리더니 어느새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민수는 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일찍 가더라도 집에는 아무도 없다. 엄마가 오는 늦은 시간까지 민수는 외딴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무섭다.

'누구라도 있었으면.'

길을 걷는데 쓰레기통이 민수의 눈에 들어왔다. 안에는 눈에 반쯤 덮인 목각인형이 있었다.

“불쌍해.”

민수는 목각인형을 꺼내 눈을 훅 불어냈다. 목각인형을 들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민수가 외딴길로 접어들었을 때, 나무 아래에서 눈을 피하고 있는 고양이가 보였다. 고양이는 민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곳에서 자주 본 뚱뚱한 얼룩무늬 고양이였다. 얼룩 고양이는 팔짱을 끼고 두 발로 서 있었다. 마치 사람처럼.

“외톨이가 오늘은 목각인형을 가지고 가네.”

고양이가 말을 하자 민수는 깜짝 놀라서 목각인형을 떨어뜨렸다. 주워서 눈을 터는데, 고양이가 다가왔다.

“왜 그렇게 더러워?”

“쓰레기통에 있었거든.”

“더러운 걸 왜 가지고 왔어?”

“불쌍해서 내가 친구가 되어 주려고.”

“거짓말, 친구는 네가 필요하겠지. 너 가족도 없지?”

“엄만 있어!”

민수는 자기도 모르게 높아진 목소리를 낮추었다. “일하느라 집에 늦게 오지만…….”

고양이가 다시 걷는 민수를 따라붙으며 말했다.

“내가 목각인형 움직이게 해 줄까?”

“정말? 그럴 수 있어?”

“난 마법사 고양이야. 이건 마법 지팡이고.”

고양이는 작은 지팡이를 들어 보였다.

“대신 먹을 걸 줘.”

“마법사가 음식도 못 만들어?”

“내가 할 수 있는 마법이 있고 할 수 없는 마법이 있어.”

고양이는 퉁명스레 말하고는 민수를 따라 두 발로 느릿느릿 걸었다. 민수와 고양이의 머리에 눈이 하얗게 쌓여 갔다.

“힘들면 네 발로 걸어. 내가 지팡이 들어줄게.”

“괜찮거든!”

고양이는 사람인 양 더 꿋꿋하게 두 발로 걸었다.

민수는 집에 도착해서 거실에 있는 나무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폈다. 집 안은 금방 따뜻해졌다.

“고양이들은 뭘 먹지?”

민수는 난로 옆에서 몸을 녹이는 고양이에게 물었다.

“있는 거 다 꺼내 봐.”

민수는 이것저것 먹을 만한 것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고양이는 식탁 위로 올라가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았다.

“뭐가 더 필요할까?”

“젓가락은?”

젓가락을 가져다주자, 고양이는 젓가락 한 짝을 움켜쥐더니 음식 하나를 쿡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수는 부드러운 천으로 정성스레 목각인형을 닦았다.

고양이는 배부르게 먹고 나서 식탁에서 내려왔다.

“목각인형이 움직이려면 너의 힘을 나누어 주어야 해.”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데?”

“몸 어딘가가 좀 아플 거야.”

“그래도 좋아! 난 친구가 필요해.”

고양이가 마법 지팡이로 민수와 목각인형을 톡톡 치며 외쳤다.

“수리수리-야옹야옹-마하수리 얍!”

무지갯빛 구름 같은 것이 민수의 몸에서 빠져나와 목각인형에게 흘러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민수의 다리가 아팠다.

그런데 누워 있던 목각인형이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우아! 움직인다!”

민수는 너무나 기뻐 아픈 것도 잊었다.

하지만 목각인형은 걷기만 했다. 걸어 다니며 여기저기 부딪혔다. 부딪혀서 넘어지면 일어나서 또 걸었다.

“왜 걷기만 해?”

“지능이 없어서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따뜻한 물로 목욕하게 해 주면 지능을 넣어 줄게.”

“고양이는 목욕 싫어하잖아.”

“내가 아직도 보통 고양이로 보이니?”

민수는 난로 위의 주전자 물로 따뜻한 목욕물을 만들었다.

욕실로 들어간 고양이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민수는 목각인형이 더는 부딪히지 않게 바닥에 있는 물건들을 치웠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걸려서 넘어지지 않으면 벽에 부딪혀 넘어졌다.

욕실에서 나온 고양이의 털빛이 선명해졌다.

“털 색깔이 달라졌네!”

고양이는 짐짓 못 들은 척하며 말했다.

“이번엔 너의 지능을 나누어 주어야 해.”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데?”

“머리가 좀 아플 거야. 학교 성적도 떨어지겠지.”

“그래도 좋아! 난 친구가 필요해.”

고양이가 마법 지팡이로 민수와 목각인형을 톡톡 치며 외쳤다.

“수리수리-야옹야옹-마하수리 얍!”

또다시 무지갯빛 구름이 민수의 몸에서 빠져나와 목각인형에게 흘러 들어갔다. 이번엔 머리가 아팠다.

그때 목각인형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민수 앞으로 와서 앉았다.

“우아! 이제 같이 놀 수 있겠다!”

민수는 기분이 좋아져서 머리가 아픈 것도 잊었다. 신이 나서 블록을 가져다가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각인형은 블록 집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블록 집이 만들어지자 목각인형이 벌떡 일어서더니 발로 찼다. 블록 집이 무너지고 블록들이 흩어졌다. 목각인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민수는 어리둥절했다. 목각인형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양이를 바라보았지만, 고양이는 난로 옆에 누워 무심히 하품만 하고 있었다.

'모르고 그랬을 거야.'

민수는 블록 집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못 하게 하면 안 그럴 거야.'

그런데 블록 집을 다시 만들자마자 목각인형이 또 달려들었다. 민수가 두 손으로 막았지만 목각인형은 바닥에 생긴 틈으로 발을 뻗었다. 블록들이 여기저기로 또 흩어졌다.

민수는 눈물도 나고, 화도 났다. 목각인형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목각인형이 왜 그래?”

“따뜻한 마음이 없어서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여기서 살게 해 주면 따뜻한 마음을 넣어 주지.”

고양이가 마법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번엔 너의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주어야 해.”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데?”

“따뜻한 마음이 줄어든 만큼 마음은 차가워져. 외로움도 줄고.”

“좋은 거야?”

“나는 좋던데. 외로움을 모르니까 친구도 필요 없고.”

민수는 생각했다.

'외롭지도 않고 친구도 필요 없다고?'

민수는 혼자 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목각인형에게 다 줄래.”

“모두 다?”

“응. 외로움이 없어져 버리면 좋겠어.”

고양이가 마법 지팡이로 민수와 목각인형을 톡톡 치며 외쳤다.

“수리수리-야옹야옹-마하수리 얍!”

또다시 무지갯빛 구름이 민수의 몸에서 빠져나와 목각인형에게 흘러 들어갔다.

이번엔 가슴이 아팠다.

'아픈 것도 다 목각인형 때문이야.'

민수는 목각인형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목각인형이 흩어져 있던 블록들을 모으더니 혼자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엔 내가 블록 집을 발로 차고, 목각인형을 내쫓을 거야. 이제 친구 따위는 없어도 되니까.'

목각인형은 블록 집을 만드는 데 민수보다 오래 걸렸다. 민수는 블록 집이 만들어지기를 꿋꿋하게 기다렸다. 드디어 블록 집이 만들어졌다. 목각인형은 자랑스레 블록 집을 민수 앞으로 내밀었다.

민수가 블록 집을 힘껏 차자 블록들이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소리쳤다.

“이젠 친구 따위 필요 없어! 쓰레기통으로 돌아가!”

민수는 목각인형이 나갈 수 있게 문을 열었다.

목각인형은 눈 쌓인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눈은 목각인형의 허리까지 왔다. 잠시 돌아보고 나서 고개를 숙인 채 다시 걸었다

민수는 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나도 불쌍하지 않아!'

민수는 문을 쾅 닫아버렸다.

난로 옆에 누워 있던 고양이가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집 안은 조용해졌다. 난로에서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만 났다.

민수는 잠이 든 고양이 옆에 웅크리고 앉았다.

'목각인형을 쫓아내고 좋아진 게 뭘까?'

민수의 마음을 뭔가가 무겁게 짓눌렀다. 민수는 창밖을 보았다. 마당에는 목각인형이 눈을 헤치며 지나간 자국이 있었다. 그 위로 눈이 쌓여 갔다.

민수는 밖으로 나가 목각인형이 지나간 자국을 따라갔다. 자국이 점점 흐려지자 민수는 뛰었다.

쓰레기통 옆에 목각인형이 있었다. 민수가 목각인형을 발견한 그 쓰레기통이다. 목각인형은 쓰레기통에 기대앉아 눈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민수의 눈에서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목각인형을 품에 안았다.

“미안해.”

으로 돌아온 민수와 목각인형은 흩어져 있던 블록들을 다시 모았다. 그러고는 아까보다 더 커다란 집을 같이 만들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늘어지게 하품하며 일어났다. 잠에서 깬 고양이는 민수가 목각인형과 사이좋게 놀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이상하다. 외톨이가 왜 변하지 않았지? 따뜻한 마음은 없어지지 않나?'

“너도 같이 놀자.”

민수가 고양이에게 블록을 내밀었다.

“고양이는 이런 거 안 좋아해.”

“너는 보통 고양이랑 다르다며.”

민수는 블록을 더 가까이 내밀었다.

“알았어. 같이 살아야 하니까 놀아 줄게.”

“거짓말, 너도 같이 놀고 싶지?”

“그래, 같이 노는 느낌이 어떤 건지 궁금하긴 해. 그러려면 나도 너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해.”

“좋아!”

고양이가 마법 지팡이로 민수와 자신을 톡톡 치며 외쳤다.

“수리수리-야옹야옹-마하수리 얍!”

이번엔 무지갯빛 구름이 민수의 몸에서 빠져나와 고양이에게 흘러 들어갔다.

제나처럼 늦게 온 민수 엄마는 집 안에 생기가 돌고 있어서 놀랐다. 민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엄마는 모두를 위한 맛있는 저녁을 준비했다.




  <당선소감>


   "아들딸 보며 책임감 느껴 아이의 세계 보여주고파"


아이의 삶을 이해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두 딸이 어렸을 적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곤 했다. 당연히 엉성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딸들은 흔쾌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북극곰과 놀고, 과거로 가서 공주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늦둥이 아들이 곰과 힘겨루기를 하고, 외계인을 만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도 좋아하는 아들딸을 보며 책임감을 느낀다. 아이의 삶을 이해하는,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나에게 아홉 살 아이의 세계를 엿보게 해주고, 때로는 나를 그곳으로 이끄는 아들 하빈, 늘 곁에 있어주는 아내와 두 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임정진 선생님, 정해왕 선생님 감사합니다. 또한 이야기를 들고 나갈 수 있게 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강원일보에 감사드립니다.


  ● 서울 生
  ● 어린이책작가교실 재학 중


 

  <심사평>


  관계맺음 속 성장의 고통 동화적 상상력으로 그려


205편의 응모작 가운데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10편으로 그중 3편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휴지통공주'는 메모리랜드에서 온 '유 공주'를 내세워 '상실'이라는 다소 어두운 주제를 유쾌하게 풀었으나, 전반부에 나열된 에피소드들이 장황했다. '속닥속닥 바다에 사는 고래'는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능수능란한 기교가 돋보였으나, 독자를 억지로 끌고 가려는 인위적인 면이 불편했다. 아무리 독서가 좋다고 해도 좋아하는 체육시간을 빼앗긴 아이의 상실감은 어디서 보상받을까. '얼룩고양이와 민수와 목각인형'은 관계 맺음으로 인한 성장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이질적인 세 존재의 관계 맺음에서 필요한 희생, 배려, 나눔의 덕목을 동화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아름답게 그렸다. 거듭 읽을수록 잔잔한 감동이 느껴진다. 당선자의 발전 가능성을 믿으며 축하의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 : 권영상, 원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