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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허블 등대 / 박샘

 

날리는 모래들이 눈에 자꾸 끼어든다
빠지고 싶어 했던 깊이가 있었다고
열리면 바로 닫히는 문을 열고 또 연다

떴다가 감았다가 점멸하는 등대처럼
별이 든 눈에서는 깜박이면 반짝여서
출처를 밝힐 필요가 모래에겐 없었다

들 만한 깊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아
운석을 지나왔고 사막을 건넜으나
빠지면 나오지 않아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껐다가 다시 켜진 반복은 언제 쉬나
왔다 간 잠이 또 온 불면의 행성에서
모래는 침몰을 향해 국경선을 넘는다

 

 

  <당선소감>

 

   ‘결말’에서 ‘시작’이라는 반전을 만난 것 같다


  갈 데까지 가리라는 무모한 의욕에는 지도가 없었다. 길잡이가 없었고 목적지가 없었기에 너무 멀리 와버렸다. 동행이 없었고 미행도 없으므로 걸음대로 따랐고, 몰라도 도착했으며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었다. 누구도 방향을 묻지 않았고 아무도 여기를 말해주지 않는 공간, 다만 끝이 없다는 말이 너무 길다는 것을 ‘여기’는 알려준다. 급기야 걸림돌을 고대했고 바리케이드를 요구했으나 기어이 부딪혔다 논리를 구성할 필요가 없고 타자를 통해야 할 요구도 없는 벽.

  보쉬의 해머 드릴은 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문을 찾아야 한다는 합당한 여망에도 안내가 없고 열쇠가 없다. 문턱도 넘지 못한 노마디즘에게는 100년간의 잠이었을까. 잠만 자는 공주의 꿈속이었을까. 생시처럼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던 건 결말에서 시작이라는 반전을 만난 것, 문을 열어주신 조선일보와 절룩거림을 읽어주신 심사위원께 감사의 말씀 올린다. 특히 외면과 거절의 장르가 치러야 했던 현실 비관적 시선에도, 유희적 표상들을 지키게 해준 아내 정인실씨께 고마움을 전한다.

 

● 1959년 대구 출생
● 출판사 ‘시인촌’ 운영


 

  <심사평>

 

  

발견에 입히는 사유와 이미지 조합이 정교

 

  신춘의 설렘이 무색한 시절이다. 응모작들에서도 일상이 된 마스크 속의 고통과 고독이 많이 짚인다. 홀로, 따로, 안으로 침잠하며 감염병 시대를 건너가는 각자 도생의 초상이다. 그런 중에도 시조를 찾고 자신의 문법으로 벼려내려는 젊은 응모작들이 늘고 있어 격려와 위안을 같이 만났다.

  올해는 들었다 내렸다 고심한 작품이 많았다. 그 중 마지막까지 겨룬 것은 ‘고양이와 시소 타기’, ‘사다리와 벽’, ‘잔가지를 자른 자리에 지저귐이 자랐다’, ‘참새와 탱자나무’, ‘허블 등대’ 등이었다. ‘고양이와 시소 타기’는 감각적인 포착과 묘사가 신선했고, ‘사다리와 벽’은 사다리에 대한 독특한 접근과 해석이 시선을 끌었다. ‘잔가지를 자른 자리에 지저귐이 자랐다’는 발상의 참신한 발화가 돋보였고, ‘참새와 탱자나무’는 감각과 정감의 조화가 빛났지만, 함께 보낸 작품들의 편차나 낯익음이 보여 내렸다. 마지막 남은 ‘허블 등대’는 응모작 전반의 고른 수준과 6수(2편)에 밀도 있게 펼쳐내는 긴 호흡과 성찰이 남다른 역량으로 평가됐다.

  ‘허블 등대’는 발견에 입히는 사유와 이미지 조합이 정교하다. ‘빠지고 싶어 했던 깊이’는 다양한 변주로 사유를 촉발한다. ‘눈’과 ‘문’과 ‘등대’의 속성을 꿰면서 ‘들고 남’, ‘오고 감’, ‘있고 없음’의 경계를 되짚게 한다. 모래가 ‘침몰을 향해 국경선을 넘는다’는 문장도 ‘불면의 행성’이기에 가능한 월경(越境)이자 탐구이겠다. 이를 장(章)과 구(句)에 맞춤하게 앉히는 형식의 운용이 자연스럽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완결구조에 변화를 주는 도치의 활용도 능란하다.

  박샘씨의 당선을 축하한다. 더 새뜻한 문학적 발명과 도약을 바란다. 다른 응모자들도 여기서 또 나아가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 정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