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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조퇴 / 강희정

 

드르륵 교실문 열리는 소리

슨상님 야가 아침만 되믄
밥상머리에서 빗질을 했산단 말이요
긴 머리카락 짜르라 해도 안 짜르고
구신이 밥 달라 한 것도 아니고
참말로 아침마다 뭔 짓인지 모르것어라

킥킥 입을 가리고 웃어 대는 책상들
아버지는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낮술이 뺀질뺀질 빨갛게 웃고 있는
4교시 수업 시간

덩달아 붉어진 내 얼굴은 밖으로만
내달리고 싶어

아버님 살펴가세요 어서가세요
얘들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일찍 점심 먹고 운동장 나가 놀아라
나보다 먼저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 선생님

달걀 프라이가 들국화처럼 피어 있는
생일 도시락이
아버지 손을 잡고 산들산들 집으로 걸어간다


 

 

  <당선소감>

 

   “시의 길에선 남과 다른 내가 더 나일 수 있다”


  눈을 가리고 귀를 닫았다. 의지가 개입할 겨를이 없이 바깥을 향해 열린 모든 세포를 걸어 잠갔다. 물속에 오랫동안 잠겨 있었다.

  정지된 시간을 다독여 수면 위로 올라와 녹슨 세포를 깨우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갇혀 있던 감각 촉수가 언어와 결합하며 나를 한 걸음씩 움직이게 했다.

  기억처럼 지워졌다가 되살아난 진실이 시어가 되어 꿈틀거린다. 하얀 종이 위에서 먹고 마시고 잠이 든다.

 행복과 불행이 서로 곁눈질하면서 달린다. 이 둘에게서 언제나 허둥대지만, 그래도 나는 나아간다. 시와 사랑을 향해. 세상을 향해...

 시의 길에서는 남들과 다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됩니다. 다르니 내가 더 나일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광주일보와 이병률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서울디지털대학교 이재무, 오봉옥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윤천, 이대흠 시인님께 감사드리고 첫눈 시빚기반 회원들, 시를 향해 탄탄한 근육을 보여준 선배 시인들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작년과 올해 바삐 곁을 떠나신 부모님께 영예를 안겨 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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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쨍하고도 명징한 시, 탁한 세상에 차려놓는 기쁨”

  시가 반드시 고통을 통과한 형태의 무엇은 아닐 것이다. 번민과 고뇌를 통과한 흔적을 날것의 형태로 그려 놓을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은 시라거나 더군다나 그 누구도 홀릴 수 없는 시라면 신춘문예 같은 공모에선 감점법으로 접근하게 된다. 장점이 충분한 작품을 두고 고민을 했다.

  진영심의 ‘꾸미지오 미용실’은 제목부터 즐거운 이야기의 향을 품고 있는 것 같아 여러번 읽게 되었다.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바늘에 비유했다는 사실에 일단 선자는 놀랐다. 하지만 ‘바늘’을 연상하고 ‘바늘귀’까지 끌어와 착상에 성공했다면 바늘귀에 뭐라도 꿰어야 하는데 그것이 빠진 채 후루룩 시를 맺고 말았다.

  결국 강희정의 ‘조퇴’를 당선작으로 선한다.

  새해에 여는 시 한 편으로서의 자격과 미덕을 찾자면 단연 양명함이었다.

  동시(童詩)의 마스크를 쓴 시라고 가볍게 평할 수 있겠으나 이 시의 아름다움은 시 속에서 자기 자신이 들어갈 ‘자리’를 과감할 정도로 배제시키는 능력으로 완성도를 일으켰고 그것은 어떻게든 자신을 과잉하게 드러내려는 수많은 응모작들 속에서 분명한 빛을 발하는 지점이기도 하였다. 멋진 다이빙이었다. 쨍하고도 명징한 시 한 편을 골라 탁한 세상의 공기에 차려놓는 기쁨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이병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