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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아버지 구두 / 김사라

 

새벽녘 아버지 구두가

집을 나선다


내가 잠들었을 때 나가서

잠들기 직전에야

돌아오는 구두

어떨 때는 내가 잠들고 나서

꿈속에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돌짝길 걷다 다쳤을까

옆구리가 조금 찢긴 구두

밑창은 할머니 무릎뼈처럼 닳았다


아버지 구두의 원래 꿈은 무엇이었을까

제 빛깔을 잃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아버지 구두를 오늘은 꼭 수술대 위에 눕힌다


구두의사 면허증이 없지만

첫 수술하는 의사의 마음으로 구두를 안았다


구둣솔로 아버지 삶에 떨어진 먼지를 턴다

우리집 앞마당까지 놀러오는 비둘기가 모이를 콕콕 찍어 먹듯

솔에 콕콕 바른 구두약으로 긴급 처방을 내린다


이제 기름칠만하면 잘 나가는

내 새 자전거처럼

아버지 구두도 막힘없이 걸어 나가겠지


아버지 삶에

윤기를 내기 위해

아버지 나이만큼 주름진 구두를

호호 불어 토닥토닥 어루만진다


비로소

아버지 삶에 떨어진 흙먼지를

모두 털어내고

하루에 고됨도 말끔히 씻어낸다


새로 변신한 아버지의 구두가

콧노래 흥얼이며

밝은 새벽녘 길을 향해 나간다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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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했던 시절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에 푹 빠져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튼튼한 나무로 성장하기 위해 사랑의 햇빛을 모았던 그때를 떠올려 봅니다. 새싹이었던 제 꿈은 어느덧 자라 어린 나무가 되었고, 제법 단단한 열매를 맺는 나무로 성장하였습니다.

천상의 맛을 지닌 달콤한 열매를 맺는 나무로 성장하고 싶었는데, 열매를 맺기까지 때론 비바람이 몰아쳐서 채 여물기 전에 떨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고, 혹독한 가뭄이 이어져서 갈증에 시달리기도 하였습니다. 때론 온 세상을 꽁꽁 얼려버리는 한파 속 겨울나무처럼 따스한 봄의 기억으로 언 몸을 흔들어 녹여가며 봄을 기다리던 그 시간도 지금 되돌아보면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린이들에게 약속하고 싶습니다. 너희 걸어가는 길이 혼자라 느끼지 않게 따듯한 글을 쓰며 함께 성장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동시와 동화를 읽으면서 행복했던 것처럼 저도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용기와 희망, 그리고 꿈을 심어주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또한 잘 하고 있다고 응원을 해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플 땐 감추지 말고 그냥 울어도 좋다고 다독이며 위로해 주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먼저 저에게 기회를 열어 주시고 날개를 달아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손을 잡고 일으켜 주신 매일신문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를 끝까지 믿어 주었던 사랑하는 가족과 비타민 같은 친구들, 그리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모교의 교수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좋은 구두는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춘문예 동시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갈 때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를 꺼내 신었습니다. 이 반짝반짝 빛나는 새 구두를 신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상식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986년 서울 출생
  ● 제4회 바다 문학상 시 부문 차하
  ● 제1회 호연재 여성문학상 시 부문 장려
  ● 2009년 한국문학세상 수필 등단(J와의 인연으로)
  ● 제17회 설중매 문학 신인상


  <심사평>


  울림이 있는 따듯한 동심


응모된 작품을 정독한 후 느낀 전체적인 경향은 우선 소재와 이미지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제에 따른 시적 상상력과 그것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 설명적인 작품이 많았다. 오늘의 동시가 새로운 소재와 표현, 참신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은 지금의 어린이가 지난날의 어린이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문물을 빠르게 습득한다. 상상력과 사고 또한 기발하고 웅숭깊다. 따라서 시인들은 끊임없이 동심의 흐름을 파악하여 소재와 표현, 상상력의 확장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응모자의 연령별 분포는 중년층 이상이 많았으며 상대적으로 청년층의 작품은 적었다. 특이한 것은 중년층 이상의 작품과 청년층의 작품 경향이 확연히 달랐다는 것이다.

고심 끝에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이현희의 '표정 없는 집, 김광희의 '중심', 김사라의 '아버지의 구두' 였다.

먼저 이현희의 '표정 없는 집' 은 발상이 독특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삭막한 도시의 모습을 개성적인 눈으로 조응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그리는 그 자체에 머물러 있었다.

김광희의 '중심'은 이미지와 시어가 정제된 작품이다. 중심과 주변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시적 메시지가 관심을 끌었다. 다만 신인다운 새로움과 활달함이 더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당선작으로 뽑힌 김사라의 '아버지의 구두'는 이야기가 있는 작품이다. 참신한 비유나 표현 없이 담담하게 구두를 통해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삶과 교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와 나 사이에 구두가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시 전체를 끌고 가는 동심이 생활에 밀착되어 있고 작품 속에 용해된 사랑의 마음이 울림을 준다. 시는 울림이 있어야 한다. 이 울림이 독자에게 위안과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보내온 수편의 작품도 동심과 시심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여 신뢰를 주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구두'는 소재와 발상에서 새롭지는 않다. 또 시어의 선택과 이미지의 펼침에 다소 산만한 점도 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뽑은 것은 앞으로의 가능성과 사물을 보는 따듯한 동심 때문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 이재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