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적도 - 조율
적도 / 조율 옥탑방 평상에 앉아 수박에 칼을 찔러 넣는다 수박의 적도 부근쯤이다 지구본으로 따진다면 한 중앙에 위치한 에콰도르의 어느 도시 정도가 되겠지 이곳은 뜨거운 열대우림, 곰팡이가 타잔처럼 천장을 오르는 옥탑방, 생각한다, 왜 나에게는 선글라스를 끼고 일광욕을 즐기는, 그런 적도가 지나가지 않는가? 눅눅한 근로계약서에 손가락을 빌려줄 때마다 낮은 태양이 양철지붕 위로 더 무겁게 녹아 내려붙는다 가로줄이 많은, 빈칸이 많은, 적도가 많은 주름진 종이 속에는 엷은 비늘이 숨어 있다 적도를 벗어난 열대어의 서글픈 눈망울이 끔뻑인다 온통 경력자들만의 구인광고 박스, 열대성 기후 속에서 적도는 옆구리 뜨거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지구의 허리춤을 적도가 점점 조이고, 조여 오면 이거 벨트에 구멍을 하나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