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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하루에 두 시간만 / 김단비

 

가든 빌라 A동 502호, 윤미로 작가의 집까지 겨우 네 개 층을 걸어 올라갔을 뿐인데도 등 뒤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백팩까지 다 젖어 있을 것이다. 통화와 메일로만 만났을 뿐 일면식도 없는 그녀의 집에 약속도 없이 오게 된 건 팀장의 닦달 때문이었다. 뉴욕 에세이에 들어갈 삽화를 모두 맡은 윤 작가는 겨우 삼 일 남은 이달 말까지 마지막 데이터를 넘겨야 하는 긴박한 시점에 나흘째 잠수를 타고 있었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그녀의 집으로 가서 그림을 받아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턱 막혔다. 그림을 잘 그리는 만큼 완벽주의적 성격을 지닌 그녀는 업무 통화상에서 늘 나를 긴장하게 하는 존재였고, 회의나 회식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는 그녀에 대해 히키코모리이거나 정신병자라는 얘기까지 돌고 있었으니까.

벨을 누르기 전 심호흡을 했다. 법인 카드로 사 들고 온 소고기·새우 피자에서 고소한 냄새가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안에서 인기척이 나는 듯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또 한 번 벨을 누르고 있자니 빚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누구시죠?”

나지막한 그녀의 목소리가 복도 안쪽으로 울려 퍼졌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푸르다 박재하입니다.”

이때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방문의 이유가 우리 측이 아닌 윤 작가의 잘못에 기인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하, 소리 뒤로 정적이 이어졌다. 집에까지 찾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 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잠시 문을 두드려 볼까 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말을 좀 더 해보기로 했다.

“작가님. 수정이 너무 많았죠. 수정에 민감하신 거 아는데 이번에 좀…. 네. 당장 해내라는, 뭐 그런 말씀 드리러 온 건 아니고요.”

사실 그런 말을 하러 왔다.

“이렇게 집에까지 찾아와서 죄송하지만, 저희도 사정을 좀 알아야 해서요.”

간절한 나의 말이 공허하게 울릴 뿐 그녀의 문은 열리지 않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팀장에게 문자로 이 상황을 보고하자 팀장은 바로 버티고 있으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밭은 한숨이 났다. 언제 열릴지 모르는 문 앞에서 나는 언제까지 버텨야 할까. 계속 버티면 언젠가 문이 열리기는 할까.

바닥에 주저앉아 노트북을 꺼냈다. 휴대용 와이파이를 연결하자 화면엔 부채꼴 모양의 아이콘이 떴다. 국가직, 지방직, 공무원 시험 개편사항 등 검색창에 입력하는 키워드는 공무원 시험 정보와 수험서에 관한 것들이었다. 박봉에 야근, 늘 위태위태한 회사 상황, 거기에 보잘것없는 책 판매 부수, 전직을 꿈꾸기 시작한 요인은 많았다.

즐겨찾기에 수험서와 시험 정보를 열 개쯤 더하고 있을 때였다. 빼꼼 그녀의 집 문이 열리고 문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거의 코만 보이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지만, 그 얼굴은 비명소리와 함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것의 잔상에 빨려 들어가듯 나는 그녀의 문에 찰싹 달라붙어 급하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지막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트북하고 핸드폰 좀 꺼주세요.”

“네?”

“노트북하고 핸드폰 좀 꺼 달라고요.”

다급한 목소리였다. 뭔지 모를 불안감이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도촬을 걱정하고 있는 건가. 삼 년 넘게 여러 작업을 함께한 나를 그 정도로 여기고 있다면 그건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 기분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잠시 핸드폰을 켜 놓으라는 팀장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원을 끈 노트북과 핸드폰을 초인종 앞에 들어 보이자 문이 반쯤 다시 열렸고 이번엔 그녀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신분증 사진에서 보다 더 길고 부스스한 머리는 가슴까지 내려와 있었고, 얼굴이 전체적으로 경직돼 보였는데 큰 눈은 사진에서보다 더 깊이 안쪽으로 들어가 퀭해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습에서 자유롭고 순수한 느낌이 났다. 그녀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인 뒤 문을 완전히 열었다. 연락이 안 돼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그녀는 긴 팔 티셔츠에 긴 판 바지를 입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왔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오세요?”

기가 질린 내 모습은 전혀 개의치 않는 담담한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녀는 불편한 기색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작가님. 이대로 그냥 가면 저 정말 죽습니다.”

나는 다소 과장되게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꺼내려는 듯 그녀가 입술을 달싹이자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긴 에어컨이 없어요. 괜찮으시겠어요?” 의외의 말에 멍해졌지만 지금 그런 것 따윈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한눈에 족히 거실의 반이 차 보이는 키가 큰 선인장들에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녀에게 피자 상자를 건네며 함께 먹자고 했지만, 그녀는 입맛이 전혀 없다며 현관 오른쪽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인장 행렬이 멈춰진 곳, 그러니까 부엌이 시작되는 곳 벽에 해바라기 모양의 시계가 걸려 있었다. 시계는 막 오전 열한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핸드폰 대신 시간을 가늠할 것이 있어 다행이었다. 문득 팀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쯤 나와 연락이 되지 않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있을 걸 생각하니 쿡쿡 웃음이 났다. 어디 제대로 속 한 번 타 보시라.

가방에서 공무원 영단어장을 꺼내 탁자 위에 놓고 피자를 베어 물었을 때 그녀의 방에서 희미하게 음악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귀를 기울여보니 비발디의 사계였다. 그 선율엔 낑낑대는 소리와 국적 불명의 언어가 더해지기도 했는데, 그 소리들은 마감에 대한 부담감과 문밖에 지키고 앉아 있는 나의 존재 때문인 듯했다. 문득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녀의 그 소리들 속에서 단어는 어느 때보다 더 잘 외워지고 있다는 거였다. 그녀의 소리들에 담긴 마감에 대한 집념이 나에게도 옮겨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단어장을 두어 장 넘기고 나자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선풍기라도 있으면 틀어볼까 해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선풍기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이상했다. 사보·잡지·에세이 삽화 분야에서 탑 텐 안에 드는 윤미로 작가의 집에 에어컨도 모자라 선풍기 하나조차 없다니. 혹시 몰라 부엌으로 가보았지만 선풍기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한데 없는 건 선풍기뿐만이 아니었다. 거실과 부엌을 통틀어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TV, 정수기 등 웬만한 집엔 하나씩 있을 법한 가전제품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소파로 돌아와 백팩에서 휴대용 선풍기를 꺼내 틀었지만 시원하기는커녕 간지럽기만 했다. 찬물이라도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그녀의 방으로 가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무슨 일이시죠?” 경계하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순간 움츠러들었다.

“작가님. 작업하시는 데 죄송하지만, 저 물 좀 마실 수 있을까요?”

방문이 빼꼼 열리며 그녀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 순간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나를 떠밀었고 나는 선풍기를 놓치며 별안간에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가냘파 보이는 여자가 무슨 힘이 그렇게 센지. 겨우 몸을 일으켰을 때, 이미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그녀는 나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그거 좀 치워요!”

대체 뭘 치우라는 건가. 나는 욱신거리기 시작한 엉덩이를 손으로 비비며 물었다.

“뭘 말하시는 거예요?”

“그거요. 그거, 박 대리님 선풍기요. 그거 좀 빨리 치워주세요.”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나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빨리 좀 치워주세요. 빨리요.”

그녀는 기를 쓰고 재촉했다.

“휴지통은 어디 있습니까?”

“그런 거 없어요. 나가서 좀 버려주세요.”

“휴지통이 없다고요?”

“네. 빨리요. 빨리.”

그녀가 재촉을 해대는 통에 나는 허둥지둥 부서진 선풍기와 핸드폰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넘어진 쪽 엉덩이가 쑤셨다. 왜 저러는 걸까. 감전된 적 있나.

길 건너 슈퍼에 가서 종량제 봉투와 아이스크림 하나를 샀다. 종량제 봉투에 선풍기를 담아 들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시 윤 작가의 집을 향해 걸었다. 핸드폰을 켰더니 팀장의 문자가 여러 개 와 있었다. 전화를 걸자 그는 고함부터 쳐댔다. 하지만 내가 윤 작가 집에 들어갔다고 하자 그는 다소 진정이 된 듯 헛기침을 했다. 이어 나는 배터리가 다 됐다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왜 충전을 하지 않았느냐는 그의 새된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이제야말로 배터리가 정말 다 된 것처럼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난달 초, 연일 이어지던 야근이 잠시 주춤했다. 나는 며칠 동안 오랜만에 퇴근 후 게임도 하고 친구들과 밀린 소주 한 잔을 기울이기도 하며 여유로운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박 대리. 아르바이트 하나 해.”

팀장은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툭 던지듯 말했다.

“네? 아르바이트요?”

“그래. 요즘 일찍 퇴근하잖아. 자기 계발 팀 교정 알바 좀 하라고. 사장님하고 얘기 다 됐어.”

순간 나는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선심 쓰듯 듯한 말투가 더 기분 나빴다. 얼마 전부터 자기계발 팀 쪽에서 외주 편집자를 구하고 있었지만 비용이 맞지 않아 계속 결정이 나지 않고 있었다. 그 일을 겨우 삼일 제때 퇴근했을 뿐인 나에게 일찍 퇴근한다는 이유로 안기려고 하다니. 게다가 우리 팀엔 이제 막 입사한 신입도 있었고 삼 년 차 다정 씨도 있다. 왜 하필 대리인 나인가. 그것도 최근 가장 많은 야근일수를 찍은 나를. 억울한 마음에 가슴이 뛰었다.

“그걸 왜 제가….”

그제야 나에게로 시선을 향한 팀장은 윗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실력이 안 되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실력, 팀장이 말하는 실력은 실적을 의미한다. 입사 이래로 열다섯 권의 책을 내는 동안 나는 단 하나의 히트작도 내지 못했다.

“요즘 부모님 라면 가게도 어렵다며.”

부모님까지 들먹이니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이때 팀장이 내 등 뒤로 지나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싫으면 leave 하는 거야. 못 하겠으면 떠나는 거라고.”

나는 얼음처럼 온몸이 굳어졌다.

그날부터 나는 공무원 시험정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서른두 살이나 돼서 시험 준비를 하는 게 엄두가 나지도 않았고 한 몇 년 시험 준비할 만한 돈도 모아두지 못한 상황에 시험 준비보다는 이직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겠지만 그것도 상황이 녹록지가 않았다.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데다 히트작 하나가 없는 나는 푸르네보다 사정이 좋은 회사에 서류 전형 한 번 통과해 본 일이 없었다.

A동과 B동 사이에 종량제 봉투 매립장이 보였다. 그쪽으로 다가가며 마침 다 먹은 아이스크림 껍질을 선풍기가 든 종량제 봉투에 담고 있는데 발아래로 물컹한 느낌이 들었다. 내려다보니 내 발이 개똥을 밟고 있었다. 머리가 쭈뼛 섰다. 이대로 그녀의 집에 들어가면 난리가 날 게 빤했다. 나는 다시 연립을 빠져나와 오는 길에 보았던 길 건너 세탁소에 운동화를 맡겼다. 세탁소 주인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삼선 슬리퍼를 내주었다.

그녀의 식탁엔 이슬이 맺힌 물컵이 놓여 있었다. 집안 어딘가에 냉장고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컵을 들어 올리는 데 손끝에 닿는 시원한 느낌이 묘했다. 한데 물맛이 조금 이상했다. 보리차도, 결명자차도 아닌 한약 같았다. 그 맛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살펴본 식탁 안쪽엔 각종 견과류와 철분·칼슘·마그네슘 등의 영양제, 그리고 유리병 안에 든 요구르트가 있었다. 온통 몸에 좋다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그 식탁, 아무래도 그녀는 건강에 유난히 신경을 쓰는 듯했다. 전자기기에 대해 유난히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인지도 몰랐다.

소파로 돌아와 남은 피자를 먹고 영단어장을 뒤적거리다 한 시가 되었을 때 그녀는 졸음이 가득한 얼굴로 거실에 나왔다. 소파에 앉은 그녀는 무심히 소 컷 스케치를 내밀었다. 나는 여전히 엉덩이가 쑤셨지만 그녀는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다. 그래. 그림 그려주는 것만도 어디냐. 뉴욕 맛집 탐방 섹션에 들어갈 소 컷들 속 핫도그와 피자 그리고 수제 버거는 스케치 상태에서도 맛있는 김을 모락모락 피워대고 있었다. 역시 손댈 것이 별로 없는 작가였다. 하지만 버거집 안의 소녀 얼굴이 문제였다. 윤 작가의 동그란 눈과 뾰족한 턱이 닮아있는 이 소녀는 지난번 프랑스 에세이에 나왔던 소녀랑 비슷해 보였다. 일하면서 알게 된 건데 작가들은 종종 캐릭터의 얼굴을 자신과 닮게 그린다.

“소녀 얼굴이 작가님하고 비슷해 보이는데요?”

“그래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혼잣말을 했다.

“매일 내 얼굴만 봐서 그런 가….”

“네?” 나의 물음에 그녀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에요.”

나는 교정지와 그림을 대조하며 간단하게 몇 가지 수정사항들을 얘기했다. 쭉 이 정도의 속도로 나간다면 내일 밤까지는 목표 달성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다시 단어장을 보기 시작했고 그녀의 방에선 또다시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좋은 경치를 배경으로 한 광고에서 종종 들어본 적이 있는 음악이었다. 노래가 세 번쯤 바뀌고 났을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전화가 걸려온 듯했는데 무슨 일인지 자못 심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녀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과 동시에 그림 완성이 무산될 것 같은 불안감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그녀가 부서질 듯 방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붙여보려고 했지만 그녀는 헐레벌떡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녀를 따라가 봐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다시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부엌 쪽 방으로 뛰어 들어간 그녀는 하얀 이불 같은 것을 망토처럼 둘러쓰고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는 선글라스를 끼고 나와 또다시 밖으로 뛰쳐나갔다.

삼십 분쯤 뒤 그녀가 그 이불을 둘러쓴 채로 돌아왔을 때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황망히 바라보는 내 시선을 외면하며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가고 나자 음악 소리는 조금 전보다 더 커졌다. 잠시 후 음악 소리 사이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귀를 기울일수록 더욱 애처로워졌다. 그 소리에 이상하게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 나는 그녀의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벽면이 은회색인 방엔 창이 없었다. 벽면은 온통 아크릴화와 펜 그림 스케치들로 도배가 되어있다시피 했는데 그것들은 정면 벽 쪽에 놓인, 막 채색이 들어간 그림이 놓여있는 책상과 그 옆에 놓인 작은 소파를 요새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화면으로만 확인했던 그림들의 원화를 마주하는 느낌은 강렬했다. 그녀는 오른쪽 벽면에 기대 앉아 고개를 무릎에 묻고 있었다. 바닥엔 아까의 그 하얀 이불이 가슴을 풀어 헤친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작가님. 무슨 일 있으세요?”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넋이 나가 있는 얼굴에선 눈물이 주르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윤 작가가 내 앞에서 울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토토가 죽었어요. 토토가…….”

“토토요? 토토가 누군데요?”

“내가 토토 엄마거든요. 키워주지는 못했어도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하는데.”

나는 그녀를 빤히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엔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있던 몽이가 있었다. 학교에 다녀와 엄마가 일하러 나간 텅 빈 집안에서 나를 반겨주던 몽이. 몽이는 저녁에 엄마가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올 때까지 나와 함께 공놀이를 하고 숙제를 하고 TV를 봤다. 몽이가 죽었을 때 나는 몽이를 찾아 온종일 온 동네를 헤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멀리 해가 지는 능선에서 몽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몽이에게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경찰관 아저씨에 의해 발견되어 곧바로 경찰차에 실려야 했다. 몽이를 제대로 보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소용없었다.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다시 너를 만날 때까지 한순간도 너를 잊지 않을게. 입안에서 맴돈 그 말들을 삼키는데 가슴이 깨질 것처럼 아팠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저 되는 대로, 주어지는 대로 별생각 없이 살게 된 건.

“그러면 가보셔야죠.”

“갈 수가 없어요.”

그녀의 눈물은 또르르 방울지고 있었다.

“왜요? 그림은 이따 그리셔도 됩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바보라서 갈 수가 없어요. 바보 병신이라서 갈 수가 없어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가슴에 찌르르한 통증이 느껴졌다. 왜 갈 수 없는 건지 묻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나에게 책상 뒤 벽면을 보라고 했다.

“저 그림들 뒤는 알루미늄 포일을 덮은 창이에요. 그게 튀어 보이는 게 싫어서 이 방 벽도 은회색으로 한 거고요.”

뭔가 다 체념해버린 말투였다. 그림들 쪽으로 다가가 보니 그림들 뒤는 정말 벽이 아닌 창문이었고 전체가 다 포일로 덮여 있었다. 이 순간 나는 어릴 적 읽은 만화책에 나온 포일을 두르고 사는, 전자파를 피해야 살 수 있는 사람을 떠올렸다.

“작가님. 전자파에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게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작가님도 혹시….” 그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지하철도 버스도 택시도 아무것도 탈 수가 없는 상태예요. 그래도 블루투스, 내비게이션을 꺼 주는 택시는 탈 수가 있어서 나가봤던 건데… 택시 몇 대를 보내고 겨우 그렇게 해 준다는 기사님을 만나서 택시를 탔는데, 막상 타보니 증상이 또 시작됐어요. 이제 차창에 열 차단 필름까지 붙여야 하는 상태가 된 것 같아요.”

나는 그녀가 침낭 옷을 입은 채로 황망히 택시에서 내렸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대체 그 증상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작가님. 그런데 전자파 때문에 몸에 어떤 증상이 느껴지시는 거예요?”

나의 말에 그녀는 미간을 조였다.

“머리가 찢어질 듯이 아파요. 어지러울 때도 있고 속이 메스껍기도 하고. 어떤 땐… 마비되기도 해요.”

그 순간 내 머릿속에 그녀가 포토샵을 이용해 수정작업을 한다는 사실이 스쳤다.

“그럼 요 며칠 그림 못 그리신 것도 그 때문이었던 거예요?”

“네.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컴퓨터 사용을 못 하는데 이번엔 어쩌다 훌쩍 네 시간을 넘겨버렸어요.”

하루에 두 시간, 삽화가가 몰두해 수정 작업을 하기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의외로 편안해 보였다. 자신의 증상에 대해 편집자 중 누구든 한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님. 저랑 잠깐 밖에 안 나가실래요?”

앞뒤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꺼낸 말에 그녀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전신주, 전기함, 이동통신사 중계기, 여기저기서 뻗어 나오는 와이파이까지. 전자파는 공기처럼 존재하고 있어요.”

문득 가슴이 답답해진 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전자파 없는 데는 없나….”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가 말했다.

“있어요. 지금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가 봐요. 침낭 옷 입고.”

나의 말에 그녀는 들고 있던 침낭 옷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입고 나가면 미친 사람 취급할 텐데….”

그녀는 망설이는 듯했지만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의 방에선 여전히 음악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 방 안을 둘러보니 문 쪽 벽 가슴 높이에 유리 상자가 세 개 붙어 있었다. 지그재그 모양으로 붙어있는 그것들 중 맨 위 상자 안엔 벽걸이형 CD 플레이어가 CD를 돌리고 있었다. 그 아래 상자엔 손바닥만 한 듀얼 스피커, 그리고 또 그 아래 상자엔 유선 전화기가 들어있었다. 상자들은 모두 문이 달려 있었는데 스피커 상자는 문이 열려 있었다.

집을 나선 건 저녁 시간이 됐을 때였다. 그녀가 소 컷 채색은 마치고 나가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나는 식어 빠진 피자를 먹었고 그녀는 식탁에서 시리얼과 우유로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식사를 마쳤다. 조금 전 그녀가 채색이 다 된 소 컷들을 내밀었을 때 나는 괜히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데 그녀는 내 삼선 슬리퍼가 마음에 걸렸는지 신발장에서 하얀색 남자 운동화를 꺼내주었다. 예상외의 물건에 괜히 신경이 거슬린 나는 아무렇게나 발을 집어넣고 대충 끈을 묶었다. 이 집에 남자가 사는 건가?

집에서 나와 칠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닿았다. 사실 거리야 칠백 미터라 할 수 있겠지만 그녀의 전자파 측정기가 알려주는 전자파 방출량이 많은 곳을 피해 오다 보니 실제로 걸은 거리는 족히 이 키로는 된 것 같았다.

“여기예요. 여기.”

그녀는 아파트 끝 거의 주택가와 닿는 부분에 위치한 농구장 앞에서 전자파 측정기를 마구 흔들었다. 녹색 바탕에 하얀 선이 그려진 바닥과 덩그러니 서 있는 농구대 하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농구장이었다. 하얀 침낭 옷을 둘러쓰고 선글라스를 써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 그녀가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하며 안으로 뒤뚱뒤뚱 걸어 들어갔다. 그 모습이 펭귄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농구장의 안쪽으로 키가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솜사탕 같은 가로등 불빛이 두 개의 벤치에 불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녀는 오른쪽 벤치로 뛰어가 앉았다.

“여기가 바로 전자파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곳이에요.”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고 침낭 옷을 벗어 던졌다.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탓에 하얗고 긴 팔이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혹시 있을지 모를 전자파에 심장이 졸아들었지만, 그녀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왼쪽 벤치에 앉았다.

“와. 여름 저녁 정말 좋네요.”

그녀는 목소리 톤을 높이며 말한 뒤 깊게 심호흡을 했고 나도 그녀를 따라 했다. 오랜만에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네. 좋네요. 저도.”

그때 그녀가 바지 주머니에서 은박지에 싸인 종 모양의 초콜릿 몇 개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요즘 일하시는 건 어때요?”

문득 막막한 기분이 든 나는 초콜릿의 은박 껍질을 벗겨냈다. 초콜릿이 조금 녹아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히트작도 못 냈고.”

“꼭 히트작이 있어야 하나요?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죠. 난 박 대리님이랑 일하는 게 제일 편하던데.”

무덤덤하게 툭, 내던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물수제비를 뜨고 있는 냇물처럼 가슴이 첨벙댔다.

“그래요? 어떤 부분이요?”

그녀는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 됐다.

“글쎄요. 뭔가 믿음이 간다 할까. 박 대리님은 정확하고 친절하시잖아요. 발주서 내용이 나중에 바뀌는 일도 거의 없고. 제 스타일대로 고집부릴 때도 이해하려고 애쓰시고. 회사에서도 박 대리님의 그런 부분 알지 않을까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하, 하고 탄성이 났다. 판매 부수로도, 연봉으로도, 팀장의 칭찬으로도 단 한 번도 받지 못한 인정을 그녀에게서 받게 되다니. 조금 전 입안으로 넣은 초콜릿이 사르르 녹아들었다.

그녀는 뒤꿈치로 바닥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그걸 바라보며 내 시선도 자연히 내 발 쪽을 향했다. 내가 신고 있는 하얀 운동화는 내 발보다 커 뒤가 조금 남았다.

“작가님. 이 신발 누구 건지 물어봐도 돼요?”

그러자 그녀는 바닥을 툭툭 치던 걸 멈췄다.

“남자친구 거예요.”

그 순간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고 그녀는 다시 발뒤꿈치로 바닥을 툭툭 치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헤어질 때 주고 간 거예요. 현관에 남자 신발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헛웃음이 났다. 떠나면서 위해주는 척하기는. 미친놈. 왜 헤어졌는지 묻기가 망설여져 괜히 초콜릿 껍질만 까고 있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가 자기랑 사는 이유가 자기가 내 불편함을 해소해주기 때문이래요. 다른 이유가 없는 것 같아서 더는 같이 못 살겠대요.”

나는 까놓은 초콜릿 껍질을 꾹꾹 눌러 지렁이 모양을 만들었다.

“미친놈. 가려면 조용히 가지.”

그러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난 진짜 이유 알아요. 꼭 필요한 시간에 꼭 필요한 장소에 가주지 못하는 건 죄악이거든요. 걔 아빠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고. 오늘 토토한테도 그랬잖아요. 열 번쯤 받은 결혼식 청첩에도 한 번도 못 갔어요.”

말끝에 그녀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들한테 작가님 사정을 얘기하면 안 되나요? 일부러 안 간 게 아니잖아요.”

그러자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위로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녀에게 조금은 다른 길을 구경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다른 길로 가자고 했다. 한 십분쯤 걸었을까. 지하철역이 있는 네거리를 지날 무렵 그녀가 탄성을 내질렀다.

“와. 유리 엘리베이터다.”

족히 이십 층은 되어 보이는 밝은 빛을 내는 쇼핑몰의 유리 엘리베이터는 안에 탄 사람들의 모습을 훤히 보여주며 유유히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래도 작년엔 저건 탈 수 있었는데.”

그녀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셨다고요?”

“네. 유리 엘리베이터에서는 핸드폰이 터져도 철제 엘리베이터에서처럼 그렇게 전자파가 많이 나오지 않거든요. 저건 정말 인류 최대의 발명품이에요.”

두 손을 꼭 쥔 채로 그것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엔 조금씩 환희가 차오르고 있었다. 저걸 타면 우주 정거장에라도 갈 수 있을 것처럼. 하루에도 지겹게 타고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에 저렇게 기뻐하다니. 그녀는 때때로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행복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악.”

그녀가 새된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의 하얀 침낭 옷은 거리에 나동그라져 있었고, 그녀 옆엔 술에 취한 젊은 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휘청거리고 있었다.

“어? 바바리 걸 아니었어?”

남자를 노려보다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을 때 그대로 드러난 그녀의 하얀 팔이 보였다. 떨고 있었다. 나는 온몸으로 그녀를 꼭 끌어안았고, 그 순간 감전된 것처럼 온몸이 저릿했다. 이때 귓가에 팀장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맴돌았다. 싫으면 leave 하는 거야. 못 하겠으면 떠나는 거라고. 나는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어느새 남자는 달아나버리고 없었다. 누군가 눈치 빠르게 집어 준 침낭 옷을 그녀에게 입혔지만, 그녀는 몸에 힘이 풀리며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녀를 둘러업자 온몸으로 찌르르한 전류가 퍼져 나갔다. 내 등위에 닿았던 건 그녀의 몸이 아니라 그녀의 온 생이었었던 듯했다. 몇 걸음을 내딛고 난 뒤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기를 꺼냈다. 그때 그녀의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으로 가요….”

“병원으로 가셔야죠.”

“소용없어…거기 있는 전자기기…나 더 힘들어지기만….”

그래도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내가 모르는 그녀의 세상에 대해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걸음을 옮기려는데 기이한 듯 바라보는 사람들이 시선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여덟 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침대 방에 누운 그녀는 부엌 쪽 방에 있는 냉장고에서 우엉차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내가 낮에 마신 물을 말하는 것 같았는데 그 물이 그녀의 증상에 도움이 되는 모양이었다. 부엌방 안엔 미니 냉장고와 데스크톱 컴퓨터, 그리고 스캐너가 있었다. 그녀는 이 방에서 수정 작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녀에게 물을 먹이고 다시 침대에 눕히고 난 뒤 나는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쓰러진 건 마비가 왔기 때문이고 그걸 풀 수 있는 건 시간뿐이라고 했다. 그 시간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림 마감이 물 건너간 건 확실했고 이제 나에게 남은 일은 그녀의 마비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녀의 방에서 나온 나는 팀장에게 상황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아 밖으로 나갔다. 전화기를 켜니 팀장의 흥분한 문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엔 예상치 못한 내용이 있었다. 너, 에세이 하우스에 이력서 넣었다며? 그 순간 나는 가슴이 턱, 막혀왔다. 그게 벌써 육 개월 전 일인데 인제 와서 팀장 귀에 들어갈 게 다 뭔가. 그다음 문자가 더 가관이었다. 이력서 넣는 건 좋은데 티 나지 않게 해라, 어! 첩첩산중이었다. 뉴욕 에세이 그림도 중단될 판에 왜 이런 일까지…. 아, 이제 정말 푸르네와 인연이 다 한 건가.

팀장에게 전화를 걸지 못한 채로 다시 그녀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잠이 들어 있었다. 방에서 나가려던 나는 무심코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아이처럼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침대 맡으로 가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고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잠에 들어버렸다.

잠에서 깬 건 침실 창문으로 스미는 투명한 햇살과 왁자지껄한 소리 때문이었다. 소리의 근원지는 거실이었고 선인장 무리 앞엔 윤 작가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모여 앉아 있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여자,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이십 대로 보이는 여자, 그리고 나와 동년배로 보이는 남자 등 나이대도, 성별도 모두 달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윤 작가는 긴팔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고, 이십대 여자와 동년배 남자 역시 긴팔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꿈인가 싶어 얼굴을 때려보았지만 눈앞의 광경은 그대로였다.

중년 여자는 윤 작가의 왼편에 붙어 앉아 윤 작가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윤 작가가 간밤에 거리에서 당했던 일을 얘기한 모양이었다. 그들 모두의 옆에는 아까의 그 갈색 물이 놓여 있었고 소파엔 윤 작가의 침낭 옷과 비슷한 거적때기가 있었다.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던 나는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안쪽이 새우깡과 오징어집 등의 과자 봉지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자봉지도 전자파 차단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윤 작가와 눈이 마주친 나는 홀린 듯 그들에게로 다가섰다. 그들의 중심엔 부루마블 게임판이 있었다. 오버워치와 서든어택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부루마블이라니.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그것들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윤 작가가 그들을 소개했다.

“동호회 회원분들이에요. 전알퇴.”

전알퇴가 전자파 알레르기 퇴치의 약자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왠지 서글픈 느낌이 드는 이름인데도 그녀의 얼굴엔 해바라기 같은 미소가 피어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정쩡하게 인사를 했고 윤 작가는 그들에게 회사에서 온 사람이라며 내 소개를 했다. 그러자 그들은 나에게 함께 게임을 하자고 했다. 이때 나는 그들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윤 작가를 한쪽으로 불러내어 속삭이듯 말했다.

“작가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몸은 괜찮으세요?”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어 보였다.

“이러다 괜찮아져요. 중 컷 스케치도 다 끝났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것도 모자라 스케치를 끝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를 그냥 이대로 둬도 되는지 아니면 쉬라고 해야 하는지, 그도 아니면 이왕 컨디션을 회복한 김에 그림을 계속 그려달라고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박 대리님도 같이 해요. 부루마블 은근히 재미있어요. 그림은 한 시간만 놀다 그릴게요. 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조르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 표정에 이끌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루마블은 은행에서 돈을 받아 각 나라에 호텔이나 별장을 지어 통행요금을 받아 수익을 내는 게임으로, 게임이 끝난 시점에 돈을 제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승리하게 된다. 그녀는 내가 마드리드와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에 손톱만 한 플라스틱 호텔이나 별장을 세울 때마다 까르르 웃으며 진심으로 좋아했다. 내가 진짜 그 도시에 건물을 사기라도 한 것처럼.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기껏해야 일등만 빼고 나머지 사람들끼리 오천 원씩 내서 떡볶이를 배달시켜 먹을 작정이라면서 사활을 건 듯 진지했다. 그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돈이 거의 바닥이 나 버렸을 땐 나도 위기의식이 들기 시작했다. 이즈음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내 땅에 호텔을 하나 선물해 주었고, 나는 그와 묘한 연대감을 느끼며 게임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이번 판은 중년 여자의 승리로 끝이 났다. 판을 정리하고 난 그녀는 긴 생머리를 말아 올려 핀을 꽂으며 모두에게 물었다.

“요즘은 다들 좀 어때?”

“이제 그냥 그런가보다, 해요. 요즘은 더워서 더 힘들죠.”

이십 대 여자가 활짝 편 접선 부채를 부치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곧게 뻗은 단발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그러자 중년 여자가 얼굴을 구겼다.

“난 그놈의 바코드 때문에 마트에 못 가서 아주 죽겠다고.”

그러자 윤 작가는 의아한 듯 말했다.

“미선 님은 다니시는 데는 지장 없으니까 시장에 가시면 되잖아요.”

이들은 서로의 실명을 부르고 있는 듯했다.

“자긴 아직 아가씨라서 뭘 몰라. 시장에 가서 살 거, 마트 살 거 따로 있지.”

그러자 다들 짐짓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나와 동년배의 남자가 통통한 볼에 볼우물을 만들며 약병을 꺼내 모두에게 하나씩 내밀었다.

“이게 그 미스콘신 사에서 새로 나온 철분제예요. 흡수율이 탁월하답니다.”

순간 나는 얼굴이 찌푸려졌다. 약을 팔아? 꼭 이렇게 힘들 사람들 돈을 우려먹어야겠냐.

“하나씩 드리려고 여러 개 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멍해졌다. 그는 약을 팔려는 게 아니었고 자비로 산 약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거였다. 철분제를 받아든 사람들은 그것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고맙다고 말했다.

“자수정 목걸이 써 본 분 계세요?”

이십 대 여자가 물었다.

“쓰니까 좀 낫긴 한데, 내 몸이 해야 할 일을 자꾸 물건에 의존하는 거 같아서 좀 그래요.”

중년 여자가 다소 지친 기색을 비치며 말했다. 윤 작가는 아직 마비가 풀리지 않은 탓인지 느린 동작으로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대학생 남자를 향해 물었다.

“윤철이 너는 어때? 노트북 못 쓰니까 불편하지?”

그러자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뿔테 안경을 올렸다 내리는 그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네. 과에서 병신 취급당해요. 스마 트폰도 맨날 비행기 모드로 해놓으니까 제때 전화도 못 받아서 애들이 짜증 내고….”

이번엔 이십 대 여자가 말했다.

“나도 처음엔 스마트폰 못 써서 진짜 속상했지. 저절로 왕따가 되더라니까. 하지만 지금은 완전 편해. 요금제 걱정 안 해도 되지, 새 기계 알아볼 필요 없지, 떨어트려 액정 갈 걱정할 일 없지, 잃어버려서 눈물 날 일 없지, 핸드폰 없으니까 사는 게 편하다니까. 심플해서 좋아.”

그들은 조금씩 다른 거추장스러운 옷을 바꿔 입어가며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대학생 남자의 얼굴빛은 여전히 어두웠다.

“오늘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핸드폰을 들고 있었어요. 지하철 안에서 나오는 평소보다 사십 배나 되는 핸드폰 전자파를 생각하니까…. 아, 정말 무섭더라고요. 아, 정말 저는 왜 이 시대에 태어났을까요.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불편한 거 없이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지하철을 탄다는 것으로 보아 그의 상태는 윤 작가보다는 가벼운 것 같았다. 대답을 한 건 윤 작가였다. 조금은 느린 말투였다.

“나도 처음엔 그런 생각 했어. 하지만 이젠 생각이 달라. 왠지 그 시대에 태어났어도 이만큼의 힘든 일을 겪고 있을 거야.”

“왜요?”

남학생이 의아한 듯 물었다. 나 역시도 왜냐고 묻고 싶었다.

“그냥. 내가 겪어야 할 힘든 일들이 정해져 있다면 그건 언제 태어나도 다 겪게 될 것 같아.”

너무나 담담한 그녀의 말투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녀는 전자파 알레르기를 겪는 것에 대해 적어도 자신과는 화해한 것 같았다. 그 순간 뭔가 기분 나쁜 느낌이 내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푸르네, 내가 용케 그곳을 벗어난다 해도 어딘가에서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때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남학생이 다시 말을 꺼냈다.

“가장 큰 걱정은 상태가 더 심해져서 사회생활도 못 하게 되는 거예요.”

그의 말에 나는 문득 푸르네에서의 내 암담한 생활을 떠올리며 가슴이 갑갑해졌고, 오늘 처음 일면식을 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말았다.

“사회생활 그거 꼭 해야 하나요? 이상한 인간들 천지인데.”

그 순간 모두의 뜨악한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판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나는 왠지 모를 의지가 불타올랐다. 이겨야겠다는 마음 같은 건 없었지만 제대로 게임에 임해보고 싶었다.

“그린뱅크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러댄 건 중년 여자가 주사위를 던지고 났을 때였다. 환희에 들뜬 그들은 중년 여자의 머리 위로 폭죽을 터트렸다. 부루마블에 그런 도시가 있었나? 부루마블 판을 자세히 보니 우주 정거장이 그려져 있어야 할 자리에 대형 접시형 안테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그린뱅크라고 쓰여 있었다. 중년 여자는 폭죽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19세기로 돌아가려면 준비 단단히 해야겠는데.”

무슨 말인지. 저 안테나가 사람들을 19세기로 보내준단 말인가.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그들은 자랑하듯 그린뱅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었다.

“그건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 있는 자치구예요.”

“그린뱅크 전파 망원경이 우주로부터 오는 전파를 감지하는데요, 안테나 크기가 축구장만 하대요.”

“안테나가 작은 전파에도 예민해서 인근 16㎞ 이내에 무선 통신을 제한하고 있어요.”

“휴대전화, TV, 인터넷 공유기 중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지역이죠.”

그런 곳이 있다니. 이 시대에 그런 곳이 존재한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윤 작가가 지금의 터전에서도 살 수 없게 되는 날이 와도 옮겨갈 곳이 있다는 얘기다. 생각의 끝에 가슴에 시원한 물결이 굽이쳤다. 이때 어디선가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려왔다. 전알퇴 회원이 핸드폰을 켜 놨다니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지금 들려오는 익숙한 이 벨 소리는 내 벨 소리였다. 전날 밤 밖에 나갔을 때 전화기를 켜 놓은 채로 그대로 들고 들어왔던 거였다.

당황이 돼 전화를 끄지도, 받지도 못한 채로 머뭇대고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씩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이십 대 여자는 소파에 놓인 과자봉지 거적때기를 서둘러 입고 나가며 나를 할긋 흘겨봤다. 잠시 후 뒤늦게 전화기를 껐을 땐 이미 모두가 떠나버리고 난 뒤였다.

“죄, 죄송해요. 작가님. 아까 팀장님한테 상황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전화기를 켜는 바람에.”

윤 작가의 꽉 다문 입술이 떨렸다.

“돌아가 주세요.”

“아, 작가님….”

“우리 중에 핸드폰 가진 사람은 윤철이뿐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건 기적이라고요. 가을이는 두 시간을 걸어서 왔고요.”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고 나는 온몸이 지구의 중심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연거푸 미안하다는 말을 한 뒤 현관문을 나섰다. 문득 돌아본 부엌 시계는 오전 여섯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윤 작가의 연립을 나선 후 나는 보도블록을 따라 걸어 내려가며 거의 십 미터마다 하나씩 있는 전기함을 지났다. 네 개의 전기함을 지났을 때부터는 나도 모르게 전기함에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걷고 있었다. 그사이 팀장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받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나는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교통카드를 찍었다. 세 정거장을 지나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난 뒤 계단을 이용해 지하철역으로 내려가 표찰 구에서 또 교통카드를 찍었다. 이후 이동통신사 중계기, 와이파이 공유기 등이 설치된 벽면 곁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플랫폼에 도착해 유유히 다가오는 지하철을 탔다. 출근 시간인 탓에 겨우 문에 매달리다시피 해 들어선 지하철 안쪽엔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핸드폰을 검색하고 있었다. 공기처럼 존재하고 있는 전자파, 그것을 모두 느끼는 그녀와 아무런 느낌 없이 온종일 그것을 흡수하고 다니는 나 중 누가 더 나은 것일까.

한 시간 반을 온몸이 조여진 채로 서 있다 종점에 닿았다. 그곳에서 내린 나는 곧바로 반대 방향의 지하철로 갈아탔다. 전자파에 시위하듯 같은 행동을 두 번 더 하고 났을 때 나는 배가 고팠고 머리가 띵했고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렸을 때 이미 저녁 여섯 시가 되어 있었다. 공기는 여전히 뜨거웠는데도 코끝에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플랫폼 위를 맥없이 걷는데 문자가 도착하는 진동이 느껴졌다. 윤 작가였다.

“일곱 시쯤 웹 하드에 올릴게요. 피드백 바로 보내주세요.”

나는 기가 질려 입이 딱 벌어졌다. 마비가 다 풀리지도 않았을 텐데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니. 생각의 끝에 급기야 화가 나기까지 했다. 힘든 일을 잘 견뎌낼수록 신은 계속해서 더 힘든 일들을 부여한다는 걸 그녀만 모르고 있는 듯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윤 작가가 두 시간 이상의 수정을 하지 않게 할 피드백을 작성하는 것이다. 하루에 딱 두 시간뿐인 그녀의 수정 시간은 방금 전까지의 내 피로감을 긴장감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윤 작가는 아주 오래 그 긴장감 속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두 시간 이내의 수정사항만을 내기 위해 그녀는 내내 분투해왔을 것이고,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그녀를 지금의 위치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표찰 구에서 교통카드를 찍고 나오는데 팀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새된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댔지만 웬일인지 나는 그 목소리에 이전처럼 움츠러들지 않았다. 일곱 시에 그림이 올라올 거라고 하자 팀장의 목소리는 한층 수그러들었다.

표찰 구 앞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즐겨찾기에 저장된 스무 개가 넘는 공무원 시험과 수험서 정보를 모두 지웠다. 표찰 구에서 사람들이 교통카드를 찍는 소리가 들렸다.




  <당선소감>


   "나를 다독이는 ‘소설의 자장’"


우선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래전 누군가로부터 너 하면 방황의 아이콘이란 말이 떠오른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진심으로 몰두하고 싶은 일을 찾아 헤매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그 방황은 아주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몇 가지 새로운 일들에 도전했는데,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저는 꽤 무모했고 꽤 용감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끝에 만나게 된 것이 소설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설레고 즐겁기만 한 일이었지만 당선작들을 읽어 보았을 때 좌절이 시작되고야 말았습니다. 특히 단편소설은 어떤 단단한 문학의 향기가 느껴지는 글들이었고 그래서 계속해 볼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에 고민한 날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한동안 소설을 한 자도 쓰지 못한 채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저는 다시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소설의 자장은 스스로를 무던히 다독여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했으니까요.

사실 부끄럽지만 최근에도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소설의 자장이 느껴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선 전화였습니다. 그저 멍해졌고, 그다음에 눈물이 났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걱정과 안타까움, 때로는 기쁨으로 지켜봐 주시는 엄마와 가족들, 그리고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늘 함께해 주시는 아빠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가르침을 주신 고마운 분들이 계십니다. 강태식 선생님, 하성란 선생님, 강영숙 선생님, 김현영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대해 전화상으로 친절하게 대답해주신 국립국어원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힘든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 1978년생
  ● 서울 거주 
  ● 2001년 국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 현 ‘사이언스 타임즈’ 객원 기자


 

  <심사평>


  ‘전자파 세상’ 실감있게 그려


올해 경남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응모작 편수는 코로나 여파인지 예년에 비해 다소 떨어졌다지만 그래도 상당히 많은 예비 작가들이 응모했고, 만만치 않은 실력을 과시한 작품도 많았다. 100여 편을 훌쩍 넘긴 작품들 중에서 심사숙고하며 최종심으로 선정한 작품은 ‘록포트만에 머물다’, ‘아이들’, ‘오피스텔’, ‘덩크’, 하루에 두 시간만’ 등 모두 다섯 편이다.

이 중 ‘오피스텔’은 문장과 구성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지만 메시지가 불분명하고 임팩트가 부족해서, ‘록포트만에 머물다’는 벌새를 모티프로 삶의 지난한 도정을 비교하고 이끌어가는 구성도 괜찮고 밀도 높은 문장 구사도 마음에 들었지만 희망을 위한 분명한 메시지가 없다는 점에서 제외했다.

‘덩크’의 경우 농구라는 스포츠를 테마로 인생의 굴곡을 풀어가고 있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면서 나락으로 떨어진 삶을 극복해가는 과정은 괜찮았다. 참신한 소재 역시 눈에 띈다. 다만 이야기의 동기가 되는 화자와 언니의 관계가 너무 느슨해서 감정이입이 안 되는 것이 아쉬웠다. ‘아이들’은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주인공이 보육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적극적 사랑을 베풀며 보상 받으려는 이야기와 맞벌이 가정의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꽤 괜찮은 화음을 만들어내지만, 전체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했다는 판단이다.

긴 시간 숙고 끝에 ‘하루에 두 시간만’을 당선작으로 민다. 문명비판 소설이다. 전자파 알레르기라는 특이 질병을 앓는 사람들을 통해 현대문명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다. 아파트나 빌딩에 솟아 있는 중계기나 노트북 심지어 휴대전화까지도 인간을 좀먹어가는 전자파로 가득한 세상을 실감 있게 그리고 있다. 세련되고 안정된 문장력 또한 신뢰가 간다. 소재 소화능력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아쉽게 낙선한 분들께도 격려의 박수 보낸다.

심사위원 : 김홍섭, 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