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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 금상


얼룩말나비와 아버지 / 최경심


봄볕 환한 길 위에 나비가 엎드려 누워 있다

꽃향기에 취해서도 비틀거리지 않고

잠을 자면서도 날개를 부리지 않았던 나비

곁으로 바짝 다가가도 꼼짝하지 않는다

느릿하게 흔들리는 긴 더듬이에 실린

가냘픈 숨결에서

힘겹게 건너는 시간의 끝자락이 보인다


등 위에 짊어진 인연 차마 버리지 못해

바로 눕지도 못하고 죽어간다

맥 놓은 날개 위에 망연히 앉아있는

흑백 물결무늬 선명한 얼룩말

내리뜬 순한 눈에 고여있는 석별 적요하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던 저 너머 시간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자식들 편하라고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무너져 내리던 아버지의 날들은

불효의 긴 그림자로 남겨져

나는 지금도 가슴이 캄캄하다


나비 같은 호흡으로 밤을 새우고

동틀 무렵 기척도 없이 야윈 어깨를 내리시던

아버지도

등에 업힌 자식들 내려놓지 못하고 가셨으리라


아버지의 운구차가 지나가던 길에

활짝 핀 벚꽃은 세월이 흘러도 이울지 않는데

그 꽃잎 흩어져 밟히는 한길에서

죽어가는 나비가 눈에 밟히지만

그냥 돌아서고 만다



은상


젠가* / 김응혜


가슴에 품은 별 하나씩 꺼내어 집을 지어요

우주에 걸쳐둔 한 가닥 줄이 구심력을 키우면

우린 맴맴 돌며 소실점을 찾아 가죠


긴장의 날 세우느라 하루가 무거워지면

눈물 발라가며 삭은 틈새 메우고

약 한 줌 툭, 털어 넣고 기우뚱한 생각을 불러들여요


세파의 경계에 가려움증 파고들어 출렁이면

뿍뿍 긁어 초토화된 울 엄니 초라한 집이 보여요

고인 힘 쥐어짜느라 굽은 등 위로

텅 비어가는 늑골 하나 빼서 계단을 만들면

버팀의 내공 한 겹 두터워지고

팽팽한 우주처럼 붉게 번져가는 눈자위 가늘게 떨려요


빈 가슴 졸이며 가둔 날숨

우주의 기울기 가늠하며

지나온 세월의 고팽이 풀어 구석구석 살피는데


잠시 수평을 놓친 허술함에

우당탕탕탕 탕탕탕

감마선 폭발같이 요란하게 허공을 찌르는 소리

들려요 짧은 조문과 함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정형화 의식 시작되면

계단은 슬며시 날개를 펴고


*‘짓다’라는 의미의 스와힐리어로 같은 크기의 직육면체 조각을 쌓아 만든 탑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한 조각씩 빼어 맨 위로 다시 쌓아 올리는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