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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V 난청 / 박정수

 

  밀접접촉자이므로 검사를 받으라는 전화가 왔다. 그는 받지 못 했다. 줌(Zoom)을 통해 피의자를 심문하던 중이었다. 곧이어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줌에서 나오는 기계음은 이따금 끊기거나 하울링이 생겨서 그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오른쪽 귀에 이명이 심한 그는 왼쪽 귀를 스피커 쪽으로 기울였다. 한 시간 가량 원격 심문을 했더니 눈알이 까슬까슬하고 귀가 쟁쟁거렸다. 목운동을 하고 눈에 인공눈물을 떨어뜨렸다. 귀를 시원하게 해주는 크림이 있다면 귓속에 바르고 싶었다.

  그제야 문자를 확인했다.

  [동대문구] 귀하는 확진자와 밀접 접촉했으므로 거주지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고

  2주간 격리해야 합니다. 이 메시지를 보는 즉시 본 보건소로 전화 주시기 바랍니다.

  보건소에 전화했더니 경찰 동기가 확진되었단다. 동기와 그는 며칠 전에 함께 노래방에 갔었다. “어디에도 들어가지 마세요.” 전화 저쪽의 앳된 목소리가 말했다. “누구와도 접촉하면 안돼요. 집에서는 가족과 별도의 방을 써야 합니다.” 원룸에 사는 그에게 자가 격리란 평소보다 조금 더 조용히 지내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다가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여줬다. 사무실이 술렁였다. 팀원들은 동굴에서 날아오는 박쥐 대하듯 그를 피했고, 투덜거리며 손 소독을 다시 했다. 눈썹 사이를 찌푸린 팀장은 연이어 한숨을 내쉬며 그를 한심스럽게 바라봤다. 그는 2주간 격리에 필요한 조치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서둘러 물건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동기에게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잠시 후에, 생활치료센터에 막 들어와서 경황이 없으니 저녁에 연락하겠다는 문자가 왔다. 동향인 그와 동기는 아산에 있는 종합경찰학교를 마친 후, 고향 근처 소도시에서 근무하길 바랐었다. 비슷한 정서와 사투리를 가진 사람들 틈에서 그들을 위하며 일하길 원했다. 그러나 첫 발령이 서울로 났다.

  보건소에 가서 이름도 생소한 비인두도말(鼻咽頭塗抹) 피씨알 검사를 받았다. 검사 요원이 면봉이 달린 막대를 그의 콧구멍 깊숙이까지 집어넣어 점액을 묻혀내는 방식. 티브이에 나온 사람들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뒤로 빼는 움찔함을 그는 느끼지 않았다. 다만 연거푸 재채기를 했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연락이 갈 거예요.” 검은색 마스크를 쓴 보건소 직원이 말했다.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도 잠복기 때문에 이 주간 자가 격리해야 합니다.”

  “지난 행적을 다 조사한다던데 정말 그러나요?” 그가 직원에게 물었다.

  “최근 삼사 일간 들어간 장소와 만난 사람에 대해 역학팀이 세세하게 물을 겁니다.”

  “기억이 안 나면 어쩌죠?”

  “그러니까 미리 써보는 게 좋아요. 기억을 더듬어 적은 후에 이메일로 보내면 됩니다.”

  직원은 이메일 주소가 든 자가 격리 안내서를 건네면서, 만약 거짓말을 하면 법에 따라 처벌 받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직원은 눈에 고글을 끼고 그 위에 아크릴로 된 얼굴 쉴드를 덮은 채였다. 귀만 열어 둔 상태. 만약 귀로도 옮긴다면 새로운 모양의 귀마개를 끼워야 하겠지. 그러면 사람들은 소리쳐서 말해야 할 테니 목도 아프고 신경도 날카로워질 것이다.

  여자 친구에게 연락하여 저녁 약속을 취소했다. 간만에 보기로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미안하고 속상했다. 여행사에 다니던 그녀는 작년에 들이닥친 환불 요구에 부대끼다가 그 일마저 없어지자 실직했다.

  경찰 동기들의 단체 카카오톡에 여러 문장과 이모티콘이 들어와 있었다.

  동대문에 이어 마포 경찰서도 뚫렸다며

  세상이 지뢰밭이야 ㅠㅠ 인간을 피하고 허연 신을 만나라

  백신은 배신하지 않는다. 어쩌면 오랫동안 방을 비워야 할지 몰라 원룸 청소부터 시작했다. 창문을 열었더니 음식 배달과 함께 늘어난 오토바이 폭음이 들려왔다. 그 폭음은 아스팔트를 부수는 착암기 소리와 비슷했다. 심할 때는 M16 자동소총의 발사음처럼 들렸다. 그의 귀는 중학생 때부터 울기 시작하더니 군대에서 총소리 때문에 더 나빠졌다. 그것은 예를 들어 현충일에 울린 사이렌이 귀로 들어왔다가 나가지 않고 계속 울리는 것과 비슷했다. “이명은 불치병이니 어떻게든 적응해서 사는 수밖에 없어요.” 이비인후과 의사가 그에게 말했다. “혹시 부모나 형제 중에 귓병이 생긴 분 있나요?”

  그의 아버지는 오래 동안 환청에 시달렸다. 잊고 싶은 음성들이 시도 때도 없이 되살아나면서 과거의 고통을 들척이고 현재의 일상을 흔들었다. 광주항쟁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보안부대 지하실에 끌려가 겪은 고초 때문이었다.

  안전보호앱이라는 어플을 깔자 위치가 추적되는 팝업창이 떴다. 그가 원룸에서 벗어나면 전담 공무원에게 곧바로 연락이 간다고 했다.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데워 김치와 함께 먹었다. 오늘 저녁이 지난 오 년간 지내온 이 방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될까.

  보건소 직원의 말에 따라 지난 삼사 일간 겪은 일을 적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지 않는 그로서는 낯설었지만 진술 조서를 꾸민 경험을 살렸다. 역학조사에 필요하지 않아도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괄호 안에 넣었다.

  4월 4일 오후 7시. 동기의 생일 기념으로 제기동역 근처 제주핑크오겹살이란 식당에서 동기의 팀원 두 명과 나까지 넷이서 만났다.

  오후 8시 50분. 팀원 둘은 식사 후에 먼저 가고, 동기와 나는 음식점 근처 해피나이트라는 노래방에 들어가 한 시간 노래를 불렀다.

  4월 5일 오전 7시. 강서구 화곡3길 15, 내가 사는 홀더인디스라는 원룸 건물 앞에서 건물주 노인을 만남. (예전에 노인은 쓰레기 분리수거나 빨래 걸기로 잔소리께나 했는데 마스크를 쓴 후로 말수가 줄었다.)

  7시 20분경 화곡역에서 5호선을 탔다.

  그는 언제나 취조하는 경찰이었는데 이번에는 취조를 당하는 피의자가 된 것 같았다. 1인 2역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 피의자의 심정을 조금 알 듯싶었다.

  노래방 같은 데 가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를 지난 일 년 동안 잘 따랐다. 동기의 서른한 살 생일 기념으로 한 번 들어갔다가 덜커덕 걸렸다. 운이 없으려니 이런 일이 생겼다. 그들과 함께 여성 도우미 한 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적지 않았다. 부르지 않았는데도 30대 초반의 도우미가 자발적으로 들어와서는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돼서 그러니 술값으로 얼마 이상만 채워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거절했다. 동기는 여자 친구도 없이 외롭게 지내는 신세라며 생일 기념으로 받아들였다. 진실하게 적는 게 원칙임을 잘 알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 신상에 해로울 것 같아 언급하지 않았다.

  오전 8시 10분경. 공덕역에서 내려 경찰서 앞 파리바게트에 QR 체크인 했다. 평소대로 아메리카노와 도넛을 먹으며 종업원과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하얗게 웃던 종업원의 예전 모습을 요즘은 별꽃 무늬 마스크가 가렸다.)

  8시 30분. 마포 경찰서 건물 5층에 있는 사무실에 들어갔다. 팀장(52세), 부팀장(36세), 박 주임, 신 경사, 채 경장, 주무관과 나(31세). 이렇게 일곱 명이 수사팀을 이룬다. (나는 강서구 가양 지구대에서 삼 년간 순경으로 일했는데 밤샘 근무 탓에 낮과 밤이 뒤바뀌어서 힘들었다. 경장으로 진급하고 부팀장에게 뽑혀 이 팀에 들어온 지 2년째이다. 여기서는 서울청의 최우수 수사팀이 되자며 팀장이 더 많은 실적을 다그쳤다.)

  가양 지구대 시절, 머플러를 불법 개조한 오토바이를 잡아내곤 했다. 이명 탓에 청력도 약해진 그는 오토바이 소음에 무척 예민했다. 때문에 단속에 기쁘게 나섰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녀석을 도로에서 직접 잡기도 했지만 그 일은 위험했다. 주로 중국집이나 치킨집 앞에 세워진 것을 대상으로 시동을 걸게 해서 적발했다. 가차 없이 범칙금을 매겼다. 그래도 폭음은 여전히 거리를 울리며 내달리고 있다.

  부팀장은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이른 나이에 경감을 달았다. 꽃보직을 거치면서 경찰 조직을 이끌 기대주라고 알려져 있다. 부팀장이 그에게 취조 요령을 가르쳐주었다. 당하는 사람에게는 안됐지만 그에게는 중대한 직무였다.

  결정적 증거가 있더라도 피의자를 단번에 쓰러뜨리지 마라. 그러면 피의자가 재판에 가서 딴소리를 한다. 처음에는 어설픈 자료를 보여주면서 변명할 기회를 주다가 녀석이 거짓말을 하면 그걸 물고 늘어져라. 야금야금 포위망을 좁혀가다가 치명상을 입히기 직전에도 곧바로 들어가면 안 된다. 마치 권투 선수가 빙빙 돌면서 잽을 날리듯이 심문자가 중요한 증거를 들이밀며 날카롭게 찔러댐으로써 상대가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만들어야 한다.

  오전 10시 30분부터 12시. 얼굴 성형 수술 도중 악성고열증으로 사망한 여대생의 어머니를 만나 고소 내용을 기록함. (아침에 들떠서 나간 딸이 저녁에는 종합병원에 싸늘하게 누워 있었다. 어머니는 식당일 때문에 성형외과에 따라가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12시 10분. 점심을 먹으러 팀원들과 함께 문배동육칼집에 갔다. 우리는 아크릴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셋과 넷으로 나뉘어 육개장칼국수를 먹었다.

  저녁 7시. 팀원 모두가 천지식당이라는 단골 백반집에 갔다. 40대 아들과 어머니가 일하는 조그만 식당인데, 내가 만약 확진되면 무슨 낯으로 그들을 다시 볼까. (아들이 몇 년 전에 심하게 아파서 빚을 졌다고 했다. 어머니의 손맛이 좋아 손님이 붐비는 그 곳은 감염된 내가 다녀간 탓에 며칠 문을 닫아야 할 테고, 그런 소문이 퍼지면서 손님이 확 줄어들 것이다.)

  여기까지 쓴 행적이란 게 너무도 일상적이었다. 노래방에 간 것이 이변이라면 이변. 되돌아 톺아보니 시간이나 음식을 정할 때 그의 의견이 반영된 적이 별로 없다. V가 돌면서부터 이것은 해야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는 지시사항이 늘어나자 그의 얼마 안 되는 재량도 헤실바실 사라졌다.

  헌팅 포차나 나이트클럽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랬다간 크게 다친다. 노래방 건도 조만간 징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금지사항들을 지키느라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아왔다. 경찰서와 식당에서 말고는 만난 사람도 거의 없다. 이 나이에 마땅히 누려야 할 시간을 빼앗겼다고 어디 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래서 노래방에 갔던 것은 아닐까.

  그때 카톡! 하고 핸드폰이 소리쳤다.

  동기: 몸은 어때

  그: 무증상. 역학팀한테 노래방 도우미 말했니?

  동기: 아니, 말 안 했어. 너도 말하지 마. 내가 노래방 주인한테 연락해서 도우미도 검사 받았어. 지금 자격 중이란다. 내일 아침에 결과 나오면 즉각 알려주기로 했어

  그: 너 누구한테 옮았냐?

  동기: 깜깜이래. 내 생일 이후에 걸린 것 같아. 그러니 너나 도우미 둘 다 음성 나올 거야. 팀원들 모두 검사 받고 자격에 들어갔어. 송죄할 따름 ㅠㅠ

  그: 죄송할 거 없어. 니 잘못 아님

  마지막 메시지는 그 자신에게도 보내고 싶다. 이렇게 된 게 누구의 탓도 아니다. 노래방 한 번 간 것이 무슨 대단한 죄인가? 하지만 그가 양성이라면 팀원들에게 옮기고도 남았다. 동기에게는 죄송할 것 없다고 말했어도 막상 그가 수사팀에 돌아가면 눈치꾸러기가 될 텐데, 어느새 한숨이 나왔다.

  만약 그가 V에 걸렸다면, 죽은 여대생의 어머니는 또 어떤가. 그녀는 어디에다 어떻게 호소할지를 몰라 경찰서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 억울함을 좀 풀어달라고 기껏 당부했건만 담당자란 사람이 노래나 부르다가 확진되었다니 그녀는 한탄할 것이다. 만에 하나 조사 과정에서 그녀에게 V를 옮겼다면 그는 죽을 맛이 될 거다.

  행적에다 도우미를 적지 않은 것도 꺼림칙했다. 동기가 재빨리 조치했으니 일단 기다려보자. 그녀가 음성이면 괜찮지만 양성으로 나오면 일이 커진다. 내일 아침에 음성으로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4월 6일. 어제와 같은 빵집에 들렀음.

  오전 10시부터 11시 30분. 동생의 군화와 군복을 중고나라에 올려서 판 여자를 심문했다. (그녀는 불법인지 몰랐다며 선처를 부탁했다. 나는 어찌해볼 수 있는 직급이 아니어서 원칙에 따라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12시 10분. 걸어서 오 분 거리의 한우촌이라는 고깃집에 가서 애호박찌개를 먹었다. 부팀장이 컨디션이 안 좋다며 일찍 퇴근했다.

  오후 2시부터 4시. 검찰을 사칭한 피싱에 걸려들어 비트코인을 넘겨준 30대 고소인을 줌을 통해 면담했다.

  퇴근 후 저녁 7시 30분. 원룸 근처 서브웨이에 갔다. 여자 종업원 두 명이 내 주문에 따라 길쭉하고 두툼한 빵 가운데에 치즈와 햄, 야채를 채워줬다.

  이날 밤에 고교 동창들과 줌 파티를 가졌다. 각자가 집에서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줌 화면 앞에서 건배하고 떠들어댔다. 어떤 친구는 늦은 저녁으로 통닭을 시켜 먹었고 몇몇은 채팅을 했으며 살이 찐 애는 실내 자전거를 탔다. 서른 명 남짓이 들어왔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 친구가 BTS의 다이너마이트를 틀었다. 클럽에 못 가니 방에서라도 추자고 했다. “다이 너너너너 너너.” 중성 톤의 경쾌한 비트가 동창들의 허리를 흔들게 했다. 선율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도 캔 맥주를 들이키고 스텝을 밟았다. 레몬 즙이 잔뜩 뿌려진 방울토마토가 입 안에서 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참가자 수만큼의 사각형이 그의 노트북 화면에 채워졌다. 몇 명이 더 나타났다. 대략 5 곱하기 8 행렬을 이룬 사각형들 속에서 친구들은 제각각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술에 취한 탓인지, 문득 양계장에 늘어선 철망 상자들이 떠올랐다. 각자의 철장 속에서 모이를 주어먹거나 고개를 쳐들어 물을 삼키고 이리저리 발을 움직이는 닭들이 연상되었다. 그는 스텝을 멈추고 맥주 캔을 내려놓았다. 비행기를 탄 채로 즐긴다는 무착륙 해외여행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4월 7일 오전 9시 30분. 얼굴이 푸석해진 부팀장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진단서와 함께 휴직계를 냈다. 불면증이 심해지고 정신건강에 탈이 났단다.

  12시 5분. 신의주찹쌀순댓집에 가서 얼큰순댓국을 먹었다. 부팀장이 떠난 후 팀원들의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오후 2시. 줌을 통해 취조하던 중 밀접접촉자라는 문자를 받았다.

  4시 30분. 강서구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고 원룸에 돌아와 자가 격리에 들어감.

  부팀장은 그동안 긴장을 풀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침부터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안전 안내 문자에도 계속 압박을 받았단다. 부팀장은 줌 사용도 꺼렸다. 피의자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거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눈치채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지 않았는데도 매달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이런 말을 들으며 그는 어두운 안개가 살금살금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얼른 뒤를 돌아봤다. 티브이에서 질병본부장이 높은 단계의 거리두기를 계속 유지한다고 말했다. 질병본부장의 가르마엔 흰머리가 작년보다 부쩍 늘었다. 고모 얼굴만큼 친숙한 그녀를 이제는 그만 본다면 좋겠다.

  V는 주무기가 아닌, 자신의 그림자 같은 2차 병기로 부팀장을 쓰러뜨렸다. 남은 팀원도 언제까지 버텨낼지 모르겠다. 놈들의 2차 병기는 주무기보다 더 지랄 같아서 마치 고무줄을 잡아당기듯, 사람들을 점점 팽팽한 상태로 끌고 갈 터이다. 마침내 고무줄을 더 이상 잡아당길 수도 없고 그대로 놔버릴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V는 거기서 오래 동안 괴롭힐 것이다. 다음에는 누가 당할까?

  신 경사의 원형탈모는 더 넓어졌고 채 경장의 맥박은 가끔 이유 없이 빨라졌다. 그의 이명도 V 이후에 더욱 커졌다. 깊은 우물에 빠진 사람이 구조해달라고 귓속에서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안 걸려본 사람은 이 괴로움을 모른다. 아버지의 환청은 이보다 훨씬 더했으리라. 나는 공산주의자이고 김대중에게 자금을 받았다.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라며 놈들은 참혹한 구타와 고문을 저질렀다.

  삼사 일간의 행적을 다시 읽어봤다. 문장이 너무 건조하고 초등학생 일기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괄호 안의 내용이 쓸데없게 느껴져서 그 부분을 모두 지웠다. 나머지를 역학조사팀에 이메일로 보냈다.

  확진자의 브이로그에 들어가 생활치료센터에서의 경험담을 시청했다. 준비물인 속옷 몇 벌과 세면도구, 수건 세 장과 슬리퍼를 챙겼다.

  침대에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만 들었다. V는 필시 여러 차례 그에게 왔을 것이다. 마스크에 막혔든지 아니면 허파에 들어앉았을 터. 놈들이 이미 들어왔다면 그를 죽이거나 혹은 미각과 후각을 망가뜨릴 수 있다.

  부팀장은 언제 돌아올까? 빼앗긴 시간이 끝나야 가능할 것이다. 스무 명 이상이 회식하다가 일부는 먼저 가고 남은 사람이 밤 아홉 시 이후에도 노래방에 몰려가는 그런 때가 다시 오면 부팀장은 돌아오리라. 멘토가 떠났으니 그는 혼자 일하는 데 더 익숙해져야 한다.

  V는 과연 사라질까? 백신에 밀리고 있는 놈들은 어수룩한 지역에 들어가 변이를 꾀한 뒤 다시 날뛸 텐데. 인류와 V의 전쟁. 우리는 이겨낼 수 있을까? 앞으로 수 년 동안 아니 죽을 때까지 마스크를 벗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버지의 환청도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정신과에서 주는 약만으로는 직장 생활을 버티지 못 했다. 자다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곤 했다. 바닷가에 나가 몇 시간이나 망연히 앉아 있던 아버지를 어린 그가 모시고 집으로 돌아온 적이 여러 번이었다.

  놈들은 아침이면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지하실에 나타났다. 아버지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밤새 잘 잤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친절한 말투로, 밖에는 날씨가 화창하다고 알려줬다.

  V는 아침마다 안전 안내 문자로 찾아온다. 어디를 방문하신 분은 검사 받으시라고 점잖고 걱정스럽게 읽어 준다. 밖에는 신규 확진자가 몇 명이라고 곰살궂게 알려준다.

  그는 내일을 위해 잠을 자고 싶어 멜라토닌 두 알을 삼켰다.

  새벽 잠결에 쿵하는 천둥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몸이 들썩였다. 휴대폰을 보니 다섯 시 몇 분 전. 왼쪽 귀에서 씩씩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소리는 오른쪽 귀로 옮겨가더니 없어졌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으려는데 어질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동시에 아랫배가 불편해지면서 설사가 나오려고 했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는데 욱하고 무엇이 올라오는가 싶더니 그대로 고꾸라지면서 바닥에 토했다. 눈앞이 어른거리면서 머리가 한쪽으로 자꾸 꾸벅거려서 발을 뗄 수도 없었다. 화장실까지 간신히 기어가서 변기에 앉았더니 설사가 줄줄 나왔다.

  기침이나 고열이 없으니 V 증상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무엇일까?

  오른쪽 귀가 먹먹했다. 갑자기 한기가 들면서 몸이 덜덜 떨렸다. 화장실을 나와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천장이 왼쪽으로 기울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손발이 떨리는데도 온몸에 힘이 다 빠지면서 졸음이 덮쳐왔다. 눈을 감았더니 몸이 작아지면서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한 환각이 들었다. 이대로 잠이 들면 영영 못 깨어날 것이다. 신음을 내지르며 몸을 뒤집었다. 침대까지 느리게 기어가서 핸드폰을 잡고 119를 눌렀다.

  방역 장비로 온몸을 덮은 대원 두 명이 그가 알려준 도어락 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다. KF94와 고글을 그에게 씌웠다. 방안 구석구석과 화장실에 살균제를 뿌리고 그의 몸에도 분사했다. 클로로포름에 여름 땀이 섞인 것 같은 냄새가 났다. 대원이 그를 휠체어에 앉히고 담요를 덮어줬다. 밖으로 나가자 옆방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확인하러 나와 있었다. 그를 보더니 혹시나 전염될까봐 황급히 문을 닫고 들어갔다.

  종합병원에 도착했을 때 응급실에 곧바로 들어가지 못 했다. 검사 결과를 모르는 밀접접촉자이므로 주차장 한 쪽에 놓인 컨테이너로 가라는 거였다. 흑갈색 컨테이너 두 개를 맞대어 만든 간이 진료소. 119 대원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그가 안에 들어가니 컨테이너를 연결하는 사잇벽에 유리창이 나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저쪽 내부가 보였다.

  한참 뒤, 저쪽 컨테이너에서 하얀 방호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섰다. 의사가 마이크로 말하자 이쪽에서 앰프가 울렸다. 그의 힘없는 목소리도 저쪽에서 증폭되었다. 증상을 다 들은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뇌 MRI를 찍어봐야 확실하지만 지금 봐서는 오른쪽 귀에 돌발성 난청이 왔어요.”

  “돌발 뭐라고요?”

  확실히 못 들어서 그가 되물었다. 상대의 입술 모양을 본다면 더 나을 텐데 마스크로 가려져서 그러지 못 했다. 의사가 소리를 키워 또박또박 발음했다.

  “돌 발 성 난 청 이 라 고 요!”

  그는 난청이라는 단어를 못 들은 난청자가 되었다. 아버지에겐 잊고 싶은 고통이 자꾸 들렸고 그에겐 들어야 할 정보가 안 들렸다.

  “돌발성 난청이란 게 뭐예요?”

  “갑자기 어지럽고 한 쪽 귀가 안 들리는 증상이에요.”

  그는 오른쪽 귀가 안 들리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왼쪽 귀를 막고 소리 내었다.

  “아아.”

  정말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크게 질렀다.

  “아아, 아아.”

  멀리서 아스라이 들려왔다.

  “거의 안 들리네요.”

  그가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물었다.

  “귀에 바이러스가 들어갔나요?”

  “그건 아니에요.”

  “예전부터 이명이 심했는데 그것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이명은 올해 들어 더욱 커졌다. 지하실에서 고문당하는 청년이 내지르는 긴 비명이 들리고 있었다.

  “날마다 먹던 기넥신을 요즘 들어 띄엄띄엄 먹었는데 그게 원인인가요?”

  “아니에요.”

  은행나무 잎으로 만든 기넥신이 귀에 좋다고 하여 지난 일 년간 날마다 복용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실망한 그는 요사이 이따금 먹었다.

  “그럼 왜 이래요?”

  “스트레스가 주원인이에요.”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의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한 번 말해주세요.”

  상대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마스크 속에서 단어를 끊어가며 말했다.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왼쪽 귀의, 기능이, 멈춰 버렸다고요!”

  의사는 말하는 도중 손을 귀에 가져갔다.

  “아,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생긴 난청이군요.”

  그는 혹시 V가 찾아왔냐고 물었다. 의사는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무증상도 많으니 PCR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라고, 그 후에 다른 검진을 해보자고 덧붙였다. 일어서서 나가는 의사에게 간호사가 말했다.

  “요사이 귓병 환자가 부쩍 늘었어요. 입과 코를 막으니 귀가 고장 나는가 봐요.”

  의사가 대꾸했다.

  “그러게요. 요즘 사람들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엄청 심해지는 것 같아요. 젊은 사람은 원래 이 병에 잘 안 걸렸는데 최근에 와서 많아지고 있네요.”

  그의 귀로 제대로 들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두 사람이 저쪽 문을 열고 나가자 문 사이로 오토바이 폭음이 쳐들어왔다. 저만 살겠다고 짖어대는 저놈의 총소리를 이제 그만 듣고 싶다.

  철제문이 닫혔다. 그는 이쪽 컨테이너에 혼자 남겨졌다. 고개를 가누기도 힘들어서 드러눕고 싶지만 그러면 토할 것 같다.

  놈들은 아버지를 알몸으로 벗겨서 캄캄한 지하실 가운데에 매달았다. 오직 아버지에게만 비치는 백열등 아래에서 몽둥이를 휘둘렀다. 청년은 여러 차례 정신을 잃었다. 그러면 놈들은 축 늘어진 몸에 찬물을 끼얹고 군화발로 찼다.

  그는 지금 기다리고 있다. 검체를 채취한 후 여섯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다고 하니 검사 결과는 이미 나와 있을 터. 당사자인 V는 알고 있으나 그는 모른다. 보건소의 책임 있는 담당자가 출근하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V는 항상 갑이었고 보건소는 을, 그는 병이었다. 젠장 이럴 때는 보건소 직원이라도 좀 빨리 움직이면 오죽 좋으련만.

  저쪽 컨테이너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선다. 사잇벽의 유리창을 옆으로 밀어내니 통과 공간이 생긴다. 그가 왼팔을 집어넣자 간호사가 손등에서 혈관을 찾는다. 그녀의 투명한 라텍스 장갑이 선뜩하다. 간호사가 말한다.

  “어지럼증과 구토를 줄여주는 주사입니다. 좀 졸릴 거예요.”

  “양성으로 나오면 어떻게 되나요?”

  “양성이면 음압 병실에 입원하고 음성이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아요.”

  간호사는 혼자 기다리는 동안에도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가슴이 너무 답답하네요. 답답증을 풀어주는 주사도 놔 주세요.”

  “그런 주사는 없는데요.”

  놈들은 목욕 수건을 아버지 얼굴에 여러 겹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입과 코 부위를 놈들의 손으로 눌렀다. 양팔이 묶인 아버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누르기는 계속되었다. 비명을 질러도 소리는 나지 않고 숨만 더 막혔다. 놈들은 시간을 재다가 질식사 직전에 수건을 풀었다.

  간호사가 통과 공간 너머로 팔을 뻗어 그의 휠체어 지지대 꼭대기에 링거 튜브를 건다. 열린 유리창을 잡아당기자 컨테이너 사이가 닫힌다. 밖으로 나가려던 간호사가 묻는다.

  “보호자는 언제 오나요?”

  여자 친구가 여기에 들렀다가 제 시간에 출근하기는 가쁠 것이다. 그녀는 얼마 전부터 은행 콜센터에 나갔다. 무더기로 확진된 직원들의 자리를 메꾸는 일손이기 때문에 출근 시간을 늦출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누나와 매형은 전주에서 하던 식당을 접고 세종시로 옮겨 새로 열었다. 식당은 거리두기 탓에 파리 날리고 있지만 두 사람은 그래도 부업거리가 있어서 하루 종일 일하는 모양. 그런 누나에게 차마 전화하지 못 하겠다.

  고글에 김이 서려 눈앞이 뿌옇다. KF94의 상단에 조금 빈 공간으로 올라오는 날숨 때문이다. 그래선지 더욱 갑갑하다. 산소가 부족한 폐 속은 아마 돌바닥이 드러난 마른 하천 같을 거야. 이러다가는 허파꽈리가 바삭하게 굳어버릴지 모른다. V 폐렴에 당하기보다는 이 답답증 때문에 먼저 죽을 판이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위를 살피더니 마스크를 내리고 심호흡을 시작한다. 쓰으으으 길게 들이쉬고 후우우우 길게 내쉬기를 반복한다. 관자놀이에 새로운 피가 올라오고 찌뿌둥하던 머리가 개운해지는 것 같다. 서둘러 마스크를 올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에게 가장 숨쉬기 편한 곳, 어머니가 사는 고향 마을이 떠오른다. 마을 뒤에 가파른 바위산이 있고 앞에는 황토 언덕과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밭이 펼쳐진다. 더 나아가면 갯벌과 바다로 이어진다.

  한쪽 귀가 안 들리게 되어선지 이명은 어제보다 더 높아졌다. 귓속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비명을 이제는 제발 그만 들어야 한다. 대신에 고향집 뒤란에 대나무 이파리들이 싸르륵싸르륵 바람에 쓸리는 소리를 듣고 싶다. 동네 앞 포구에 출렁출렁 부딪치는 바닷물과 비걱배각 흔들리는 묶인 고깃배와 끼룩끼룩 날아다니는 갈매기. 그들의 소리를 증폭해서 듣는다면 좋겠다.

  초등학생이던 그는 잠결에 방에서 나는 또르륵 소리를 가끔 들었다.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 물을 마시는 줄로만 여겼다. 물과 술의 진짜 차이를 잘 모르던 때였으니까. 중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희뿌연 어둠 속에서 당신이 홀로 소주를 따르는 소리임을 알았다.

  그날 밤 아버지의 기척을 수차례 듣는 내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당신의 내려앉는 한숨에 뒤이어 소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면 빈 잔이 방바닥에 놓였다. 이내 병 끝이 유리잔에 살짝 부딪치면서 다시 또르륵 술이 따라지고, 병이 바닥에 닿는 둔중한 소리. 뒤이은 한숨과 캄캄한 무음.

  소주 한 병을 일정한 속도로 비워가는 아버지를 숨죽여 느끼고 있을 때 문득 그의 귀가 울기 시작했다. 사이렌이 아스라이 들려왔다. 그때는 그게 이명의 처음인지를 몰랐다. 귀울음은 아버지가 조용한 기척을 낼 때보다 캄캄한 무음에 잠겼을 때 더 또렷하게 울려왔다.

  그렇게 시작된 이명은 군대에서 사격 훈련을 받을 때 귀 옆에서 계속 터진 총소리 때문에 더 커졌다. V가 돌아다닌 후로 오토바이 폭음과 줌의 기계음을 들으며 점점 높아지더니 마침내 V 난청에 걸리면서 최대로 아우성치고 있다.

  아버지는 고문 후유증과 병마에 시달리다 오십을 넘기지 못 했다. 마을 앞 바닷가에 앉은 채로, 빼앗긴 인생을 거두었다.

  그는 대기 중이다. 컨테이너 안에 댕그라니 남겨져서,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겠는 비인두도말 PCR 검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머리가 먹먹해지면서 양팔의 힘이 나른하게 풀린다. 주사약의 효과이리라. 몸이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다. 눈이 감기고 정신이 흐려지더니, 검정 나비 한 마리가 언뜻거리며 날아오른다. 세 마리, 네 마리가 모여들고 어디선가 V의 음성이 들려온다. 고음이 잘린 채 웅웅거리며. 누군가 몽둥이로 컨테이너 벽을 긁어댈 때 나는 소리처럼 들려온다.

  “너를 단번에 죽이지 않아. 한 군데씩 부러뜨려서 야금야금 잡아먹을 테야.”

  흠칫 놀라 눈을 뜨니, 나비는 사라지고 어깨 위에서 링거액이 떨어지고 있다. 윗배가 매슥거리고 입안에 신물이 고인다. 천장이 기울어지면서 다시 눈이 감기더니, 놈들의 음성이 되살아난다. 아침 날씨를 알려주는 친절한 말투로.

  “단숨에 거두지 않아. 야금야금 짓뭉개서 오래오래 울부짖게 해 줄 게.”

  소리는 어느새 귀울음과 뒤엉켜 환청으로 들려온다.

  그는 오전 아홉 시를 견디고 있다. V가 곧 나타나리라. 놈들은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들어와 밤새 잘 잤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고는 바깥 날씨나 말하고 돌아가든지 아니면 음압 병실로 그를 끌고 가든지.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숨거나 도망가지도 못 한다. 천장이 돌아가는 어지럼증과 바닥이 올라오는 메스꺼움과 이명에 엉겨 붙는 환청에 시달리며 축 늘어진 채 버티고 있을 뿐. <끝> 


 

  <당선소감>

 

   “팬데믹 2년, 희망 잃지 않고 긴 터널 이겨내길”

  청소년 시절, 나는 어떤 소설을 읽고 크게 흔들렸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감동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 했기에 이과계열의 안정된 직장으로 향했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소설창작에 들어섰다. 감동적인 글을 쓰기는 예상보다 어려웠다. 소설은 허구였고 현실은 냉엄했다. 하지만 어릴 적 생각은 늙지도 않는지, 자꾸 나를 잡아당겼다. 픽션이 주는 위안 덕분에도 계속 썼다. 삶에서 이루지 못한 회한을 이야기 속에서 어루만지고 추슬렀다.

  ‘V 난청’에서 나는 바이러스 탓에 고통 받는 우리의 딱한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 아울러 현재 팬데믹 상황이 과거 군사정권의 압제와 닮았다고 상상했다.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를 얻었듯이, 바이러스를 이겨내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말고 긴 터널을 견디어내자고 말하고 싶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여러 선생님과 문우들이 나를 길렀다. 창작을 가르쳐준 문순태, 채희윤, 이미란, 박상우, 최유안 소설가에게 감사드린다. 합평으로 나를 깨우친 생오지, 소설봄, 소설다방, 소행성, 말과활의 문청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준 함정임 소설가에게도 감사드린다. 소재를 제공하고 초고를 혹평한 아들과 아내에게 애정을 듬뿍 보낸다.

  작가라는 길에 들어서면 부담과 외로움이 습작기보다 더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감동이나 위로를 주는 글을 쓴다면 좋겠다. 불가해한 삶의 진실을 캐는 작품을 짓도록 노력하겠다.

● 전남대 수학교육과 졸업 
● 소설봄 동인 
● 전남대 통계학과 교수


 

  <심사평>

  

  “삶과 진실과 인간의 존재 환기”

  코로나 난국과 맞물려 가속화된 언택트, 가상현실(VR) 시대의 일상을 조명한 작품이 많았다. 소설의 본령인 재현과 환상이 2년째 거듭되는 돌발적인 현실 시스템 속에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가를 주목해 보았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V 난청’ 외 3편이었다. 소재를 선택하는 감각과 선택된 소재를 하나의 이야기로 구축해나가는 관철력,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시의적인 고민과 문제 제기, 그것을 다루는 작가의 안목과 기법을 평가의 중심에 두었다.

  ‘김노인의 바다’, ‘다인의 방’, ‘구찌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VR 시대의 세부 사항들이 서사 중심에 배치되고, 사건이 작동되는 매개체로 개인 블로그와 인스타 V로그, 중고물품앱 등이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관건은 매체의 속성과 인물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욕망과 그것의 진위에 대한 작가적 통찰력에 있다. 세 작품 모두 이러한 현실을 적시하는 소재 선택에 민첩한 반면, 문장과 주제 형성이 아쉬웠다.

  ‘V 난청’은 2년 동안 인간을 지배한 코로나 V가 어떻게 감각을 무력화시켜 의식을 파괴하고 삶을 해체하는가에 대한 소설적 보고서이다. 허구보다 더 허구 같은 현실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허구만으로 압도적인 허구를 창출해냄으로써, 삶의 진실과 인간의 존재 의미를 시의적절하게 환기하고 있다. 다큐 서사적인 구체성에 속도감 있는 전개와 전환, 흐름을 꿰뚫어 이끌어가는 작가의 필력이 확인되어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자와 응모자 모두에게 응원과 함께 지속적인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 함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