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최호빈 / 그늘들의 초상
그늘들의 초상 최호빈 외팔이 악사가 기타를 연주하는 하얀 레코드판 위로 한 아이가 돌면 걸음마다 붉은 장미가 피어난다 오선지에 적힌 외팔이의 과거를 한 페이지씩 뒤로 넘기면 검게 변해버리는 장미, 같은 자리를 다시 지날 때 멈추는 음악, 검은 장미의 정원 줄이 끊어진 듯 문은 닫히고 검은 레코드판 위로 한 줌의 꿈을 꾸었다고 고백하는 잿빛 음악이 무책임한 허공을 읽는다.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십시오. 안내 방송이 끝나기 전 먼저 도착한 바람에 몸이 흔들린다 태어나자마자 걸친 인간의 가죽이 낯설어서 울면, 목에서 흘러나오는 짐승의 잡음을 따라 다른 영아들도 울었다 우는 자에게 위안은 더 우는 자를 보는 것 전생과 후생 사이를 감지하는 나의 두개골은 밀봉되기를 거부했고 뒤늦게 나타난 간호사가 기껏 흘린 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