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정영희 / 귀화(歸化), 혹은 흑두루미의 귀환(歸還)
귀화(歸化), 혹은 흑두루미의 귀환(歸還) 정영희 아무르 강 소인이 찍힌 항공우편이 도착했다 우표 네 귀마다 고드름이 박혀있는 흑갈색 편지에는 온난화 현상도 이곳에선 세계대백과사전에서나 읽어보는 호사라며 한낮에도 발가락을 날개 안쪽 깊이 파묻고 지낸다는 이야기였다 순천만에서 담근 농게 장을 벽돌 빵에 치즈대신 발라먹고 끼니를 때운다는 이야기며 새끼들로 인한 궁기窮氣때문에 늦은 저녁까지 시베리아 벌판에서 발품을 팔고 돌아온다는 행간에는 한숨이 진하게 배어났다 철새라고 부르는 비아냥 때문에 눈자위 진물이 마를 날이 없다는 대목에서는 먹빛 하늘을 갈기처럼 찢고 싶었다 허기로 눈밭에 시리도록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 이젠 지쳐 순천만의 텃새로 귀화를 결심하고 있다는 추신에 이르러서는 철 이른 폭설이 자작나무 숲을 ..