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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코타이 순환선 / 이언주

 

  공항 터미널 시계탑 바늘이 3시 45분을 지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승합차를 운전하는 폴이 주차장 쪽에서 걸어왔다. 손에는 무릎담요가 들려있었다.

  “추워요. 이거.”

  폴이 담요를 건네주었다. 담배를 피던 나는 그를 향해 담뱃갑을 내밀었다. 들쭉날쭉 밀려 나온 담배 한 개비를 빼내 폴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켜서 건네자 그는 손바닥으로 바람을 가리며 얼굴을 가까이 댔다. 이마에서 떨어지는 콧날과 날렵한 턱선이 불빛에 드러났다. 한국인이라도 외국에서 자라면 저렇게 되나 보다, 라고 잠시 생각했다.

  “남미서 왔다면서요?”

  “과테말라요.”

  “마카오에 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폴은 잠시 눈을 끔뻑거렸다. 머릿속으로 날짜를 세는 표정이 소년 같았다. 그을린 얼굴에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목 아래 피부가 유난히 하얗게 드러났다.

  “외국어는 잘하겠네?”

  어깨를 한번 들썩한 그는 스페인어 말고 0.5개 국어 셋이라고 대답했다.

  0.5개? 재미있다는 듯이 내가 되물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생존 언어죠.”

  나는 사람이 외국에 오래 살다 보면 우리말이 ‘반개'로 표현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는 다섯 살에 부모를 따라 아르헨티나로 이민 갔다. 지금은 가족이 과테말라에 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빼서 청사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전광판에는 여전히 연착이라는 한자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여긴 내가 있을 테니 송하는 차에 가서 한숨 자요.”

  폴이 대놓고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당황한 듯 귓바퀴가 붉어졌다. 애는 착한데 한국말이 서투르다는 게스트하우스 박 사장의 말이 생각났다. 누나라는 말을 알려주려다가 그가 몇 살인지 물었다.

  “투 사우전드 4월요.”

  2000년생.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 태어났다는 말이다.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어떻게 지구 반 바퀴를 날아올 생각을 했을까. 어쩐지 눈을 보면 그 뒤편까지 뭔가 훤히 보일 듯 앳돼 보이기는 했다. 그런 그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었다. 눈길이 마주치면 당황한 폴이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홍콩은 좋죠?”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폴이 말을 걸어왔다.

  “뭐가요?”

  홍콩을 거들먹거리는 순간 나는 기대가 푹 꺼지고 말았다. 더 말하지 않아도 그가 어떤 사람일지 알 것 같았다. 마카오도 그렇지만 홍콩은 낮보다는 밤이 화려한 도시다. 그동안 동양이라는 단어와 호기심으로 집을 떠나온 치기 어린 유랑자를 여럿 보았다. 게다가 밤늦은 시간 슬롯머신 앞에 앉아 있던 그의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왜요?”

  “잘 아는 사람과 닮았어요.”

  속셈이 들여다보여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오후에 게스트하우스 사무실에 들렀다가 그의 숙소를 우연히 들여다보았다. 사무실과 연결된 작은 방에는 야전 침대와 륙색 하나가 전부였다. 침대 머리맡에 걸린 보첼리의 패널이 생뚱맞아 보였다. 자기 말을 받아준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티엠아이에 가까운 이야기를 거침없이 늘어놓았다.

  “그런데 마카오는 어떻게?”

  “베네치안 곤돌라 뱃사공 구인 광고를 보고 왔어요. 성악 전공자를 뽑는다기에…….”

  와서 보니 현지인만 뽑더라고 그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거나 운전을 하기는 하네.”

  무심코 뱉은 말이었지만, 그건 아니다 싶어 그의 표정을 살폈다. 폴은 개의치 않는 얼굴로 언젠가는 진짜 베네치아로 갈 거라고 했다. 공항 격납고 너머로 코타이 시내가 안개에 싸여 희붐한 돔처럼 보였다. 나는 흡연구역 유리벽에 얼굴을 붙이고 다시 청사 안을 살폈다. 새벽에 도착하는 비행기 착륙 시간이 자꾸만 뒤로 밀렸다. 제자리 뛰기를 하던 폴이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잔기침을 했다. 반바지 차림이 추워 보여 나는 그에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새벽이 다가오자 해무가 바다 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마카오 상공을 배회하던 비행기가 속속 착륙했다. 전광판 메시지가 일제히 도착으로 바뀌었다. 입국 절차를 마친 사람들이 나오기까지 삼십 분은 더 기다려야 했다. 나는 잠시 화장실을 들러 어깨에 둘렀던 담요를 갰다. 의외로 담요는 얇아도 따뜻했다. 손을 씻으며 세면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당황하던 폴의 표정이 떠올라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거울에 비친 처진 눈꼬리가 오늘따라 신경 쓰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 주변을 지그시 누르며 당겨 올렸다.

*

  게스트하우스에서 카지노까지 운행하는 코타이 순환선은 오전 열 시와 오후 한 시, 하루에 두 번 있었다. 토요일 새벽 저가 항공으로 도착하는 사람 대부분 관광보다는 카지노에 관심이 많았다. 숙소에 짐을 푼 관광객들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바로 오락장으로 갔다. 사오십 대가 대부분인 손님들은 도착하면서부터 들떠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어떤 농담도 시니컬하게 받아넘겼다. 숙소를 출발해서 코타이 호텔 오락장까지 가는 이십여 분 동안 마카오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 광고 계약을 따면서 마카오와 인연을 맺었었다. 코타이 오락장 2기 개장에 맞추어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하는 샌디 박의 광고를 맡으면서다. 홍콩에서 나는 교민 잡지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고, ¨굿모닝 홍콩〃은 그런 잡지 가운데서도 발행 부수가 많은 편이었다. 계약을 마친 다음 박 사장은 내게 특별히 소개할 곳이 있다고 했다. 페리 터미널에서 차로 10여 분 떨어진 큰 호텔이었다.

  “대단하지 않아요?”

  샌디 박은 마치 그곳이 자기 호텔이나 되는 것처럼 내부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샹들리에와 대리석 기둥으로 이어진 통로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펼쳐져 있었다. 아케이드를 가로지르는 수로와 중세 유럽풍의 아파트가 건물 안에 들어와 있었다. 마주 보고 있는 집들의 발코니에는 활짝 핀 베고니아 화분이 놓여 있고, 수로를 따라 흔들리는 곤돌라에서 사공들이 노래를 불렀다. 어스름한 하늘빛의 돔 천장엔 흰 구름이 둥둥 떠다녔다. 두리번거리며 샌디 박을 따라 가드를 통과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실내라기엔 믿을 수 없는 규모의 오락장이었다.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었다. 그들 뒤에서 나도 까치발을 들고 구경했다. 샌디 박이 칩을 한 줌 쥐고 왔다. 비어있는 자리로 가서 게임 몇 가지를 소개했다. 게임은 뜻밖에 간단했다. 가지고 있던 코인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잃은 액수가 얼마인지 몰랐기 때문에 경험 정도로만 생각했다. 장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여기저기서 희비가 교차하는 한국말이 귀에 박혔다. 샌디 박은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건물 객실이 삼천 실이나 되죠. 모두 스위트룸이에요. 오늘은 금요일이니 하룻밤에 팔십 만원이 넘을 겁니다. 여기 한국말이 날아와 귀에 꽂히죠? 다, 내 손님이란 말입니다.”

  샌디 박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였다. 욕망과 행운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람을 이상하게 잡아끄는 말을 광고문구로 찾아달라고 했다. ‘내 집 같은 편안함', 나로서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단어였다.

  내 집처럼 편하다고? 집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구멍 난 것처럼 허전하고 씁쓸했다. 대학에 들어가던 해 부모가 이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 재혼했다. 그래도 엄마는 가끔 나를 찾았고 일 년에 며칠은 자고 갔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아예 짐을 싸 들고 좁은 내 원룸으로 들어왔다.

  나는 홍콩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휴식과 위안이라는 단어를 두고 마라톤 회의를 하며 머리를 짜냈다. 그러니까 어쨌든 마감은 시간이 해결하는 것이다. 마카오 게스트하우스 광고는 성공적이었다. 한인 민박과 식당, 슈퍼광고까지 일거리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지면을 늘리고 전쟁하듯이 발행 부수를 늘렸다. 월말이 되면 영혼이 털리고 껍질만 남는 기분이었다. 성공의 끝에는 경제적인 여유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허했다. 벽과 벽 사이 좁은 공간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 소음만 가득 찼다. 위층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 뭔가를 떨어뜨리는 소리, 옆집 TV 소리. 전부 살아있는 소리였다. 허기가 밀려왔다. 나는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하나 남은 옥수수 통조림을 꺼내 원터치 뚜껑의 고리를 잡아당겼다. 맥없이 고리가 뜯겨나갔다. 주위를 둘러봐도 캔을 딸 만한 게 없었다. 나는 냉장고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냉장고 우는 소리가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집안이 답답해서 밖으로 나갔다. 침사추이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본토에서 온 중국인들이 깃발을 들고 몰려다녔다. 그들의 표정에는 기대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하버 시티를 어정거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너는 무슨 애가 그러냐?”

  엄마는 돈을 보내라는 말을 그런 식으로 했다. 안부 한마디 없이 언제나 본인이 하고픈 말만 전달했다. 나는 휴대폰을 멀찍이 들었다. 자기 가족을 완전하게 이해하면, 우주를 다 알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는 말이 떠올랐다. 가족이라면, 한 번쯤은 서로 기댈 구석도 내줘야 공평한 거 아닌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남의 인생에 깜빡이도 켜지 않고 매번 이렇게 들이대는지. 자식이 뭔 소용이고……, 소용이라는 말이 귓속에 소용돌이쳤다. 걷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보니 페리 터미널이었다. 나는 마카오행 여객선에 올랐다.

  카지노에서 처음 지폐를 바꾸었을 때는 조금 두려웠다. 오백 홍콩 달러로 가장 많이 바꿀 수 있는 코인은 5개였다. 어떤 경우라도 코인을 열 개 이상 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규칙을 알아가며 구경하는 것도 재미였다. 돌아올 때 현금으로 바꿀 칩이 많으면 기분이 좋았고, 잃어버린 날은 앞으로 그만 올 것이라고 맹세했다. 그러다가도 주말이 되면 어느새 나는 마카오행 배에 오르고 있었다. 배를 타면 바다 냄새부터가 달랐다. 찌든 세포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헤엄쳐 바다를 건너라고 해도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 오락장을 들어서면 몸이 뜨거워졌다. 콜을 받을 때마다 심장이 쫀쫀해지는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테이블을 돌며 구경하는 데만도 몇 시간은 금방 지났다.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신앙에 관해 묻는다면, 아마도 한목소리로 “코인”을 외칠 것이다. 물론 나는 무신론자다. 하지만 모든 신에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승률이 높은 테이블을 찾아다녔다.

  확률 게임은 오십 대 오십이다. 크거나 작거나, 홀이거나 짝이다. No more bet! 딜러가 콜을 외치는 순간 숨이 딱 멎는다. 이기거나 지거나. 등줄기를 따라 오르는 전율이 정수리를 후려친다. 마흔도 더 돼 보이는 딜러는 아무렇지 않게 하품하면서 바닥에 놓인 코인을 거두어들인다. 남은 코인은 위치에 따라 배수로 포개 승자가 누구인지 확인한다. 딜러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하지만 딜러와 마주한 사람들의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무료로 배포되는 교민 잡지는 광고가 주된 수입원이었다. 굿모닝 여사장이 카지노에 빠졌다는 소문이 업계에 나돌았다. 창업 초기부터 편집하던 궉이 조심하라고 했다. 언제부턴지 신간을 배포하러 나가면 지난 호가 그대로 쌓여있었다. 잡지를 진열하는데 현지인 종업원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배포하는 숫자와 회수되는 양이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잡지사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오프라인만 믿고 온라인 플랫폼 개발을 미룬 것도 한몫했다.

  그즈음 샌디 박에게서 연락이 왔다. 잡지사 사정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은 듯했다.

  “채 사장, 사람이 좀 필요해요. 이게 다 당신 덕이니 책임져야지 않겠어?”

  그는 어디서라도 나를 채 사장이라고 깍듯하게 불렀다. 사업 파트너라는 의미였다. 나는 카지노를 찾는 게스트하우스 주말 손님을 안내하는 일을 맡았다. 약간의 수고비와 환전을 해주고 얻는 수입은 아르바이트치고는 꽤 짭짤했다. 잭팟이 터지거나 환전 단위가 커지면 샌디 박과 연결했다. 카지노 고리대금업이 그의 주된 사업이기도 했다.

*

  비행기 연착으로 오전 순환선을 타러 나온 손님이 없었다. 로비에서 기다리던 폴이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했다. 승합차는 평소대로 게스트하우스를 출발했다. 나는 마이크를 잡지 않고, 느긋하게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노란색의 성당이 스쳐 지나갔다. 마카오의 건물은 사각의 녹색 덧창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유럽의 어느 도시를 연상케 했다. 흰색 테두리 장식에 햇빛이 비쳐 더 바래 보였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부분은 노란빛이 두드러졌다. 십여 세기에 걸쳐 바람을 타고 온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흔적이다. 차와 도자기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해상 실크로드 계절풍을 타고 위험한 항해에 나섰다.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그들은 이곳에 성당을 세웠다. 한순간 빈털터리가 되는 위험은 어디든 도사리고 있었다. 우중충한 무채색 아파트가 이어지고 좁은 골목에서 런닝 차림의 노인이 대야로 물을 뿌리고 들어갔다. 용수나무 뿌리가 벽면을 휘두르고 있는 주택가를 벗어나 간척지를 지나갔다. 습관적으로 손톱 끝을 만지다가 큐빅 하나가 빠진 것을 알았다. 주말이 지나면 네일숍부터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신호등 앞에서 차가 잠시 멈추었다.

  “미친 거 같지 않아요?”

  폴이 운전대 앞으로 몸을 쭉 빼면서 말했다.

  “뭐가요?”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쳐다보았다.

  “저 모래성 말이에요. 밤새 들썩거리다 아침이 되면 조용히 가라앉는다는 게.”

  듣고 보니 모래성이라는 말이 그럴듯했다. 차가 정차해 있는 동안 폴은 유리창에 워셔액을 분사하고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시야가 환해지면서 오전의 코타이 전경이 더욱더 선명해졌다. 코타이는 타이파와 콜로안 섬 사이의 바다를 매립하고 그 위에 세운 도시다. 섬들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저녁이 되면 화려한 불빛이 살아나 사막 한가운데 우뚝 서고 라스베이거스 신기루가 위용을 드러낸다. 불야성을 이루는 불빛과 다양한 인종이 하나가 되는 세상. 축제와 향락에 젖은 도시, 북적이는 골목마다 꿈의 파편이 흩어져 있다.

  나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호텔 정차장마다 순환선에서 내리는 관광객으로 붐볐다. 승합차가 갤럭시 호텔을 돌아 좌회전하면서 코타이를 벗어났다. 곧이어 해안도로가 나타났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폴이 문을 열고 운전석에서 뛰어내렸다. 우리는 둔치로 올라 제방을 따라 걸었다. 풀 섶에서 말리꽃 향기가 났다. 아침 햇살에 물결이 반짝였다.

  “이런 데가 있는지도 몰랐네!”

  막혔던 숨이 탁 트이는 것만 같았다. 자동차 소음과 관광객을 인솔하는 확성기 소리가 바람을 타고 왔다. 코타이에서 한 블록을 건너왔을 뿐인데, 멀리 여행을 온 느낌이었다. 잔잔한 수면 위로 흐르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이자 새소리가 났다.

  “가끔 와서 멍때리기 좋아요.” 폴이 말했다.

  강 너머로 신도시가 건설되고 있었다. 강폭은 그다지 넓지 않았고, 다만 이쪽과 저쪽 경계를 따라 겹겹이 둘러쳐진 철조망이 의아했다. 우리는 말없이 각자의 보폭으로 제방을 걸었다.

  “바다를 건너면 저기부터가 중국이에요.”

  걸음을 멈춘 폴이 멍하니 그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늘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얼굴에 그 나이가 가지는 절망과 우울이 그림자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거리를 두고 서서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검색해 보았다. 눈 앞에 펼쳐진 곳이 바다라는데,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도에 선명한 국경이 그려져 있었다. 코타이 관광 지구와 마주한 곳에 중국 경제특구를 건설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그때 갑자기 폴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열 걸음쯤 가다 돌아선 그는 무대에 선 사람처럼 한 손을 앞으로 뻗고는 비스듬히 돌아섰다. 그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였다. 나는 소름이 돋아 올라 손바닥으로 팔을 쓸어내렸다. 노래를 마친 폴이 쑥스러운 듯 긴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 올렸다.

  “브라보.”

  내가 두 손을 치켜들어 엄지를 내밀었다. 해사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노래한 지는 얼마나 됐어요?”

  “언제라기 좀 그래요.”

  “음악학교 나왔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요. 하지만 우리 동네에 있는 레코드 가게가 학교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죠. 빈 테이프를 가지고 가면 어떤 노래든 복사해 주었거든요. 학교보다는 테이프로 유명한 목소리를 따라 불렀죠.”

  성악을 전공했다더니. 어린 녀석의 수작이 정도를 넘어 불쾌해졌다. 그렇다고 내색하기도 그렇고, 나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관심 두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거 알아요?”

  “응?”

  가까운 벤치에 앉으며 나는 가지고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우리 엄마 노래예요.”

  나는 현타가 왔다며 소리 내 웃고 말았다. 어이가 없었다. 그때 폴이 눈썹을 긁으며 현타가 무슨 뜻인지 물었다.

  현실 자각 타임! 하고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당황한 폴이 얼굴을 붉혔다.

  “사장님이 이름 부르는 거 아니랬어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말에 날이 섰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가 중얼거렸다.

  “엄마 냄새가 느껴지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요.”

  짧은 침묵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잠시지만 엄마 냄새라는 말에 찬물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가슴이 서서히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그가 휴대폰에서 찾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선글라스를 벗어 머리 위로 올리는 자세를 한 갓 서른을 넘긴 여자였다.

  “어느 날 가족의 공장에서 폭동이 일어났어요. 다 털렸어요. 재단 기계나 재봉틀, 원단 쪼가리 하나 남기지 않고 다 쓸어갔죠. 엄마는 몸으로 막다가 쓰러졌는데…….”
 
  폴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외국인이었고 이민자가 보호받을 곳은 아무 데도 없었어요. 그때부터 떠돌며 살았어요. 처음엔 부에노스아이레스 변두리로 집을 옮기고, 아르헨티나에서 살기 어려워 멕시코에서 과테말라로 갔고요. 집에 총을 든 강도가 들어온 적도 있어요. 안 믿어지죠? 엘레마떼가 마지막으로 간 곳이에요. 다행스러운 건, 형이 거기서 성공했어요. 음악학교도 그래서 갔고. 거기서는 아시안이라면 모두 중국인인 줄 알아요. 웃기죠. BTS가 뜨기 전에는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다니까요. 인종 차별도 심해요. 중국인들과 어울리지도 못해요. 우리보다 먼저 자리 잡았거든요.”
 
  나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안쓰러운 마음이 일어났다. 카지노나 전전하는 철없는 방랑자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미안했다. 그 시절 지구 반대쪽에 살고 있던 우리 가족 역시 좌초하고 있었다. 엄마의 서점이 문을 닫았다. 뜬구름을 잡으러 다니는 아버지가 일을 시작할 때마다 서점의 규모를 줄였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었다. 부모는 별거를 시작했고, 가구에 붙어있던 붉은 딱지의 숫자가 내게는 절망을 객관적으로 계량한 수치였다.
 
  재혼에 실패한 엄마가 원룸으로 들어오면서 나는 혼자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름이 알려진 출판사에 들어갔다. 경력이 쌓이면서 홍콩에서 활동하던 한국 작가의 책 내는 일을 맡았다. 해외 출장을 갔고, 이방의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새로운 곳에 살아보고 싶은 충동이 가슴을 두드렸다. 두려움보다는 설렘으로 집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는 일이라 엄마와 아빠, 누구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벌써 칠 년이나 지난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말을 어쩌면 그렇게 잘해요?”
 
  “아빠가 한인 교회를 찾아다니며 교육 방송 프로그램을 복사해 날랐어요. 9학년 땐가 엇나간 적이 있었죠. 사춘기 애들이 흔히 하는 그런 거 있잖아요. 정말 아무것도 용서가 안 되더라고요. 내가 원해서 한국을 떠난 게 아니잖아요. 부모가 돼서 해준 게 뭐가 있냐고 대들었죠. 처음부터 싫었다고, 하필 이런 데로 와서, 이 지경이 돼서도 왜 돌아갈 수 없냐고. 그때의 아빠 표정을 어떻게 말할 수가 없어요. 이러다 맞겠구나, 차라리 죽도록 맞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아빠는 대답 대신 밖에 나가 돼지 뼈다귀를 사 왔어요. 온종일 주방에 붙어 서서 둥둥 떠다니는 기름을 걷어내고, 파를 썰고. 그런 모습이 더 미칠 거 같았죠. 방문을 걸어 잠그고 틀어박혔어요. 그러면 아빠가 또 상을 차려놓고 불러요. 밥 먹고 힘내서 화내라고. ……가족은 선택하는 게 아니잖아요.”
 
  나는 아주 먼 나라에서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남자 셋을 상상했다.
 
  “유튜브에서 파리넬리 동영상을 봤어요.”
 
  폴은 처음 보았을 때 감동이 떠올랐는지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았다.
 
  “노래를 시작하면서 세상이 달라졌어요.”
 
  나는 폴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더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자신을 터지지 않는 풍선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풍선에 투명한 테이프를 붙이면, 바늘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가 빼내도 터지지 않는다. 멀쩡해 보일 뿐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풍선은 서서히 쭈글쭈글해져 가는 것이다. 부모가 싸울 때마다 그 바늘구멍을 떠올렸고 몸을 채우고 있던 바람이 새 나가는 것을 느꼈다. 바늘의 실체에 대해서 따져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원인을 따지다 보면 더 불행해질 것만 같았다. 밥을 먹어야 힘이 나고, 힘내서 화를 내라는 폴의 아버지 말이 내 귓가에 둥둥 떠다녔다. 그런 가족이 있는 폴이 한없이 부러웠다. 나는 그런 폴에게 한국은 언제 다녀왔는지 물었다.
 
  “한국은 왜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한국에 가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왜 그런 걸 묻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아뇨.”
 
  폴의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 한국인이면서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폴의 머릿속에서 한국은 낯선 곳이었다. 몇 번이나 갱신한 녹색 여권이지만, 한국에서 찍은 스템프는 하나도 없었다. 앞으로 여정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말없이 우리는 행글라이더가 높이 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독수리가 활공하듯이 행글라이더가 허공을 날았다. 이쪽으로 날아오는가 싶더니 유유히 방향을 틀어 벌판을 향해 미끄러지듯 멀어져 갔다.
 
  “친구가 곧 중국으로 떠날 거래요.”
 
  “왜요?”
 
  “집에서 중고 휴대폰을 수리해서 판다나 봐요. 중국산이라 부품 구하는 일이 장난 아니에요. 그거 모르죠? 지구상에는 휴대폰을 만드는 나라가 몇 안 되는 거. 남미 쪽은 아직도 폴더 폰 많이 써요. 가족 중에 한 사람은 중국으로 가는 게 유리하거든요.”
 
  “친한 친군가 봐요?”
 
  폴은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막연한 이별 예감이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그는 나와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에 관해 너무 많은 사실을 알아버렸다. 폴이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오래 알아 온 사람처럼 서운해졌다. 나는 텀블러에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물기를 털었다. 커피 방울이 타블로의 로퍼에 튀었다. 허리를 굽혀 얼룩을 닦으려다가 복숭아뼈 한 뼘쯤 위에 새겨진 문신을 발견했다. 작은 나룻배에 April 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자 친구?”
 
  내가 그렇게 묻자 멋쩍은 표정으로 폴이 발목을 쓰윽 만졌다.
 
  “사람의 운명이 이름을 따라가기도 한다잖아요.”
 
  폴은 자신의 이름이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에게서 왔다고 했다.
 
  “4월에 태어나기도 했고, 이상하게 이사할 때마다 4월이었어요. 그게 몸에 붙었나 봐요. 웃기는 건 사월이 되면 가슴이 설레고 엉덩이가 들썩거려요. 어릴 땐 옮겨 다니는 게 정말 지긋지긋했는데.”
 
  그의 입으로 이방인의 사도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허전함이 밀려왔다. 그때 폴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를 귀에 댄 채 그가 먼저 제방의 경사면을 가로질러 내려갔다. 멀리 서 있는 버스가 정박한 잠수함처럼 보였다. 이번에는 내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전화할 일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높은 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손님이랑 대화하고 있다고 했다. 끊자마자 샌디 박의 전화가 연결됐다. 태풍이 온다고 했다.
 
  베트남 쪽으로 빠진다던 태풍은 일기예보와 다르게 중국 내륙으로 진로를 바꿨다. 바람은 불기 시작해야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알 수 있다. 나는 항공사마다 전화했고 비행기 좌석을 체크했다. 태풍의 영향권에 들기 전에 돌아갈 사람들을 보내야 했다. 오후 순환선을 타려던 사람들은 오자마자 돌아가야 한다고 툴툴거렸다. 손님 대부분은 일정을 변경했고 몇몇은 태풍이 지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밤늦도록 오락장에 머물렀다.
 
  나는 마지막 페리 시간에 맞추어 부두로 갔다. 온종일 운전대를 잡고 있던 폴의 얼굴도 지쳐 보였다. 페리 터미널에 도착해서 나는 그에게 수고했다는 짧은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걱정했던 대로 홍콩으로 떠나는 페리는 취소되고 없었다. 뱃길이 열릴 때까지 버티겠다는 듯이 사람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았다. 박스를 뜯어서 깔고 일찌감치 잠든 사람도 눈에 띄었다. 그들 사이에 무너지듯 나도 앉았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갈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기껏 벗어난 일터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형 카지노를 제외하면 문을 열어 둔 곳이 없었다. 나는 터미널 밖 흡연실로 나와 담배를 빼 물었다. 온종일 담배 한 대 피울 여유도 없었다. 넓은 벌판을 향해 노래하던 폴이 떠올랐다. 십 년 그리고 시간이 훌쩍 흘렀을 때 그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폴의 미래를 그려보다가 나도 이제 마카오에 오는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바람 세기가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휴지조각과 검은 비닐봉지가 공중을 날아다녔다. 작은 알맹이들이 날아와 얼굴이 따가웠다. 짧아진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들이마시고 연기를 뿜었다. 줄지어 서 있는 택시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 역시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택시에 올랐다. 태풍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속으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식히러 마카오 올 때의 기분이 되살아났다. 기사에게 베네치안 호텔 오락장으로 가자고 했다. 소리를 내며 유리창에 세찬 비가 부딪히기 시작했다. 재난청 메시지가 왔다. 열대성 저기압의 위력이 대단하여 바람 급수가 상향됐다.
 
  몇 게임 만에 칩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현금지급기를 다녀왔고, 몇 번을 더 다녀왔다. 밤새 칩이 쌓이기도 하고 다시 잃기도 했다. 배팅하는 숫자가 배수로 늘어났다. 주위에서 탄식이 흘러나왔고, 새로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새벽이 와 있었다. 새벽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호텔 천장이 어슴푸레한 하늘빛이었다. 나는 곤돌라가 떠 있는 수로를 따라 휘적휘적 걸었다. 숨을 들이마시는데 횡격막 아래가 뜨듯해지고, 심장이 조여들었다.

  세상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는지 아우성쳤다. 그러나 말이 목구멍을 뚫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나가는 가드와 눈이 마주쳤다. 사정을 알겠다는 듯이 그는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 지나갔다. 나는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어 수로 가에 주저앉았다. 베네치아는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셔터가 내려진 상가와 물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있는 집들에서는 여전히 따뜻한 빛이 흘러나왔다. 한국으로 전화를 했다. 잠에 취한 엄마가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있지, 라고 입을 뗐다가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잡지사를 정리하고 앓아누웠다. 하루하루가 여백으로 지나갔다. 잠은 잘 수록 늘어났고, 늘어난 만큼 얕아졌다. 꿈을 꾸었다. 오래오래 잠들어 있으려고 잠들기 전에 꿈을 만들었다. 눈을 감고 상상하다 보면 꿈으로 이어질 때도 있었다. 언제나 꿈속에서는 신발을 잃고 혼자 헤맸다. 가위 놀림을 당하고 때로는 갇혀있는 방이 불타고 있기도 했다. 기우는 햇살이 방문을 비집고 들어오면 눈이 뜨거워져 잠이 깼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고 침대에 누워 뭉그적거리며 기사나 검색했다. 기사를 읽다 보면 하단에 심심찮게 눈길을 잡는 문구가 있었다. ‘우울감 등 말하기 힘든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가족 지인이 있으면, 희망의 전화 129에서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문장을 읽은 날은 더 쓸쓸해졌다.
 
  해가지고 해가 떴다. 익숙하면서 낯선 아침의 연속이었다. 서울로 돌아간다면, 나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안개에 갇힌 날들이 지나갔다. 폴에게 문자가 한번 왔었다. 읽지 않고 문자를 지웠다.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꿈은 흑백이었고, 넓은 벌판에 홀로 서 있었다. 누군가 조각배를 타고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노랫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둘러보니 혼자였다.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리 내 울었다. 일어났을 때 베개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언제 올 거냐는 샌디 박의 독촉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 낮은 덥고 밤은 추웠다. 고장 난 레코더처럼 하루에도 여러 계절이 반복됐다. 해마다 겪는 봄이지만 낯설었다. 그사이 몸 안에서 뭔가가 빠져나갔다. 그게 뭔지 나도 모르겠다. 하여튼 뭔가가 뭉텅 빠져나갔다. 봄이기도 하고, 여름이기도 한 사월이었다. 목면화 붉은 꽃송이가 모가지를 부러뜨리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한국을 언제 떠나왔는지, 어떤 희망을 품고 있었는지. 다만, 제자리에서 맴돌던 계절이 여름으로 옮겨갔다.
 
  멍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코타이 제방이 떠올랐다. 고작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주 오래전 기억 같았다. 허기가 느껴져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에는 물도 한 병 남아있지 않았다. 문을 세게 밀지도 않았는데 철퍼덕 소리를 내며 몸체가 흔들렸다. 샌디 박에게 출근하겠다고 알리고 캐리어에 짐을 쌌다.
 
  마카오 터미널에 도착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이상할 정도로 바람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눈을 감고 몇 번의 심호흡을 했다.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리고 광장으로 나갔다. 쏟아지는 햇살과 뜨거운 바람, 습한 공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마카오 게스트하우스 로고가 그려진 승합차가 주차장 한쪽에 서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자가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구릿빛 얼굴을 한 포르투갈 혼혈인이 미스 채? 하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샌디 박의 사무실에서 두 손을 모으고 사정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캐리어를 내려다보았다. 남자가 차에서 내려 캐리어를 짐칸에 실었다. 냉방 된 버스에 오르자 좀 살 것 같았다.
 
  게스트하우스를 향해 승합차가 출발했다. 매캐니언 기사는 무료하다는 듯이 운전하는 동안 몇 번이나 말을 걸었다. 나는 예스, 노라고 짧은 대답만 했다. 좌석에 몸을 묻고 폴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없는 번호라는 말이 나왔다. 다시 전화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소리 없이 사월이 지나갔다. 


 

  <당선소감>

 

   “생의 도화지를 준비해준 두 남자, 사랑합니다”

  매일 밤 나는 창에 귀를 걸어두고 너의 발소리를 들었다. 너는 문고리를 흔들어보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심하게 돌아서 갔다. 덧문을 잠그고, 커튼을 치고, 두려움에 숨소리를 참았다. 멀어져가는 소리에 안도했다. 처음에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밤마다 너의 발소리에 조금씩 중독되어갔다. 내 손은 문고리를 움켜쥐고 있었지만 지독한 연애를 꿈꾸고 있었다. 제 그림자를 갉아먹는 소문처럼 모두가 아는 비밀이 되었다.

  잠을 밟고 오던 발소리가 사라졌다. 애타는 마음으로 노크했지만 문을 뚫지 못한 소리가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왜 너였는지. 너였어야만 하는지 알지 못해 나는 밤새워 편지를 썼다. 자판을 두드리는 손끝이 빨갛게 물들어 갔다. 밤새 헤매다가 날이 밝아 오면 말간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다시 썼다. 왜 나는 아니어야 하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순간 불량 애인이 다시 찾아왔다. 거짓말처럼.

  전상국 선생님과 김도연 선생님, 강원일보사에 감사합니다. 가장 힘든 순간 함께 달려준 상미씨 은경씨 고맙고, 나만을 위한 생의 도화지를 준비해준 두 남자, 이승용씨 이정석씨 사랑합니다.

● 이은영·59
● 대구 生 
● 작가


 

  <심사평>

  

  “왕가위 영화 ‘중경삼림'의 새 버전을 보는 듯”

  지구라는 별에서 코로나19의 확산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세밑에 마스크를 쓴 채 응모작들을 읽었다. 소설 속에서 마스크를 쓴 인물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쓸쓸하게 접했다. ‘하와이식 농담'과 ‘낯선 언어', ‘페리도트', ‘달에서 아라베스크'는 좋은 소재임에도 너무 일찍 소설을 마무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재를 오래 들여다보고 군더더기를 없애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코타이 순환선'은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마치 왕가위 영화 ‘중경삼림'의 새로운 버전을 보는 것 같았다. 탄탄한 구성, 안정된 문장들, 감정의 절제, 도처에 숨어 있는 빛나는 묘사와 장치, 과잉이 없는 대사 등등 단편소설이 갖춰야할 덕목들을 작가가 확실하게 장악하고 쓴 소설이었다. 바다를 매립해 지은 모래성 같은 도시에서 두 남녀가 유목민들처럼 떠돌고 있는데 그 고독한 울림이 예사롭지 않다. 또 다른 영화 ‘애정만세'에선 둥근 수박을 볼링공처럼 굴리는 배우가 있었는데 이 소설 속의 두 남녀가 굴리고 있는 고독도 그것 못지않았다. 마스크를 쓴 채 헉헉거리는 지구 위에서 고독한 사월을 건너가는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들의 꿈과 여행이 더 이상 허기지지 않기를 바라며….

심사위원 : 전상국, 김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