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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우우의 실종 / 박태호

 

  소리를 따라 돌아보았다. 자작나무 숲이 일제히 울었다. 가지에 앉은 눈발이 흩날렸다. 벚꽃 잎이 사정없이 나부끼던 풍경이 겹쳐보였다. 언제까지나 담아두고 싶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소리는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앙상해진 가지는 더는 울어주지 않았다. 지난봄을 흔들던 이파리들은 모두 떠나고 없는데 어떤 기억은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는 것이다.

  쏘렌토 한대가 언덕바지에 멈춰 섰다. 박 노인은 잰걸음으로 다가갔다. 도포를 입고 긴 수염을 쓸며 나타날 줄 알았는데 역술가보단 샐러리맨 냄새가 났다. 바짝 닦여진 구두는 흙이 묻을까봐 오히려 내가 신경이 쓰였다. 그걸 아는지 그는 바닥에 깔린 징검돌을 애써 골라 밟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간만에 낮잠이나 자려고 발길을 돌렸다. 설핏 바람소리가 들렸다. 하울링 같기도 했다. 박 노인의 미간이 삼지창을 그리며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이참에 너도 좀 받아보자.”

  손사래를 쳤지만 잡아끌었다. 역술가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햇송이차였다. 음미하며 감았던 눈을 슬몃 뜨는데 눈매가 매웠다. 칼로 자른 듯한 코끝과 쌍꺼풀 없는 맨눈이 예리했다. 왠지 주눅이 들었다. 얇게 다문 입술이 생년월일과 이름을 야무지게 묻고 있었다. 강압적인 무언가가 나를 짓눌렀다. 엉거주춤 꿇어앉았다. 종이에 성씨 우와 이름 우를 썼다.

  “행할 우와 벗 우라......”

  한자를 보던 그는 입술을 둥글게 모았다. 휘파람을 부는 듯 파열음이 새어나왔다. 휘릭. 새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또박또박 우, 우, 하고 발음했다. 가슴 깊이 빗물이 똑똑 떨어져 내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이름 두 글자가 똑바로 서는 것 같았다. 여태 사람들은 어디까지가 이름이고, 성인지 구별이 안 되게 나를 불렀다. 내 인생처럼 맥없이 흘러버렸는데. 그게 너무 싫었는데. 그가 한 자씩 똑똑 끊어서 세워주었다. 아니 나를 뿌리 깊은 나무처럼 꼭꼭 땅에 박아서 넘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것 같았다. 그의 펜 끝이 닿는 지면에 반듯한 구덩이가 파여 있을까 싶어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그곳에 내 생의 내력이 담겨져 있을 지도 몰랐다. 침을 삼키며 역술가의 입을 바라보았다.

  “여기 오신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답은 박 노인의 몫이었다. 지난 꽃샘추위 때 느닷없이 왔다고.

  “초봄이라......”

  종이 오른쪽에 나의 이름 두자가 뚜렷하게 박혔다. 于 友. 그리고 상단에 생년월일시가 가로로 쓰였다. 그 아래로 읽을 줄도 모르는 네 줄의 한자가 기둥처럼 내려왔다. 밑에는 여덟 개의 낱자가 또박또박 징검돌처럼 놓였다. 그러는 틈틈이 그는 왼손 엄지로 검지와 중지, 약지, 새끼의 마디를 꼽으며 셈을 하는 듯이 보였다. 생년월일을 더하는 것 같기도 하고, 휘파람을 휘이 불더니 살짝 몸을 치떨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흰 것은 종이요, 까만 건 글씨였다. 아무 생각 없이 끌려왔는데 시간이 갈수록 알지 못 할 간절함이 가슴 바닥에서 기어올라왔다. 마음은 박차고 나가고 싶은데 몸이 달라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긴 그림자가 되어 창틀에 액자처럼 끼일 때까지 그는 말이 없었다. 수많은 말보다 더 많은 사연들이 잠겨 있는지 그는 한자의 행간과 자간을 서성거리는 듯 보였다. 여름날 루프탑에서 내려다 본 골목길 사이의 미로에 끼여 있던 나의 심정을 그도 지금 느끼고 있을까. 그 골목의 끝에서 떠나간 아버지를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아이의 심정을 읽어내고 있을까.

  “귀한 성씨네요.”

  묘한 말이다. 한 번도 듣지 못한 단어가 똑똑 떨어져 내렸다. 버거워서, 너무 버거워서 점집을 찾았을 때도 들려주지 않았던 대답이었다. 그때 누군가 모진 소리 대신 귀하다는 말을 해주었더라면 내 생이 바뀌었을까.

  “남 좋은 일만 하고 살았제? 모은 것도 부모님도 없어. 질질 흘러버러. 다 흘러내린다고 이름처럼.”

  주눅이 들었다. 엄마가 손목을 긋던 날처럼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는 심정이었다. 그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당은 단호했다.

  “제명에 못 간 분들 살풀이도 혀야겠고.”

  살풀이가 뭔지 돈이 얼마나 드는지 몰라도,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말만 귀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역술가는 귀한 이름이라니. 그의 말에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러는 그에게 더 듣고 싶었다. 차라리 부모님이 그렇게 떠난 것이 다행이라고. 누군가 속 시원하게 나의 내력을 떠벌려 주었으면 싶었다. 목덜미로 비어져 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우우.”

  짐승들이 울었다. 깰 시간이 아닌데. 축사 한쪽에 염소들이 몰려있었다. 뼈다귀가 널브러진 채였다. 박 노인은 창고에 있던 엽총을 움켜쥐고 서 있었다. 허공을 조준하던 실눈이 나에게로 향했다.

  “뭔 소리 못 들었냐?”

  날카로웠다. 밤을 새워서라도 염소들을 지키라고 했는데...... 들개들이 한바탕 헤집어 놓았다. 분명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간밤 별무리에 붙들려 있었다. 예전에 읽었던 소설의 장면이 떠올랐다. 목동이 소녀에게 별 이야기를 해주던 줄거리였다. 그런데 가슴을 데워줄 모닥불도, 찾아와줄 친구도 나는 없다. 외로워서였을까. 끝없이 쏟아지던 별밤을 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별똥별이 떨어져 내릴 듯한 밤하늘에 묶여 있었는데 언제 눈꺼풀이 풀려버린 걸까.

  “별 보느라 안 잤는데요?”

  “별?”

  그는 별 실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말꼬리를 올렸다. 본인도 약을 먹고 자는 처지였다. 대신 널브러진 염소 뼈다귀를 모으라고 허공에다 한마디를 날렸다. 탕거리로 쓸 모양이었다. 뒹구는 뼈다귀를 줍는데 대가리가 하나였다. 한 마리만 죽은 것 같았다. 군데군데 검은색 털이 박혀있었다. 혹시? 이름을 불렀다. 복장이, 설화, 코등이, 예각이……. 점박이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훑어봐도 마찬가지였다. 하필이면 새끼 때부터 돌봐온 녀석이라니. 어미를 찾아 울어대던 그놈. 보다 못해서 창고로 달려갔다. 젖병을 본 기억이 났다. 다행히 분유도 남아있었다. 젖꼭지를 물리자 녀석은 선채로 빨기 시작했다. 다리를 뻗치며 빨아 당겼다. 살려는 몸부림이 내 손을 타고 넘어왔다. 악착같이 매달리는 모습에 이름을 지어주었다. 다리의 검은 점들. 점박이. 부르기 쉽고 모습이 잘 그려지니까. 그런데 어두컴컴한 축사에서 저만 밥이 되다니. 무병이나 장수로 지어줬더라면……. 그런 녀석을 탕이라니. 삽자루를 쥐었다. 구덩이로 뼛조각을 밀어 넣었다. 엄마의 뼛가루를 받았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다. 엄마라는 단어가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것처럼 헛헛했다. 납골당 유리문을 닫는데 가슴이 잠겼다. 그날처럼 흙을 덮고 밟는데 명치가 아렸다. 자꾸만 흙을 눌러 밟았다. 자작나무가 빼곡한 산 아래 개울에는 버들치가 솟구치는데. 세상 어디도 안전한 곳은 없는가 보았다.

  “철조망 좀 설치하자고요.”

  어차피 해가 지면 돌아온다는 게 박 노인의 지론이었다. 그나마 파수꾼은 동서남북으로 농장을 지키는 개들이었다. 그는 놈들을 보며 혀를 찼다.

  “뭔 놈의 개들이 밤새 한 번을 안 짖냐고.”

  견종이 필요 없는 개들이었다. 항상 넉살 좋게 뒹굴었다. 반대로 놈들은 야생이었다. 살벌한 눈빛으로 울타리 주변을 서성거렸다. 하울링과 개 짖는 소리가 얽혀들 때면 나는 닭장 문을 걸어 잠갔다. 소리가 그치면 울타리 너머를 삽을 휘두르며 둘러보았다. 그때였다. 갈대숲에서 시베리안 허스키를 닮은 녀석이 보였다. 보통 놈들은 도망을 칠 텐데 녀석은 자리를 맴돌았다. 아직 목에 띠가 매여져있었다. 밥을 줘야 할까. 바가지에 사료를 듬뿍 펐다. 녀석은 갈대숲으로 숨어들었다. 근처에 두고 돌아왔다. 그새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울타리 안의 짐승들이 아우성을 쳤다. 벌써 해가 중천에 떴다. 사료통 뚜껑을 열어젖히며 놈들의 이름을 불렀다.

  “백구야, 흰둥아, 황구야…….”

  백구와 흰둥이는 흰색, 황구도 이름 그대로였다. 유일하게 모습을 알 수 없는 놈은 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런 이름이 싫었다. 내 이름처럼 그저 의미 없이 줄줄 새버릴 듯해서 싫었다.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지 말라고 나는 염소들의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여름에 태어난 놈은 여름이, 콧날 오뚝한 놈은 코등이. 복장 터지게 말 안 듣는 녀석은 복장이, 뿔이 유독 각진 녀석은 예각이었다. 짐승은 짐승이라지만 내 이름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되었다. 할아버지가 지었다는 것 외에는. 그래도 아버지의 이름은 나았다. 우석이었다. 석자가 왠지 무게 있고 야무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야물기는커녕 죽어버렸다. 엄마는 영옥. 그 옥도 아침이슬처럼 떨어져 버렸다. 그 중에 가장 뜬금없는 이름은 나였다. 벗 우자인데, 벗은커녕 원수들만 옆에서 깐죽거렸다.

  “우우~.”

  하울링이 시작되었다. 늑대의 출현이었다. 답안지를 보여주지 않았던 날부터 녀석은 오리주둥이를 내밀었다. 쥐어짜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늑대들은 서너 마리씩 붙어 다녔다. 운 좋게 그날은 놈이 혼자였다. 나를 보자 왼쪽 눈을 찡긋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순간 오른쪽 팔을 최대한 뻗쳐 대각선을 그었다. 철퍽. 실내화의 바닥 무늬가 놈의 얼굴에 찍혔다.

  “야, 창문가려!”

  아이들은 일제히 하울링을 했다. 나는 나비처럼 날았다. 주둥이를 잡아서 비틀었다. 하지만 놈의 주먹이 더 많이 나를 가격했다. 사방 천지에 별이 떴다.

  “받어.”

  푸른빛이 돌았다. 순대처럼 생긴 탯줄이었다. 아랫동네 염소가 출산을 했나보았다. 그걸 내 손에 올렸다. 물컹한 느낌에 놓쳐버렸다.

  “정신머리를 어디다 두고 사냐?”

  내게 정신머리가 있기나 할까. 여기 내려온 것도 제정신으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김 과장의 빈정거림을 아직도 듣고 있을 터였다.

  “슬쩍 끼우라니까? 니치마켓 몰라?”

  틈새시장이 주제였다. 받아 적던 손이 멈추었다. 저번에 세일 상품 사이에 신상을 끼워 팔다가 백화점에서 경고를 먹었다. 그럴 때마다 터지는 건 나였다. 직원들은 김 과장의 비위를 잘 맞추었다. N.I.C.H.E 위로 동그라미를 뱅뱅 그렸다.

  “우우씨. 알아들었지?”

  김 과장이 나를 꽉꽉 내리찍었다. 지난 밤 회식자리에서 들었던 하울링 때문인지 귓속이 윙윙거렸다. 야유 같기도 하고. 이명이 들려왔다. 1층 흡연장에서 담배를 힘껏 빨아 당겼다. 귀가 자꾸만 웅성거렸다.

  “우~~~우우~~우~우~.”

  김 과장의 노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누구를 보고 싶다는 건지. 노래가사는 들리지 않고 나를 부르는 듯해서 과장 곁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아니면 늑대처럼 초원이라도 달려야할 판이었다. 그때 마이크가 돌아왔다. 노래라니. 주변에서 윽박지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버지의 노래였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별로 친하지도 않는 정 대리가 뭐라고 시부렁거렸다.

  “우우씨, 늑대 아니고 하이에나였어?”

  주변에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느닷없는 환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끝까지 부르려고 마이크를 바투 잡았다. 그 와중에 김 과장이 주둥이를 내밀었다. 잡아서 수타를 치고 싶었다. 저 정도면 오 인분은 나오려나.

  “우우씨. 점심 같이 먹자.”

  입사동기 윤이 서있었다. 평소에 커피도 한 잔 나누지 않았는데 밥을 같이 먹자니. 놀리는 걸까. 뜨악해서 자리를 피하려 할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어쩌다 명절에나 연락하는 외삼촌이었다. 그런데 한참 만에 나온 첫마디가 암, 이었다.

  “사람 좀 구해봐라.”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올 것 같은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다. 재방송으로 몇 번 본적이 있는 프로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내가 무슨 수로 찾는다는 건지. 통화가 길어질 것 같아 그러겠다고 마무리를 지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또 회의였다. 회의만 하다가 인생이 끝날 것 같았다. 뭐라고 또 꼬투리를 잡을까. 회의를 하는 내내‘나는 자연인이다’라는 글자들이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배배꼬며 떠돌아다녔다.

  “우우씨. 얼 빠졌어? 왜, 실연이라도 당한거야?”

  김 과장이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그는 사람을 질리게 하는 묘한 위력이 있었다. 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실수로 우수사원에 뽑힌 거였다. 김 과장은 그때부터 내가 쓴 계획서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운이었다고 말했지만 그는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실수든 뭐든 계속되면 실력이라고. 우우씨…….”

  뒤에 생략된 말은‘발’자였을 것이다. 어떤 소리를 하던 말단인 내가 그의 욕망을 채워주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대학논술시험 때 읽은 데이빗 소로우의‘월든’이 떠올랐다. 또 소똥으로 군불을 땐다는 곳,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라다크도 그리워졌다. 외삼촌이 있는 곳도 그런 곳일까? 자연이란 단어에 마음이 끌렸다. 말들이 울렁거리며 자꾸만 내가 서 있는 지면을 밀어내었다. 창밖에 초록색이라곤 가로수가 전부였다. 빌딩 뒤에 있는, 저 멀리 산 뒤편으로 떠나고 싶었다. 아니, 떠나야 할 때일 지도 몰랐다. 사무실을 나와 버렸다. 캐리어에 옷가지를 대충 우겨넣었다.

  버스에 올랐다. 아스팔트, 보도블록도 차갑게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서울을 떠나는구나 싶었다. 빌딩숲을 지나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건물이 낮아졌다. 탁 트인 평야와 멀찌감치 떨어진 산이 나를 불렀다. 흙냄새에 거름냄새까지 딸려왔다. 창밖의 풍경은 다채로웠다. 비닐하우스 농장이 보이다가 겨우내 눈이 녹아 질퍽해 보이는 논이 펼쳐졌다. 간간이 산에 자리한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그만 텃밭까지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홀로 떨어진 섬 같았다. 그런데 삼촌은 왜 산으로 갔을까. ‘인제군’, 표지판을 통과할 때쯤 설핏 잠이 들었다. 아빠를 보내고 소주병을 들이키던 엄마, 퉁퉁 불은 눈으로 라면을 끓여주던 엄마가 손을 흔들었다. 부르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깨가 흔들렸다. 인제였다. 터미널에서 크게 숨을 들이켰다. 황사 바람과 매연 없는 공기가 상쾌했다. 핸드폰이 떨렸다. [우우씨, 어디야?] 윤이었다. 답장은 하지 않았다. 대신 외삼촌에게 인제라는 문자를 보냈다. 담배가 당겨서 마트에 갔다. 그리 시골은 아니었다. 은행부터 편의점까지 있었다. 김이 빠졌다. 담벼락이 있는 기와집을 떠올렸지만 도시에서 보던 건물이 즐비했다. 담뱃불을 붙일 때 하얀색 트럭이 터미널 건물 앞에 멈추었다. 엄마 장례식에서 본 뒤 처음이었다. 끝까지 곁을 지켜주었는데. 암 투병 탓인지 나이가 들어보였다.

  “근데 너가 왜 왔냐?”

  나도 모를 일이었다. 무작정 버스를 탔으니까. 그는 더는 묻지 않았다. 밥이나 먹자며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주문하며 박 노인은 맥주 한 병을 시켰다. 한 잔을 따라주며 털털하게 웃었다.

  “세월 참 빠르다. 그 어렸던 녀석이 나한테 술도 받고.”

  식당 아줌마가 뚝배기를 내려놓았다. 엄마의 우거지 국맛이 떠올랐다. 기분이 훈훈해졌다. 그는 빈 잔이었다. 채우려하자 손등으로 막으며 내 잔을 채웠다. 박 노인은 먹는 것도 부실했다. 반이나 남겼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마냥 낯설었다. 식당을 나가는 뒷모습이 작아보였다.

  “너도 이제 늙는구먼. 몇 살이냐?”

  대답대신 암은 어떠냐고 묻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시동을 걸었다. 비포장도로부터 트럭은 덜컹거렸다. 이야기가 간간이 이어졌다 끊기기를 반복했다. 좀 더 깊숙이 올라가자 갈대숲이 펼쳐졌다. 그 너머 농장이 보였다. 자작나무가 둘러쳐있었다. 개들이 일제히 짖었다. 어디선가 염소가 메에에 메에에 울었다. 울타리 쳐진 곳 한 가운데에 축사와 농가가 자리했다. 그 주변을 염소들이 나돌아 다니고 개들은 한가롭게 햇볕을 내리쬐고 있었다. 박 노인이 집 문을 열며 손짓했다.

  “짐 풀고 쉬어라.”

  나무로 된 집을 상상했지만 현대식이었다. 이 오지에도 수도와 전기는 들어와 있었다. 창고 옆에 딸린 방은 서울의 원룸보다 훨씬 인간적이었다. 넓은 창도 있고 침대가 아닌 이불이 깔린 것이 엄마와 살던 방처럼 아늑했다. 이불 밑에 손을 넣었다. 불을 지폈는지 따듯했다. 드러눕자 뜨뜻한 기운이 온몸을 가득 감쌌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엄마가 뚝배기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두부가 듬뿍 든 된장찌개가 끓었다. 그리운 냄새에 한술 뜨려는데 누군가 불렀다.

  “어여 인나. 저녁 먹어야지.”

  어두워져있었다. 낮에 훤히 보였던 산과 갈대숲은 형체만 남았다. 박 노인이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식탁의 된장찌개 냄새가 내 꿈결을 열었나보다. 누군가가 해준 밥을 먹는 게 얼마만일까. 남들은 평범하게 여길 일이 내게는 축복처럼 다가왔다.

  “먹자. 서울 사람 입에 맞을지 모르겄네.”

  간간이 개 짖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갈대 서걱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조용하네요. 혼자 지내시긴 좋겠어요.”

  “좋기는 무슨...... 아파보니, 인생 별 거 없더라.”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혼자 버티는 게 서러웠다고. 박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렴풋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쁜 년이라고. 아마도 외숙모를 두고 한 말 말이었으리라. 그러고는 지금까지 혼자 산 것일까. 나에게 이종사촌이 될 누나가 있는 걸로 아는데. 엄마마저 떠나고 한동안 방에 틀어박혀 살았던 때가 생각났다.

  “참...이 기억이라는 게 말이여. 좋건 나쁘건 다 재산이라 던디......”

  니 엄마 죽을 때……. 그는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아버렸다. 기억은 재산이라는 말이 걸렸다. 아버지의 교통사고, 엄마의 죽음. 몸서리치는 기억들이 재산이라면 얼마나 많은 것을 떠안고 살아야 할까.

  “자자. 내일부터 일 좀 해야지.”

  돌아서는 모습이 많이 늙어보였다. 고독한 사람에게 혼자 지내기 좋은 곳이라니. 괜한 말을 해서 맘이 불편했다.

  “따라와라.”

  박 노인은 곡괭이를 쥐어주었다. 그는 바구니와 삽을 챙기더니 산으로 향했다. 갑자기 웬 산일까? 자작나무 숲 사이를 지나 더 깊숙이 들어갔다. 오랜만의 산행에 벌써 숨이 찼다. 그는 나무 앞에 섰다. 곡괭이를 내리쳤다. 쉽지 않았다. 얼마 파지 않았는데 손바닥이 얼얼했다. 손잡이를 놓자 박 노인이 삽으로 흙을 살살 걷어내며 곡괭이 끝으로 뿌리 깊숙이 파들어 갔다. 한참 만에 박 노인과 나는 뿌리를 좌우로 흔들며 힘을 조절했다. 줄기가 잘릴까봐 조심스레 당겼다. 칡이 쩌억하며 쑥 딸려 나왔다. 그는 칡을 들고 이리저리 흔들며 만족스러워했다.

  “풀뿌리 하나 뽑자고 이 높은 데까지 올라 오냐고요.”

  “세월이 좀 먹니? 운동이 따로 있냐. 뭐 그리 급혀?”

  그는 대수롭지 않게 삽질을 계속했다. 나는 곡괭이를 던져놓고 담배를 꺼냈다. 겨우 산에나 오르자고 부른 걸까. 혼자 구시렁거리는 것을 들었는지 박 노인이 한 마디를 거들었다.

  “외로워서 불렀다. 개들이 날 데리고 살아줄겨?”

  단지 농장 일을 할 사람을 구하는 줄 알았는데. 다시 곡괭이를 들 때 핸드폰이 떨렸다.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우우씨. 휴가가 기네? 휴직 처리했으니까 쉬다와.] 윤이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쉰다니? 누구 마음대로. 의외의 내용에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때 박 노인이 불러재꼈다.

  “거 전화 끊고 빨리 와라. 여기도 파야 혀!”

  돌아간다는 단어가 너무도 생소했다. 아주 오랜 시간, 여기에 산 것처럼 나는 익숙해져 있었다. 언젠가 말해야겠다 싶을 때 또 핸드폰이 진동을 했다. 동창이었다. 받지 않고 꺼버렸다.

  “나 좀 살려주라.”

  갑작스러운 연락이었다. 한주는 사채를 끌어다 썼다. 끼니 때우기도 힘든 모양이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돈은 뻔했다. 하지만 돕고 싶었다.

  “너도 힘들 텐데 괜찮겠어?”

  사실 나도 힘들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다가와준 친구였다. 오락실 앞을 서성일 때 동전을 넣어주며 손목을 끌었다. 생활비만 남기고 월급을 넘겼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나는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한주한테 돈 빌려줬다면서?”

  동창의 확인전화였다. 여럿의 친구가 돈을 떼였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에게는 꼭 연락을 하리라고 믿었는데. 한주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없는 번호였다. 한주 대신에 동창이 끈질기게 연락을 해왔다. 그를 고소하려 한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 너라도 잘 살아라. 나에게까지 잠적할 필요는 없었는데…….

  들개들이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나면 녀석이 서있었다. 늘 똑같은 갈대숲이었다. 밥을 주기 시작한지 달포쯤 되었다. 벌써 눈에 띄게 가까운 곳까지 다가왔다. 자리를 뜨기도 전에 사료를 먹었다.

  “너도 이름이 필요할 것 같구나.”

  그런데 점박이가 떠올라 이름 짓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녀석을 언제까지 야, 너 로 부를 순 없었다. 뭐가 좋을까. 시베리안 허스키를 닮았으니까 영어이름이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어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늑대에게 하얀 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녀석의 발은 흰색이 아니었다. 영화의 제목에서 따온 춤이라고 지을까? 하지만 춤은 왠지 추워보였다. 차라리 댄스가 나을 것 같았다. 그래, 댄스로 하자. 언젠가 하얀 발처럼 다가와 줄지도 모를 테니까. 아는지 모르는지 댄스는 바가지를 리드미컬하게 핥고 있었다.

  “댄스.”

  이름을 부른지 한 달 만에 녀석이 옆으로 다가왔다. 쓰다듬어보려 손을 내밀자 녀석은 뒷걸음질 쳤다. 아직은 아니었다.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다른 놈들에게 밥을 준다면 어떨까. 보나마나 박 노인이 노발대발 하겠지. 돌아오는데 저 멀리서 박 노인이 불렀다.

  “점심때 닭 잡자.”

  몸보신한다고 잡아대는 통에 이제 병아리들 천지였다. 밥을 줄때마다 어정어정 따라다니는 놈들을 잡자니. 이름까지 지어준 녀석들인데. 손끝이 오그라들었다. 대답대신 페트병을 차버렸다. 눈치 없이 황구가 찾으러 뛰어나갔다.

  “귀한 분이 올게다.”

  면도를 하고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박 노인이 낯설었다. 계속 용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뭐가 용하다는 건지. 못 미더워하는 나에게 박 노인은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가 암에 걸린다는 것 까지 족집게처럼 맞췄지 뭐냐. 너도 한번 봐라.”

  그 사이 박 노인은 수탉의 모가지를 쥐고 나왔다. 벼슬이 유난히 커서 대슬이라고 지었던 녀석이다. 먹이를 줄 때마다 따라왔었는데. 먼 산을 쳐다보며 애써 외면했다. 곧 뜨거운 물에 털이 뽑힌 대슬이가 상 위에 오를 것이다.

  “생각 바꿔. 짐승은 죽어야 또 다른 생으로 환생하는 거여.”

  축사 안으로 도피했다. 명치끝이 쪼는 기분이었다. 놈이 꼴까닥하더니 골로 갔나 보았다. 그래도 이름 없이 죽는다면 누가 죽었는지도 모를 터였다. 누구인지 아니까 슬퍼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었다. 대슬이가 따라다니며 꼭꼭거리던 모습이 선명해져만 갔다. 마당에서 구수한 닭 냄새가 퍼질 때 쯤 저만치서 차 소리가 들렸다.

  “우, 우.”

  우와 우를 한 음절씩, 빗물처럼 똑똑 떨어지는 발음으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귀한 이름이라 말하는 게 내 귀에는 놀리는 말로 들렸다.

  “이름이 맘에 안 드시나 봅니다?”

  단지 놀림 받는 게 싫어서라는 대답은 어딘가 궁색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에 띄지 않고 평범하게 묻혀 사는 이름이 좋았다. 남들과 비슷한 이름을 갖고 싶다고 하자 역술가는 되물었다.

  “왜 남들과 비슷해지고 싶으신 거죠?”

  잠시 멈칫거렸다. 왜 나는 남들과 비슷하기를 바라는 걸까. 무심히 문 밖을 보자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태양이 강렬하게 눈살을 찌르며 들어왔다. 그 빛은 이중으로 삼중으로 드리워져 내 삶 속에서 딱지가 되어버린 흔적들을 감추어버렸다. 바람은 그다지 불지 않는데 사물이 움직이는 듯 모든 게 어른거렸다. 아직 태양이 남아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이 지나고 내가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간다면 여기서의 이 따뜻한 태양은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곧 가을의 쓸쓸함이 찾아오리라. 이파리 몇 개를 달지도 않은 나무는 겨울 외투를 껴입은 나를 더욱 옥죄게 만들며 주위가 되어 주리라. 그런데 나의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떨어져 나갔다.

  “한 번도 남과 비슷하게 살지 못했으니까요. 바꾸고 싶어요.”

  “뭘 바꾸고 싶으신지요?”

  “제 운명을요.”

  “운명이 어때서요?”

  “남들은 너무나 쉽게 가진 것들이 내게는 없으니까요.”

  그때 백숙이 상 위로 올라왔다. 박 노인은 닭다리 하나를 찢어 그에게 주며 장단을 맞췄다.

  “그러지 마시고 좋은 이름 하나 지어서 우리 조카 장가 좀 보내주쇼.”

  그들이 담소를 나누는 사이 나는 방을 나왔다. 좋은 이름이라고? 박 노인은 사주가 어떠네, 이름이 어떠네 집요하게 물어볼 게 뻔했다. 분명한 건 그의 표정이 빈말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처럼 한 자씩 끊어서 읊조려 보았다. 우, 우 하는데 저만치 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댄스!”

  녀석이 곁으로 다가왔다. 왠지 녀석의 모습이 집에서 키운 개처럼 말끔해 보였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녀석에게 울타리가 생긴 것처럼 든든해 보이기까지 했다. 줄로 묶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있으면 영화처럼 나와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언제까지 울타리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하는 걸까. 이름을 갖는다는 건 어둠 속에서 빛의 형상을 떠올리는 것처럼 뭔가 명징해지는 느낌이 아닐까. 내가 먼저 댄스 마음속의 어둠을 열었기에 지금 녀석이 내 주변을 배회하듯 나도 서둘러 내 어둠의 문을 열어젖히고 싶었다. 만약 내게 그런 이름이 생긴다면 나의 생으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올까. 어떤 이름이 좋을지 성씨 우 옆에 글자를 붙여보았다. 우진, 우영, 우중……. 두자 이름으로도 해볼까 했지만 한 가지가 걸렸다. 그것은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바뀐 이름으로 불러줄까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계속 우우로만 기억이 될 터인데.

  “나 좀 태워다 줘라.”

  박 노인을 터미널에 내려주었다. 그는 사흘 후에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동안 뭔 가로부터 놓여난다는 생각에 맘이 들떴다. 시장으로 핸들을 돌렸다. 주차를 하고 시장통을 걸었다.

  “갈치이! 싱싱한 갈칩니다!”

  순식간에 토막 난 갈치가 봉투에 담겼다. 엄마의 생선 갈치가 먹고 싶었다. 미각은 그리움의 상징일까. 이 맑은 날 하필이면 왜 엄마의 생선이 그리운 건지. 슈퍼에도 들렀다. 꽁치 통조림을 찾는데 애완동물용 캔이 보였다. 댄스가 떠올랐다. 녀석, 이런 걸 한번이라도 먹어봤을까. 그런데 흰둥이, 백구, 황구, 쫑. 녀석들이 모두 눈에 밟혔다. 간식을 있는 대로 바구니에 담았다.

  “개 통조림인데.”

  계산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사람 먹는 거랑 헷갈릴까봐서요, 하며 영수증 내주었다. 이상하게 누군가와 같이 먹을 음식을 샀다는 게 뿌듯했다. 빨리 녀석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급해졌다. 가속 페달을 밟았다. 12년산 포터는 주인이 바뀐 걸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산길을 기어올랐다. 산 중턱을 오르는데 저만치 댄스가 보였다.

  “댄스!”

  녀석을 크게 부르자 차를 뒤따라왔다. 창문을 열고 원 없이 불러보았다. 울타리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양새가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다. 차를 세운 뒤 사료를 듬뿍 펐다. 통조림과 육포를 섞은 바가지를 들고 녀석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제는 갈대밭까지 나가지 않아도 내 앞에 성큼 와 있었다. 간식 때문인지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육포 한 조각을 집어먹더니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녀석을 시작으로 개들이 땅을 긁고 난리를 쳤다. 정신없이 사료를 퍼서 통조림을 부었다.

  “흰둥이, 백구, 황구, 쫑.”

  녀석들이 다가왔다. 밥그릇을 내려놓자 모두들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만나지 못한 녀석들이 떠올랐다. 도베르만 같이 코를 벌름거리던 시커먼 놈, 셰퍼드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다니던 녀석. 놈들의 살벌한 눈빛이 떠올랐다. 녀석들이 편하게 밥을 먹어본 적이 있을까. 매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할 텐데. 한번이라도 마음 놓고 먹게 해준다면...... 그러면 놈들의 눈빛도 언젠가 풀릴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창고에서 뒹구는 고무대야에 사료를 부었다. 가지고 온 간식도 섞었다. 농장 밖을 나와 녀석들이 자주 보이던 언덕에 대야를 놓아두었다. 다 비우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먹기를 바랐다. 밤은 빨리 찾아왔다. 배부른 짐승들도 한가했고, 나도 간만에 갈치를 구워 폭식을 했다. 여유가 생긴 탓일까. 처음 왔을 때의 봄이 떠올랐다. 문득 비가 내릴 때면 그래도 습기는 견딜 만했지만 비가 내리는 소리는 손끝을 후벼 파는 힘이 있었다. 무서운 건 참을 만했지만 외로운 건 몹시도 견디기 힘들었던 것처럼. 산자락에 뻗은 나무들이 바람에 우우 울어대기라도 하면 상처보다 깊은 통증이 수반되었다. 그럴 때면 혼자 입술을 모아보았다. 스스로 이름을 거는 건 무슨 까닭일까. 거미는 제 목에 줄을 걸지 않는데. 나는 왜 내 목에 줄을 걸려고 하는 걸까.

  햇볕이 방을 밝혔다. 이렇게 평화롭게 깨어나 본 게 얼마만인지. 밖으로 나와 대야를 놔두었던 곳으로 향했다. 밥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희망이 보였다. 녀석들이 올 거라는 확신에 창고로 갔다. 또 사료를 주어볼 참이었다. 핸드폰이 떨렸다. 나는 이 산중에서도 진동모드로 해두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살면서 늘 어딘가에 숨거나 드러나지 않으려했던 습관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넌 왜 전화를 안 받냐? 숨 넘어 가겄네.”

  박 노인이었다.

  “아무 탈 없냐?”

  결과가 좋은지 기분이 떠 있었다. 이대로 일 년만 더 가면 완치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간밤에 뭔가를 결심한 모양이었다. 날씨는 더없이 쾌청했고 구름도 한 점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내 머리 속에 구름을 덩어리째 몰아넣고 있었다.

  “이제 정리할란다. 각시 하나 얻어서 편하게 살 생각이여. 고놈들은 모두 업자 불러 보내야 서겄어야.”

  모두 보신탕집으로 보내겠다는 말로 들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흰둥이, 백구, 황구, 쫑. 대충 지은 이름들이 아른거렸다. 미친 노인네. 저러니 암에 걸리지. 저밖에 모르니까. 암이 재발해서 콱 뒈져버렸으면 싶었다. 나도 모르게 악담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입을 틀어막았다. 개들이 짖었다. 밥시간이었다. 놈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니 숨이 막혔다. 어차피 도축될 터였다. 이래 죽어나 저래 죽어나 마찬가지였다. 평소보다 밥을 두 배로 펐다. 배불리 먹은 녀석들은 기분 좋게 꼬리를 흔들며 머리를 내 다리에 문질렀다. 여기 온 지도 얼추 열 달이 다 돼가니 모두 식구가 되었다. 댄스까지.

  “컹- 컹-.”

  바람 소리만 무성한 산중의 밤이었다. 간간이 동물의 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을 떴지만 사위에 갇혀 천지분간이 안 되었다. 하지만 반복해서 들려오는 그것이 개의 울음소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놈들이다. 배고픈 놈들이 주린 배를 채우려고 또 내려온 것이리라. 그런데 오늘 사료를 충분히 놓아주지 않았는가. 놈들이 기어이 염소들을 물어뜯으며 총구에 맞아 죽는 운명을 선택하려는 것이라면. 몸서리가 쳐졌다.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하지만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랜턴을 들고 창고로 향했다. 엽총을 쥐고서 어둠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이가 갈리도록 깜깜한 어둠만이 온몸을 감싸고 돌았다. 엄마가 죽고 그 누구도 없는 방에서 혼자 떨었던 시간처럼 내겐 아무도 없었다. 철저한 방치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 어떤 때는 외로움보다 이죽거림이 나을 때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더 뚜렷해지는 건 내가 세상으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 살의에 가까운 어둠이 몹시도 두려워졌다. 고독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도 회사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왔었다. 서울 원룸의 중개인도 보증금이 끝날 때까지 방을 빼지 않으면 짐을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이 짐승들마저 모두 업자들에게 넘겨진다면 굳이 내가 여기에 머물 필요도 없지 않은가. 가뜩이나 박 노인이 새살림을 차린다면.

  “우우”

  갈바람이 잉잉대며 귓가를 울렸다. 내가 떠나기 전에 이놈들에게 해 줄 일이 무엇일까. 한참을 서성이는데 숲속에 푸른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댄스, 댄스.”

  점점 푸른빛이 다가왔다. 랜턴을 땅으로 비췄다. 녀석이 걸음을 멈췄다. 그래, 좀 더. 댄스가 숲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을 불렀다. 역시나 거리 좁히기는 쉽지 않았다. 창고에 쌓아둔 마대자루를 한아름 안고 갈대숲에 깔아 주었다. 겨우내 축사를 덮을 부직포까지 둥글게 둘러쳤다. 이정도면 댄스도 무사히 겨울을 날것이다.

  “가!”

  이번에는 녀석들 차례였다. 울타리를 열었다. 떠나게 해야 했다. 개들은 주춤했다. 몇 번 더 윽박지르자 뛰쳐나갔다. 놈들을 살렸다는 것에 한숨 놓였지만 스스로 일을 늘린 꼴이었다. 박 노인이 돌아올 때까지 홀로 이곳을 지켜야 했다. 총을 걸치고 울타리 주변을 맴돌았다.

  “우우!”

  자작나무 숲 쪽이었다. 녀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괜스레 불안해져 녀석들이 떠난 방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혹시나 아직 근처에 남아있을까 싶어 랜턴을 비추었다. 갈대가 사각거리는 소리만 소름끼칠 정도로 귓가를 훑고 지나갔다. 총을 움켜쥐었다. 스쳐 지나가는 소리로만 여겼던 것들이 지금은 축사를 덮치려하는 포식자의 움직임처럼 꺼림직 했다.

  쫑이 한 쪽 다리를 절며 농장으로 돌아왔다.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제 몸 가누기 힘들어 보이는데 나를 보자 꼬리를 흔들었다. 나머지 세 마리는 없었다. 총을 챙겨 뛰쳐나왔다. 피가 갈대숲에서 점점이 이어졌다. 갈대를 헤집으며 나아가는데 도중에 끊겨버렸다. 녀석들이 갔을 법한 곳을 계속 떠올렸다. 개울 쪽? 아니면 읍내로 나가는 언덕? 그곳에도 흔적은 없었다. 마지막은 자작나무 산이었다. 입구에 핏자국이 흩어져있었다.

  “우우!”

  산 안쪽이었다. 그것 말고도 개들끼리 싸우는, 신음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산을 올랐다. 총이 나무에 걸려 몇 번이나 넘어졌다. 무릎이 까졌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야유 같은 이름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바람소리인지 개들의 것인지 헷갈렸다. 침입자를 ㅤㅉㅗㅈ아내려는 듯 계속 내 귀를 윽박질렀다. 틀어막고 소리가 그치길 기다렸다. 원하지 않은 이름인데 자꾸만 불러재꼈다. 이름은 누군가가 불러줬을 때 제 값을 하는 거라던 무당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내 이름엔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 아니, 가치를 따지기보단 남들처럼 평범하게 불리길 원했다. 그게 뜻대로 안 돼서 떠났는데. 역술가는 무엇을 보고 귀한 이름이라고 한 건지. 소리가 잦아들었다. 녀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유롭게 해주려고 한 것뿐인데. 돌이켜보니 살아가는 법, 나갈 준비도 안 된 녀석들을 죽으라고 등을 떠 민 꼴이었다. 차라리 박 노인과 맞섰더라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총을 질질 끌며 농장으로 향했다. 언제 왔는지 박 노인이 쫑의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야. 너 꼴이 왜 그러냐?”

  주저앉아 먼 산만 바라보았다. 박 노인이 헛웃음을 쳤다.

  “저놈들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뭔 일 있었냐?”

  저놈들 이란 말에 반응했다. 농장 한 쪽에 백구, 흰둥이, 황구가 사료그릇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박 노인은 쫑의 그릇에 사료를 퍼주고 나머지 세 마리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녀석들의 털에 흙과 피가 엉켜있었다. 계속 다친 곳을 핥아댔다. 오면 다 죽이겠다던 박 노인은 녀석들에게 붕대를 감았다. 무슨 바람이 분걸까.

  “그래도 산 것들인데 치료는 해줘야 하지 않겠냐.”

  말문이 막혔다. 누구 때문에 이런 소동을 벌였는데. 따질 힘도 없었다. 박 노인은 계속 이유를 물었다. 죽이려 해서 풀어줬다고 대답하자 그는 입을 우물거렸다.

  “내가 죽다 살아났는데. 이것들을 어떻게 죽여?”

 업자를 부르겠다는 것 때문에 벌인 일들이 떠올랐다. 개들을 풀어주고 녀석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녀석들은 제 발로 농장에 돌아왔다. 이름으로 불렸기 때문에 돌아갈 방향을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이러니했다. 짐승도 제 갈 곳을 아는데, 나는 녀석들을 이름으로 불러 모아주었는데. 왜 나는 떠다니는 걸까. 들개들도 불러줄 이가 없으니 떠돌 수밖에 없으리라. 쫓아내기보다 일찌감치 밥을 주었더라면 댄스처럼 가까이 와줬을 것이다. 창고에서 사료포대를 꺼냈다. 고무대야에 쏟아 붓고 수레에 실었다. 갈대밭을 가로지르는데 댄스가 보였다. 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머리만 내밀었다. 그동안 잘 왔었는데 무슨 일일까.

  “뭐하는 겨! 사료 값이 한두 푼 인줄 알아?”

  돌아보니 박 노인이 따라왔다. 하지만 앙칼지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예에 하면서 돌아갔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제 월급에서 까세요.”

  언덕에 고무대야를 내려놓았다. 몇 번만 더 준다면 더 이상 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니, 놈들을 방목해서 키운다면 그들이 오히려 농장을 지켜줄지 몰랐다. 내일 시장에 가서 사료를 몇 포대를 살지 고민할 때 박 노인이 불렀다.

  “너, 정리 안하고 왔지?”

  그는 내가 두고 간 핸드폰을 건넸다. 받지 못한 통화내역이 줄줄이 찍혀있었다.

  “같이 놀아줄 놈 좀 구해주라니깐. 여긴 왜 왔어.”

  “......”

  “저놈들 내가 잡아 먹을깨벼?”

  “재혼하신다면서요?”

  박 노인이 허공에 대고 웃었다.

  “내 참 이 산중에 올 여자가 있으면 진즉에 데불고 살았겄지.....”

  우우. 한 밤중에 바람이 소리를 몰고 왔다. 섬뜩하지도, 소름이 돋지도 않았다. 소설 속에서 봤던 밤처럼 별만 한가득 펼쳐졌다. 잠드는 것도 모른 채 한 없이 별을 헤아렸다. 간간이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숲 속에는 푸른 눈이 낮게 엎드려 있었다. 댄스. 녀석은 왜 거리조정을 해오지 않는 걸까. 밤하늘의 별들이 무수히 발자국을 찍어대는 겨울 초입. 벚꽃 잎이 사정없이 나부끼는 풍경이 겹쳐보였다. 언제까지나 담아두고 싶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소리는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앙상해진 가지는 더는 울어주지 않았다. 지난봄을 흔들던 이파리들은 모두 떠나고 없는데. 이 기억은 언젠가 추억이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핏 흰 눈이, 눈발이 흩날리는가 싶었다. 갈대숲 사이로 푸른 눈빛들이 점점이 낮게 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별 하나, 별 둘…….


 

  <당선소감>

 

   “두고두고 지치지 않는 소설가가 되겠습니다”

  나는 늘 햇볕이 나기를 기다렸다. 비오는 날이면 할머니 댁에서 엄마를 기다렸던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는 기억이 싫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우기와 축축함을 피해 다녔다. 그러나 장독 뒤에도, 뒷마당에도 짙은 먼지의 냄새가 배여 있었다. 내 뒤에는 배후처럼 젖은 기억들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햇볕이 나면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늘 기다렸던 햇볕이 나타나길 바라면서도 내 속의 생각들이 마르고 뒤틀릴까봐, 나는 또 햇볕을 피하고 있었다. 

 참 소중한 인연이었다. 남산도서관의 예비작가반에서 이수정 교수님을 처음 만났다. 글쓰기를 몰랐던 나에게 소설이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것이 내 문학의 출발점이었다. 세상에다 나는 무슨 질문을 하고 싶은 걸까. 사람들은 이 세상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러한 물음은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하는 질문과 맞물렸다. 아마도 그때부터가 나의 목소리와 마주한 시간이 아닐까 싶었다. 처음 소설을 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 질문을 하고 있다. 춥고 어둡고 보이지 않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참 많은 답변을 돌려주고 싶다. 어떤 영화에서는 가난이 냄새로 왔다고 하는데 나는 어떤 감각을 보여주고 싶을까. 

 문학이라는 거대한 산에 발을 들여놓았다. 신발 끈을 조여매고 걸을 것이다. 소설의 문턱에서 서성이다 지칠 때마다 마음과 문학의 문을 열어주시는 이수정 교수님과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그리고 문창과 4년 내내 이끌어주신 송준호 교수님. 내 문학의 터전이 되어준 전북도민일보와 심사위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두고두고 지치지 않는 소설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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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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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는다는 건 그 시대의 실상을 들여다보기에 더없이 좋은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소설은 최초의 발화지점인 화소(motif)가 모여 문장을 형성하고, 이러한 모티브(motive)들은 작은 사건이 운집하거나 와해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편의 소설이야기로 진행되어진다. 작가가 포착한 지점의 소설 속 개인사는 사회적 체험으로 나아가게 하는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 내기도 하며, 그 사회를 가늠할 보편적 시선을 견지하기도 한다.

  특히 일관성 있게 주제를 향하여 도약하는 소설의 미학을 담보할 때 독자는 비로소 그 환기력 앞에서 침묵하고야 마는 것이다. 소설이란 그렇게 강요되는 침묵이 있을 때 울림통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소설의 도정은 플롯이라는 구조로 직조되기도 하지만 오랜 기간 창작에 매진한 작가 의지의 결과물이기에 심사자는 그러한 작가의 발견을 기대하게 된다.

  2021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응모작품은 전년에 비해 월등한 수량이었다. 신춘문예에 대한 관심의 폭이 넓어진 것이라 생각되면서도, 사회가 정태 되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노파심마저 들었다. 마지막까지 손에 남은 작품은 <타인의 반경>, <데칼코마니>, <우우의 실종> 세편이었다. 그 중, 단 한편을 뽑아내기 위하여 정독과 반복의 진자운동(振子運動)을 했다.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 전달력, 단편소설로서의 미학, 플롯과 구조, 화폭의 구성을 분석하기에 좋은 작품은 <타인의 반경>이었다. 코로나19 와 현실사회의 이면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표현과 어법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사건의 전개가 미약하여 주제로의 도약에 미진하였다.

  프랑스 초현실주의 회화 기법의 하나인, <데칼코마니/decalcomanie>의 미학적 뜻은 아트지나 켄트지 등 매끄럽고 흡수성이 적은 종이 위에 물감을 두껍게 칠한 후 반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덮어 찍어 대칭적인 무늬를 만들거나 마주보게 접은 도화지를 펼쳤을 때 얻을 수 있는 칼라의 다양성과 우연성의 미적효과를 도출해내는 회화기법으로 이를 통하여 작가는 무엇을 드러내고 하는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러나 서사적 내러티브(narrative)의 전개과정이 명재가 말하는 데칼코마니적 테마와 서사의 흐름, 데칼코마니적 회화기법에 미치지 못하는, 다소 미술의 회화어법(會畵語法) 나열로 오히려 주테마의 관심을 이탈되게 하는 작용을 가져왔다. 즉 주제로의 도약에 저해 요인으로 작용함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위험한 명제였다.

  끝으로 <우우의 실종>이 남았다. 처음부터 감각적 문장으로 끌고 가는 소설의 톤과 흡입력이 매우 견고 했다. 지평의 소실점을 멀리 두고 사건의 흐름을 포착하게 만드는 적절한 직접화법과 이중의 플롯이 주는 안정감이 소설의 몰입에 큰 장점이었다. 뭣보다, 실종이라는 개인의 실존을 통하여 자기 부정과 도피로 이어지는 전개과정이 지금 시대의 대표 단수모습으로 익히게 하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그러한 모든 운명에 기인하는 이름,‘우우’는 위트가 있으면서도 해학적이며 독자로 하여금 기꺼이 돌아보게 하는 환기력을 형성하였다. 단편의 미학은 단순하게 짧음에 있지 않음이다. 그 사회의 단면을 포착해내는 작가의 예리한 시선이 있을 때 가능하다. 모쪼록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댄스라는 개와 어우러지는 주인공의 정체성 회복기가 파토스(pathos)를 이루며 자작나무 숲과 함께 병치되어 이미지로 환기된다.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작가이다.

심사위원 : 김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