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끼의 시간 - 김준현
이끼의 시간 / 김준현 우물 위로 귀 몇 개가 떠다닌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 느린 허공이 담겨 있다 나는 내 빈 얼굴을 바라본다 눈을 감거나 뜨거나, 닫아놓은 창이다 녹슨 현악기의 뼈를 꺾어 왔다 우물이 입을 벌리고 벽에는 수염이 거뭇하다 사춘기라면 젖은 눈으로 기타의 냄새 나는 구멍을 더듬는, 장마철이다 손가락 몇 개로 높아지는 빗소리를 누른다 저 먼 곳에서 핏줄이 서는 그의 목젖, 거친 수염을 민다 드러나는 싹이여, 자라지 마라 벌레들이 털 많은 다리로 밤에서 새벽까지 더듬어 오른다 나는 잠든 그의 뒷주머니에 시린 손을 숨긴다 부드럽고 가장 어두운 비닐봉지 안에 차가운 달걀 몇 개를 담아 바람에 밀려가는 주소를 찾는다 귀들이 다 가라앉은 물에도 소름이 돋는 중이다 [당선소감] 더 정갈한 글로 보답하겠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