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승혁 / 우물이 있던 자리
우물이 있던 자리 이승혁 잠 못 이루는 잔별들이 풍덩 깊은 우물 속으로 빠져드는 밤 할미의 쇠잔한 잔기침을 받아내는 밤안개가 처마 끝에서 너울지며 유영하고 있었지 빨랫줄에 걸린 물때의 온기가 자정을 적실 때면 어린 나의 입 속으로 곶감같은 어미의 숨결이 아득하게 쏟아졌었지 위태로운 유년을 닮은 초승달이 내 여린 이마를 가만히 보듬고 가곤 했지 바다의 능선을 타고 돌아오던 메아리가 어린 치어들을 깨워놓고 산 그림자 속으로 흘러가던 날 두레박을 혼자 끌어올리자 변성기의 새벽들이 사춘기처럼 찾아왔지 할머니, 내 울대의 잔별들이 사라졌는지 우물에선 맑은 목소리가 올라오지 않아요 누군가 머릿속에 방생한 악몽들만 짜디짠 입가를 헤엄치고 있어요 줄이 끊어진 두레박은 우물 속 깊이 가라앉았고 전설들 두레박을 기울여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