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삭제하다 / 전영임
삭제하다 / 전영임 누구 하나 기별 없는 전화기를 매만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번호들을 지운다 절두산 망나니 손이 칼춤 추듯, 칼춤 추듯 삭제한 낯선 이름 온 저녁을 붙잡는다 단칼에 날린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아뿔싸, 목을 벤 후에 도착한 어명 같은 산다는 핑계 속에 까마아득 잊혀져간 나는 또 누구에게 삭제될 이름일까 희미한 번호를 뒤져 늦은 안부 묻는다 아버지 말씀처럼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금빛 모래 쓸리어 내리는 강을 건너, 진달래가 흐드러진 산으로 꽃상여를 타고, 화려하고 호강스럽게 떠나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난다. 내 삶의 지침이 되어 준 말씀, “즐기면서 최선을 다해라.” 시조와의 연애는 내가 늘 을이었다. 그래도 설레고 행복했다. 무릎을 치게 하는 시조를 만날 때마다 흩어진 언어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