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그때 나는 / 남현정
그때 나는 / 남현정 그때 나는 산꼭대기에 서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누군가 내 몸을 살짝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중심을 잃은 채 곧 절벽 아래로 떨어질 상태였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그런 생각을 하기에 앞서 나는 이 절벽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러나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몸의 중심을 잃으면 나는 죽을 것이다. 저기 까마득한 바닥으로 퍽. 내 몸은 찢기고 터져서 형체를 잃고 말겠지. 그런 최후는 생각만으로도 너무 끔찍하다. 침착하자. 천천히 한 발자국만.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서면 될 것인데 그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몸이 떨려왔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찢긴 육체뿐일 참혹한 미래. 그것은 공포였으므로 내 몸은 떨려왔고 절벽 위에서 떨려오는 몸을 어찌하지 못하는 이 상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