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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식해

오솔뫼

 

01.

마음의 찌꺼기를 갉아 먹고 자라는 기생충이 있다면 내 안의 기생충은 얼마간 그럭저럭 포식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를 보낸 지 49일 후부터는 날을 헤아리는 일도 관두었다. 수십 번 아내를 따라 바람이 되고 싶은 날들이 오래다. 세상의 들녘이 검고, 풍경소리는 쨍하다.

어떤 연유에선지 슬하에 자식도 없고 일찍이 돌아가신 아버지보다도 훌쩍 나이를 먹어, 지금은 텅 빈 집을 지키는 늘그막 한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 한 평생 옆구리를 때워주었던 아내의 빈자리는 씻어 엎어놓은 장독의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더욱이 그 애처로운 구멍을 벌름거린다. 이제 아내의 젓갈이 담긴 장독도 두 개뿐이다. 간밤에는 잠이 오질 않아 젓갈 위에 소금더미를 냅다 부어버렸다. 소금이 눈가로 튀어 따갑게 박혔다. 소금자루를 연신 들었다 놨다 하느라 눈을 비빌 기력까지 전부 소진해 버렸다. 그래서 모로 누워 매일 밤 준비해두는 마른 수건을 얼굴 밑에 받치고 잠을 청했다. 자는 동안 뜨겁게 녹아내릴 소금줄기들이 베갯잇을 적시기 전에.

잠이 든 것은 해가 뜨고 난 무렵이다. 아내가 살아있었다면 밤새 이불 밑으로 닿던 살결이 부엌으로 향할 시간이다. 그때만큼은 아내가 없는 넓은 비단 이불 위에서도 외로운 줄을 몰랐다. 언제부턴가 아침이 아니면 잠들 수 없었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아내는 거친 배낚시를 나보다 더 잘 견뎌내던 건강한 여자였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가자미식해를 세상에서 제일 맛나게 담그던 여자였다. 애지중지 키워온 외동아들을 가로채간 바닷년이라고 온갖 트집을 잡아 시집살이를 시키던 어머니마저 아내가 내민 가자미식해만큼은 군말 없이 잡수었다. 아내가 살던 지역에서 특히 어획량이 많은 가자미를 처가에서는 매년 때가 되면 아이스박스가 비좁을 정도로 담아 보냈고, 아내는 인심 좋은 장모를 닮아 주위에 나누는 것을 덕으로 삼았다. 깐깐하고 인색한 우리 어머니가 아내를 못마땅해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아내와의 데이트는 주로 물가에서 이루어졌다. 빠듯한 원고료가 들어와 겨우 기름 값이 생기면 바다를 가거나 하다못해 강가, 호숫가, 도심의 작은 분수대라도 아내는 물이 있는 곳이어야 안심하는 습관이 있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푼돈이나 벌어보자고 복학생 형의 차에 구겨 타 울산으로 향한 날이었다. 장소는 어김없이 바다였다. 진하 해수욕장에서 열리는 백일장 상금이 제법 쏠쏠하다고 들어 우리 궁문들은 망설임 없이 뜨겁게 달궈진 모래 속으로 몸을 던졌다. 궁문은 궁핍한 문예학도들의 줄인 말로 문학회를 비아냥거리기 위한 말이었지만, 우리들 스스로도 서로를 궁문이라 불렀다. 단순히 어감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허술하기 그지없는 백일장 행사는 그대로 모래 위에서 이루어졌다. 작은 대자리 하나씩을 주었지만 달궈진 모래보다는 내리쬐는 일광이 문제란 걸 주최자들은 도무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나 뻥 뚫린 바다를 앞에 두고도 작은 종이쪼가리에 마음을 붓기엔 우리는 너무나도 청춘이었다. 꼭 상금을 타겠다는 일념보다는 결국 놀음을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유난히 타는 해가 머리 축 뒤로 한 뼘을 옮겨갔을 때 아내를 만났다. 하얀 수포가 밀려오는 백사 위에 앉아있던 아내는 그 중에서도 가장 반짝이는 진주알 같았다.

02.

가끔씩 전화기의 존재를 잊을 즈음 한 번씩 걸려오는 전화를 그마저도 거르는 일이 잦아졌다. 전화를 거는 사람은 여럿 떠나고 없는 내 좁은 인맥 중에서도 아주 한정적이었다. 아내의 장례식에서 조의금을 가장 많이 낸 이십 년 지기 원고 담당자와 소일거리 삼아 돕기 시작했던 마을 글방의 젊은 선생 정도다. 며칠씩이나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 이쯤 되면 내 생사를 염려할지 몰라 수화기를 들었다. 달칵. 연결된 전화는 원고 담당자의 것이었다.

선생님 제발 전화 좀 받으세요. 사람이 간이 졸여서 살 수가 있겠습니까, 어디?

이십여 년 전 출판사 접대실에서 원고 담당자를 만났다. 그는 신입사원이었고, 당시 막 등단한 신인 작가인 내 담당을 맡게 되었다. 피차 일을 해본 경험이 없어 서투르기는 매한가지였다. 드디어 궁문을 탈피해 기쁨에 겨워했던 마음도 오래가진 않았다. 미숙한 신인 작가와 요령 없는 신입 사원의 조합은 소속된 출판사에서도 내놓은 찬밥 신세였다. 돈벌이가 안 될 때마다 이 신입은 죄송하다는 말만 하염없이 읊조렸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변변치 않아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가끔은 진탕 술에 취해 아내와 내가 잠든 집 문간을 두드리며 울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 예쁜 것이다.

아직도 더 졸일 간이 남았나 보이, 자네는.

지금 농담이 나오세요? 가뜩이나 그런 깡촌으로 들어가시는 바람에 찾아뵙기도 힘든데. 계속 그렇게 혼자 계시니 더 고적한 거라고요.

이제 그는 중견 담당자가 되어 여럿 작가들의 원고를 관리하기도 하고, 종종 여행집 출판을 위해 해외로 날아가는 일도 늘었다. 본래 시집만 전문적으로 출판하던 곳이었지만 그것도 옛말이 되었다. 넘쳐나던 시인들은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궁문이다. 한 번도 궁문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았던 조의금 액수보다도 멀리 이국에서부터 열댓 시간의 비행을 마다 않고 한걸음에 달려와 준 것이. 가끔 연락을 하던 궁문회 친구들과 일적으로 몇 번 얽혔던 출판사 사람들, 아내의 친척 정도가 전부였던 쓸쓸한 장례식장이 나는 아직도 아내에게 미안하다. 사람을 좋아했던 아내가 드문드문하게 채워진 장례식장을 보고 실망하여 돌아간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못내 코끝이 짠하다. 함께 살아가는 동안 무엇 하나 풍족하지 않았던 살림에, 거기에 빚더미만 얹어준 못난 남편, 종래엔 치매까지 걸린 어머니까지……. 아내에게 그 많은 짐을 짊어주고 나는 방에 틀어 박혀 싸구려 연필심만 굴려댔다. 마지막만큼은 내게서 나던 쾌쾌한 방구석 냄새나 어머니에게서 나던 지독한 누린내 말고도, 사람다운 사람 냄새를 맡게 해주고 싶었던 바람도 아쉽게 되었다.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미안한 일이 되었다.

선생님. 다시 서울로 올라오십시오.

봄이로구나. 아내는 겨울바람에 실려 떠났고, 날을 세지 않아도 성큼 걸음으로 봄은 담장을 넘었다.

선생님이 써주셔야 할 글이 하나 있습니다.

겨우내 마음을 부식시키던 소금바람 위로 꽃 내음이 물결처럼 흐른다. 아아. 다사로운 바람이 당신 같구려.

내일 아침나절에 찾아 뵐 테니 어디 가지 마시고 꼼짝없이 계세요.

봄이요, 여보.

그래도 오랜 벗을 맞는 예의로 동네 어귀에 있는 이발소에 들렀다. 몇 달 사이 완전히 하얗게 샌 머리를 거울로 보고 있자니 어디 깊은 산골짝에 수십 년 입산해 있던 도인이 따로 없다. 아주 짧게 깎아주시오. 덜덜거리는 낡은 바리캉이 뒷목부터 치고 올라올 때면 등단작 발표를 기다리던 그 순간보다 더 짙은 긴장감이 몰려온다. 차갑고 낯선 금속이 시원스레 머리를 쳐냈다. 면도까지 하고 한결 깔끔해진 볼과 턱을 쓸며 주머니에 넣어온 몇 푼을 꺼내어 때 묻은 이발사의 손에 쥐어준다. 머리를 벗었을 뿐인데 눅진 마음의 잔해까지 벗은 듯 한결 민둥해 진 몸뚱어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안개시리를 밟는 것처럼 뭉글뭉글했다.

선생님! 어디 가지 말고 계시라니깐……. 머리는 언제 자르셨어요? 통 댁에만 계시는 줄 알았더니.

까슬하게 돋은 백발의 머리를 습관처럼 쓸어 넘기던 손이 자연스레 제자리를 찾아 내려온다. 기나긴 장발의 머리를 쓸던 습관도 이제 불필요한 행동이 되었음을, 벌써부터 인식하기란 걸음 더딘 노인네에겐 이른 일이다.

온 김에 밥이나 한 술 들지? 가자미식해 좋아했었나?

사모님 가자미식해라면 좋지요.

호젓한 마루 위에 세워둔 밥상을 끌어다 피고 찬거리도 몇 개 없으니 냉장고에서 있는 대로 끌어오라 시켰다. 그리곤 부엌 안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다가 옆에 놓인 신식 전기밥솥에서 밥을 푼다. 서울의 집을 놔두고 이향민처럼 이곳으로 내려올 때 꾸려온 것은 딱 두 가지였다. 고슬고슬한 잡곡밥을 잘 짓는 전기밥솥과 아내의 가자미식해가 담긴 작은 항아리들. 그래도 밥을 먹고 살 생각은 있었는가보다. 특별히 수저를 들던 기억은 없는데 여태껏 살아있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끼니는 챙겼을 것이다. 늘그막해지니 삶에 대한 열의도 터무니없어졌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정도의 배포도 없는 남자란. 이래서는 어느 세월에 아내 곁으로 갈지 알 수 없다.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세네요.

차곡차곡 쌓아올린 반찬을 한꺼번에 들고 마루로 와 앉은 그의 양복 깃이 바람에 펄럭인다. 쥐색의 맞춤 양복이 영 어색하기만 하던 신출내기였다. 함께 산전수전 다 겪어가며 근 이십 년을 봐오던 이가 오늘따라 새삼 반가운 인연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인가.

선생님…….

고봉으로 퍼 담은 밥을 한 숟갈 가득 뜨던 그가 힘없는 한숨과 함께 숟가락을 내려놓기 전까지는 문득 나를 찾은 그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문득 어젠가, 뺨을 쓰는 봄바람에 홀려 그의 말을 어디론가 흘린 듯도 싶다.

귀양살이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메일은 고사하고 전화까지 안 받으시면 저 못 삽니다, 정말. 저랑 같이 올라가세요.

더는 일 없대도 그러네.

얼마 전 담장 앞에 핀 덜 영근 매화꽃을 따다 볕 좋은 곳에 말려두었다. 때마침 끓여두었던 둥굴레 차를 다 마셔 그에게 맛보일 겸 아침나절부터 새로이 한 솥 가득 끓여냈다. 얼마나 넣어야할지 몰라 두 줌을 넣었더니 쌉쌀한 맛이 강하지만 덕분에 달인 물이란 느낌도 든다. 우물거리던 밥을 삼키고 이번엔 매화차 한 모금을 삼킨다. 늘 지병처럼 앓았던 위장염 때문에 밥 한 숟갈마다 물 한 모금으로 입을 헹궈야만 밥을 넘길 수 있다.

저는 있습니다. 이런 부탁도 다신 안 드려요. 마지막으로 딱 책 한 권만 내세요. 그러면 저도 더는 선생님이 귀양살이를 하시든, 전국일주를 다니시든 신경 안 쓸 거예요.

써둔 시도 없고 쓸 시도 없는데 무슨 책을 내잔 말인가. 언제부터 이렇게 터무니없어졌는지 모르겠구만.

높은 산 등을 타고 넘어온 해가 뒤늦게 마당을 지분거리며 발치까지 다가선다. 해가 왔으니 바람이 세도 춥지는 않을 것이다. 선천적으로 따스한 해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아내는. 나는 아내의 따스함 앞에 부드럽게 녹아내린 풍랑이었다. 이 외로운 바람만 남기고 아내마저 떠났으니 해 없는 바람은 빈 공기처럼 스산할 뿐이다. 더는 시를 쓸 여력도, 버티어낼 힘도 잃었다. 그야말로 파도 한 자락 일 수 없는, 나는 노풍이다.

저도 이제 차장입니다. 힘없이 투고자리 뺏겨서 선생님 곤란하게 만들었던 풋내기 아니에요.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리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세요.

요즘은 종이 위에 물결 한 줄 찍어 내리는 일도 버겁다. 간신히 살아가는 것이 전부다. ‘버겁다는 말도 간신히라는 말도 거짓말이 아니다.

서울 올라가세요. 사모님 영전 앞에 놓을 책. 쓰십시다, 선생님.

버겁고, 간신히, 아내를 그리며 너무 긴 하루를 버티는 것이다. 그런데…… 굳건한 맹세와 함께 나눈 금가락지 말고 내가 아내에게 준 선물이 무엇 있더라.

03.

시집 한 권을 내는데 3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꽤 순조로운 진행이다. 나의 오랜 벗을 따라 서울로 올라온 지 두 계절이 흘렀다. 여생을 불태우려는 나방처럼 어두컴컴한 방 안에 밤낮없이 켜진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그렇게 꼬박 두 계절을 보냈다. 가끔 찾아오는 그는 때마다 전복죽이나 잣죽, 깨죽 같은 것을 사들고 왔다. 종종 늙어 주저앉은 등이 위를 짓누르듯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때마다 더부룩함이 동반해오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그가 사온 죽으로 속을 달랬다.

오랜만에 자리에서 일어서 아내가 자주 기대던 발코니 앞에 섰다. 아내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전부를 이 비좁은 아파트 안에서 보냈다. 이 집에서 형편없는 생활능력의 남편과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부양하며. 그리고 밤이 되면 이곳에 나와 커다란 호흡을 들이마셨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아내는 늘 그런 식으로 한숨을 삼킨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 애써 둔감한 척만 하는 남편이 아내는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이후로는 아내를 데리고 바다에 가는 일도 없어졌다. 원고에 치여, 하루에 댓 번씩 발작적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어머니에 치여, 지친 눈꺼풀을 내리감는 아내의 늙어가는 얼굴에 치여이런 것들을 변명 삼아 그런 비겁함으로 글을 썼었다. 말없이 달무리를 바라보던 좁은 등과 주저앉아 철창 같은 발코니를 부여잡고 한참을, 정말 한참을 주저앉아 있다가 일어서던 그녀의 뒷모습. 바닷바람에 휘날리던 그녀의 흑단 같던 머릿결이 뭉뚱그려 아무렇게나 묶여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얼마나 커다란 흉을 가슴에 새겼던가.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시집이 나올 때마다 아내는 어머니가 잠든 틈을 타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품 안에 두 권의 시집을 끌어안고 돌아왔다. 한 권은 유리문이 달린 오래된 책장 안에 넣어두고, 다른 한 권은 종잇장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시중에 판매되기도 전 출판사에서 건넨 초판을 주겠다는데도 아내는 한사코 만류했다. 서점에 진열된 책을 양 손에 그러쥘 때의 그 설렘을 빼앗지 말아 달라며 단호하게 말하던 아내는 나 이상으로 나의 시들을 사랑하는 여자였다. 그런 아내였기에 뒤늦은 설움으로 시를 적는다. 곧 파도가 밀려 올 모래 위에 글을 쓰는 것처럼, 아득하고 아득하기만 한 일을 이번에야말로 오로지 아내를 위해 시작하는 것이다.

홀로 된 이후로 다시금 서울의 집에서 지낸지 벌써 반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는데 오늘따라 왜 이리 잊고 있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는지 알 수가 없다. 밤안개에 다 뭉그러진 가로등 불빛을 내려다보며 켜켜이 쌓아둔 그리움을 토해낸다. 불을 끄고 나면 바다를 그리워하는 인어공주처럼, 발코니 위에 선 그녀가 하염없이 어둠에 잠긴 도심 끝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다.

바다. 바다에 가야겠네. 내 말에 그는 흔쾌히 운전기사 노릇을 해주었다. 삼 주 만의 외출이었다. 오래된 벗의 마음은 그러한 것이다. 갑작스런 부탁에도 마다하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온 그는 따뜻한 매화차와 가자미식해만으론 이 흉흉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그녀 앞에 바칠 수 있는 책 한 권의 기회를 그는 내게 선사했다. 고마운 마음을 보답하는 길은 한시라도 빨리 그럴 듯한 책을 엮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한 가지 불만은 오히려 내가 서둘러 글을 엮는다는 점이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우고, 집 밖으로 통 나서질 않는 나의 건강을 염려해서다. 오랜만에 외출하겠다는 내 의사에 되레 부산스럽게 구는 것을 보면 새삼 내게 주어진 인복에 감동하고 만다. 아내도, 그도 좋은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사모님이 바닷마을 출신이라고 하셨던 가요?

그래. 그랬었지. 흘리듯 말을 내뱉고 창밖으로 무수히 스치는 정경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척을 한다. 바위에 부서지는 포말, 투명할 정도로 맑은 물을 튀겨내던 파도, 그녀의 챙 넓은 모자 위로 그림처럼 날아들던 갈매기떼.

감은 두 눈으로는 이미 그 시절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울산까지는 근 다섯 시간이 걸린다. 울산으로 향하는 중간 중간 휴게소에서 소변도 보고, 미지근한 우동을 먹기도 했으며, 어린애마냥 호두과자를 좋아하는 그에게 가장 큰 호두과자 한 상자를 사주기도 했다. 앞으로 두 시간 동안을 더 달려야 하는데 그는 벌써 호두과자 반 상자를 빠르게 비워나가고 있었다. 운전을 하는 내내 날름날름 집어먹더니 결국에는 탈이 나 울산에 다다르기 전 한 번 더 휴게소에서 쉬어갔다. 휴게소 몇 번을 거쳐 거쳐 겨우 도착한 울산 앞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뜨거웠다. 태양도 녹아내릴 정도의 폭염 속에서 아내를 만난 후론 내 가슴 속 아내의 고향은 언제나 이곳이었다. 지나온 세월 모두가 빛바랜 잔상 같은데 어째서 이곳만큼은 날이 갈수록 찬란하게 아내를 비추는 것인지.

이야, 역시 바다는 좋군요.

당장이라도 양복을 벗을 것처럼 앞섶을 펄럭이며 한층 젊은 투로 그가 말했다. 껄껄 웃으며 울산광역시란 글자가 새겨진 빈 파라솔 아래 몸을 앉혔다. 파라솔 덕분에 대자리 없이도 모래는 서늘했다. 궁문회 멤버들과 백일장에 나갔을 때도 이 파라솔이 있었다면 장원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모로 유용한 것이지만 그랬다면 작은 양산을 쓰고 앉아 있던 아내를 보고 한 눈에 반하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그 날의 더위는 끓어오르던 내 열렬보단 덜했다.

자네 안사람은 건강하고?

말도 마세요. 하루에 밥을 다섯 끼도 더 먹는 대장부(大腸婦)예요. 승진하고 보너스타면 뭘 합니까. 애들 학원비보다 아내 뱃속으로 들어가는 게 더 많은데.

우스갯소리로 어물쩍 넘기지만 그는 굉장한 애처가다. 장장 십 년 동안이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는데도 매일 같이 아내 사진을 꺼내어 본다. 가끔 곁눈질로 훔쳐본 그의 아내는 예쁘장하니 귀하게 자란 티가 났다. 밝고 건강한 분위기의 내 아내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런데 아내도 늙기는 늙는가 봅디다. 그렇게 먹어대는데도 왜 갈수록 작아지는지.

아내들이란 원래 그런가보오.

내 말을 끝으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먼 지평선 너머만 오래도록 응시했다. 넘실거리는 파도 위로 부유물처럼 떠다니는 부표를 바라본다. 이 책을 끝마친 뒤 아내의 젯날에 책의 서두를 읊고 나면 나도 여기저기를 부유하다 세상을 떠날 생각이다.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있으려니 눈이 뻐근해져온다. 이미 나의 몸도 낡을 대로 낡았다.

선생님……. 우시는 줄 알았어요.

이 사람. 낯부끄럽게 울기는.

파도가 반사광을 되쏘아 눈을 가늘게 뜨고 있으려니 그가 그런다. 우는 줄 알았다고. 쏴아아. 쏴아아. 출써억. 얕기만 하던 파도가 이제는 너울이 되어 남몰래 구두 앞 코를 적신다.

그러는 자네야말로 울 것 같구만 그래.

아내 생각을 하니 이럽니다.

그래…….

예에…….

적시어진 구두를 바라보고 다시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바다를 본다. 저 먼 바다를. 가지런히 모은 구둣발 앞까지 닿을 리 없는 저 먼 파도와 너울과 물결을.

04.

언제부턴가 아내에게 울화가 생겼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거리도 잠든 깊은 새벽녘, 아내는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는 남몰래 부엌으로 나가 차디찬 수돗물 한 대접을 받아 마시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를 위 아래로 들썩였다. 온 몸에 열이 일어 한 이불을 덮으면 더울 정도였다. 피부가 곱던 얼굴엔 열꽃이 도드라지게 피었다. 체기처럼, 가슴에 단단히 박힌 화가 생긴 것은 나 하나 바라보고 살던 아내를 실망시킨 뒤부터였을 것이다. 도저히 그 때라고 밖엔 생각할 수 없다.

으레 새벽까지 이어지는 중년들의 회식자리는 미시촌이나 콜걸들이 다리를 꼬고 앉아 기다리는 룸살롱 쪽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집에서 선잠이 들어 날 기다릴 아내를 생각해 슬쩍 몸을 뺐으나 그쪽들도 여간해서는 놓아주지 않을 기세로 덤벼들었다. 가난한 시인에게 무얼 바라냐 따져 묻고 싶어도 이미 저 한편에서 흥청망청 마시고 떠드느라 정신없는 출판사 사장과 대리를 보고는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아주 일순간 그렇게 미친 듯이 흥에 취해 있는 모습이 부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볕도 잘 들지 않는 어두운 방 안에 틀어박혀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는 내 삶보다는 화려한 노래방 조명 아래서 옹골진 여자 가슴 사이에 시퍼런 지폐를 망설임 없이 찔러 넣는 그 모습이 더 나아보였다. 그래서 급한 대로 편의점 인출기에 가서 돈 몇 십을 뽑아 돌아왔다. 위치를 헷갈릴까봐 미리 방 번호도 확인해두었다. 13번 방 앞으로 가 문고리를 잡는데 그나마 없는 살림을 살뜰하게 꾸려나가는 아내의 얼굴이 번뜩 떠올랐다. 그러나 젊음의 치기에 취한 남자는 이미 뻑뻑한 문고리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한 움큼 돈을 움켜쥐고 들어온 내 모습에 노래를 마친 여자 한명이 다가와 곁에 앉았다.

오빠야. 그럼 오빠야도 출판사에서 일해?

저는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그럼 시인? 엄머, 잘 어울린다. 오빠야랑 딱이야.

양주가 가득 채워진 양주잔에 얼음을 퐁당퐁당 집어넣던 여자의 허벅지가 은밀하게 붙어왔다. 사실상 은밀하다는 말은 어폐가 있었다. 후텁지근한 룸 안에 있는 모든 남녀가 노골적으로 몸을 붙이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아 움찔하고 무릎을 떨자 곁에 앉은 여자는 아까보다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가슴팍이 푹 팬 옷 사이로 여자의 가슴이 반절도 더 드러나 있었다. 아내의 것 말고 다른 여자의 가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좋아하는 시 좀 읊어줘 봐봐, 오빠야.

여자는 날더러 자꾸 오빠야하는 애교스런 경상도 사투리를 썼지만, 그 외의 말씨는 흠잡을 데 없는 서울말이었다. 확실히 경상도 여자들의 사투리는 애교스럽다. 아내도 경상도 여자다. 하지만 아내는 연애를 할 때도, 결혼을 한 후에도 내게 말을 높이지 않은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아내에게서는 이런 야살스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럼 김충길 시인의 거짓말()도 말()처럼……. 가을걷이로 가자미 몇 마리도 건질 것 없는 어촌…….

엄맘마. 하란다고 진짜로 하네?

여자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전부가 나를 비웃었다. 1연을 다 낭송키도 전에 말을 끊는 여자 때문에 성이 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적어도 1연이라도 끝내고 비웃음을 샀다면 술이나 한 잔 마시고 너털웃음을 지었을 텐데. 아니다. 그래도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을지 모른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2연이다. 밤늦도록 헌 탁자에 둘러앉아 샛하얗게 떠오르는 달을 보며 시름에 겨워하는 아낙들을 그리며 아내 역시 마음이 겨운 표정을 짓곤 했다. 아내라면 내 낭송을 끝까지 듣고 녹녹한 눈동자로 내 손을 잡아왔을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황망한 기분이 뺨을 친다. 마음이 급해져 도망치듯 지하 깊숙이에 위치한 룸살롱에서 빠져 나왔다.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뽑아온 돈뭉치는 결국 한 장 써보지 못하고 고스란히 주머니 속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안개 낀 눅진 대로변에 서서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돌아가야겠다, 어서금, 아내에게로.

잠든 아내를 깨우기 미안해 작업실로 쓰는 골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얼마간 잠들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문득 깨어나 보니 아침을 훌쩍 넘겼다는 걸 알았다. 해가 늦게 드는 골방이 이 정도로 환해지려면 거의 정오쯤은 되어야 한다. 잘 닫히지도 않는 골방 문틈 사이로 잘 지어진 밥 냄새가 흘러드는데도 아내가 깨우러 오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쓰린 속을 움켜잡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더럽지도 않은 거실을 연신 닦고 있는 아내가 보였다. 아내의 뒷모습을 보고 예기치 못한 불안이 엄습해왔다. 이제는 제법 등만 보아도 아내의 기분을 감지할 정도의 눈치가 생긴 터였다.

일어났어요? 밥 들어요. 북엇국 조금 끓였어요.

문소리를 듣고도 돌아보지 않은 아내가 걸레를 접고 일어서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으로 사라진 아내의 기척을 살피며 급한 걸음을 옮겨 욕실로 뛰쳐 들어갔다. 욕실 문을 잠그고 세탁기를 뒤지자 아니나 다를까 와이셔츠엔 간밤 몸을 비비던 이름 모를 여자의 화장품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허탈하게 셔츠를 쑤셔 넣으며 아내에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고심했다. 그러나 계속 기다려도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아 일단 고소한 북엇국 냄새가 나는 부엌으로 갔다. 아내가 묻는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대답할 마음이었다. 쭈뼛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아내가 덜컥 화를 낼까 태연한 척 북엇국 놓인 자리 앞에 앉았다. 숟가락으로 호로록 뜨거운 국물을 떠 마셔도 아린 속이 풀릴 줄을 몰랐다. 차분한 몸짓으로 종기에 담은 반찬을 내놓은 아내는 마지막으로 물 컵 가득 꿀물을 따라 내밀었다. 아내가 입술이 달싹였다. 막상 아내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머릿속이 빠르게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아내를 납득 시킬만한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다.

오늘 어머님 모시고 바람 좀 쐬려구요.

아내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 말은 생각 외로 소박하고 일상적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그 행위만으로 아내의 참담하고 실망스러운 기분은 충분히 전해졌다. 속이 거북해오는 이유는 지난 새벽의 숙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딜?

어디든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내는 그 일을 추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엔 다행이라는 안도가 더 강했다.

그래 뭐……. 가끔은 어머니도 바람 좀 쐬셔야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때의 안도가 얼마나 무지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바람을 쐬는 일은 어머니가 아닌 아내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뒤늦은 후회를 해봤자 아내가 품고 있는 시한폭탄에 불을 붙이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속으로 흘렸을 아내의 눈물, 혹은 가슴 속에 울분을 삭히려 만든 아내만의 바다, 그 파도. 아내의 젖은 심지는 마르지 않았다.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아내는 끝내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거짓말()도 말()처럼 하지 못해 아내가 죽는 그 날까지 죽만 떠먹였을 뿐, 실은 마음 한 자락 어루만져줄 수 없었다.

05.

마지막 원고를 그의 손에 건네주었다. 이것으로 끝이 났다. 그가 비장한 얼굴로 원고를 챙겨 돌아간 후, 곧장 이불 위로 고꾸라졌다. 깊은 수마를 물리치고 깨어난 것은 이틀하고도 반나절이 더 지난 뒤였다.

일반적인 시집의 두께보다는 얇은 편이었지만 아내 돌아왔다 가는 그 짧은 길 동안 읽기에는 충분한 양일 것이다. 어떤 제목을 붙여야 좋을지 몰라 며칠 더 고민해보기로 결정했다. 초판 중에서도 제일 먼저 찍어 나온 첫 시집을 아내에게 바칠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썽거린다. 소리 없이 나를 책망하던 아내의 등에서 이제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동안 침잠되어 있던 죄책감에서, 도저히 면역이 되지 않던 생경한 거리감으로부터, 아내에게로부터. 부디 아내가 이 시집 한 권으로 내 젊음의 과오를 용서해준다면.

아내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제목은 아내와 함께 노년을 보낸 바닷집에서나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세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다시 값 싼 마을버스로 삼십분을 달려 마을 초입에 도착했다. 그럴 듯한 제목을 지어 그에게 전화 한 통만 하면 이제 다시는 서울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감옥처럼 아내를 가둬두었고, 나조차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갇혀있던 그 집으로는. 저 언덕배기 위로 손톱만한 초가집이 보인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걸음만큼은 가볍다. 집이 있는 언덕, 그 너머의 망망대해를 아내도 어디선가 보고 있을까. 아아, 그렇지. 이 정경을 시집 안에 담도록 그에게 부탁을 하면 좋겠다. 아니, 표지로 쓴다 해도 손색이 없는 풍치다.

기나긴 걸음을 이끌고 허술하게 닫혀있던 싸리문을 열어 마당 안으로 발을 들인다. 원고 때문에 서울집에 지내느라 긴 시간 비워두었던 바닷집은 그새 도깨비굴처럼 변해 있었다. 어둡고, 쓸쓸한 집을 잠시 둘러 살핀다. 그리고 마루 위에 덩그러니 놓인 밥솥과 부엌의 냉장고 안 반찬들을 괜스레 덥석거리고는 이번엔 마당으로 향한다. 바닷바람을 맞아 야트막하게 소금기 쌓인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고운 빛깔 그대로다. 그렇게 소금을 부어댔으니 아내의 마지막 남은 가자미식해는 내 목숨 붙어있는 동안은 썩지 않을 것이다. 먹을 수는 없어도 그 안에 담긴 아내의 정성은 남겠지.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 액정에 낯익은 번호가 뜬다. 고작 서너 시간 전에 헤어진 그였다. 원고를 쓰는 동안 칩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서 발 디딜 틈 없이 너저분해진 집을 치워놓겠노라 하던, 바쁜 일 마다하고 늙은이 뒤치다꺼리나 즐겨하는, 예나 지금이나 내겐 햇병아리 같은 담당자다. 마침 이 곳 풍경사진을 넣자는 제안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시기적절하게 전화가 울려왔다. 고맙게도 핸드폰도 역시 그가 장만해주었다. 이번에는 나도 거절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려면 언제, 어디서든, 그도 안심할 만한 연락수단 하나쯤은 마련해주어야 했다.

선생님. 도착하셨어요?

방금 막 도착한 참일세.

선생님이 가시자마자 서울 집에 택배가 하나 도착했어요.

택배? 나한테 말인가?

, 선생님 앞으로요.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있겠나.

아이스박슨데, 보낸 사람 이름이 번져서……. 생물류인 것 같은데요?

아이스박스라는 말을 듣자마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그것이 뇌리를 스친다.

. 가자미네요! 가자미예요, 선생님.

남편이 가자미식해를 좋아해요. 올 가자미가 그렇게 싱싱하다면서요? 잡으면 조금 보내줘요. 장모와 통화를 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가슴을 때린다. 장인장모가 돌아가신 후로는 수시로 보내져오던 아이스박스도 더는 도착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식탁에는 가자미식해가 자주 반찬으로 올라왔고, 그래서 나는 장인장모의 아이스박스가 다신 도착하지 않을 우편물이 되었단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발신인은 처가가 아니라 어딘가의 수산시장이었을 것이다.

우우, 이렇게 싱싱한 가자미는 처음 봐요. 냉장고에 넣어둬야겠죠?

그런데 올해도 어김없이 아내와 내가 살던 집에 아이스박스 하나가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싱싱하고 활기에 찬 가자미를 가득 품고서. 아내가 그 여실한 빈자리를 혼자서 메워갔단 사실을, 나의 무심했음을 또 다시.

여보세요? 선생님? 선생…….

손 안에서 힘없이 빠져나간 핸드폰이 매화 낙엽 가득한 흙바닥 위로 떨어진다. 핸드폰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벌그스름한 가자미식해가 담긴 장독만 하염없이 끌어안았다. 아내는 겨울 하늘의 잿빛 바람이 되어서도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보내져올지 모를 가자미를 나는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저 바다 어딘가로 부터 짠 바람이 불어온다. 아내인지 모른다

 

 

<당선소감>


사랑과 진정(眞正) 속에서 찾은 글의 본질

 

설익음이 설움으로 번질 때마다 나는 거품처럼 몸을 말았다. 나는 혼자이고 싶을 때나 혼자일 때에 글을 썼다. 나의 글들은 누군가에게 품평을 받는 일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쓴 글이 그들에게 어떠한 인상을 주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를 살아있게 하는 이것은 가혹한 성미(性味)를 지니고 있는 것이어서 곧잘 나를 망연한 바다로 데려다 놓았다. 그래서 빈번히 외롭고, 공허한 거품처럼 바다 위를 떠돌았다. 불확신의 기로를 걷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는 알 수 없다는 것만큼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슴 저변에 음음하게 깔린 불안을 의식할 새도 없이 또 다른 글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냈다. 진정으로 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자 기쁨이었다.

쉽게 깨어지는 연약함으로 나를 감싸던 지난날을 뒤로 하고 나는 끝내 거품처럼 살아가야 함을 안다. 부딪치고 부딪쳐 하이얀 포말로 목마른 자의 발등 적시는 일. 이를 데 없는 순수로 누군가의 탁한 발을 씻기어주는 것. 지금은 그것만이 내가 쓰고자 하는 글쓰기의 전부다.

부나 명예에 현혹되지 말고 살아감의 진리 속에서 행복을 찾으라 가르쳐 주셨던 나의 부모님, 그 분들에게 받은 사랑과 진정(眞正)으로 글을 쓸 것이다. 예정되었던 진로를 갑작스레 이탈하면서도 차마 부모님 그 속까진 헤아릴 줄 몰랐던, 이 철부지 어린 딸을 끝까지 믿고 지켜봐주신 덕분에 나는 그 사랑 속에서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글의 본질을 찾았다. 여기에 그 분들에 대한 존경을 적을 수 있게 되어 막심한 불효는 면했다.

부족한 졸작임을 알고, 앞으로 더욱 매진하라는 뜻으로 주신 이 독려의 상. 무엇보다도 부모님께 보답할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린다.

겨울은 머지않아 찬 옷을 벗을 것이다. 이제 해풍도 두렵지 않다. 글이 내게 남긴, 마음 곳곳이 뜨거운 항적(航跡)이기 때문에.

 

1989년 대전 출생.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재학 중.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구운동 490번지 201.

 

 

<심사평>

소박하나 차분하고 운치(韻致)있는 문장

 

심사자에게 넘어 온 36편의 작품을 세 차례 걸러서 6편으로 압축했다. 진통을 겪으며 탈고한 응모자들의 열정이나 작품 속에 내재된 가능성이 간과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천도제(원주:박성균)6.25당시 희생자들의 유골과 함께 땅에 묻혔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을 차분히 그렸다. 문학으로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은 부분에 착안한 점은 좋으나, 진실규명이나 황 영감의 심경변화 과정이 안이하게 처리되어 작품 전체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환생(청주:박종희)은 모성의 역할과 환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려는 작자의 의도는 짐작이 가나, 근친상간을 결혼으로 연결시키는 해법은 사회통념상 일반의 수용이 어려운 문제다. 이 작자는 문장, 구성 등은 원만하나 소재의 처리가 지나치게 앞 선 감이 있다.

파란(광주:강성오)은 소외반응으로 자해(自害)하는 앵무새와 주인공의 처지를 대비시킨 이색소재의 작품이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는 의욕 때문에 장황해진 느낌이다.

하늘로 가는 배(경산:박정규)는 자살한 여인의 진혼굿을 계기로 한 마을을 훑고 지나간 근대사의 비극을 표출한 작품이다. 문장이나 구성에도 별로 흠이 없을 만큼 수준에 올라 있으나, 신인다운 신선감이나 패기가 엿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비련(대전:신수근)은 풍부한 업무상식, 치밀한 문장 등으로 미뤄 보아 오랜 수련이나 탁월한 재질을 갖춘 이의 작품으로 보여 진다. 그러나 흔한 소재에, ‘이원의 존재를 너무 늦게 등장시킴으로써, 종결부분의 감정묘사가 절묘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제의 심도를 약화시켰을 뿐 아니라 중반까지의 치밀한 상황전개 의미도 반감 된 느낌이다.

향기로운 수조(서울:기영지)는 당선작과 끝까지 겨룬 작품이다. 사기결혼을 당한 주인공이 휴대폰 액정화면 속에, 자신이 기르는 가상의 애완동물처럼 씨받이로 사육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여체를 출산도구로 삼는 비정함을 고발하는 작품임에도 작자는 시종 냉정성을 잃지 않고 있다. 깊이 숨겨 둔 주제를 독자 스스로 찾아내도록 상황제시만 할 뿐이다. 욕탕장면이 반전의 효과를 높이기는 했지만, 본처의 행동이 좀 더 이르게 구체화 됐더라면, 작품 전체의 긴장감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자미식해(수원:오솔뫼)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가난한 시인과 고인이 된 시인의 아내, 그리고 출판사 직원. 세 사람이 엮어내는 따뜻한 인간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자는 세련된 조련사처럼 부드럽게 말()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을 보여 준다. 지극히 평범한 어휘들로 상황이나 심경을 묘사한 문장은 운치(韻致)와 함께 따뜻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아내의 사후에 도착한 택배(가자미)는 감동적인 결말의 묘미와 함께 작품의 주제를 선명하게 한다.

이 작자에게 기발한 실험정신이나 패기를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일정수준의 안정 된 작품을 창작하기에는 충분한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신인다운 발랄함이 부족함에도 당선작으로 미는 이유가 거기 있다.

 

심사위원 : 안수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