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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분홍 물고기 / 문일지

 

  가을인데, 뻐꾸기가 울고 있습니다.

  편지함이에요. 편지함에 우편물을 넣으면, 뚜껑에 앉아 졸고 있던 양철뻐꾸기가 울음을 터뜨린답니다.

“뻐꾹 뻐꾹 …… 편지 와쩌요.”

  외숙모님이 보낸 것입니다. 지난여름에 부탁을 했거든요. 이제 도착한 거예요. 커다란 봉투 속에 작은 봉투가 들어 있고, 그 안에 콩알처럼 까만 보물들이 들어 있습니다. 꽃씨들이에요. 와우!

  지난여름을, 시골에 있는 외삼촌 집에서 보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방학이었어요. 왠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번 여름을 잊지 못할 것 같은 …

  그래요, ‘분홍 물고기’와의 특별한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대개 시골의 하루는 동쪽 미루나무 위에서 시작됩니다.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해님이 잠꾸러기들을 깨우거든요. 담장에 매달려 있는 넝쿨장미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우지요.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특별히 할 것도 없고 해서 숙모님을 따라 성당에 갔습니다. 참새들이 한 번 날았다 앉는 거리를 ‘참새 한 걸음’이라고 할 때, ‘참새 열 걸음’ 정도 되는 거리예요. 숙모님이 성당에 다닌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실은 사연이 좀 있는데요. 외삼촌 내외에게는 나와 동갑인 딸이 하나 있었답니다. 몹쓸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어요. 2년 전 일이지요. 그 후로 성당에 다니시게 되었다는데, 아마도 딸을 잃은 슬픔을 달래시는 듯했습니다.

  숙모님이 미사를 드리는 동안, 본당 뒤뜰에 있는 작은 연못은 내 차지입니다. 연못은 장날의 시장 바닥 같아요. 동그란 잎들을 좌판처럼 벌여 놓고 오가는 손님들을 부르지요. 봉오리들은 소다를 넣고 한껏 부풀린 공갈빵입니다. 거기에 색소와 향기를 뿌려 놓았으니 부처님이라도 그냥은 지나치지 못할 겁니다. 보세요! 방금 나비 한 마리가 앉았다가 가는군요. 물가에 버드나무도 제 가지를 늘어뜨려 낚시질을 합니다. 하지만 고기들은 눈도 깜빡하지 않는답니다.

“헹! 택도 읎다 캐라.”

  그런데 물고기들 중에 눈에 쏙 들어오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온몸이 엷은 분홍빛이었어요. 물고기들이란 대개는 그렇잖아요. 하나같이 거무칙칙하고 그저 그런 모양인데요. 하지만 녀석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몸통만 한 꼬리지느러미가 세 개나 달려 있었습니다. 공중을 떠도는 새들도 헷갈릴 만큼 예뻤어요.

“뭐꼬? 저거 꽃이가?”

“아이다. 마 움직이는 꽃이 오데 있노?”

  연못 한 귀퉁이, 너럭바위에 앉아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따가운 햇볕 때문인지, 아니면 긴 여름에 지친 것인지, 녀석은 내 그림자의 그늘 밑을 빙빙 돌았습니다. 할딱할딱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어요. 왠지 힘이 들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가끔 물 위로 머리를 쳐들고는 입을 쫑긋거렸어요.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싶었습니다.

“안녕! 나는 분홍 물고기야.”

  시골의 일주일은 ‘바람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만큼이나 짧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요일이 돌아오고, 그날도 숙모님을 따라 성당에 갔습니다. 이번에는 들깨를 한 줌 준비했어요. 분홍 물고기에게 맛있는 간식을 주려고요.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분홍 물고기가 안 보입니다. 물풀 속을 다 뒤져 보아도 없습니다. 궁금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어, 관리인 아저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기요? 연못에 물고기 있잖아요?”

“물꼬기? 물꼬기가 와?”

“분홍색 물고기요. 지난번에 보았거든요.”

“아하, 그게 마이다. 고마 주그삐릿다. 메칠 댔능 긴데.”

“예? 죽어요? 왜요?”

“거야 우째 알겠노. 근데 늬는 첨 보는 아 같은데. 오데 사노?”

  갑자기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빠져 버렸답니다. 어디 사느냐고 물으니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요.

“저 아래요. 담장에 넝쿨장미 있는 집이 외삼촌 집이에요.”

“뭐라꼬? 거가 너그 외삼촌?”

  갑자기 아저씨의 눈이 올빼미처럼 뚱그레졌습니다.

“예. 방학이라서 놀러 왔는데요.”

“그랬꾸마. 허∼”

  방아깨비처럼 아저씨가 머리를 끄덕입니다. 2년 전에, 어떤 여자 아이가 분홍빛 물고기 한 마리를 연못에 놓아 주었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그 아이는 병으로 죽었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바로 넝쿨장미집 딸이라는 거예요.

“예? 넝쿨장미집이요?”

  이제는 내 눈이 토끼처럼 똥그래졌습니다.

“그라니끼네, 둘이 서로 사촌간이다 그 말 아이가. 그자?”

“예.”

“흐음∼”

  아저씨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분홍 물고기를 건져 냈을 때, 마치 진주를 얇게 썰어 낸 조각처럼 아름다운 비늘이 있었대요. 왠지 마음이 끌려 그 비늘만 따로 떼어 어항에 넣었대요. 바로 그 비늘을 받은 것입니다. 얼핏 보면 분홍빛인데 그 안에 은은한 무지개가 숨어 있었어요. 분홍 물고기를 다시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나마 멋진 비늘을 얻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글쎄요, 외사촌이 남겨 준 선물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아주 어렸을 때, 딱 한 번밖에는 본 적이 없지만요.

  비늘을 받쳐 들고 조심스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지만, 혹시라도 상처가 날까 그 상태로 수첩에 끼웠습니다. 마침 두꺼운 수첩이 있어 중간 페이지에 살그머니 비늘을 얹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종이에 손톱만 한 비늘이 왠지 허전해 보입니다. 딴은 연못을 떠나 수첩으로 시집 온 각시인데요. 각시방을 꾸며 주듯 봉숭아꽃을 따다 함께 넣어 주었습니다. 하얀 종이 위에, 분홍 비늘과 빨간 꽃잎이 참 잘 어울리는군요.

  앞마당에 봉숭아꽃이 빨갛게 물들어 갑니다.

  이제 여름도 고비를 넘어 천지에 매미 울음이 가득합니다. 땅속에서 모두 기어 나와 ‘대한맴국만세’를 외쳐 댑니다. 맴맴맴맴 매∼∼
 
  시골의 여름밤은 개구리와 맹꽁이들의 공연장입니다.

  개굴개굴 맹공맹꽁 ………

  천 년을 이어 온 2중주가 밤새도록 들려옵니다. 아직 이 무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가끔 깨어서 들어 줘야 한답니다. 그런데 그날 밤은 조금 달랐습니다. 꿈을 꾸었어요. 꿈속에서 한 소녀를 보았습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답답해. 여기서 꺼내 줘.”

“ ? ”

“미안해. 불쑥 나타나서. 하지만 그렇게 놀라지는 마.”

“누구?”

“나야. 분홍 물고기. 연못에서 봤잖아.”

“ …… ”

“부탁 하나 할게. 나를 도로 연못에 넣어 줘. 수첩 속은 너무 답답해.”

  맞아요! 그 소녀는 바로 분홍 물고기랍니다. 동그란 입 때문만은 아닙니다. 드레스 때문이에요. 분홍빛,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바닥까지 내려뜨리고 있었거든요. 마치 기다란 꼬리지느러미처럼.

  ‘혹시’ 하는 마음으로 수첩을 열었습니다. 순간, 하마터면 소리라도 지를 뻔했답니다. 비늘은 간 데 없고 하얀 종이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어요. 마치 분홍 색종이 같았습니다. 수첩의 무게에 눌려 얇은 비늘이 녹아 버린 걸까요? 함께 넣었던 봉숭아꽃도 곱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동글동글, 빨간 물방울처럼 아름답게 …

  다음 날 아침, 수첩에서 분홍 종이를 떼어 냈습니다. 그리고 연못으로 달려갔습니다.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물 위에 종이를 띄우려다 멈칫했습니다. 휴지인 줄 알고 누군가 건져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꾸깃꾸깃 구겨서 가라앉힐 수도 없는 일인데요. 이리저리 망설이던 중에, ‘빤짝’ 하며 정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지. 종이배를 만들어 띄우는 거야.”

  쪼로롱, 꼬마 배가 물 가운데로 나아갑니다. 동화나라 ‘엄지공주’도 탐을 낼 만큼 깜찍한 배예요. 물고기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봅니다. 나도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잘 가! 분홍 배야. 아니, 분홍 물고기야.”
 
  그리고, 어느 날인가 비가 내렸습니다.

  오후가 되면서 비는 그치고, 하늘에 무지개가 걸렸습니다. 무지개는 ― 어느 동화책에서 본 기억으로는, 죽은 자의 영혼을 천국으로 이끌어 주는 다리인데요. 이런저런 생각들을 굴리며 연못으로 갔습니다.

  종이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까지 내린걸 뭐’ 하며 돌아서려는데 …

  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연못에 분홍 물고기가 돌아다니는 겁니다. 그때 그 물고기가 아니고 처음 보는 물고기예요. 손가락만 한 꼬맹이랍니다. 하지만 모양이나 빛깔이 똑 닮았습니다. 헤엄치는 모습까지 닮았습니다. 딱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빨간 반점이에요. 양쪽 가슴지느러미에 동그랗게 무늬 진 반점. 마치 봉숭아물이 빨갛게 들은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침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비가 온 뒤라 숙모님도 텃밭에 나가신 모양입니다. 왠지 구석에 있는 작은 방에 자꾸만 눈길이 갔습니다. 외사촌이 쓰던 방인 듯싶었어요.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작은 책상이 있고, 그 위에 비스듬히 세워 놓은 사진틀 속에서 한 소녀가 웃고 있습니다. 분홍 원피스를 발목까지 내려뜨리고 있었어요. 양손에는 봉숭아물이 빨갛게 들어 있었고요.

  마당에는 봉숭아꽃이 한창입니다.

  꽃그늘을 발등에 올려놓은 채 그 앞에 우두커니 섰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는데, 언제 오셨는지 숙모님이 가까이 다가왔어요.

“꽃 보나? 봉숭아꽃 이쁘제?”

“예.”

“영희가 억수로 좋아 안 했나. 그래 해마다 심능 기다.”

“아, 그러면 매년 심는 건가요?”

“하모. 가을에 씨 받아가 봄에 뿌린다 아이가.”

“ …… ”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갑자기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을에 꽃씨 받으면, 조금 보내 주실 수 있나요?”


 

  <당선소감>

 

   “쉼없이 달린 창작활동…결실에 감사”

  선(選)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아마도,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場)을 마련해 준 ‘경상일보’ 관계자 분들께도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아마도, 전생부터 쌓인 인연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본시 과문한 터라 더 이어 갈 말이 없다. 다만 여백을 많이 남기는 것은 예의가 아닐 듯싶어, 허접한 문자로나마 감회를 전한다.

  각설.

  ‘밤을 낮 삼아 달려왔느니/허리 휘었다/말발굽 닳고//변방에서 새벽을 맞느니/깨진 박에 물 담아/목을 축인다//뜻은 높고 공도 크나/얻은 것 적고/잃은 것은 많네//마공(馬公)이여, 그대에게 묻노니/가야 하느뇨/돌아가야 하느뇨’

● 서울출생. 
●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당선


 

  <심사평>

 

  “시적 함축미와 이미지 표현 돋보여”

  완성도가 높다고 본 작품은 다음 3편이었다.

  ‘나를 보여줄게’ 얼굴에 난 큰 점 때문에 열등감을 가진 아이가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선생님과 옛 친구의 진심 어린 충고에 자신감을 찾게 되는 이 이야기는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발상이 기발하고 줄거리 진행도 자연스러웠다.

  ‘희재가 웃었어’ 사고로 화상을 입은 아이와 그를 돕는 친구 사이의 심리적 갈등을 그린 이 작품은 과도한 친절이 장애인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되새겨 보게 한다. 더구나 그 친절이 선생님에게 칭찬받기 위한 의도적 친절일 때 상대방은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두 아이의 미세한 심리 차이를 대화로 풀어내는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분홍 물고기’ 여름방학 시골 외숙모 집에 간 소녀가 성당 연못에서 분홍색 물고가를 보고 일찍 죽은 사촌 자매와 영적 교감을 나누는 이 이야기는 문장이 감각적이고 스토리에 얽힌 사연이 모두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어 마치 한 편의 서정시나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다. 현실적인 메시지 대신, 시적인 함축미와 이미지 구축에 무게 중심을 둔 이 작품은 생활동화가 대세인 한국 동화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신선한 작품이다.

  사실적으로 그린 앞의 두 작품도 크게 흠잡을 데 없지만 새로운 수법을 선보인 ‘분홍 물고기’의 문학성이 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아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올린다.

심사위원 : 조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