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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금속성 이빨 / 김남미

 

허기 들린 포클레인 산동네를 잠식한다

비탈에 선 집과 가게 밥 푸듯 푹 퍼 올려

뼈마디 오도독 씹는 공룡 같은 몸짓으로


찢겨져 너덜대는 현수막 속 해진 말들

무너진 담벼락은 철근마저 무디게 휘어

날이 선 금속성 이빨 하릴없이 보고 있다


이주민 행렬 따라 먼지구름 피는 도시

아파트 뼈대들이 죽순처럼 솟아오를 때

만삭의 레미콘트럭 양수 왈칵 쏟아낸다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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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들을 만나 한국을 소개하고 서로의 역사와 생활방식을 주고받는 홈스테이로 왁자지껄하던 집안이 코로나19 때문에 적막에 싸인 지 1년이 지났습니다. 한복체험과 김치 만들기, 때로는 여행가이드가 되어 그들과 함께 다니며 민간외교관이라 자부하던 즐거움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허전함을 시조로 달랬습니다. 잠을 자다가도 잠꼬대처럼 메모지를 빼곡하게 채워놓고, 아침이면 암호 같은 메모를 해독하며 시조를 썼습니다. 머리가 가장 맑은 새벽잠을 반납했습니다. 1년 동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알람을 새벽 3시에 맞춰놓고 아침식사 준비 전까지 좋은 시조와 문학상 수상작품 등 이른바 '명품 시조'를 미련할 만큼 읽고 또 읽으며 필사를 했습니다.

당선 소식에 아직도 가슴이 뜨겁습니다. 누군가의 가슴골을 울리는 시조를 쓰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가슴골을 울리는 시조를 쓰고 싶다는 평소의 바람이 이제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하늘길이 활짝 열려 내 집을 다녀간 18개 나라 사람들보다 더 많은 외국인들에게 우리 시조를 알리고 싶습니다.

부족한 작품에 장미꽃을 달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매일신문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부족함을 알기에 더 열심히 쓸 것을 다짐합니다. 오랫동안 글쓰기를 포기했던 저에게 따뜻한 격려와 용기를 보내주신 윤금초 선생님과 임채성·이두의 시인님, 그리고 선·후배 도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말없이 응원해준 남편 홍순열 씨, 언제 어디서나 글을 쓰라고 노트북까지 사주며 응원한 아들 홍찬표, 며느리 안지혜, 내 비타민 같은 소예, 성윤이도 두 팔이 아프도록 끌어안아 주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게스트들이 꼭 물어봅니다. "너 시인이야?" 그 물음에 저는 기죽은 목소리로 시인이 될 거라며, 코리아 팬케이크(김치전)와 라이스와인(막걸리)을 마시며 제가 쓴 시조를 낭송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I am a Korean sijo poet." 그리고 제 시조를 더 멋들어지게 낭송해 줄 것입니다.


  ● 1959년 충북 진천 출생
  ● 2012년 8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심사평>


  문명비판적 사색과 감성의 조화


시조의 위의는 민족적 미학과 우리말의 호흡이 이끌어낸 독자적 정형성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민족 스스로 선택한 민족시의 고귀한 질서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일정한 질서는 곧 자연의 섭리에 대한 순응이자 보다 가까워지는 국제화 시대의 변별력이다. 우리의 말을 오래 사용했다고 결코 버릴 수 없듯이 오랜 역사적 사실만으로 제척사유가 될 수는 없다.

코로나19 사태의 충격 속에서도 금년은 예년에 비해 응모 편수가 많이 늘어나고 응모지역도 전국적이었다. 따라서 상위권 작품의 수준 또한 우수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다만 시어가 뜻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감정의 직설이나 대상의 복제에 급급하고 사유가 부족한 작품들 또한 적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관심을 끈 작품은 조경섭의 '민들레 통신', 권규미의 '엿기름 내다', 김남미의 '금속성 이빨' 등 세 편이었다. 그 가운데 '민들레 통신'은 일상을 반추하는 진정성이 눈길을 끌었으나 메시지의 평이함에서, '엿기름 내다'는 대상물의 정체성을 돋보이게하는 참신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종장처리의 아쉬움에서 뒤로 밀려났다.

마지막으로 흠결에서 보다 자유로운 '금속성 이빨'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 작품은 재개발로 인한 갈등구조를 야기시켜온 상징적 도구이자 수단인 '포클레인'에 포커스를 맞추어 동영상처럼 명징하게 정황을 그려내고 있다. 문명비판적인 시선이 지닌 힘에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의 고른 수준이 당선의 담보가 되었음도 함께 밝혀둔다. 다만 자신의 진단에 대한 처방을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으나 이 점은 앞으로 당선자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앞으로 시조의 새로운 주역으로 성장해주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 민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