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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기울다 / 홍외숙

 

5.5도 기운 탑처럼 5도 휘어진 척추
중력도 비켜 가는 지구 위의 작은 행성
내 몸은 피사의 사탑, 기울기가 생겼다

마음의 길 따라서 기울어지는 몸길
애끓인 날수만큼 아파하고 있었겠다
몸에도 길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네

숨어 휘청거리는 탑, 어쩌지도 못한 채
막막한 중심은 자꾸만 넘어진다
너에게 기우는 마음, 무중력에선 직선일까

 

 

  <당선소감>

 

   “삶의 무늬를 담는 그릇 같은 시조 짓고파” 시조 읽으며 많은 위로 받아 부족함 성장동력 삼아 노력


  겨울바람이 창문을 흔들어대는 날, 막연한 동경이 현실이 되어 제게 왔습니다.

  가까이 가기엔 너무 막연한 두려움, 가둬두기엔 답답한 덩어리. 시는 제게 오래 묵은 체증 같은 것입니다. 뒤늦게 국문학을 공부하고 문학 모임에도 기웃거려 보았지만 더 견고한 벽만 체감하고는, 좋은 독자로 있자고 주저앉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오늘 <농민신문>에서 그 종지부를 찍어주셨습니다. 가야 할 길도 방향도 모르고 갈팡질팡하던 제게 환한 표지판을 세워주셨습니다.

  난해한 현대시를 보다가 명쾌하고 간결한 사유가 가득 찬 시조를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읽는 것과 쓰는 것은 크게 달랐습니다. 막막함과 답답함 속에 낙심하면서 ‘왜 쓸까’라는 회의와 반문을 거듭했습니다. 이제 찾지 못한 그 답을 화두처럼 뜨겁게 끌어안고 이 길을 가겠습니다.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성장의 기회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시조가 오늘이라는 삶의 무늬를 담아내는 새로운 그릇이 되는, 그런 견고한 그릇을 만드는 질 좋은 흙이 되도록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서툴고 설익은 제 시에 꽃을 꽂아주신 농민신문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금보다는 내일을 기대하며 올려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게으른 걸음을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선생님과 시조동인 ‘더율’ 문우님들, 시조의 문 앞에 손잡고 데려와준 귀한 벗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형산강 수면에 살얼음이 보입니다. 저 차가운 반짝임이 품은 따스함, 모든 분들의 겨울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기도해봅니다.

 

● 1965년 경남 진주 출생 
● 부경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 2021년 8월 중앙시조백일장 입상 
● 2021년 대구시조 전국공모전 입상 
● 시조동인 더율 회원


 

  <심사평>

 

  

대상을 포착해 형상화하는 힘 돋보여

 

  예년보다 투고 작품수가 많았다. 그만큼 기대하고 심사에 나섰다. 작품은 대략 세가지로 구분됐다.

  먼저 시조의 정형 양식을 현저하게 벗어났거나, 정형 양식을 갖추긴 했어도 주제가 과잉 노출됐거나 은유의 힘이 부족한 작품으로, 이들은 일차적으로 제외됐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선 나머지 작품 가운데 20명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최종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하늘 비번> <태국색시 콩나물무침> <자벌레의 꿈> <겨우살이 전입신고> <기울다> 등 5편이다.

  이 가운데 앞의 세편은 다소 도식적인 의미 전개의 양상이 지적됐다. 즉 신인다운 패기보다는 기존 투고작이 보였던 시문법의 자장 내에서 맴돌고 있다. 이전의 당선작은 그때까지 예비 작가의 글이었다. 그 이상의 것을 읽고 준비해야 한다.

최종에서 겨룬 <겨우살이 전입신고>는 활기찬 진행과 안정된 보법이 돋보였다. 그러나 대상 이해의 폭이나 깊이 면에서 평이하다고 보았다.

  이와는 달리 <기울다>는 함께 투고한 <소란한 고독>과 함께 대상을 포착해 상징화하는 힘이 돋보였다. <소란한 고독>에서는 고요 속에서 내적인 갈망을 분출하는 역설의 힘을 갈무리하고 있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기울다>는 중심이 무너진 시대의 초상 같은 것으로, 내파를 견뎌온 몸의 역사성을 알레고리적으로 환치한다. 여기서 언급하는 중력은 삶의 중심점을 지칭하는 것이자 생활의 무게를 상징할 터다

대상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더듬어내는 시인의 안목이 투철하다.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 정수자, 염창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