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날,세우다 - 정지윤
날,세우다 / 정지윤 동대문 원단상가 등이 굽은 노인 하나햇살의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숫돌에 무뎌진 가위를 정성껏 갈고 있다 지난밤 팔지 못한 상자들 틈새에서쓱쓱쓱 시퍼렇게 날이 서는 쇳소리겨냥한 날의 반사가 주름진 눈을 찌른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눈초리를 자르고 무뎌진 시간들을 자르는 가위의 날노인의 빠진 앞니가 조금씩 닳아간다 늘어진 얼굴에서 힘차게 외쳐대는어허라 가위야, 골목이 팽팽해지고칼칼한 쇳소리들이 아침을 자른다 잘 쓴 시보다 울림이 있게… 시 오는 문 열어두겠습니다 시조의 멋과 맛에 끌려 시조를 쓰기 시작했다. 혼자서 시조를 쓰면서 막막하기도 했지만 아무도 없는 숲에서 노래하는 새처럼 자유로웠다. 외로웠으나 충만했다. 오래전 나를 떠난 말들이 수많은 것을 스쳐 내게로 온다. 아픔은 늘 길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