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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꽃을 더듬어 읽다 / 김성애

 

리어카와 한 몸으로 꾸뻑이는 할머니
먼 길 걸어오셨나, 가슴이 흘러 내린다
바람은 소리를 접어 산속으로 떠나고
비 맞아 꿉꿉해진 골목들의 이력같이
소나무 우듬지에 걸려있는 저 흰구름
공중의 새를 날려서 주름살 지워낸다
색 바랜 기억들이 토해놓은 노을인가
중복지난 서녘에 붉은 섬 둥둥 띄워
초저녁 봉선화처럼 왔던 길을 되묻고


 

  <당선소감>

 

   병마와 싸운 지난해… 당선 소식에 어둠의 터널 빠져나온 듯


  높이를 가늠하기 힘든 그곳을 오르고자 첫발을 딛던 날이 새삼 먼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처음 오를 때 깨끗하던 계단은 세월의 얼룩이 묻어 나날이 낡아 갔습니다. 오르고 오르다가 앞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이제는 내려놓으리라, 돌아서리라’ 수없이 주저하고 망설이던 시간을 지나 드디어 오늘, 그곳에 도달했습니다.

  지난해 몸을 옥죄는 병마를 견뎠습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하염없이 나부끼었습니다. 일어 설 힘도 없이 주저앉아 있던 저를 화들짝 깨운 당선 소식에 여태 괴롭히던 어둠이 모두 빠져나가고 환희와 밝음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이제 일어서서 걸을 수 있겠습니다.

  글을 쓰며 바라본 세상은 전엔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바람의 결을 살피고 저녁의 안부를 물으며 보도블록에 피어난 꽃의 이름을 되뇌는 하루하루가 행복했습니다. 열정으로 숨차던 시간을 소환하며 다시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해야겠습니다.

  날카로운 감성으로 시조의 길을 열어주신 이교상 선생님, 함께 이끌어주고 어깨를 내어준 문우들, 제가 걷고자 하는 길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응원해주고 믿어준 가족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뭉게뭉게 눈꽃을 피운 나뭇가지에서 녹아내리는 물의 눈동자로 주변을 깊이 살피고 따뜻하게 어루만져 아픔을 치유하는 시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해 주신 동아일보,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1963년 경북 경산시 출생 
● 대구상서여자상업고 졸업


 

  <심사평>

 

  

  코로나 팬데믹 상황서 실존적 고뇌 다룬 작품 늘어

  심사 대상 작품들은 다양한 상상력의 하늘이거나 바다다. 수없이 많은 불면의 밤들이 공들여 만든 세계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팬데믹 상황에서 더 치열하게 우리 삶의 존재 의미나 전망 부재의 내일을 향한 자세 혹은 실존적 삶을 고뇌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영향 때문에 오히려 이미지에 허점을 보이거나, 지나치게 사변적으로 흐르거나, 내용이 길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작품도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찾는 것은 결국 시인으로서 자신의 자질과 개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런 관점에서 마지막까지 거론된 작품은 ‘강물의 탄원서’, ‘갠지스강’, ‘바위 소나무’, ‘진달래 핑계’, ‘꽃을 더듬어 읽다’였다. ‘강물의 탄원서’는 환경오염을 거론하면서도 자연의 힘을 믿는 시인의 자세가 든든해 보였고 ‘갠지스강’은 생태계나 생사의 순환을 일체의 감정 개입 없이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바위 소나무’는 삶의 강인함을 절제된 단시조 속에 잘 담아냈고 ‘진달래 핑계’는 읽는 재미를 선사하는 우리 일상의 부담 없는 노래라는 점에서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위의 작품 중에서 서정성이 부족하거나 기성 시인의 작품과 너무 비슷해 보이는 작품, 시어가 승화되지 못한 작품, 사고의 폭이 너무 좁다고 느껴지는 작품을 다시 제외했다. 그리고 남은 작품인 ‘꽃을 더듬어 읽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작품의 중요 소재는 노인이다. 리어카와 함께하는 그의 고단한 하루를 무심한 듯 감정개입 없이 섬세하게 그려놓았다. 그리고 이 무심함이 오히려 효과적으로 노인 문제를, 우리 삶의 고충을, 인생의 덧없음을 상상하게 한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 노력해서 의미 있는 성취를 하길 빈다.

심사위원 : 이근배, 이우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