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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골드 / 김만성

 

  “하이고 사장님! 걱정하지 마소. 내가 한두 해 골드를 봐온 것도 아니고, 요래 저래 좀 보고 나면 금방 고분고분해지고, 마 얌전한 차로 바뀔겁니더. 사장님이 을매나 요놈아를 애지중지하는지 내 잘 알고 있으니 걱정 마소 마. 뭐 얼라맹키로 그리 얼굴에 근심이 한가득 떠오르면 어쩝니꺼.”

  며칠 전부터 골드를 탈 때 쇳소리가 들렸다. 노인의 해소기침 뒤에 이어지는 낮은 숨소리처럼 가르릉 거리는 그 소리가 신경을 거슬렸다. 주행 중에는 양치질을 할 때 갑자기 일어나는 헛구역질처럼 쿨렁거리기까지 했다. 그럴 때는 차가 멎는 것은 아닌가 싶어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마른 땀까지 바싹 났다. 무슨 사단이라도 일어날까 싶어 점심시간을 이용해 단골 공업사에 들렀다. 노킹현상이라고 했다. 오래된 차에서 흔히 발생하는 것이고 원인을 찾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 하루 정도 차를 맡기라고 했다.

  사투리가 정겨운 최기사의 말에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의도도 있지만 차에 그만 좀 집착하라는 핀잔도 들어있다. 최근 점검을 받았을 때 최기사는 골드의 엔진이 기름을 먹는다며 엔진오일 교체주기를 평소보다 한 500킬로미더 정도 빨리 하라고 했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차가 오래되면 어딘지 오일이 조금씩 새는데 그걸 그리 표현한다고 했다. 그 때도 차가 오래되면 당연히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는 18년 동안 29만 킬로미터를 달린 골드의 엔진이 기름을 먹는다는 말에 가슴에서 쏴아 흐르는 물줄기 소리를 들었다. 때가 된 것만 같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최기사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걱정이 앞섰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닥치면 늘 그랬듯이 흉통과 복통이 동시에 일어났다. 나는 오른 손으로 왼쪽 가슴을 누르고 오른손으로는 배를 쓰다듬었다. 가슴과 배에서 평상시보다 빠른 박동이 느껴졌다. 좋지 않은 조짐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할 수 없이 골드를 공업사에 맡기고 택시를 탔다. 통증은 진정이 좀 됐지만 이번엔 뒷목에서 생긴 두통이 앞머리까지 욱죄고 들었다. 눈을 감고 최대한 맘을 편히 가지자고 생각하며 심호흡을 했다. 택시 안에서는 진한 가죽 냄새가 풍겼다. 출고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새 차인 듯 했다. 나는 머리를 가죽시트에 기대고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했다. 가죽 냄새가 짙게 풍겼다. 골드를 처음 만났던 날의 냄새와 비슷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2002년 새해가 열리자 나는 원룸 출입문에 달력을 걸면서 달력 첫 장에 크게 써진 2002라는 숫자를 잠시 바라보았다. 앞뒤로 2가 둘러싸고 가운데 0이 나란히 사이좋게 배치된 모양이 안정감을 주었다. 임오년 흑말 띠 해라는 설명과 함께 역동적인 검은 말이 숫자 아래 그려져 있었다. 2001년 말 정기 인사에서 나는 대리 승진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기대하지 않는 일이 일어난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S그룹 계열사의 대리승진은 호락호락한 과정이 아니었다. 직전 3년 동안 A고과 한번 없이 B+와 B를 오간 평범한 고과를 받았던 나로서는 대리승진을 미리 포기하고 있었다. 하위고과인 C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긴 했다. 하지만 C가 전체 평가대상 중에서 하위 5%에게 주어지는 고과라는 것을 알고 나면 C가 없다는 것이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그 때 나는 95% 안에 들면 눈 밖에 날 일은 그나마 없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것은 경쟁이 치열한 S그룹의 업무강도에도 불구하고 나를 무척이나 안심시켰다. 앞서기는 어려워도 하위 5%로 떨어지지 않으면 괜찮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잘한 생각인지, 아니면 불행을 예고한 것인지 지금까지도 혼란스럽다.

  어쨌든 나는 첫 승진 케이스에서 덜컥 대리승진을 한 것이 어쩐지 불편했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이 전부 대리승진을 한 것은 아닌가 하고 명단을 유심히 살펴봤다. 모두 승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그들은 하위 5%에 들었거나 나보다 더 낮은 고과를 받았던 것일까. B+와 B만 있는 나보다 낮은 고과를 받은 동기들이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안도감 보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혹시 뭔가 잘못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금방이라도 메일함에 대리 승진자 명단에 착오가 있었다는 공지가 뜨거나 사내번호로 전화가 걸려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그런 공지는 뜨지 않았고 전화 또한 걸려오지 않았다. 어리벙벙한 상태로 2001년의 12월을 보내고 2002년 1월 1일자로 나는 대리 직급을 달았다.

  하는 일이 바로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3월 업무개편에서는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서 좀 더 책임 있는 일이 주어진다고 했다. 책임이라는 말에 마음이 두근거렸지만 그저 밑으로 밀리지만 말자고 생각했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었다. 2002라는 달력의 숫자가 주는 안정감일 수도 있었다. 당시에 나는 토정비결이나 재미로 보는 운세 따위를 즐겨 보았다. 재미로 본다고 했지만 하루하루 신문에 나오는 운세를 볼 때마다 2002년의 운세가 매번 좋게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귀인이 돕고, 어느 방향으로 가도 해로울 것이 없는 운세였다.

  대리 승진은 내게 두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하나는 급여가 8%나 오른 것이고, 또 하나는 나보다 먼저 입사한 업무직 여사원들의 특별한 시선을 받게 된 것이다. S그룹의 대졸 초임 급여는 많은 이들이 부러워 할 만큼 상위 클래스였고, 거기에 8%가 올랐으니 나는 갑자기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여윳돈이 생기니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다음으론 여기저기서 누구누구가 내게 관심을 가진다는 얘기가 들렸다. 학창시절에도 입사 후에도 연애다운 연애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당혹스런 일이었다. 언변이 좋은 것도 아니고, 인물이 잘 난 것도 아니고, 스스로 별 매력이 없다고 생각한 나로서는 그런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그저 소문정도로 여겼으나 복도에서, 사무실에서 그리고 회식자리에서 분명 달라진 여사원들의 눈빛을 받았다. 뭐랄까. 내 셔츠 위로 쏟아지는 시선이 셔츠를 뚫고 들어와 맨살에 닿는 느낌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손으로 팔이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단순히 대리로 승진했다는 사실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나 몇 번 의구심을 가지기는 했다.

  그리고 2002년 3월에 생에 최초로 차를 샀다. 2002년은 전국이 축구열기로 뜨거웠다. 한일월드컵개최가 결정되고 주요도시마다 웅장한 최신형 축구경기장이 들어섰다. 내가 근무하는 J시에도 우주선 모양의 타원형 경기장이 완성되었다. 오대 영이라는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인맥축구논란을 잠재운 네델란드출신의 히딩크가 축구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외국인 감독 선임은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자동 출천하는 대표팀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였다. 대그룹을 중심으로 축구동호회가 창설되었고, 축구열기를 북돋운다는 차원에서 계열사별 대항전 경기도 자주 열렸다.

  세상이 월드컵 열기로 달아올랐을 때 S그룹도 과감한 도전을 시도했다. 자동차회사를 새로 만들었다. 비록 일본에서 핵심기술을 전수받고 외장부품만 국내에서 생산해 조립했지만 S자동차의 이름을 달고 첫 모델이 출시되었다. S그룹 계열사의 대리급 이상 직원들에겐 출시 기념으로 30%할인이란 파격적 혜택을 주었다. 총무과에서는 직원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구매를 종용했다. 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 필요성도 그리 느끼지 않았다. 다만 오른 급여가 제법 쌓였고, 무엇보다 첫 출시한 모델의 디자인이 맘에 들었다. 딱히 꼬집을 수는 없지만 날렵하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강렬한 골드 색상! 화이트나 블랙, 기껏해야 실버톤이 전부였던 국산차에 비해 눈부시게 아우라를 내뿜는 골드 빛 광택은 한 순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내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1등의 색깔, 귀족의 색깔, 부와 명예의 상징인줄만 알았던 골드 색이 내면으로 파고드니 다른 색으로 변했다.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응축되었던 것이 발산하고, 무한정 퍼져 나갔다.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싶었고, 다른 색의 가치를 높이고 싶었다. 골드 색이 그렇게 나를 유혹했다.

  질주하는 S자동차의 황금빛 세단이 TV광고에 자주 나왔다. 나는 광고를 볼 때마다 내 육체에서 영혼이 이탈하여 TV광고 속의 번쩍거리는 세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환상에 빠졌다. 내가 운전하는 차는 눈부신 광채를 발산하며 빠른 속도로 질주해 태양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무수한 빛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 것이 광고의 힘이라면 나는 포로가 된 셈이었다.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구매를 결정했다.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된 7월에 내 인생의 첫 차인 골드 색상의 세단을 인도받았다.

  골드와의 첫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나는 장롱면허증인 상태였다. 자동차 판매사원이 도로연수를 시켜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해서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언자인 판매사원을 옆에 태우고 엑셀을 밞은 순간 차는 굉음을 지르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머릿속이 시커멓게 변했다. 나는 운전대를 놓쳐버렸다. 차가 인도로 돌진하면서 은행나무 가로수를 들이 받았다. 우지끈 소리가 나면서 차는 멈췄다. 곁에 있던 영업사원이 재빨리 한 손으로 핸들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 브레이크를 밀어 작동시키지 않았더라면 지나던 행인을 치었을 지도 몰랐다. 차가 멈추었지만 심하게 뛰는 심장은 쉽게 멎지 않았다. 119 앰뷸런스가 금방 달려오고 나는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긴장이 풀어졌는지 스르르 눈이 감겼다.

  눈을 떠보니 병원 침대였다. 팔, 다리, 머리는 모두 멀쩡했다. 통증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영업사원이 근심어린 얼굴로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나는 영업사원에게 물었다.

  “차는 어떻게 되었어요?”

  그 때 왜 차의 안부를 물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영업사원의 안부를 먼저 묻는 것이 도리에 맞는 것이 아니었을까.

  “차는 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일단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고, 차분히 연수를 시켜드려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영업사원이 말끝을 흐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그가 죄송할 것은 없었다. 그가 탁송된 차를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도로변에 정차하고 키를 건네기 무섭게 운전석에 바로 앉은 것은 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장롱면허증 소유자이고, 면허를 취득할 때 말고는 한 번도 운전을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나는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으면 차가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스르르 미끄러지며 앞으로 나아갈 줄 알았다. 눈앞에서 번쩍거리는 황금빛 세단이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을 불러 일으켰다. 앞을 주시한 채 서서히 엑셀을 밟으라는 영업사원의 말이 들린 것도 같았다.  

  어쩌면 사고는 2002년이 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대리로 덜컥 승진을 했고, 예사롭지 않은 여사원들의 눈빛을 받다가 소위 사내에서 퀸카로 소문난 8년차 가영 대리와 연애를 시작했고, 축구국가대표팀은 예선을 통과하고 16강을 넘어 8강을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시도하면 모든 것이 이뤄질 것 같았다.

  2002년의 사건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 가영 대리와의 만남이었다. 가영 대리는 나보다 입사가 빠른 8년차였지만 고교를 졸업하고 입사했기에 나와 나이가 같았다. 그녀는 먼저 내 앞으로 와서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

  “조 대리님 우리 사겨요. 저 괜찮죠?”

  그 때 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를 쳐다볼 수 없었다. 고개를 수그리고 바짓단 끝의 구두코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저를 좋아하는 거 맞아요?”

 나는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까닥거리고는 바로 다가와 팔짱을 꼈다. 그녀의 가슴이 물큰 팔뚝에 느껴졌다. 내 가슴에서 쿨렁 소리가 났다.

  사고 후 골드는 1주일이 지나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손바닥으로 골드의 차체를 쓸면서 한 바퀴를 돌았다. 손바닥에 따뜻하고 매끄러운 감촉이 전달되었다. 광택은 어디 하나 흠난 것 없이 완벽하게 복원되어 제 빛을 퉁겨냈다. 원형의 엠블럼은 황금빛 보닛 위에서 도도하게 은색으로 빛났다. 광폭타이어는 날렵한 휠을 감싼 채 아스팔트를 탄탄하게 딛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직장에 승진에, 차에 멋진 애인까지.

  가영 대리는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 진출을 결정하는 날 저녁, 골드 안에서 내 입술을 훔쳤다. 나는 가영 대리를 태우고 빵 빠 방 빵, 빠방 빠 빵빵! 리드미컬하게 경적을 울리며 거리로 나왔다. 태극기로 배꼽티를 만들어 입은 가영 대리가 정지신호가 걸린 틈을 타 운전석의 시트를 뒤로 젖혔다. 천천히 눈을 감고 할 새도 없이 가영 대리의 촉촉한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골드 안에 별이 쏟아졌다. 나는 가영 대리의 가는 허리를 끌어당겼다. 뒤차에서 클락션이 울렸다. 빵 빠 방 빵! 그 키스가 있고 난 후 정확히 3달이 지나 나는 가영 대리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대리로 승진한 내게 주어진 업무는 구매담당이었다. S카드 지역본부에서 필요한 물품은 물론 마케팅에 활용할 판촉물을 구매하고 각 지점에 배분하는 일이었다. 내가 그 자리로 배치를 받자 가영 대리는 축하한다고 박수를 쳤다. 실권이 주어지는 자리이고, 승진도 빠를 거라며 나보다 더 환호했다. 경리업무를 담당하던 가영 대리는 자기가 많이 도와줄 테니 업무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구매담당으로 배치 받은 후 첫 주말에 가영 대리는 거제도의 펜션을 예약했다며 1박2일 여행을 제안했다. 골드를 타고 거제도까지 달리는 동안 가영 대리는 내 손을 먼저 잡고 한 번도 놓지 않았다. 나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주말을 보냈다. 그날 가영 대리를 안았다.

  구매담당으로 부임하자 여러 곳에서 물건을 납품하는 담당자들이 명함을 주고 식사약속을 잡으려 했다.

  “대리님 믿을 만한 사람 명의로 통장을 하나 만드세요.”

  “위에 보고할 때는 저희가 별도로 현금을 준비하겠습니다.”

  “술은 좀 드셔야 할 거예요”

  업무상 필요한 미팅이라 해서 나간 식사자리에서 그들이 내게 은근하게 말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가영 대리에게 물어보고 나서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가영 대리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자기가 미리 차명통장도 하나 만들었고, 별도로 현금을 주면 그것은 누구누구에게 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다른 곳으로 발령 날 때쯤이면 단단히 한 몫 잡게 될 거라며 윙크를 날렸다.

  1주일간을 고민한 끝에 나는 회사 감사실로 보낼 구매업체들의 로비상황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가영 대리를 만났다.

  “가영 씨는 내게 가장 황홀한 3개월을 선물해 주었어요. 남자로서 행복했고, 내가 능력 있는 사람 같아 자신감을 가졌고, 미래를 꿈꿀 수 있어서 기뻤어요.”

  “어머! 자기 너무 진지하게 나오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좀 민망하잖아. 난 결혼은 아직 생각 없거든.”

 가영 대리는 내가 결혼얘기를 하는 줄 알고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가영 대리에게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내밀었다. 가영 대리가 미소를 머금은 채 웬 편지냐며 봉투를 열어 보고서를 보았다. 가영 대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얼굴이 찡그러지는 것을 나는 찬찬히 바라보았다. 가영대리가 나를 쳐다봤다.

  “자기 바보야? 얼마든지 즐기면서 살 수 있는데 이런 짓을 왜 해? 내가 맘에 안 들어?”

  “그 보고서에 가영 씨 이름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고민했던 것은 과연 가영 씨가 얼마나 개입되어 있는 가 입니다. 나는 가영 씨를 좋아합니다.”

  “좋아한다면서 이런 짓을 해? 자기한테도 좋고, 모두가 좋은 일이야. 남들은 이 일을 하지 못해서 안달인데. 내가 사람 잘 못 본거야. 내가 준우 씨 찍었고, 추천했단 말이야. 왜 그렇게 사람이 꽉 막혔어. 우리 좋았고, 즐거웠잖아. 계속 그렇게 할 수 있고, 준우 씨 승진도 빠를 거야. 뭐가 문제야.”

  가영대리의 목소리엔 짜증이 묻어났다. 상기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앞서기는 어려워도 하위권으로 밀려나지 않을 자신은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조금씩 사라졌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가 바로 앞에 산처럼 버티고 있었다. 나는 가영 대리의 손을 잡고 드라이브를 하자며 밖으로 나왔다. 골드의 조수석에 가영 대리를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다.

  가영 대리도 골드를 좋아했다. 넓은 실내공간과 골드색 가죽시트가 독특하다며 차에 타면 조수석시트를 뒤로 눕히고 침대처럼 편안하게 누워 있곤 했다. 이런 차를 만드는 그룹의 일원이란 게 자랑스럽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손을 잡혀 탄 가영 대리는 시트를 눕히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고 미간에 깊은 골을 만든 채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나 역시 입을 다물고 앞을 주시한 채 도시의 외곽도로로 빠졌다. 어디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신호에 방해받지 않고 빠른 속도로 달리고 싶었다. 가영대리가 휴대폰을 열어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의 휴대폰이 울렸다. 창에 뜬 발신자 이름에 구매팀장의 이름이 떴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영 대리가 나를 쳐다봤다.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듯 따가운 눈빛이 느껴졌다. 잠시 후 꺼졌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경리팀장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길게 눌러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에 불법 유턴을 했다. 골드가 휘청했지만 이내 균형을 되찾았다. 나는 갓길에 골드를 정차했다.

  “가영 씨 내리세요.”

  가영 대리가 거칠게 차에서 내리고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나는 백미러를 통해 그녀를 봤다. 가영 대리는 내리자마자 휴대폰을 귀에 대고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했다. 나는 골드의 엑셀을 밟았다. 가영 대리가 멀어졌다.  

  한동안 회사가 온통 가영 대리의 스캔들로 떠들썩했다. 구매팀장과 경리팀장을 비롯하여 전. 현직 부장급 팀장과 경영지원 임원 두 사람이 사표를 냈다. 나의 전임 구매담당 선배 두 사람도 사표를 썼다. 회사는 가영 대리를 횡령혐의로 고발했고 혐의가 인정되어 구속 수감되었다. 그녀가 횡령한 자금은 십억 대가 넘었다. 경리팀에만 근무한 8년 동안의 누적금액이라고 했다. 나 역시 조사를 받았다. 그녀와 데이트를 하게 된 경위와 차량구매자금의 출처를 추궁 당했다. 그녀에게서 선물 받은 것이 무엇인지도 물었다. 그녀는 골드가 사고 후 다시 온 날, 골드에게 어울릴 거라며 골드색 십자가 펜던트를 룸미러 뒷면에 걸었다. 나는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경위서를 한 장 쓰는 것으로 조사를 마무리했고, 구매팀에서 교육팀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나는 가영 대리가 수감되어 있던 교도소에 면회를 한 번 신청했다. 가영 대리는 나의 면회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3년을 교도소에서 살고 나왔다. 그녀가 출소하던 날 나는 골드 안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출소하는 그녀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깔끔한 투피스 정장을 차려 입었고, 화장을 한 화사한 얼굴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모습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 앞으로 검은색 정장차림의 젊은이가 다가가 꾸벅 인사를 했고 손짓으로 안내를 했다. 대기하던 검은색 외제차의 뒷문이 열리고 그녀는 그 안으로 사라졌다. 뒷문이 열리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반가운 사람을 만나 포옹이라도 하듯이 차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가영 대리 사건 후로 나는 과장 진급이 5년 늦었고, 차장 진급에선 계속해서 밀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대상자에도 오르지 않았다. 보직은 주어졌으나 의욕을 가지고 진행한 일들이 번번이 상급자 선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C고과는 없으나 A고과도 B+고과도 없는 B의 연속이었다. 한 번 인사담당 임원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임원은 성실하나 특별한 공헌이 없는 것이 승진누락의 원인이라고 했다. 내가 처음 원하던 대로 앞서가기는 힘들어도 뒤처지지는 않을 것 같았던 회사생활이 어그러졌다. 나는 뒤처졌고, 뒤처질 때마다 많은 시간을 골드와 함께 보냈다. 차 안의 골드색 십자가 펜던트가 흔들릴 때마다 그것을 떼어내 버려야 할지, 그냥 두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골드는 손이 많이 가는 차였다. 황금색 외장은 잔 흠집이 자주 났다. 화이트나 블랙차량에 비해 먼지가 조금이라도 내려앉으면 표 나게 광택을 잃었다. 매주 차량용 세제로 거품을 많이 낸 다음 부드러운 스펀지를 이용해 차를 닦았다. 물기를 제거하고 극세사 타올에 고광택왁스를 묻혀 세심하게 문질렀다. 휠 세정제로 휠과 타이어를 닦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엔진오일은 4000KM마다 꼬박꼬박 교체 했다. 6개월 단위로 병원에서 진찰을 받듯 공업사에서 점검을 받았다. 실내의 대시보드와 글로브박스, 센터콘솔, 가죽시트까지 레자왁스로 2주마다 구석구석 닦았다. 그러자 시간이 지나도 골드는 안과 밖 모두 광택을 잃지 않았다. 엔진소리도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골드는 빛이 나는 동안은 거리의 왕자였다.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태양 빛이 강할수록 골드의 아우라는 커졌다. 제 색을 튕겨내면서 다른 색을 비추었다. 후배들이 너도나도 한번쯤은 골드를 타보고 싶어 했다. 관리의 비법을 묻기도 했다. 그 뒷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대단한 차야! 대단한 과장님이고, 근데 만년과장이라니”

  쇳소리가 나던 골드를 공업사에서 되찾았다. 쇳소리가 사라졌다. 처음처럼은 아니지만 잔잔한 실내에서 시트를 뒤로 누이고 풋레스트에 왼발과 오른발을 꼬아 가볍게 올려놓은 채 한동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라디오를 클래식채널에 맞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두통은 가라앉았고, 심장맥박도 정상이었다. 나는 누운 상태에서 십자가 펜던트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눈을 떠보니 펜던트의 골드 색이 약간 바래있었다.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골드야! 괜찮아?”

  골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른 엔진소리만이 낮게 들렸다. 쿨렁거림도 사라지고, 엔진소리를 덮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이 울려 퍼졌다. 골드와 함께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나에게 물었다. 그런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았다. 곡이 끝나자 시트를 세우고 출발했다. 골드색 십자가 펜던트가 달랑거렸다. 세척을 한번 해야 할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엑셀을 세게 밟았다.

  신호가 없는 사거리에서 주위를 살피며 속도를 늦추는데 차량 한 대가 조수석을 향해 돌진해왔다. 급하게 경적을 울렸지만 차는 멈추지 않았다. 쾅 소리와 함께 몸이 등받이에서 떨어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며 고개가 휘청 뒤로 꺾였다. 안전벨트를 안했다면 머리가 앞 유리창에 부딪힐 뻔 했다.

  순간적으로 상황판단이 되지 않았다. 나는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위해 깜박이를 넣은 채로 좌우를 살피며 속도를 늦췄다. 뒤도 아니고 앞에서 조수석을 향해 돌진한 상대차량은 사거리 우측에서 좌회전을 한 셈이었다. 길게 돌아 황색실선을 넘어 주행해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거의 멈춰서 있는 내 차를 향해 돌진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앞을 주시하지 않았거나 운전이 미숙한 경우가 아니라면 벌어질 수 없는 충돌이었다. 나는 몸에 이상이 없는 지 여기저기 움직여보았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안전벨트를 풀고 밖으로 나왔다. 앳된 얼굴의 청년이 황급히 차문을 열고 나와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때서야 허리가 욱신거리고 고개에 뻐근한 통증이 느껴졌다.

  다음날 가해차량의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다. 내 차량가액이 248만원인데 수리비 견적이 550만원이 나왔다고 했다. 나는 잘 고쳐달라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잠깐 뜸을 들이더니 차를 수리하려면 내가 300만 원 정도를 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어제 사고수습 시에 골드를 향해 돌진한 청년이 자기가 내비게이션을 보며 운전하다가 중앙선을 넘어 사고를 냈다고 말했다. 긴급출동한 상대편 보험사에서 청년의 과실이 90%이상이라고 분명히 말해주었다. 100%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찜찜했으나 몸이 아프면 병원에 꼭 가보라는 이야기까지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같아서는 병원침대에서 한 1년 정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누워있고 싶었다. 허리나 머리, 아니면 갈비뼈라도 서너 대 부러졌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골드의 조수석 앞 상향등이 깨지고 오른쪽 바퀴가 안으로 밀려 차축이 휘었다고 했다. 범퍼와 오른쪽 문도 심하게 찌그러져 전부 교체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비용이 전부 550만원이 드는데, 내 차의 차량가액이 248만원 밖에 되지 않아 가액을 초과하는 비용은 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보험사 직원은 약관의 조항을 들먹이며 설명했다. 나는 어쨌든 사고를 낸 쪽은 그 쪽이니 무조건 차를 완벽하게 고쳐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몇 번 더 보험사에서 전화가 걸려왔으나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보험사에서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를 보냈다. 차를 찾아가지 않으면 폐차를 하고, 차량가액인 248만원을 통장에 넣을 테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다.

 “피해차주입니다. 내 차는 비록 18년 된 차지만 바로 어제까지 멀쩡하게 아무 문제없이 잘 운행되던 차입니다. 내가 가해자도 아닌 피해자입니다. 사고가 나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만 주면 됩니다.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젊은 친구가 내비게이션을 보다가 사고를 냈다고 증언했지 않습니까? 내 차와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그냥 사고가 나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만 주면 됩니다. 내가 피해자인데 그게 그렇게나 무리한 요구입니까? 왜 내게 돈을 내라 마라 하는 겁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골드, 아니 내 차의 가액이 248만원이라니요. 그 가치는 도대체 누가 정하는 겁니까? 나의 추억, 나의 소망, 나와 골드의 대화, 골드의 심장소리 그 모든 것들에 누가 값을 그 따위로 매긴 겁니까? 다시 말하지만 골드를 사고 나기 전의 상태로 그대로 복원해서 내 앞에 갖다 놓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뭔 짓을 할지 모릅니다. 내가, 내차 골드가 피해자란 말입니다.”

 상대방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나는 나오는 대로 말을 쏟아냈다. 수화기 저 편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인사과에서 면담요청이 들어왔다. 장기 승진누락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대강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갔다. 나는 바쁜 일처리가 있다며 면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후 반차를 내고 나는 골드가 견인된 자동차공업사로 향했다.

 어제 내가 가입한 보험사의 전화를 받았다. 교통사고가 접수되었는데, 상대보험사에서 9대1로 사고처리를 하겠다고 통보가 왔는데 그렇게 해도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상대방이 100% 과실이 아니냐고 물었다. 내 보험사 직원은 난처한 듯 잠시 머뭇거렸다. 사고 당시에 왜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고당시를 떠올렸다.

 젊은이가 맞은편에서 뛰어나와 머리를 곧바로 조아렸다. 연신 미안하다며, 자기가 미처 앞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친 데는 없느냐며 자기가 모두 책임지겠노라고 했다. 젊은이의 차는 보기에도 출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차였다. 동그라미 네 개가 균등하게 잇대어진 엠블럼이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골드도 나름대로 제 색을 튕겨내고 있었지만 범퍼가 형편없이 찌그러져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다. 곧이어 젊은이가 가입했다는 보험사 직원이 나타나더니 상황을 정리했다. 자기 측 운전자가 가해차량이니 보험을 통해 모든 것을 복원해 주겠노라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라는 말까지 덧붙이고 나서 내 차의 연식을 물었다. 나는 18년이 되었노라고 말했다. 그 때 젊은 운전자도 보험사 직원도 얼핏 웃는 것 같았다. 넋 나간 사람처럼 기운이 빠져 있는 나를 바라보며 아는 공업사가 없으면 자기네와 협약을 맺은 1급 정비공업사로 차를 견인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골드에게서 십자가 펜던트를 꺼내 양복 안쪽 호주머니에 넣었다. 이 차는 내게는 아주 오래되고 소중한 차니 잘 고쳐달라고 말했다.  

 나는 사고당시의 상황을 보험사 직원에게 말했다. 전화를 걸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노라고 했다. 직원이 길게 한 숨을 쉬었다.

  “고객님! 상대편 차가 갓 출고한 새 외제차량입니다. 교통사고는 아무리 해도 100%과실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9대 1이라 해도 그 차 수리비용이 1000만 원 이상이 나왔답니다. 고객님 차는 연식이 오래되어 차량가액이 낮습니다. 오래된 차라 부품 구하기도 쉽지 않고, 제대로 고치려면 고객님 차량 가액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나옵니다. 보험사에서는 차량 가액만큼만 보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단 고객님 차를 가서 보시고 폐차를 하시든지, 아니면 중고부품으로라도 저렴하게 고쳐달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봤는데, 차라리 폐차하고 이번에 새로 차를 구입하시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아! 참고로 상대차량 수리비가 많이 나와서 내년부터 고객님 보험료가 할증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9대 1이라지만 외제차와 부딪히면 참 재수 없는 경우지요. 사고 당시에 저희를 불렀으면 그 자리에서 어떻게 조정을 해봤을 텐데 아무튼 그렇습니다.”

 골드는 사고당시의 찌그러진 상태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정비공업사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다. 부딪힌 부위는 도색이 벗겨져 검은 칠이 드러나 있었다. 운전석 문을 열고 골드에 탑승했다. 혹여 골드가 내게 어떤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한참동안 기다렸다. 골드는 힘에 겨운지 아무 말이 없었다.

  시동을 걸었다. 평상시처럼 시동은 금방 걸렸다. 기어를 중립에 놓고 엑셀을 밟았다. 쇳소리가 심하게 났다. 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후진 기어를 넣고 다시 엑셀을 밟았다. 끽끽 소리가 나면서도 골드는 움직였다. 다시 전진 기어를 넣었다. 덜커덩거리기는 했지만 골드를 운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로로 나서기 전 물티슈로 골드의 구석구석을 닦았다. 먼지가 시커멓게 묻어났다.

  어디로 가면 골드를 골드답게 재생할 수 있을까. 그런 곳이 있기는 할까. 그래도 지금은 앞으로 가야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도로를 향해 핸들을 돌렸다. 골드의 휘어진 바퀴에서는 연신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났다. 쇳소리는 조금씩 커졌다. 사거리에 접어들자 신호등이 녹색에서 주황색으로 바뀌며 깜박거렸다. 나는 엑셀을 밟으려다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골드가 아무래도 사거리를 안전하게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골드가 정지선을 밟고 멈춰선 순간 덜커덕 하며 앞 범퍼 한쪽이 떨어져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 때 가영대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내가 감사팀에 그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를 올린 직후였다.

 “자기가 황금색 세단을 좋아해서 자기도 나와 같은 부류인 줄 알았어. 모든 게 다 순간인데, 그냥 즐겁게 살고 싶었어. 십자가 펜던트 있잖아, 그거 가짜 아니야. 진짜 금이거든. 그걸 사면서 나도 어쩌면 다른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어. 자기가 너무 완강하게 거부해서 그런 기회를 놓친 게 아쉽지만 나는 자기가 더 걱정돼. 아마 오래도록 외롭거나 힘들지 않을까하고……”

 관리하기 힘든 골드를 왜 그동안 그렇게 애지중지 아꼈을까. 새 차를 사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을 것인데도, 나는 골드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었으니 가영대리의 예언을 빗나가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금은방에서 세척한 십자가 펜던트를 다시 룸미러에 걸었다. 차 안이 훤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 외롭거나 힘든가 하고 나에게 물었다. 어쨌든 골드가 있어서 나는 외롭거나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틀렸다. 그럼 내가 옳은가 하고 물었다. 2002년이 주었던 안정감과 들뜸. 그리고 선택, 그 시간이 내게 있었음으로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나를 다독였다.

  신호가 녹색등으로 바뀌자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엑셀을 밟았다. 끼익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도 골드는 앞으로 나아갔다.  (끝)
 


 

  <당선소감>

 

   작은 목소리를 들어준 데 감사를

  오랫동안 소설가를 꿈꿨다. 19살에 첫 신춘문예투고를 했으니, 올해로 34년의 시간이 흘렀다. 

  간간히 투고를 쉬었던 시간도 있었지 만 매년 우체국에 들러 신춘문예에 응모 후 마감했던 나의 12월의 정례행사를 이 제 마치게 되어 시원섭섭하다. 

  무엇이 그 긴 시간을 소설의 곁에서 서 성거리게 했을까? 아마도 나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픈 욕망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도 알 수 없던 나에 대한 탐구가 세상과 타인으로 확장 되었다. 

  어느 사이 내 안 깊은 곳에서 이야기가 꿈틀거렸다. 

  처음엔 나의 이야기였으나 시간이 흐 르자 그것은 너의 이야기였고, 그의 이 야기거나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얘기 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그리고 는 더 사랑 할 수 있을 거 라 믿 는 다. 

  가르침을 주 신 생 오 지창작촌의 문순태, 은 미 희 선 생 님 께 존 경 과 감사를 드린다. 생오지에서 웃고 울 었던 문우들의 기뻐하는 모습도 눈에 선 하다. 함께 멀리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든든한 지원군! 아내와 3남매의 믿음 이 내 안의 힘을 키워줬다. 

  고맙고 사랑한다. 나를 성장시킨 삼성 생명과 한화투자증권의 고객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 

● 광주 출생
● 광주 설죽로 거주
● 전남대학교 졸업


 

  <심사평>

  

  작품 전반에 깊은 사유의 흐름 깔려

  최근에 조사된 국민 한해 독서량은 형 편없었다. 이처럼 문자 매체 자체가 경 원시 되는 비주얼 시대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단한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실감했다. 

  예상을 뛰어넘은 90명(108편)의 작품 중에서, 예심을 거쳐 올라온 10여 편을 검토하고, 여기서 네 편을 골랐다. 정은 희 씨의 <밤의 산책>, 김선규 씨의 <달>, 신예하 씨의 <상실의 벽>, 김만성 씨의 <골드>였다. 

  <밤의 산책>은, 가난한 가정을 성실히 꾸려나가는 주부이자 어린이집 교사로서의 주인공이 겪는 애환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달>은, 저마다의 처절한 아픔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다. 활달한 문체로 공감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상실의 벽>은 폭력의 이야기다. 신체적, 정신적, 개인 또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유형의 폭력과 상처들의 예를, 담담하게 펼쳐 보인다. 세련된 문체와 예민한 관찰력, 끝까지 주제를 놓치지 않는 끈기도 만만치 않았다. 

  <골드>와 <상실의 벽>을 두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골드>에 낙점을 찍었 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 그것들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저력이 있었다. 

  작품 전반에, 깊은 사유의 흐름이 배어 있다. 이만하면, 문장과, 주제와, 작가의 자기 생각을 기본적으로 보자 했던 심사의 취지는 충족된 셈이다.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 더욱 정진해주시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 김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