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유품 - 유희란
유품 - 유희란 여러 장의 광고지가 붙은 철문을 열자 현관에 슬리퍼 한 켤레가 보였다. 들어서기 전, 나는 목장갑 낀 손을 두어 번 마주쳤다. 둔탁한 소리의 선명함이 가라앉은 공기를 가르고 고여 있는 먼지를 불러냈다. 적연한 가운데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으나 그것은 순전히 나만의 절차였다. 타인의 손길을 원할 리 없으나 마지못해 맡겨야 하는 것들에 대한 예의이며 인사였다. 시작하렵니다. 유족은 수거와 정리 그리고 청소와 소독을 의뢰했다. 여러 날이 지난 후의 발견은 이웃의 신고도 아니었으며 더구나 자식들의 진술도 아니었다. 독거노인을 찾아다니는 봉사자에 의해서였다. 영하의 기온으로 켜켜이 쌓인 지층이 얼어붙은 날이었다. 검은빛의 창백한 몸을 몇 날 며칠이고 떼지 않고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