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토끼왕 - 이기수
토끼왕 -이기수 토끼가 나타나곤 했다. 남자는 화랑에 가서 여우 그림을 샀다. 조그마한 방의 벽면에 꽉 들어차는, 흰 털을 가진 커다란 북극여우의 그림이었다. 그렇게 큰 북극여우는 실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괜찮은 묘사력을 가진 어느 작자가 고양이과 맹수들의 이미지를 조합하여 상상 속의 여우를 만들어낸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는 그것이 토끼를 쫓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는 눈언저리에 오는 경련을 느끼며 덫을 꺼냈다. 군데군데 슬어 있는 녹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스렁스렁, 소리가 났다. 마치 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소리가 용수철을 통해 공명하는 것 같았다. 덫은 좋은 먹잇감을 알아보고는 이처럼 울다가 어느 순간 아귀를 다물 것이다. 그의 손가락은 아스라하게 덫의 아귀를 피해갔다. 언젠가 회사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