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파밭 / 홍문숙
파밭 / 홍문숙 비가 내리는 파밭은 침침하다제 한 몸 가려줄 잎들이 없으니 오후 내내 어둡다다만제 줄기 어딘가에 접혀있던 손톱자국 같은 권태가힘껏 부풀어 오르며 꼿꼿하게 서는 기척만이 있을 뿐,비가 내리는 파밭은 어리석다세상의 어떤 호들갑이 파밭에 들러오후의 비를 밝히겠는가그러나 나는 파밭이 좋다봄이 갈 때까지 못 다 미행한 나비의 길을 묻는 일은파밭에서 용서받기에 편한 때문이다어머니도 젊어 한 시절그곳에서 당신의 시집살이를 용서해주곤 했단다그러므로 발톱 속부터 생긴 서러움들도 이곳으로 와야 한다방구석의 우울일랑은 양말처럼 벗어놓고서하얗고 미지근한 체온만 옮기며 나비처럼 걸어와도 좋을,나는 텃밭에서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러했듯한줌의 파를 오래도록 다듬고는천천히 밭고랑을 빠져나온다 "은유의 텃밭에서 세월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