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손톱 / 정승진

 

“손톱을 먹으면 인간으로 변신한다고?”

나는 하얗게 자라난 손톱을 보며 다시 물었다.

“모든 쥐가 변신을 원하지는 않아. 쥐로 사는 것이 행복한 쥐들이 왜 없겠어?

왜 하필 인간이 되느냐고 우릴 비웃는 쥐들도 있지.”

“엄마가 어떻게 눈치챘지?”

“엄마들은 안보는 척하지만 모르는 게 없어.

옷이 한두 벌 없어지고, 평소보다 먹는 양이 두 배는 늘어났는데

자꾸 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게 수상했대.”

일요일 아침이면 항상 아빠와 목욕탕에 간다. 목욕탕 가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이빨이 덜덜 떨리는 냉탕에서의 수영, 시커먼 국수 가락 같은 때가 끝도 없이 나오는 아빠 등 밀기, 고무대야를 거꾸로 엎어서 매달리는 튜브놀이, 끝나고 나면 머리가 핑 도는 한증막 오래 버티기까지 재미있는 놀이가 한가득하다. 어쩌다 동네친구라도 만나면 손이 퉁퉁 불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놀다가 집에 가곤 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절대 빼먹을 수 없는 행사는 목욕 끝나고 바나나우유 마시기다. 다들 그럴 것이다. 온몸으로 퍼지는 바나나우유의 호랑이 기운. 평상에 앉아 티브이를 보면서 마시면 더 맛있는 바나나우유. 이상하게 집에서 마시면 그 맛이 안 난다.

아빠가 목욕 끝내고 치킨집에 들러서 맥주 한잔을 시켜 마실 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캬, 맥주 맛 좋다. 집에서 마시면 이 맛이 안 난단 말이야.”

“나도 그래. 바나나우유는 목욕탕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더라.”

아빠가 맥주를 쭈욱 들이켜며 말씀하셨다.

“어떤 음식이든 시간, 장소, 상황이 중요한 법이지. 여기 맥주 한 잔 더요!”

아빠가 집에 들어가 엄마한테 혼나는 걸 보고 나는 바로 이해했다. 일요일 오후는 맥주 마시기에 적당한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오늘도 나는 평상에 앉아 바나나우유를 마시면서 이발사 아저씨와 함께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엄마가 공부하라고 티브이를 없애버린 후로 티브이를 볼 수 있는 곳은 할머니 집에 갔을 때 아니면 목욕탕뿐이다. 할머니 집에 가면 리모컨도 차지할 수 있지만 할머니 집은 너무 멀어 자주 갈 수 없다. 오늘은 운 좋게도 리모컨이 내 손에 들어왔다.

핏줄이 보일 정도로 하얀 얼굴을 한 내 또래 아이 하나가 조용히 옆에 와서 앉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평상에 놓인 손톱깎이를 집어 들었다. 벌써 혼자 손톱을 깎는단 말이야? 하고 힐끔 쳐다보는데, 손톱을 빼내려는 듯 손톱깎이를 탁탁 쳤다. 손톱이 나오지 않자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나랑 눈이 딱 마주쳤다.

아이는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주변을 쳐다보았다. 그러곤 내 쪽으로 다가와 앉았다. 아이는 티브이를 보는 척하며 내게 말을 건넸다.

“혼자 왔니?”

“아니, 아빠랑. 아빠는 좀 더 있다가 나온대.”

“그렇구나” 하고 혼자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거렸다.

“뭐 할 말 있어?”

아이는 주변을 한번 살피고는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도플갱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니? 이 세상 어딘가에 나랑 똑같은 사람이 살고 있대. 그 사람과 마주치면 심장이 멎어 죽고 만다지.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 도플갱어는 없으니까.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건 바로 우리 쥐인간들이야.”

아이 손이 내가 들고 있는 바나나우유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볼에 힘을 줘 빨대를 쪽 빨았다. 카르륵 소리가 나며 우유가 바닥을 드러냈다. 천천히 마시고 싶었는데.

“그러니까, 네가 쥐인간이란 말이야?”

아이는 입맛을 다시고는 손을 거둬들이더니 대답했다.

“우리는 너희 인간들 손톱을 먹고 생겨났어. 원래 같았으면 절대로 먹지 않았을 거야. 손톱은 딱딱한 데다 끝이 날카로워서 입안이 찔리기도 하고, 별로 맛도 없거든. 처음에 누가 제일 먼저 손톱을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조상 중 누군가가 손톱을 먹으면 손톱 주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걸 깨달았어. 그 후 우리 쥐인간들이 생겨났지. 우리는 숫자가 아주 많지는 않아. 우리의 왕성한 번식력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지. 너 손톱이 참 길구나.”

“손톱을 먹으면 인간으로 변신한다고?”

나는 하얗게 자라난 손톱을 보며 다시 물었다.

“모든 쥐가 변신을 원하지는 않아. 쥐로 사는 것이 행복한 쥐가 왜 없겠어? 왜 하필 인간이 되느냐고 우릴 비웃는 쥐들도 있지. 하지만 우리의 왕성한 호기심과 나아지고 싶다는 열망이 우리를 쥐인간으로 이끌었지. 하지만 그 삶은 결코 만만치 않았어. 남은 우유 좀 마셔도 될까?”

나는 점점 아이가 하는 말에 빠져들어 나도 모르게 우유갑을 내밀었다. 아이는 빨대를 빼고 뚜껑을 열더니 거꾸로 들고 우유갑을 탈탈 털었다. 우유 몇 방울이 아이 입속으로 들어갔다. 분홍색 긴 혀가 입술을 핥았다.

“나는 10년 전 이맘때쯤 처음 쥐인간이 됐어. 아직도 그때가 어제 일처럼 기억나. 서울 변두리에 있는 이층집 지하 하수구 배수관에서 태어났어. 주방 싱크대를 타고 흘러내려 온 밥풀 같은 걸 주워 먹고 살았지. 하수구에는 터줏대감인 대왕 쥐가 살고 있었는데 우리는 대왕 쥐에게 먹을 걸 구해다 바쳐야 했어. 가뜩이나 먹을 게 부족한데 어쩌다 흘러내려 온 고기 조각 같은 건 대왕 쥐 뱃속으로 다 들어가니 사는 게 어떻겠어. 내가 날이 갈수록 말라가는 것을 본 엄마는 결심했어. 하수구를 떠나기로.

엄마와 나는 빗물 배관을 타고 위로 올라갔어. 도착한 곳은 2층 주택의 지붕이었어. 우리는 지붕과 연결된 옥상에 있는 비어 있는 개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어. 개 냄새가 좀 나는 걸 빼고는 아주 쾌적했어. 밤에는 희미하지만 별도 볼 수 있고 말이야. 낮에는 지붕 안쪽에 피해 있다가 밤이 되면 길에 나가 쓰레기봉투를 뒤지거나 인간들이 떨어뜨린 음식을 주워 먹었지. 나는 무럭무럭 자랐고, 엄마와 나는 무척 행복했어. 고양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쥐인간은 금세 눈물이 고였다. 그렇지만 얘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빗물이 가득 찬 계곡 물처럼 이야기가 넘쳐흘렀다.

“그날도 수확물들을 하나씩 물고 집으로 돌아왔지. 달이 무척 밝은 밤이었는데 개집 지붕 위에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어. 엄마는 용감했어. 도망치는 대신 고양이에게 덤벼들었지. 도망칠 줄 알았던 엄마가 달려들어 앞발을 깨물자 고양이는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어. 고양이는 엄마의 목을 사정없이 깨물었어. 엄마가 축 늘어지자 고양이는 내게 다가왔어. 나는 정신없이 지붕 위로 도망쳤어. 혹시 잔돈 좀 있니? 음료수 하나만 마실 수 있을까?”

나는 팬티 하나만 입고 있었다. 고개를 저으려는데 아빠가 탕에서 나왔다.

“친구니?”

“아빠, 음료수 하나만 사주면 안 돼요?”

“그래, 달아놔. 아빠는 이발 좀 하고 올게.”

아빠가 이발소 안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바나나우유와 구운 계란을 집어 들었다. 쥐인간은 구운 계란을 한입에 욱여넣으며 말을 이었다.

“지붕에서 주택 천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고양이는 들어올 수 없는 아주 작은 틈이 있었어. 벽돌과 콘크리트, 철근과 나무로 만들어진 미로 같은 곳을 지나 도착한 곳은 2층 주택의 천장이었어. 안전한 곳에 도착해서야 나는 엄마를 잃은 슬픔에 펑펑 울고 말았지.

하지만 언제까지나 울 수는 없었어. 엄마가 고양이에게 덤벼든 건 나 때문이었거든. 나를 지키기 위해 엄마가 자기 목숨을 던졌는데 내가 울고만 있어야 되겠어? 나는 강해지기로 했어. 엄마 몫까지 두 배로 행복하게 살아가기로 했지.

이층집 천장은 엄마가 없다는 것만 빼면 천국 같았어. 제일 좋은 건 젖지 않는다는 거야. 대왕 쥐도 없고, 고양이도 없는 나만의 천국. 2층에 내려가면 먹을 것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지. 인간들만 조심하면 말이야.”

“사람들 음식을 훔쳐 먹었단 말이야?”

나는 어쩐지 속이 메슥거리는 것 같았다. 우리 집 천장에서 나던 달그락 소리가 떠올랐다.

“인간들은 뭐든 버려. 멀쩡한 것들을 다 버리지. 쓰레기에도 소유권을 주장할 셈이야? 돈을 내고 버리면서? 계란 하나 더 먹어도 될까?”

쥐인간은 두 번째 계란에 손을 대며 말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음식물 쓰레기통이나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지. 그러던 어느 날 식탁에 놓인 먹다 남은 치킨을 발견했어. 입도 대지 않은 멀쩡한 다리 하나가 치킨 상자 안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어. 나도 모르게 그 치킨을 집어 들고 천장으로 올라갔지. 천국의 맛이었어. 뼈까지 남김없이 갉아먹고 나서 처음으로 아침까지 꿀잠을 잤어. 혹시나 하고 귀를 기울였지만 인간들은 내가 먹었다는 것조차 몰랐어. 나는 점점 대담해졌지.

먹을 수 있다면 밥통 안의 밥도 퍼먹었을 거야. 하지만 내가 손댈 수 있는 건 집주인이 치우기 귀찮아 식탁 위에 올려놓은 음식들이나 뒤 베란다에 내놓은 감자, 양파 같은 것들이었어. 먹을 게 없는 날은 날감자, 식구들이 고기라도 구워 먹은 날은 횡재하는 날이었지.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잖아. 내 꼬리가 좀 길었던 모양이야. 어느 날 밤, 삼겹살 조각을 맛보고 있는데 화장실 가려고 나온 집주인과 눈이 딱 마주쳤어. 나는 놀라 얼어붙고 말았지. 그렇지만 집주인이 더 놀란 모양이야. 그 자리에서 기절하지 뭐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내 보금자리인 천장으로 도망쳤지.”

“그래서 집을 나온 거야?”

나는 하나 남은 계란을 집어야 하나 고민하며 물었다.

“집주인은 그 뒤로 음식을 놔두지 않았어. 부스러기조차 밖에 내놓지 않았지. 그 대신 맛있는 냄새가 나는 수상한 판이 바닥에 놓여 있었어. 못 보던 물건이었어. 개 사료 같은 게 뿌려져 있는데 그 주변에 투명한 액체가 발라져 있었어. 발을 디뎌도 되나 망설이는데,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어. 그런데 이상했어. 그 파리가 다시 날지 못하는 거야. 그래, 끈끈이였어. 너도 본 적 있을 거야. 왜 안 먹어? 아저씨, 여기 구운 계란 2000원어치만 더 주세요.”

쥐인간은 하나 남은 계란을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먹을 걸 찾아 헤맸어. 꼬박 일주일을 굶었거든. 그러다 그 집 아이 방까지 들어가게 됐어. 그것도 한낮에 말이야. 아이가 버린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핥아 먹으려다가 쓰레기통을 엎고 말았어. 쓰레기가 바닥에 흩어졌고, 그 안에서 반짝이는 반달 모양의 손톱들을 발견했지. 처음엔 뭔지 잘 몰랐어. 큼큼한 냄새가 나는 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딱딱했지만 씹어보니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났어. 나는 흩어진 손톱들을 모조리 먹어치웠지. 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아이가 들어왔어. 당황해서 재빨리 도망친다는 게 옷장 안으로 들어갔지. 한참을 폭신한 옷장 속에 숨어 있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어.”

매점 아저씨가 구운 계란을 가져다주고는 빈 그릇을 치워갔다. 다시 계란이 세 알이 됐다.

“눈을 떠보니 한낮이었어. 아, 잘 잤다 하고 말하는데 내 목소리가 이상했어. 옷장 안이 이상하게 좁게 느껴졌어.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어. 그래, 문을 열고 나왔어. 나는 침대 앞에 두 발로 서 있었고, 바닥에서 침대를 올려다보는 게 아니라 내려다보고 있었어. 뒤돌아서자 옷장에 붙어 있는 거울 속에 내가 비쳐 보였어. 나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어. 손톱의 주인, 이 집 아들, 열 살 민수.”

쥐인간은 네 번째 계란을 까기 시작했다.

“충격에서 벗어난 나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어. 집에는 아무도 없었어. 나는 냉장고를 열어 먹고 싶은 걸 마음껏 꺼내먹었지. 인간의 몸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더라고. 그렇게 일주일을 굶은 허기를 채우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민수가 들어왔어. 세 공기째 밥을 푸고 있는 그 순간에 말이야.

민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어. 나는 곧바로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왠지 민수가 걱정됐어. 그래서 모험을 걸어보기로 했지. 수건에 물을 적셔 민수의 얼굴을 닦아주고, 부채질을 해줬어. 잠시 후 민수가 깨어났어. 민수는 다시 비명을 질렀지만 기절하지는 않았지. 나는 조용해진 민수에게 모든 얘기를 해 줬어.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민수는 한 가지 제안을 했어.”

“그 제안이 뭔데?”

“대신 학교에 가 달라는 거야. 민수는 학교에 가는 걸 힘들어했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거든. 나는 평생 혼자였기에 괴롭히는 친구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고 무엇보다 인간세상이 궁금했어. 그때부터 나는 민수 옷장에서 살면서 민수 대신 학교에 가기 시작했지.”

쥐인간이 꺽 하고 트림을 했다. 썩은 계란 냄새가 확 끼쳐왔다. 쥐인간이 가슴을 탕탕 치더니 빨대를 쪽쪽 빨았지만 벌써 다 마신 뒤였다. 쥐인간 얼굴이 벌게졌다. 나는 얼른 정수기로 가 물을 떠다 주고는 등을 두드려주었다. 쥐인간은 물을 마시고 캑캑 기침을 하더니 괜찮다고 손을 들어 보였다.

“아, 죽을 뻔했네. 그 많은 위기를 극복한 내가 이런 일로 죽을 순 없지. 어디까지 얘기했지?”

“민수 대신 학교 갔다고. 그럼 그 시간에 민수는 뭘 했는데?”

“좋은 질문이야. 민수는 아주 좋아하던데. 내가 올 때까지 하루 종일 게임을 하다가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 듣고, 같이 게임도 하고, 내가 학교에서 실수할까 봐 공부도 가르쳐주고 그랬어. 그러다 부모님이 오시면 나는 다시 옷장에 숨었지. 나는 열심히 배웠어. 학교는 참 좋은 곳이었어. 인간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알려주더구나. 점심때는 밥도 줬어. 먹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어.”

“괴롭히는 애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말이야. 한번 생각을 해봐. 어차피 걔나 나나 똑같은 인간이잖아. 물론 나는 진짜 인간은 아니지만. 어쨌든 상대는 된다고. 체급이 같단 말이지. 우리 엄마는 고양이에게 맞서 싸운 쥐야. 난 그 자식이고. 그런 내가 열 살짜리 어린애한테 질 것 같아? 우린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마주쳤어. 피시방 가게 1만 원만 기부해달라고 하더라. 그때는 기부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어. 1만 원? 만 원도 뭔지 몰랐지.

아무튼 싫다고 하니까 내 멱살을 잡지 뭐야. 그 녀석을 보기 좋게 놀이터 바닥에 메다꽂아버렸지. 그리고 말해줬어. 너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서워. 나는 한번 죽었던 몸이야. 그러니까 그 녀석이 으앙 하고 눈물을 터뜨리더라.”

“그 뒤로는 안 괴롭혔어?”

“그걸 누가 본 모양이야. 학교에 소문이 다 났더라고. 그래서 난 꽤 오랫동안 즐겁게 학교에 다녔어.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쥐인간은 좀 내려간 것 같다며 다섯 번째 계란을 까기 시작했다.

“난 그 아이가 하기 싫은 일이라면 뭐든 대신했어. 학교 가기는 말할 것도 없고 엄마 심부름, 피아노 학원, 태권도, 도서관에서 책 빌려오기 등등. 재미있는 건 그 아이가 다 했지. 소풍, 컴퓨터 게임, 가족여행, 야구장 가기 같은 것 말이야. 그때는 그게 뭔지도 몰랐기 때문에 하자는 대로 다 했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게임을 하던 그 아이가 ‘짜파구리’가 먹고 싶다는 거야. 당연히 심부름은 내 몫이었지. 엄마 카드를 들고 나가 라면을 사 가지고 집에 들어왔는데 부엌에 그 아이랑 엄마가 함께 있었어.”

“엄마가 어떻게 눈치챘지?”

“엄마들은 안 보는 척하지만 모르는 게 없어. 옷이 한두 벌 없어지고, 평소보다 먹는 양이 두 배는 늘어났는데 자꾸 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게 수상했대. 집에 몰래 친구를 불러서 노는 줄 알고 벼르고 있었던 거야. 마침 집 근처에 있는데 카드 결제문자가 오니까 옳다구나 하고 얼른 들어온 거지.”

나는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2명이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상상해보았다. 안 될 말이다. 엄마는 1명이면 충분하다.

“자세한 설명을 들은 엄마는 나를 쫓아내려고 했어. 하지만 우리 둘 중 누가 자기 아들이고 누가 쥐인간인지 몰랐지. 생각해봐. 무슨 수로 그걸 구별하겠어?”

쥐인간이 깔깔대며 말했다.

“처음엔 그냥 조용히 나가려고 했어. 그런데 민수가 나한테 그 개고생을 시켜놓고 피해자인 척하지 뭐야. 하기 싫은 일은 다 나를 시켜놓고 엄마한테 들키니까 바로 배신해? 그렇다면 나도 곱게는 못 물러나지.”

어떻게 구분할까? 유전자 검사를 하나? 숨겨진 신체 비밀이라도 있을까? 엄마들은 자식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다던데 그런 거였을까?

“난리도 아니었어. 내가 엄마, 제가 민수에요! 하면 민수는 아니에요, 제가 민수에요! 내가 민수야, 아니야 내가 민수야 하면서 서로 머리를 쥐어뜯고 싸웠지. 엄마가 우리 민수는 엉덩이에 점이 있는데 하면 민수가 엉덩이를 까 보이면서 여기! 여기요! 했어. 그럼 나도 엉덩이를 까 보였지. 나한테도 그 점이 없을 리가 없잖아.

민수가 아는 것 중에서 내가 모르는 건 없었어. 하지만 내가 아는 것 중에서 민수가 모르는 건 많았단 말이야. 민수는 학교도 안 가고, 심부름도 안 갔지. 태권도, 피아노 학원도 안 갔으니까.

내가 말했어. 엄마, 수학문제 내보세요. 피아노 시켜보세요. 쥐인간은 그런 거 모를 걸요?”

쥐인간이 학교도 대신 다녔다고 하지 않았나? 역시 쥐가 머리가 좋다더니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쥐인간은 말을 이어갔다.

“엄마는 우리 둘에게 세 가지 시험을 시켰어. 수학시험, 피아노 치기, 태권도 시범 보이기. 나는 자신 있었지. 인간이 되기 위해 열심히 했으니까. 민수는 모든 걸 나한테 맡겨두고 놀기만 했으니 제대로 할 리가 있나. 당연히 내 승리지.

엄마는 시험을 끝낸 뒤에 말했어. ‘시험을 보니 확실히 알겠구나. 누가 내 아들인지. 내 아들은 너다’라며 엄마가 가리킨 건 민수였어. 내가 아니라.

‘안타깝지만 우리 아들이 그렇게 열심히 할 리가 없거든’이라고 하더니 날 쳐다보더라. 어느새 엄마 손에는 몽둥이가 들려 있었어.

게으름이 민수를 구원한 셈이지.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어. 그리고 이렇게 거리에서 살아가게 된 거야. 배고플 땐 고양이 밥도 나눠 먹고, 손톱을 구하게 되면 인간으로 잠시 살아가다가, 다시 거리를 헤매다가 이 목욕탕을 발견했어. 목욕탕에서는 사람들이 손톱을 깎더라. 여기구나 생각했지.”

게으름이 구원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쥐인간은 그 몽둥이가 자길 향한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 민수는 아마 쥐인간과 함께한 몇 달의 즐거움을 후회하고도 남을 만큼의 숙제를 하고 있을 것이다. 엄마도 더 이상은 봐주지 않을 테니까.

“내 말 듣고 있어? 그럼 손톱 좀 나눠줄래? 힘든 일은 내가 다 해줄게. 넌 즐거운 일, 재미있는 일만 하면 돼.”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아이, 아니 쥐인간을 빤히 바라보았다. 손톱을 혼자 어떻게 깎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쥐인간이 내 손톱을 먹으면 나랑 똑같이 변한다는데 그래도 괜찮을지 잘 모르겠어서다.

“민수 집을 나와서 안 해본 일이 없어. 그렇지만 인간으로 변한다 해도 신분증이 없으니 진짜 인간들처럼 살 수는 없었어. 난 그저 조금 더 나은 삶을 원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

쥐인간 얼굴이 조금 변한 것 같았다. 입이 앞으로 조금 튀어나오고, 코 옆으로 수염이 몇 가닥 삐져나왔다. 손이 거무튀튀한 회갈색으로 변하더니 손톱이 길어졌다. 쥐인간이 바짝 마른 손을 내밀었다.

“제발, 손톱 좀 나눠줘. 시간이 다 됐어.”

나는 흠칫 뒤로 물러섰다.

“찍찍.”

옷 한 벌이 바닥에 떨어지고, 작은 쥐 한 마리가 옷을 뒤집어쓴 채 눈앞에 나타났다.

“쥐다!”

이발사 아저씨가 평상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어디?”

빨간 팬티만 입은 세신사 아저씨가 빗자루를 들고 뛰어왔다. 카운터에서 졸던 매점 아저씨가 슬리퍼를 던졌다. 슬리퍼는 세신사 아저씨 얼굴에 맞았고, 그 바람에 세신사 아저씨가 휘두른 빗자루는 허공을 갈랐다.

쥐인간, 아니 쥐가 쏜살같이 달려가 옷장 틈으로 사라지더니 천장에서 달그락 소리가 났다. 매점 아저씨가 대걸레 자루로 천장을 쿵쿵 쳤다. 달그락 소리가 멈췄다. 아저씨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로 돌아갔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일요일이 됐다. 나는 처음으로 혼자 손톱을 깎았다. 새끼손톱을 너무 바짝 깎아서 손가락 끝이 빨개졌지만 처음치고는 성공적이었다. 나는 손톱을 모아서 쥐인간이 사라진 옷장 틈에 던져넣었다. 힘들게 살아가는 쥐인간에게 잠시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당선소감>


   "아이들 행복한 세상위해 처음의 마음 잊지않을것"


2015년 봄으로 기억합니다. 아내가 수락산 둘레길에서 본 바위 사진을 하나 내밀며 말했습니다.

“이 바위, 거인 손자국 같지 않아?”

번쩍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신이 나서 들려주었고, 아내는 글로 써보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거인 이야기’라는 제목의 연극이 됐습니다.

저는 아내 덕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아내는 저를 또 놀라게 했습니다. 작년 초, 새해 계획을 세울 때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우리 둘이 각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자. 노후 걱정은 접어두고, 한 해 한 해를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면서 살아가자.” 그렇게 한 해를 저는 작가로, 아내는 공연기획자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쉽지만은 않았지만 어찌어찌 살아냈습니다. 살아남은 것도 기쁨인데 두 번째 해를 맞는 첫날을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축복으로 시작하게 됐네요.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 날로 예뻐지시는 어머니, 묵묵히 지지해주시는 장인·장모님, 저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사랑하는 아내, 동심의 원천인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준이, 네 글이 최고라며 자존감을 가득 채워주는 누나들, 동심의 길로 이끌어주신 동화세상 선배 작가님들, 33기 동기들 사랑합니다. 걸어가는 길마다 손잡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첫 마음 잊지 않고 노력하겠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 1971년 서울 출생
  ● 서경대 전산통계학과 졸업
  ● 현재 아동·청소년 극 작가로 활동 중


 

  <심사평>


  어린이 독자의 마음으로 향하는… ‘한국적 호러 판타지’ 탄생


동화의 주인공은 어린이 독자다. 투고작 중 일부가 그런 것처럼 해당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린이가 아닐 수 있지만, 동화라는 문학의 주인공은 어린이 독자다. 배경이 어떻든 양식이 어떻든 주제가 어떻든, 동화는 어린이 독자를 위해 쓰는 글이다. 그것을 잊는다면 혹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면, 동화라고 말하기 어렵다. 본심에서 논의한 작품들은 서사적 완성도와 함께 어린이 독자의 마음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동화로 꼽을 수 있었다.

‘자동차 인어’는 2020년의 단절이 지속되고 있는 미래의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친구와 손 한번 마주 잡기 어려운 지금 어린이들의 처지와 마음을 잘 포착해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과학소설(SF) 상상력이 빈약했다. 새로운 통찰도, 다른 세계를 체험하는 SF적 즐거움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과는 맛있다’는 글쓴이의 어린 시절 고향 마을 혹은 ‘시골’이라는 막연한 이미지에 기대 쓴 농촌 이야기가 많은 와중에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이었다. 사과농사 초보라는 주인공 가족의 모습부터 경매장 풍경까지, 현실감 넘치는 배경이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정작 서사가 앙상했다. 교훈성만 두드러진다는 점도 아쉬웠다.

‘마트 햄스터와 단비’는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마트’라는 익숙한 공간을 모험의 배경으로 잘 잡아냈으며, 유년의 어린이에게 실현 가능한 모험의 즐거움을 구현해냈다. 구성과 문장도 안정적이었다. 다만 유년동화의 ‘클래식’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안정감에서 다소 기시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믿음직한 작가의 다른 동화를 결국 읽게 되리라는 기대가 생긴다.

‘손톱’은 능수능란하다. ‘쥐 변신담’이라는 옛이야기 모티프가 남탕 탈의실의 나른한 일요일 아침으로 찾아와 모처럼 TV 리모컨을 손에 쥔 어린이의 혼을 쏙 빼놓았다. 구운 계란과 바나나우유까지 덤으로. 사건은커녕, 제대로 엉덩이 한번 떼보지 않고 탈의실에 퍼져 앉아 있을 뿐인데, 흥미진진하다 못해 으스스해진다. 한국적 호러 판타지라고, 다소 호들갑스럽게 소개를 해도 좋을 것 같다. 서사와 인물과 문장과 의미까지, 흠잡을 데가 없다. ‘손톱’을 새해의 첫 동화로, 다름 아닌 어린이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겠다.

심사위원 : 김지은, 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